이 글은 《사상계》 2026년 5·6월호(통권 212호, 재창간 7호) 특집 「신오적, 마피아를 해부하다!」 언론마피아 편에 실린 글입니다. 잡지 구입과 정기구독은 사상계 누리집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프레스Press’라는 단어의 어원은 15세기 유럽의 포도 압착기에서 시작된다. 무거운 나사를 돌려 포도나 올리브를 짓이겨 즙을 짜내던 물리적인 ‘누름’의 행위가 활자를 종이에 찍어내는 기술로 전이된 것이다. 정보를 복제하기 위해 종이를 강하게 내리누르는 ‘인쇄술’이라는 이 기계적 공정은 현대 언론의 이름이 되었다. 한편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은 넓은 대지에 (일방적으로) 씨를 뿌리듯 전파를 통해 대중의 의식을 동기화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이 둘은 지난 세기 동안 정보를 독점하고 의제를 선점하며 한국사회의 소용돌이를 지배해 온 매스미디어 권력의 두 얼굴이었다.

‘누르고 찍고 퍼트린다’라는 행위에서 우리는 프레스의 두 가지 얼굴을 발견한다. 하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사실들 사이에서 ‘핵심’을 추출해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확산의 순기능이다. 이는 지식을 대중화하며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았다. 그러나 동시에 기득권의 의제에 반하는 사실을 배제하고 억압하며, 특정한 방향과 맥락을 종이 위에 박제하거나 주파수에 담아 일방적으로 발신하는 힘으로도 작동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목격해 온 매스미디어는 후자의 속성에 더 가깝게 머물러 있었다. 그렇게 권위를 누리던 역사는 디지털시대를 만나 알고리즘에 올라탄 채 지지자에게만 말을 걸며 권력과 수익을 유지하려는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1. 면죄부와 반박문: 수익과 저항의 이중주

구텐베르크 시절에도 인쇄술이 처음 마주한 현실은 저널리즘의 숭고한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창기 인쇄기(프레스)의 가장 큰 고객은 로마 가톨릭교회였고, 교회는 인쇄기를 활용해 ‘면죄부’를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었다. 이는 교회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혁신적인 기술이었으며, 신의 구원마저도 기계적으로 복제하여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이 되었다. 기술이 자본과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을 때 발생하는 폐해를 인쇄술의 탄생 초기부터 보여준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면죄부의 대량생산은 같은 기술로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찍어낼 수 있도록 했다. 인쇄술은 면죄부 판매의 부당함을 폭로하려는 시도를 대량으로 시민들에게 도달할 수 있게 한 도구였고, 기술이 발명된 지 70년이 지나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기술은 그 자체로 중립적일지 모르나, 그것이 놓인 사회적 맥락과 사용 주체에 따라 권력의 도구가 되기도, 해방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오늘날의 디지털 플랫폼이 혐오를 확산하는 동시에 연대의 통로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2. 정파 담론에서 페니 프레스로: 신뢰를 향한 시민의 갈망

19세기 초반까지 언론은 특정 정당이나 정파의 목소리만을 대변하며 반대편의 주장을 철저히 배제하는 ‘정파 기관지party press’였다. 정보를 종이에 박제하여 자신들만의 권위로 삼고, 지식인의 전유물로써 권력투쟁의 도구로 복무했다. 엘리트들은 비싼 구독료를 지불하며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의 신문만을 구독했고, 이는 확증편향의 원형을 형성했다.

이를 돌파한 것이 1830년대에 등장한 《페니 프레스Penny Press》이다. 단돈 1페니로 신문의 문턱을 낮추자, 언론은 소수 엘리트가 아닌 대중 전체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신문이 대중매체로 진화하면서 정보를 독점하던 성벽에 균열이 생기고, 대중의 새로운 요구가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들은 정파적 선동 대신 객관적인 사실을 담은 정보를 원했다.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해 맥락을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시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라는 요구였다. 이 갈망이 현대 저널리즘의 근간인 ‘공정성’과 ‘객관성’을 탄생시켰으며, 이는 언론이 자본과 정치가 아닌 ‘시민’에게 눈을 돌릴 때 비로소 권위를 얻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3. 현대판 미디어의 역설: 종이 성벽과 독점 주파수

그레고리 헨더슨이 분석한 한국사회의 ‘소용돌이vortex’1) 구조 속에서, 언론은 게이트키퍼gatekeeper로서 권력집착에 몰두해 왔다. 신문이 정보를 종이에 ‘박제’한다면, 방송은 한정된 주파수라는 공공자원을 독점하여 시민들의 의식을 특정 의제에 ‘동기화’한다. 주요 출입처의 기자실을 독점하고, 뉴스 스튜디오라는 성역 안에서 무엇이 뉴스인지를 결정하는 행위는,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중앙 집중적 권력을 지향해 왔다.

1) 미국의 외교관이자 학자인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이 그의 저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제시한 ‘소용돌이’ 모델은 한국 정치 구조의 특이성을 설명하는 강력한 비유이다. 헨더슨은 한국 정치를 사회 하층부에서 상층부(권력의 정점)를 향해 모든 에너지가 강력하게 빨려 올라가는 거대한 깔때기나 태풍 같은 형상으로 묘사하며, 극도로 원자화된 개인들이 오직 중앙 권력만을 바라보며 질주한다고 분석했다.

디지털시대가 도래한 20여 년 전 즈음에도 이들은 여전히 ‘물리적 고착성’에 집착했다. 종이신문 지면에 박제된 정보를 그대로 디지털로 옮기려 하고, 방송 역시 정해진 편성시간과 앵커의 권위 뒤에 숨어 ‘변하지 않는 진실’을 강요한다. 이는 흐르는 정보를 멈춰 세우고 특정 맥락만을 고정하려는 권력의 의지이다. 정보는 이미 연결되고 흐르는 데이터로 시시각각 변화하는데, 기성 미디어는 고립된 활자와 전파 속에 독자와 수신자를 가두어 자신들의 영향력을 ‘일방적으로’ 만들어내는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이신문과 전파방송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4. 기술이 연 해방의 경로: 미디어 민주주의와 디지털 시민공론장

‘소용돌이’의 꼭대기와 초입에서 기득권과 언론이 활용하는 ‘배제하고 퍼트리는 힘’에 균열을 낸 것은 새로운 연결의 기술(미디어 기술)이었다. 임문영이 쓴 『파레오로스』에 따르면 1980년대 독재정권이 보도지침으로 시민의 입을 막을 때, 우리 사회의 실핏줄은 기술적으로 재편되고 있었다. 1986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성공시킨 전전자 교환기TDX-1의 상용화가 결정적 변곡점이었다. 인간 교환원이 일일이 연결하던 시대를 지나 기계가 자동으로 전화를 연결하자,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실시간 양방향 통신의 시대가 열렸다.

1987년 9월, 전국 전화 회선이 1,000만을 돌파하며 독재정권의 일방적 지침을 보내던 ‘일 대 다수(1:N)’ 시대에 종언을 고했다. 모든 국민이 실시간으로 은밀하고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는 ‘일 대 일(1:1)’ 통신 시대는 6·10 민주항쟁을 승리로 이끄는 보이지 않는 말의 통로[言路]가 되었다. 디지털시대로 접어들자 이 경로는 더욱 선명해졌다. 1997년 대선 당시 PC통신 가입자들이 형성한 ‘임계인구critical mass’는 지역과 세대를 넘어서는 시민적 연대를 만들어내며, 지역감정으로 갈라져 있던 정치지형에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오마이뉴스》, 다음 아고라, 블로거뉴스는 진정한 ‘시민주권’의 미디어시대를 열어젖혔다. 《오마이뉴스》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선언으로 언론의 생산주권을 시민에게 돌려주었고, 다음 아고라는 편집국이라는 폐쇄적 밀실에 갇혀 있던 의제설정 권한을 해체했다. ‘미디어 민주주의’를 주창하던 블로거뉴스(다음뷰)를 통해 시민들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며 평가하는 저널리즘의 핵심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무엇이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의제인지 시민들이 투표하고 토론하며 결정하는 이 구조는, 기술에 힘입어 콘텐츠의 생산·평가·소비 전 과정을 민주적으로 재구성하려는 거대한 시도였고, 평범한 사람들을 광장으로 초대하며 평화적 시민광장을 여는 데 기여했다.

5. 디지털 소용돌이: 유튜브와 현대판 면죄부 상인들

하지만 오늘날 유튜브를 비롯한 거대 상업미디어 플랫폼 위에서 벌어지는 행태는 다시금 언론의 타락과 공론장의 몰락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알고리즘이라는 유령 위에 올라탄 언론은 자신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소용돌이의 게이트키퍼’ 역할마저 저버렸다. 실시간 접속자 수와 ‘슈퍼챗’의 유혹 앞에서 저널리즘은 자극적인 클립Clip으로 조각나 팔리고, 자신들의 지지자에게만 말을 거는 폐쇄적 발화에 몰두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제 언론은 지지자에게만 몰두하는 ‘정파 기관지’를 거쳐 가짜 위안을 팔고 후원금을 거두는 ‘디지털 면죄부 사업’에 가까워졌고, 미디어 생태계는 중앙에만 몰린 권력을 놓고 밀리면 죽는다는 위협 속에서 싸우는 ‘종교전쟁’에 가까워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파행이 우리 사회가 통제할 수 없는 빅테크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의해 강화된다는 점이다. 분노와 증오는 클릭을 부르고, 클릭은 수익으로 직결된다. 플랫폼은 갈등을 중재하는 것이 아니라 증폭시키며 수익을 올린다. 과거 언론이 정보를 종이와 전파에 가뒀다면, 현대 플랫폼은 시민을 ‘확증편향의 감옥’에 가두어 수익을 창출한다. 기술적 해방이 가져온 말의 쌍방향 통로가 다시금 자본과 정치, 언론의 욕망이 뒤섞이며 우리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6. 진짜 혁신: 사실과 진실, 연대와 포용이 만드는 ‘디지털 시민 공론장’

현재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양극화, 기후위기 등 인류 공동의 과제 앞에서 합의불능과 문제해결의 부재라는 총체적 난국에 직면해 있다. 지금 당장 공론장을 복원하지 못한다면 공동체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못할 상황이다. 다만 과거 두 번의 탄핵을 평화적으로 이끌어낸 시민들의 역동성과 연결·축적·자동화를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기술의 잠재력을 결합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주도 공론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정보를 압착하여 맥락을 박제하며 권한을 독점하던 과거의 ‘프레스’ 모델은 존재할 수 없다. 대신 디지털 환경의 유동성을 수용하며 끊임없이 연결되고 변화하며 누구나 참여하는 개방적 구조를 지향해야 한다. 구체적인 혁신의 경로는 다음의 세 가지 층위에서 진행된다.

첫째, 신뢰의 재구축이다.

권위 있는 소수 전문가나 매체가 정보를 독점적으로 선별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의 투명한 공개’를 전제로 하는 ‘시민 참여형 팩트체크’가 그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수용하는 능력을 넘어, 정보의 진위를 스스로 분별하고 검증하는 역량을 ‘디지털 시민성’의 핵심 덕목으로 설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는 시민들이 누구나 검증 가능한 데이터에 접근하고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제도적·기술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민주적 규칙에 기반한 연대와 협력의 시스템이다.

이제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내고 공헌과 신뢰를 바탕으로 소통하는 쌍방향 소통 생태계가 펼쳐졌다. 여기서 공론장은 단순한 발화의 장을 넘어, 다양한 목소리가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교차하고 조정되는 ‘숙의의 시스템’이어야 한다. 일방적 주장이 난무하는 소용돌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이 공존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민주적 규칙을 기술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이를 통해 파편화된 개인들은 공통의 의제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대하며 집단지성을 형성하게 된다.

셋째, 공익적 가치를 지향하는 평가 및 보상체계의 설계이다.

현재 미디어 생태계는 상업 미디어 플랫폼 위에서 조회수와 클릭 극대화를 통해 생존을 도모하고 있다. 사용자의 분노를 동력 삼아 중독을 유도하는 알고리즘은 개인을 필터버블에 고립시킬 뿐만 아니라, 로힝야 사태처럼 실질적인 민족학살을 선동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이를 대체하기 위해 공론장의 규칙을 준수하고 공익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신뢰와 보상을 부여하는 ‘공익 중심 알고리즘’을 설계해야 한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를 공익으로, 이를 실현하는 시민의 가치를 시민성으로 찾아내어 기여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실천하는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을 시민이 소유하고 유지하는 공익적인 기관으로 만드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 플랫폼에 사회의 작은 목소리부터 큰 목소리까지 우리 사회를 실제로 담은 데이터를 지금부터 축적해 나가야 한다. 상업 플랫폼과 기득권의 수익원으로서가 아니라, 공익을 추구하는 디지털 공론장을 실현하는 데이터, 알고리즘, 플랫폼을 사회적 공공재commons로 확립할 때, 디지털 미디어 기술은 비로소 민주주의의 토대로 기능할 수 있다.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는 이 환경 위에서 정수를 찾아내고 맥락을 만들고 지켜내는 동료 시민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다만 기존의 거대한 언론사로서가 아니라 지역에서 혹은 특정한 주제를 천착하며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작지만 다양한 저널리스트들이 다층적으로 활동하며 스스로가 특정 주제의 맥락이 될 것이다. 지금도 사회 여러 곳에서는 독립 미디어를 꿈꾸며 사회에 기여하려는 저널리스트들이 발아,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정보를 폐쇄적 카르텔의 전유물에서 시민 모두가 가꾸는 공유자산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이자 민주주의를 일상 속에서 실현하는 과정이다. 데이터가 우리 사회의 맥락을 투명하게 직조하기 위한 공통의 언어가 되고, 연대와 협력의 가치에 기반한 참여와 숙의의 시스템이 우리의 대화방식이 될 때, 새로운 공론장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지우는 도구가 아니라 모두의 지혜를 담아내는 플랫폼으로 거듭날 것이다. 전문성을 지닌 저널리즘 역시 이러한 시민주도의 가치 중심 공론장 안에서 비로소 진정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7. 결론: 누르는 권력을 넘어, 함께 정수를 찾는 시민으로

한국언론이 직면한 위기는 단순히 종이나 전파매체의 소멸이나 산업적 쇠퇴가 아니다. 본질적인 위기는 한국사회 특유의 ‘소용돌이’ 구조 속에서 의제의 선정과 발신을 독점하던 게이트키퍼로서 권력이 해체된 이후, 그 공백을 민주적 가치가 아닌 상업적 알고리즘과 정파적 욕망이 점령했다는 데 있다. 과거 프레스와 방송이 정보를 박제하고 전파를 독점하며 권위를 누렸다면, 현대 언론은 갈등을 부추기는 플랫폼에 기생하며 지지자들에게 확증편향이라는 ‘디지털 면죄부’를 판매하는 ‘정파 기관지’로 되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합리적 토론과 사회적 합의를 가능케 했던 공론장은 실종되었으며, 언론은 공적 기능을 상실한 채 분열을 가속하는 장치로 전락했다.

이제 우리는 시민이 주권자로서 참여하고 연대하는 새로운 공론장의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고도화하는 차원을 넘어, 데이터와 플랫폼을 기득권의 수익원이 아닌 사회적 공공재로 전환하고 시민 스스로가 공론장의 규칙을 설계하는 거대한 민주적 기획을 요구한다. 투명한 데이터 위에서 시민이 직접 사실을 검증하고, 쌍방향으로 연결된 기술을 활용해 협력적으로 합의를 만들어가며, 공익적 가치에 따라 신뢰를 배분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때, 미디어는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모두를 위한 공동체의 지혜를 담는 그릇으로 거듭날 수 있다. 억누르고(프레싱) 강요하는(브로드캐스팅) 권력의 시대를 지나, 연결과 축적의 기술로 시민들이 서로 포용하고 협력할 때, 소용돌이치는 복합위기 속에서도 한국사회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권오현(사회적협동조합 빠띠 대표), 「디지털 공론장의 몰락과 사회적 공공재로의 전환」, 《사상계》 2026년 5·6월호(통권 212호, 재창간 7호), 153~160쪽. 특집 「신오적, 마피아를 해부하다!」 언론마피아 편. 잡지 구입·정기구독은 www.sasang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