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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질문, 그러나 이미 나와 있는 답

회사가 만들어 낸 이익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가져가야 정당한가. 이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노동의 몫과 자본의 몫, 개인 기여와 공동 기여의 경계, 시장의 효율과 사회의 안정 사이에서 합의는 늘 실패해 왔습니다. 최근 여러 기업에서 반복되는 성과급 갈등 역시 그 오래된 질문이 다시 표면 위로 떠오른 장면입니다. AI 기술의 발전을 통해 모두를 위한 진짜 성장과 기본사회를 동시에 추구하는 상황에서 이 질문은 조금 빠르게 왔을 뿐 언젠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해 우리가 이미 상당히 정교한 답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연대경제(Social and Solidarity Economy)와 공익법인 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제도들은 이익이 한두 사람의 사적 재산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도덕적 호소가 아닌 법과 정관을 통해 분배의 경로를 미리 설계해 둡니다. 완벽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무한 경쟁 체제가 만들어 내는 격차와 고립에 대해서는 분명히 다른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왜 작동하며, 우리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 그 작동 원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함께 사는 사회를 지키는 세 가지 제도적 장치

사회연대경제가 무한 경쟁 체제와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은 ‘구조’에 있습니다. 회사의 이익이 특정 개인의 사적 재산으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법과 정관이라는 물리적 규칙으로 경로 자체를 잠가 둡니다.

첫째, ‘비분배 제약(Non-distribution Constraint)’과 ‘자산잠금(Asset Lock)’. 회사가 이익을 내더라도 경영자나 투자자가 이를 배당으로 가져가는 행위를 제한합니다. 해산 시 남은 자산도 개인이 회수할 수 없도록 묶어 둡니다. 미국의 등산복 기업 파타고니아(Patagonia)는 2022년 9월, 창업자 가족이 보유하던 회사 소유권 전체를 두 개의 새로운 조직으로 이전했습니다. 회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신탁(Patagonia Purpose Trust)에 의결권을 넘기고, 이익 배당권(98%)은 환경 비영리단체(Holdfast Collective)에 이전하여, 매년 회사가 재투자하고 남긴 이익이 모두 환경 보호 활동으로 흘러가도록 구조 자체를 재설계한 사례입니다. 한국의 공익법인과 사회적협동조합 역시 동일한 원리 위에서 작동합니다.

둘째, ‘임금 상한제(Wage Ratio Cap)’와 ‘연대임금제(Solidarity Wage)’. 개인 성과가 무한한 임금 격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직 내 최고 임금과 최저 임금의 비율을 정관으로 제한하는 방식입니다. 스페인의 협동조합 몬드라곤(Mondragon)에서는 협동조합마다 다르지만 평균 1:5, 최대 1:6 수준으로 임금 격차가 묶여 있습니다. 같은 시기 미국 상장기업의 CEO-노동자 임금 격차가 수백 배에 이르렀던 점과 비교하면, 보상이 한 사람의 통장에 무한히 누적되는 길을 처음부터 닫아 둔 설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이윤의 사회적 목적 재투자 의무. 한국의 「사회적기업 육성법」 제8조는 「상법」상 회사·합자조합 형태로 인증받은 사회적기업의 경우, 회계연도별 배분 가능한 이익의 3분의 2 이상을 취약계층 고용, 지역사회 공헌 등 사회적 목적에 의무적으로 재투자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익이 외부 자본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사회 안에서 순환하도록 강제하는 규칙입니다.

세 가지 장치는 결국 하나의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만든 이익이 한 사람의 통장이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로 흐르게 하려면, 어떤 규칙이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해 사회연대경제는 이미 검증된 설계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금전적 보상만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러운 의문이 떠오릅니다. “사람은 결국 더 많은 보상을 원하지 않는가. 이런 제도는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 아닌가.”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의 누적된 연구는 이와 다른 그림을 보여 줍니다. 사람은 자기 이익만 챙기는 단일한 존재가 아닙니다. 공정성이 확보되고 상호성이 작동하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더 협력적으로 일하며, 장기적으로 더 높은 성과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여러 실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Bowles & Gintis).

또한 동기는 외적 보상에만 반응하지 않습니다. 라이언과 데시(Ryan & Deci)의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사람은 다음 세 가지가 충족될 때 가장 깊은 만족을 경험합니다.

  • 일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Autonomy)’
  • 자신의 역량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유능감(Competence)’
  • 자신의 노동이 타인과 사회에 의미가 있다는 ‘관계성(Relatedness)’

사회연대경제의 제도는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무리한 실험이 아니라, 인간이 실제로 어떨 때 만족하며 일하는가에 대한 경험 연구를 반영한 설계입니다.

능력주의의 환상과 실용적 대안

경쟁 환경에서 자라난 일부 세대는 이러한 연대적 제도를 ‘능력 있는 개인의 정당한 몫을 빼앗는 무임승차 보호 장치’로 받아들입니다. 엄격한 성과 측정과 차등 보상, 곧 능력주의(Meritocracy)야말로 공정의 기준이라는 시각입니다. 일리 있는 직관이지만, 그 안에는 몇 가지 구조적 착시가 있습니다.

첫째, ‘능력’ 안에는 이미 물려받은 사회적 자산이 섞여 있습니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이 지적하듯, ‘메리트(Merit)’에는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 거주 지역, 접근할 수 있었던 교육, 그리고 약간의 운까지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능력주의 체제는 이미 사회적 자산을 더 많이 물려받은 사람이 더 쉽게 성과를 거두고, 그 성과를 다시 독점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익의 일부를 공동체로 환류하는 일은 누가 빼앗아 가는 징벌이 아니라, 자신의 성과를 가능하게 한 사회적 인프라에 대한 정당한 사용료를 지불하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둘째, 이는 희생이 아니라 ‘위험 관리’입니다. 승자독식 시장에서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가 언젠가 한 번은 밀려납니다. 시험과 채용, 기술 변화, 산업 재편, 질병과 돌봄의 의무 — 한 사람의 경쟁력이 영구히 유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임금 상한제와 사회적 재투자는 그 순간에 벼랑 끝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받쳐 주는 구조적 보험입니다. 타인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언젠가 흔들릴 수 있는 미래의 자기 자신을 위한 보장 장치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셋째, 거대 플랫폼의 독점에 대응하는 ‘디지털 공공재(Digital Commons)’의 원리와 같습니다. 오늘날 배달, 모빌리티, 생성형 AI 같은 거대 플랫폼은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며, 실제로 가치를 만드는 노동자·이용자·창작자의 몫을 통제합니다. 사회연대경제의 비분배·재투자 장치는 소수 자본의 독점을 막고, 참여자들이 함께 만든 성과를 공동의 자산으로 유지합니다. 이는 오픈소스(Open Source)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공공재의 운영 원리와 동일한 문법을 공유합니다.

각자도생의 굴레를 넘어, 자율적 선택의 경제로

성과 중심 경쟁 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구성원들을 오직 혼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길로 내몬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국가가 모든 영리기업에 헌법이나 법률로 특정한 이익 분배 방식을 강제하면 해결될 일일까요. 일부에서는 그러한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규제는 경제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거나, 규제를 회피하려는 또 다른 편법을 유발하기 쉽습니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Robert Dahl)이 다원주의 민주주의의 오랜 딜레마로 지적한 ‘자율성과 통제 사이의 긴장’ 역시 같은 문제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중요한 대안이 바로 시장 안에서 다양한 경제 형태가 공존하는 ‘경제적 다원주의(Economic Pluralism)’입니다. 사회연대경제의 장치들은 국가가 위에서 아래로 강제하는 통제 기제가 아닙니다. 무한 경쟁의 위험을 인지한 시민과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해 온 대안적 구조입니다.

앞서 살펴본 임금 상한제와 재투자 의무가 ‘미래의 자기 자신을 위한 보험’이라면, 그 보험에 가입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시민 자신이어야 합니다. 비분배 제약과 임금 상한제 같은 규칙들은 외부 권력이 부과한 통제가 아니라, 혼자서 모든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사자들이 스스로 합의해 만들어 낸 ‘자율적 거버넌스(Self-Governance)’의 결과물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이 오랜 현장 연구를 통해 확인했듯, 공동의 자원은 외부 권력의 일률적 통제 없이도 참여자들이 스스로 만든 규칙을 통해 충분히 지속가능하게 관리될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선택지로서의 사회연대경제, 함께 만들어 가기를 권합니다

사회연대경제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일한 사람들의 몫을 지키고, 미래의 위험을 나누며, 공동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이미 보여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결과가 한 사람의 통장으로 사라지지 않고 다시 사람과 사회로 흘러 돌아오는 구조입니다. 일하는 사람이 곧 주인이 되고, 이익이 곧 공동체의 자산이 되며, 회사의 성장이 곧 이웃의 안전망이 됩니다.

그리고 이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곁에는 이미 공익법인,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이 작동하고 있고, 디지털 영역에서는 시민기술(Civic Tech), 플랫폼 협동조합, 공익 데이터 같은 새로운 시도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일하고, 누군가는 그곳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며, 누군가는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또 누군가는 이런 모델이 더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가꾸는 일에 힘을 보탭니다.

거창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 마시는 커피, 자주 쓰는 앱, 동네에서 마주치는 가게 가운데 어떤 곳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고 있는지 한 번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작은 관심이 쌓여 더 많은 선택지가 살아남고, 더 많은 사람이 그 안에서 일하며, 더 많은 위험이 함께 나누어집니다.

사회연대경제는 누구에게 강요되는 이상이 아니라, 함께 선택할 때 비로소 더 단단해지는 우리 모두의 자산입니다. 한 번쯤 그 작동 원리에 관심을 가져 보시기를, 그리고 그 길에 함께해 주시기를 권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