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존중을 외면한 채, 공감과 존중을 기대하기: 지브리풍 그림 열풍의 역설

지브리풍의 AI 그림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사람들은 각자 간직하던 소중한 사진을 멋진 지브리풍 그림으로 변환한 후 자랑스럽게 공유한다. 아름다운 화풍에 담긴 자신의 모습, 소중한 사람들의 모습, 소중한 순간들을 공유하며 타인의 공감을 기대했을 것이다. 마치 관광지에서 역사 유산이나 자연 유산을 가린채 셀카를 찍는 이들이 그 유산이 아니라 ‘그 유산 앞에 선 나’를 기념하듯이, 사람들은 세상 속의 자신을 기념하고 그 순간의 자신에게 다른 이들이 공감하길 바란다. 지브리풍 AI 그림을 공유하는 열광 속에는 자기 존중과 타인의 공감에 대한 갈망이 있을 테다. 소셜 미디어가 그렇듯이.

이 열풍에 관해 샘 알트만도 트윗을 남겼다. 자신도 지브리풍 그림을 프로필에 올린 그는, 10년간 암 치료 등을 위해 초지능을 만들려 노력했지만 7년은 무시당하고 2.5년은 미움받았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지금 많은 사람들이 챗GPT로 지브리 스타일 그림을 만들며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낸다고 글을 남겼다. 이 짧은 글에는 창작자로서 겪은 고통과 외로움, 암 치료보다 프로필 이미지에 열광하는 현실에 대한 복잡한 감정, 그리고 이런 현상을 만들어낸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이 느껴진다. 그 역시 새로운 길을 개척할 때의 어려움을 겪었고, 존중과 공감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어 한 인간으로 느껴졌다.

한편 지브리 화풍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2016년 NHK 다큐멘터리에서 AI가 그린 결과물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현했다. “AI가 그린 결과물은 실제 작업하는 사람의 고통을 전혀 모른다”, “역겹고 소름이 끼친다”, “삶 자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한 땀 한 땀 그림을 그리며 창작의 고통을 감내한 그의 작품은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고, 역설적으로 ‘지브리풍’ 이미지에 자신을 담아내는 데 열광하는 대중을 만들어낼 만큼 커다란 존중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지브리풍 그림에 열광하면서도 오픈AI가 미야자키나 지브리의 동의를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 그 사이 전세계에서 미야자키가 ‘역겹다’고 말한 AI 그림을 그의 화풍을 모방해 만들고, 심지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외쳤던 그의 화풍으로 이스라엘 군이 선전물을 만들기까지 했다. 열광의 근저에는 인간 누구나 가진 존중받고 공감받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그 한가운데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작품을 만들며 겪은 고통과 그 결과물에 대한 존중과 공감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공감과 존중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인간이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과 존중을 건너뛰고, 자신에 대한 공감과 존중만을 바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마음껏 하곤 하지만, 그 사이에 우리의 인간성이 망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해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던 작가들이 느낄 절망은 앞으로 인간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게 될까?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 화풍의 그림에 반대 의사를 밝힌다면, 법률 분쟁에 돌입하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의사를 존중하고 지금까지 생성한 그림을 다 내리게 될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터뷰에서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진 것 같다. 인간은 자신감을 잃었다”라고도 이야기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묻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마치 이런 시대가 올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이었을까? AI의 시대에 “인간성은 무엇인지”,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을 것들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어떻게 살지” 우리에게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