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비영리스타트업의 임팩트 확장과 혁신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아산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에 빠띠 데이터트러스트의 ‘공익데이터작업실’ 사업이 선정되었습니다. 빠띠 데이터트러스트는 데이터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시민 데이터 플랫폼입니다.
아산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을 통해 성장할 공익데이터작업실은 공익단체의 원천 데이터를 저작권 및 개인정보 등 관련 문제를 처리하여 공개 가능한 원본 데이터로 전환하고, 데이터가 필요한 언론, 연구자, 기관과 시민들이 해당 데이터를 찾고 정해둔 라이센스 하에서 활용하도록 플랫폼에서 공개하고 유통하는 사업입니다.
데이터를 공개함으로써 공익 단체는 자신들이 해결하려는 공익적 이슈를 확산하는 디지털 기반을 마련할 수 있으며, 해당 데이터를 활용하려는 다른 파트너들과의 협력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공익데이터작업실 사업을 통해 공익데이터의 생산, 제공, 활용, 관리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속 가능한 공익 데이터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빠띠 데이터트러스트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공익 데이터는 무엇이고, 왜 필요할까요?
디지털 사회에서 데이터는 복잡한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중요한 자원입니다. 특히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만든 데이터나 공익 단체들이 보유한 데이터는 직접적으로 사회 문제 해결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데이터를 더 많은 시민에게 제공한다면,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할 기회가 증가합니다.
‘데이터가 곧 돈’이라는 관점에서 경제적 가치를 위한 데이터 생산은 활발하지만, 사회 문제와 관련된 데이터의 생산과 관리는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여타의 생산물과 같이 데이터 역시 생산자의 관점과 가치를 반영하게 되며, 공익 목적이 우선인 데이터는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생성되지 않는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데이터 협동조합, 데이터 이타주의 모델 등 공익 데이터와 관련된 비영리 단체의 역할을 강조하며, 더 바람직한 디지털 사회를 준비하는 흐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빠띠는 한국에서 공익 목적의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데이터트러스트를 만들고 운영해 왔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시기 공공데이터 개방을 통해 마스크 재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게 한 공적 마스크 공동대응 활동은 시민들이 참여한 공익 데이터의 대표적 사례이며, 빠띠 데이터팀의 첫 프로젝트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관악구의 등기부등본 데이터화, 강서구의 장애아동 친화 놀이터 데이터 제작, 일상 속 그린워싱 사례 데이터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 보기
함께 공익데이터 생태계를 만들어요!
국내 시민사회와 공익활동의 역량과 역할은 디지털 사회 변화의 흐름에 맞춰 제한적이며, 기반도 취약합니다. 국내에서 공익 활동을 중심으로 한 데이터 플랫폼도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데이터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시대에 공익적 목적의 데이터 생산과 관리 역량은 필수적입니다.
이에 빠띠는 공익 목적의 데이터를 함께 생산하고 공유할 공익 단체를 공익데이터작업실에 초대합니다. 우리 모두의 힘을 모아 공익 데이터 생태계를 만들어 봅시다.
공익데이터작업실에 참여하는 공익 단체는 1) 데이터 공유를 통해 활동을 재조명 및 확장하고, 2) 데이터 기반 분석을 통해 합리적 근거를 마련하며, 3)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더 나은 사회적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공익 단체의 데이터 현황 파악, 원천 데이터의 정리와 재가공, 데이터의 관리와 보급은 빠띠 데이터트러스트가 지원할 계획입니다. 데이터트러스트 소개서 보기
궁극적으로 빠띠는 데이터의 공익적 활용을 지속적으로 고민하며, 공익 단체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민주적이고 투명한 데이터의 소유, 활용, 관리를 추구하고, 데이터에서 발생하는 혜택을 데이터 소유자와 사회 구성원 모두와 공유하는 운영 모델을 만들려 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영향력 있고 지속가능한 공익 활동에 필요한 공익 데이터 생태계 조성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요청드립니다.
빠띠 캠페인즈는 시민들과 크라우드 소싱 방식의 팩트체크 캠페인을 벌이고, 여기에 모인 자료를 바탕으로 시민팩트체커들이 팩트체크 컨텐츠를 만듭니다. 또한 누구에게나 팩트체크 컨텐츠를 만드는 기능을 제공하고, 시민팩트체커를 모으고 활동을 지원합니다. 사업을 시작한지 1년도 안 되어 벌써 46개의 팩트체크 컨텐츠를 만들어냈고, 다양한 팩트체크 캠페인들을 진행하였습니다. 다음이 관련 정보들입니다.
누구나 쉽게 컨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시대에 허위조작정보의 생산과 확산은 급증하고 있습니다. 허위조작정보를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실을 다룬 정보를 생산하고 확산하는 팩트체크를 강화해야 합니다. 또한 팩트체크가 저널리스트의 과업을 넘어 모든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수행할 수 있도록, 팩트체크를 디지털 사회의 시민들이 기본적으로 갖춘 문화이자 역량으로 자리잡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2021년 빠띠는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 현업 단체 3곳과 함께 크라우드 소싱 방식의 오픈 팩트체크 플랫폼 ‘팩트체크넷’을 개발, 운영했습니다. 이후 2023년 팩트체크넷이 서비스를 중단한 뒤 빠띠는 시민이 주도하는 팩트체크 활동 공간이 지속되고, ‘정보를 받아들이기 전에 의심하고, 확인하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캠페인즈에서 팩트체크 기능 및 공간을 제공하고, 시민들이 팩트체크 활동을 벌여나가도록 독려하는 시민팩트체크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민팩트체크의 활성화를 위해 함께 해주세요
현재까지 빠띠 캠페인즈는 국내에서는 시민팩트체크를 수행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더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팩트체크 캠페인을 만들고, 시민팩트체커를 양성하며 활동의 공간을 제공하며, 팩트체크 컨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기능과 플랫폼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시민 누구나 팩트체크를 함께 할 수 있고 어디서나 팩트체크 컨텐츠를 접할 수 있도록 만들려 합니다.
빠띠 캠페인즈의 시민팩트체크 활성화 사업은 시민의 후원을 바탕으로 운영합니다. 시티즌패스 플랫폼에서의 멤버 가입을 통해 캠페인즈와 시민팩트체크 사업을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허위정보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팩트체커 활성화 사업의 취지를 공감하는 기관 및 조직의 지원을 통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사회의 기반을 다지는데 시민팩트체크 사업이 가진 가치를 공감하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시민들의 디지털 시민 멤버십 “시티즌패스“를 베타 오픈한지 반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6개월간 다양한 배경을 가진 멤버들이 700여명 넘게 가입하며 모임과 교육을 나누며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베타 오픈의 다음 단계로 시티즌패스가 빠띠 시민 플랫폼과의 연결을 통해 더 깊고 넓어집니다.
빠띠 시민 플랫폼 사업부는 시민 활동 플랫폼 캠페인즈, 시민 대화 플랫폼 데모스X, 시민 데이터 플랫폼 데이터트러스트를 함께 운영 중입니다. 시티즌패스 멤버들은 빠띠 시민 플랫폼 사업부가 제공하는 시민 플랫폼에서 캠페인, 투표와 토론, 팩트체크, 뉴스 코멘트, 공론장, 리빙랩, 시민 데이터 실험실, 공익 데이터 작업실 등을 활동하고, 시티즌패스에서 다양한 역량과 지향을 가진 동료들과 협력하며,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더 넓은 연결’과 ‘더 깊은 협업’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디지털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베타 기간 동안 시민 플랫폼과의 연결을 강화하는 디지털 시민은 다음과 같습니다. 각 시민 플랫폼별로 시티즌패스 멤버만을 위한 특별한 기능도 준비 중입니다.
캠페이너 : 이슈를 만들어 시민의 목소리를 모으는
시민팩트체커 : 허위조작정보를 밝혀내고 사실을 드러내는
대화모임장 : 시민의 생각을 대화로 모아내는
뉴스코멘터 : 뉴스를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데이터 활동가 : 공익데이터를 수집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시티즌패스가 제공하는 교육/모임/프로젝트/솔루션도 더욱 강화합니다. 멤버들이 제안하는 모임도 테스트를 시작하였고,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챌린지, 대화모임, 데이터 활동 등의 프로젝트도 늘려나갈 예정입니다.
시티즌패스 멤버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시민 활동가이자, 세상을 바꾸는 시민들의 후원자입니다. 시티즌패스에 가입함으로써,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시민의 목소리를 모으고, 시민이 대화하는 공간을 열고, 사회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는 동료 시민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세요.
인터넷과 함께 다양한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공간을 넘어서는 쌍방향의 소통과 대규모의 참여, 시간을 넘어서는 축적과 분석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며 동시에 깊이 있는 숙의를 통한 집단지성의 실현이 가능할 것이란 설레는 희망도 같이 등장했습니다. 커다란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대리자를 세워야 했던 민주주의를 주권자인 국민 한 사람의 의지를 보다 반영하게 만들거나, 일상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조직이 구성원의 목소리를 모아내고 함께 운영하도록 만드는 기술이 드디어 등장했다는 기대였습니다.
지난 20여년간 그 기대는 절반 가량 달성되었습니다. 커뮤니티, 소셜 미디어, 동영상 서비스 등이 보급되면서 확실히 공간과 시간을 넘어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숙의와 집단지성이 작동하기보단, 경쟁과 갈등이 더 심화되는 경향이 커지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시민의 참여를 증진하고 대화의 공간을 열기보다는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기술이 민주주의 기술로 더 주목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빠띠는 여전히 더 많은 시민 참여와 더 나은 시민 협력이 필요하고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지금 시기에 더욱 더 협력을 증진하는 기술을 만들고 적용하는게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로 시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여정의 한가운데에 아직 있습니다.
극단적인 목소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내기, 다양한 입장을 가진 시민들이 모여 대화를 통해 이해를 높이고 보다 나은 안을 협상하거나 합의에 이르기 등은 진짜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는 기본 인프라입니다. 빠띠는 이에 기여하기 위해 공론장 플랫폼 혹은 시민 대화 플랫폼인 데모스X를 만들었고, 민주주의 서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기관들과 협력하며 시민 공론장과 시민 대화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2024년에는 데모스X의 프로세스를 더욱 간결하면서도 깊이있게 정비하였습니다. 새로운 데모스X 프로세스를 적용한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함께 디지털 프로젝트 – 디지털 시민권
디지털 공간에서 시민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을까요? 디지털 기술이 더 나은 신뢰와 협력을 만드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데모스X는 시민 모두의 디지털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이슈들을 발굴하여 질문 프로젝트를 열고, 시민회의와 시민대화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디지털 시민권 프로젝트의 첫번째 주제는 ‘안전한 디지털 공간’으로 데모스X와 캠페인즈에서 시민의 의견과 제안을 모았습니다. 2024년 6월 28일 열린 시민회의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가짜뉴스, 안전한 커뮤니티,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전문가의 제안을 듣고, 참가자들의 의견을 데모스X에 제안으로 기록했습니다. 누구나 대화모임을 열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작하였고, 시민들이 여는 대화모임을 지원합니다.
좋은 사회,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요? 시민의 이야기를 모으고 함께 답을 찾는 ‘꿋꿋(ggood-ggood)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꿋꿋의 주제는 주거권, 노동권 등 우리의 행복과 좋은 삶을 위한 ‘기본권’입니다.
2024년 5월 좋은 집에 살 권리와 좋은 집의 기준에 대한 시민 제안과 의견을 모으는 첫번째 꿋꿋을 진행했습니다. 첫번째 꿋꿋에서는 “당신의 주거는 굿굿한가요?”를 주제로 시민의 제안을 모으고 대화하는 공론장을 열고 그 결과를 데이터 시각화하여 공개했습니다. 캠페인즈는 ‘꿋꿋하게 함께 살자 프로젝트’와 ‘이야기 모임’으로 제안을 모으고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데모스X는 꿋꿋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이 생각하는 좋은 삶, 좋은 사회의 모습을 구체화하고, 더 나은 대안을 만드는 대화의 장을 계속해서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두번째 꿋꿋 프로젝트도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란 질문으로 노회찬재단과 함께 좋은 노동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 중입니다.
데모스X의 프로세스 – 아젠다 세팅부터 결정까지
데모스X의 프로세스는 전체 과정을 뒷받침하는 디지털 플랫폼과, 다양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시민회의와 시민대화를 오가는 방식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중요한 아젠다를 질문으로 제시하고, 질문을 설명하는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함께 제시합니다.
질문과 전문가 의견을 제공받은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민회의를 열고, 이후 각자의 자리에서 더 작은 규모로 시민대화를 진행합니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플랫폼에는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 혹은 새로운 제안을 모읍니다. 혹은 주요 쟁점에 대해선 투표를 통해 시민들의 생각과 그 생각의 변화를 확인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체 과정을 기록으로 정리해 다음 프로젝트로 이어지도록 남깁니다.
이 과정을 통해 시민 주도로 아젠다 세팅, 이슈화, 공론화, 그리고 필요한 방식의 합의와 결정에 이르게 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을 아우르는 대화도 일어납니다. 우리가 지금 나누어야 할 중요한 질문들을 쌓고, 그 질문에 대한 전문가들의 제안과 시민의 대화와 결정을 시민의 집단 지성으로 축적합니다.
우리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는 만큼 세상은 더 나아집니다. 분명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는 대화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 스스로가 시민들이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고 합의에 이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놓는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데 시민들의 역할과 자리는 자동화된 기술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의 역량을 키우는 기술을 넘어서 공동체를 만드는 기술로서 대화와 합의의 민주주의 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순간입니다. 자본과 기술 독점의 시대이면서 무한한 참여와 협력이 가능한 시대에 놓인 우리는 어쩌면 공존하는 시민의 시대를 열거나 닫는 역할을 맡았는지도 모릅니다.
데모스X와 함께 시민들의 대화 공간을 열고, 그 대화가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데 함께 하실 분들을 기다립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 생활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인터넷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방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의견을 표현하고 논의에 참여하게 해 주었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우리 사회가 작동한 까닭은 인터넷을 통해 우리가 서로 연결되고, 클라우드에 정보와 데이터를 축적함으로써 격리 중에도 소통과 협력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여기서 더 나아가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처리하고, 자동화함으로써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연결과 축적, 대용량과 자동화라는 디지털 정보 기술의 특징을 눈여겨 본 사람들은 디지털 기술을 우리가 협력하는 방식을 혁신하는데 사용하자는 생각을 합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누구나 의견을 표현하고, 함께 토론하고 숙의하며, 적절한 순간에 동시에 혹은 각자의 자리와 시간에서 함께 의사결정을 할 수 있으니까요. 즉 우리 사회의 기본 원칙인 민주주의를 디지털 민주주의로 혁신할 수 있겠단 기대, 이를 통해 드디어 구성원의 권리를 더욱 확대하고,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기여하는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인터넷 이전 우리는 9시 뉴스나 종이 신문을 통해 사회의 소식을 듣고, 4년 혹은 5년에 한번 있는 선거를 통해서 정치적 의사표현을 했습니다. 정당에 가입할 수도 있었겠지만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정치에 참여하기란 사실 어려웠습니다. 상상이 제한되다 보니,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 조직, 지역의 민주주의란 나를 대신해 바람직한 결정을 내릴 누군가를 결정하는 것에 머물렀습니다.
디지털 기술은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정보에 접근하고, 의사를 표현하며, 함께 숙의하고 결정을 내리고, 그 과정을 언제든 지켜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해결해야 할 과제
물론 정보 공유, 의사 표현, 숙의와 결정, 실행 과정의 투명함 등 만으로는 우리가 기대한 민주주의가 당장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다 보니 서로를 향한 갈등과 혐오도 여과없이 드러납니다. 방대하게 유통되는 정보 속에는 잘못된 정보와 함께 의도적으로 조작한 정보도 쉽게 끼어듭니다.
참여와 소통을 표방하지만 포용과 신뢰가 내재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불투명하고 불명확한 제도 운영, 형식적인 논의와 의사결정에 머무릅니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해결책을 만들고 함께 결정하는 것이 여전히 의문스럽고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워 합니다.
우리가 접하는 디지털 플랫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서비스들이 어떤 전제를 갖고 정보를 배열하고 제외하는지 공개되어 있지 않거나 공개되어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단순히 적용함으로써 연결하고 축적하고 처리하기만 해서는 우리가 기대했던 모두를 위한 일상의 민주주의를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면한 과제들을 해소하면서 더 많은, 더 좋은 민주주의, 일상의 민주주의를 구체적이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더 많은 민주주의란?
더 많은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친숙합니다. 더 많고 다양한 사람이 더 많은 민주주의의 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는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의견을 표현하는 창구를 확대합니다. 질문과 제안을 처리하는 프로세스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각자의 알 권리, 표현할 권리, 답변을 얻을 권리를 분명하게 규정합니다.
이때 안전함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발언할 권리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발언하는 사람들이 안전해야 합니다. 또한 발언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구성원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보를 공개하고, 의견을 표현하는 채널을 확대하며, 다양한 구성원들을 포용하며, 누구나 쉽게 접근하도록 만듦으로써 더 많은 민주주의를 만들게 됩니다.
디지털 시대의 더 나은 민주주의란?
사람들이 함께 결정을 내리는게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다수결은 합리적이지만, 다수결만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면 소수는 억압받고 전체 사회의 다양성도 사라져 버립니다. 반대로 매번 소수가 자신의 목소리만을 내세우며 공동체가 합의한 시스템을 무력화시켜도 안 됩니다.
더 많이 데이터를 개방하고 권한을 공유할수록, 우리는 신뢰와 협력의 시스템이 곧바로 필요해집니다. 각자의 의견과 제안을 바탕으로 새로운 집단적인 안을 만들어내는 숙의와 공동 작업의 경험과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또한 다수결 외에도 상황에 따라 적절한 다른 의사결정 방식을 도입할 수도 있습니다.
공동체인 우리가 집단적으로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숙의와 공론을 거치고, 다양한 의사 결정을 하며, 다시금 서로간의 신뢰를 높여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 나은 민주주의란 공동체로 만난 우리가 서로를 신뢰하고 협력하며 더 나은 안을 만들고 결정을 함께 내리는 일입니다. 투표 외에는 정치 참여나 공동체 기여 경험이 부족한 우리에겐 디지털 민주주의를 넘어 당면한 커다란 숙제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일상의 민주주의란?
사실 모든 사람이 모든 결정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복잡하고 거대한 사회는 권한을 나누고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방향, 즉 분권과 자치를 자연스럽게 향합니다.
분권과 자치는 투명성과 개방성, 신뢰와 협력의 기반 위에 올려 놓아야 합니다. 다른 사회 구성원이 들여다 볼 수 없으며, 함께 결정하지 않는 한 신뢰는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한 분권과 자치를 민주주의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어떤 결정이 이뤄졌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고, 지금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사회 시스템을 믿으며 역량있는 사람이 적절한 위치에서 역량을 발휘하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기술에 기반한 분권과 자치는 개방성과 신뢰와 협력의 기반위에 놓여야 합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만드는 민주주의는 공동체의 다양한 자원들이 구성원에게 개방되고, 공론과 숙의, 결정에 누구나 참여하되, 실행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분권과 자치로 이뤄지는 사회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이 사회는 디지털 시민의 권리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공공재를 늘려 나가며, 각자가 자율적으로 위임받은 자원을 적절하게 운용하는 인류가 늘 꿈꾸는 풍요롭고 평화로운 사회일지도 모릅니다.
그림. 다양한 사회 주체들이 서로 포용하고 협력하며, 공동체를 함께 운영하는 사회 운영 기반으로서의 민주주의
디지털 사회의 시민
디지털 사회의 민주주의는 기존의 민주주의보다는 사뭇 복잡하고 낯설고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예전에는 TV와 신문을 보고, 선거 시기에 적절한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시민이 할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사회 곳곳에 참여하고 기여하는 역할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민주주의는 아직 아주 초기 단계로, 많은 과제들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 첫걸음에 무엇보다도 우리가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고, 신뢰와 협력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아야 할텐데라는 걱정도 하게 됩니다. 우리는 한 공동체에 속한 동반자입니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민주주의는 결국 우리 사회의 미래입니다. 모두를 위한, 모두의 민주주의를 우리는 잘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새로운 기술은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특히 기술이 미디어에 변화를 일으킬때는 사회의 권력 관계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다.
불과 20년 가량 전에 대중에게 보급된 인터넷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고 분석하는 인터넷과 정보 기술은 연결과 축적의 범위를 무제한으로 확대할 가능성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이 기술은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자유롭고 평등하고 서로 협력하는 사회, 즉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비결로 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 가능성을 믿고 특히 미디어 플랫폼 분야에서 일을 해 왔다. 그렇게 약 20년 가량 여러 미디어 플랫폼을 만들면서 깨달은 점 세가지가 있다.
첫째, 기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그 가능성은 누군가의 손에서 구현이 되어야만 실현되고 그 누군가의 가치관이 반드시 반영된다. 종이에 잉크를 묻혀 읽던 신문 기사가, 온라인으로 옮겨오는데는 뉴스 서비스를 기획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기사 아래에 사람들의 댓글을 달도록 결정한 사람들도 있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댓글이 아닌 본격적인 글을 쓰는 별도의 서비스를 만들자고 결정한 사람들이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컨텐츠도 기사처럼 다루자고 결정한 사람들이 있어서 시민 저널리즘이란 영역이 생겼다. 이 결정들은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를 확장하기도 하고 제약하기도 하는데, 결코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좋아요만 제공하기로 설계자가 결정한 서비스는 다른 감정을 표현하기가 어렵고, 실명 인증을 할지 말지 판단도 설계자가 결정한다. 더 많은 어그로를 끌어서라도 트래픽을 늘리기로 설계자가 결정한 서비스는 개인정보나 혐오, 허위조작정보를 지키는데 우선순위를 두기가 어렵다.
둘째, 기술은 계속해서 개선의 여지를 보여주며 발전한다, 다만 개선도 누군가가 구현을 해야 실현된다. 지금 기술로 인해 생겨난 많은 문제들을 기술을 통해서만 모두 해결해야 하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 기술 스스로 개선을 해나가야 하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갈등과 혐오로부터나 통제와 실질적인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인터넷 미디어 환경을 만드는 길은 더 사회적 논의와 합의와 함께 실질적인 기술의 개선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도 역시나 누군가가 그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투자해야 실현된다.
안타깝게도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할 기술을 구현하고 개선하고 싶었던 시도들은 2023년 현재는 많이 위축된 것 같다. 그리고 인터넷 공간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자극과 소비로 점철된 공간이 되어 가는 듯 하다.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고라와 블로거뉴스 같은 시민 공론장과 시민 저널리즘을 표방하던 서비스는 문을 닫았고, 지난 정부에서 호황을 누리던 국민청원이나 민주주의서울, 광화문1번가 등의 시민참여플랫폼도 사라졌다. 트위터는 소유주가 바뀌면서 한 사람의 결정에 휘둘리는 종잡을수 없는 서비스가 되었다. 밤늦게 물건을 주문해도 순식간에 받아 볼 수 있는 시대, 스마트폰으로 주식을 거래하고 노동을 거래하는 시대에, 시민이 목소리를 낼 공간, 그 목소리가 잘 모여서 새로운 합의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이 없다는건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일을 20년간 해 온 입장에서는 안타깝고 아쉽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바라던 세상은 어떤 곳일까?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거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고, 개인과 개인이 모여 이룬 집단이 함께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을 거쳐 새로운 결정을 함께 만들어내는 사회. 어쩌면 우리는 인터넷 이전의 시대에 비해서는 분명 이 이상에 가까워졌을수는 있다. 연결과 축적은 분명 늘어났으니까. 다만, 서로에 대한 존중과 연대를 전제로 한 연결과 축적은 많이 신경쓰지는 못했다. 사회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결과가 안타깝고 아쉽더라도 더 나은 연결과 축적의 기술과 문화와 제도를 만듦으로써 누구나 권리와 안전을 보장받고, 집단으로써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결정하는 미디어 플랫폼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물건을 사고, 일꺼리를 찾고, 투자를 하고, 흥미로운 영상을 즐기는 것만큼, 개인들이 사회의 이슈를 파악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고, 다른 구성원과 대화하고, 때론 힘을 모으고 때론 공론을 만들고 결정에 이르기까지 하는 플랫폼은 어떤 사회든 꼭 필요하다. 빠띠가 캠페인즈를 통해 시민의 공익 활동을 증진하고, 시민들이 토론을 펼치는 공론장으로서의 시민 광장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는 까닭이다.
플랫폼을 만들면서 느낀 세 번째는, 결국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플랫폼이 성공한다. 우리는 늘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때론 시대가 변해 사람들의 필요가 무르익으면 그에 맞는 기술들이 생겨난다. 딱 맞는 기술이 없으면 기존의 기술을 변형해서라도 사람들은 필요를 충족시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딱 맞는 기술을 제공하는 플랫폼들이 나타난다.
지금 시대는 중요한 의사결정에 더 많은 사람들, 혹은 개개인, 혹은 나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시민들이 믿기 시작한 시대다. 정부든 정당이든 기업이든 혹은 비영리기관이든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해관계자나 대중의 공감과 신뢰, 적어도 이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시대다. 물론 당장에는 다중의 기대와 비판을 무시하거나 기만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남아 있겠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 일반은 개인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에 돌입했다. 개인의 의견이 집단의 합의로 이어져야 한다는 믿음과 그 과정에 대한 훈련과 경험은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이지만, 민주주의 서울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만난 많은 시민들과 기관은 확실히 달라진 세상에 맞추어 의견을 내고 이슈를 만들고 공론에 참여하며 다수 시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요약하면 적어도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세상은 달라졌고 시민들의 기대는 무르익었다. 이제 더 나은 민주주의와 공론장, 미디어 기술이 사회와 시민을 따라가야 할 차례다. 혹은 이제야 더 나은 연결과 축적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내고 모두가 함께 토론하고 결정하는 기술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빠띠는 이 시대 변화에 맞추어 “디지털 시민 광장”으로서의 플랫폼을 다시 복원하는 비영리 플랫폼 협동조합을 목표로 한다. 누군가가 나서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미디어 플랫폼을 실현해야 한다면, 그 누군가 중의 하나가 우리였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초거대인공지능 시대의 초입, ‘인공지능은 앞으로 무엇을 대체할까?’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쏟아낸다. 기회로 여기든, 위기로 여기든 변화가 일어난다는 전망에 누구나 동의한다. 당장은 인간의 노동 중 대체되거나 사라질 것들을 각자 예측하지만, 한켠에선 기존에 사회를 운영하면서 사용한 여러 과정을 인공지능으로 대입해 보기도 한다.
정치권에서 챗GPT에 정책에 대한 평가나, 상대 진영의 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는 일화가 들린다. 해외에서는 의회의 연설문을 챗GPT로부터 생성해서 발표하기도 했단다. 챗GPT를 이용해 신과 대화해 보라는 서비스가 주는 인상은 흥미롭지만, 어떤 정책이 나은지 평가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초거대인공지능이 내어놓는 답을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활용해도 되는지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다는 점은 흥미보다는 염려가 앞선다. 집단적 의사 결정에서 인공지능은 공론장의 대안일 수 있을까?
특히나 지난 몇년간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벌어진 결과를 부정적으로 경험했다. 상대 진영에 대한 악마화, 서로에게 귀기울이기는 커녕 스스로의 생각을 더욱 강화시키는 필터 버블, 출처를 알 수 없는 허위조작정보와 국가 기관마저도 나선 영향 공작(influence operations), 집단 괴롭힘에 시달리는 이들의 자살 등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경험한 혐오와 차별, 갈등은 사회가 맞닥뜨리는 여러 복합 위기와 맞물리며, 각자도생의 전략이 더욱 타당하게 느껴지게 만들었고, 우린 집단지성의 실현이라는 인터넷 초창기의 희망 섞인 기대는 어느 순간 잃어버린채 집단이나 공동체에 대한 믿음까지도 잃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황에서 인공지능이 내어놓는 답은 다양한 의견이 경쟁하고 협력하고, 조정과 합의를 거쳐야 하는 (그 과정에서 결코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서로 혐오하고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우리는 많이 보았기에) 인간들의 의사결정보다는 누군가에게는 나아 보이기도 한다. 인공지능은 편파적이지도 않고 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인간이 만든 문서를 인공지능이 모두(?) 이해(?)해서 요약했다는 답변은 루소가 상상했던 사회의 일반의지처럼도 보이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바꿀 공론장의 미래
하지만 우리가 인간과 인간으로서 구성된 사회를 부정하지 않는 이상, 집단 지성의 발전과 인공 지능의 도입을 결코 앞선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긍정하는 발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선 초거대인공지능이 인간이 집단적으로 축적한 데이터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클라우드, 소셜 플랫폼과 빅데이터는 집단지성과 인공지능이 서로 의존하며 상호 발전해 온 기술임을 보여 주는 용어들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시공간을 가로질러 수많은 연결을 창출해냈고, 이 연결을 통해 생산되는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축적했다. 소셜 플랫폼에 모인 수많은 컨텐츠와 사용자 행위 데이터를 빅데이터로 모아, 네트워크로 연결한 거대한 서버 자원을 통한 후 지금의 초거대인공지능이 답변을 구성하도록 만들어내는데 활용했다. 이렇게 따라가다 보면 인공지능은 오히려 인간 집단지성의 한 유형이자 결과인 것 같고, 블록체인 기술보다 웹3.0이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린다.
또한 인공지능이 기본적으로나 제대로든 작동하기 위해서 (결정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을 논의에서 빼 두더라도) 사람이 할 일은 앞으로도 많다. 지금의 챗GPT로서는 피할 수 없는 환각(Hallucination)을 완화하기 위해 인간의 피드백(RLHF, Reinforcement Learning from Human Feedback)을 거친다. 더 정확한 답변을 위해서는 빅데이터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스몰데이터도 필요하다. 아마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공개된 빅데이터 외에 스몰데이터를 독점 확보함으로써 품질을 높이는 위한 경쟁이 초거대인공지능 기업들간에 치열하게 벌어질지도 모른다. 위키 방식의 집단 편집의 결과물이나 키워드에 기반한 검색 서비스나 커뮤니티 서비스의 활용은 이미 줄어들고 있지만, 거꾸로 초거대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답변에 들어가기 위한 노하우를 활용하는 컨텐츠 생태계는 활성화될 것이다. 시민사회를 비롯해 스스로의 독창적인 이야기와 경험, 서비스를 발신할 미디어(owned media)는 앞으로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된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측면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본래 민주적인 공론장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되 소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가치를 바탕으로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더 많은 참여와 더 나은 숙의는 비록 충분히 실현되기는 어렵지만 사회가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인정하는 가치다. 인공지능이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문서로부터 사회 다수의 입장을 요약해낼때 우리는 앞서 언급한 가치가 얼마나 지켜졌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광범위하게 제시된 의견을 효과적으로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는 소셜 플랫폼이 활성화될때 시민들의 단순 직접 투표로 의견을 효과적이고 빠르게 결정하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주장했던 블록체인 기반의 자동화된 분산 조직이 간과하는 바와 같다. 공론장은 참여와 함께 숙의를 통해 경쟁과 갈등, 이해와 조정의 과정을 거치는 사회적인 과정이다. 이 과정을 생략해서는 이해는커녕 동의를 구하기란 어렵고, 소수의견은 묵살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시민들의 투표, 의견을 데이터로 분석해내는 과정은 중요하지만, 공론장은 최종 결론만을 목표로 하는 공간이 아니다.
이미 활용되고 있는 기술인 혐오 표현 필터링도 마찬가지다. 어떤 표현을 기술적으로 감지할 것인가 혹은 근본적으로 방지할 것인가는 기술 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보다 적극적인 혐오 표현 방지를 옹호하지만, 사실 혐오 표현에 대한 논쟁은 헌법에도 명시한 인간의 기본 권리인 표현의 자유의 보장과 함께 맞물리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다. 더 발전한 기술을 만들기 위해서도 우리 사회가 혐오 표현, 혹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느 정도 허용하는지 추측할 수 있는 사회적 경험(혹은 논쟁)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으로 가짜뉴스를 잡겠다는 도전 역시 그러하다.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가짜뉴스보다는 허위조작정보(dis/mis/mal-information)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는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거나, 실수이거나 조작이거나 등등 정보가 다양한 이유와 의도, 취약한 상태로 전달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는 허위조작정보의 의도와 상태에 따라 여러가지 사람의 해석이 경쟁하고 의도가 맞물려 돌아감을, 따라서 단순히 더하기 빼기가 틀린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기도 한다. 허위조작정보의 검증은 사회적인 과정으로 만들어내야 하고, 이 과정에 다양한 검증 도구를 활용하는 식이어야 한다. 조작된 영상 정보, 조작된 데이터의 검출 등 인간의 역량을 벗어난 검증 과정에 기술은 충분히 도구로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공지능이란 최신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의 의도를 은폐한채 또 다른 조작정보를 인공지능을 통해 발신하는 상황을 목도하게 될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여전히 사람과 사람이 협력하는 공론장이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우리는 기술 개발, 사용자 협력, 리터러시와 투명성의 확보 등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과정을 밟아나갈 필요가 있다.
1) 이해와 합의가 일어나는 다양성을 갖춘 공론장의 운영 2) 다양한 자동화 기술의 개발과 활용 3) 사용자 참여에 기반한 적응을 통한 기술 발전 4) 적용한 기술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조치들
사회와 기술의 발전을 위한 시민과 공동체의 성장
아직까지는 무엇이 바람직한지, 우리가 합의한대로 작동하는지를 평가하거나 의사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자, 공동체의 몫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거나 결정이어도 사회의 운영에 활용하려면, 그 과정과 결과를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동의하지 않는 기술이나 체계는 유지되지 못한다. 거꾸로 이해와 판단의 책임을 진 인간에게는 무엇이 윤리적인지, 무엇이 공동체의 가치에 맞는지를 판단하는 시민성의 문제와 시민 역량을 갖추어야 할 책임이 부여된다.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를 앞으로도 유지하겠다면 말이다.
우리는 같은 단어임에도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은 지성으로,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지능으로 번역했다. 부지불식간에 인공 지능은 지식에 관한 도구로, 집단 지성은 인간만이 가지는 통찰과 지혜를 기대했던 것일까? 무엇이 가치있는지, 정의로운지, 서로 다른 처지를 이해하고 포용해야 하는지를 집단으로서의 인간은 아직까지는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 같다.
다만 한국 사회가 사회의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긴 시간 동안 경쟁하고 조율하고 논쟁하며 만들어오지 못했다는 점이 염려스럽다. 정치인들이 쉽게 국민들을 갈라칠 수 있는 까닭 역시 누구의,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인지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경험이 아직은 충분하지 않아서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술을 활용한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사회적 배제라는 역효과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환경에 놓여 있다. 이 환경 속에서 우리는 사회와 기술을 동시에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까? 쉽지 않은 도전임이 분명하지만, 시민과 공동체를 위해서 사회의 필수 인프라로서 좋은 공론장을 더욱 발전시키고, 우리의 집단적 의사 결정을 돕는 인공 지능 역시 함께 발전시켜 나가는 사회를 만들 기회도 역시 우리의 손에 놓여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삶에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을 둘러싼 논쟁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식의 발전 과정을 되돌아볼 때, 이 것만큼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 또 있을까? 인간의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 한 주제임에도, 이 문제에 관한 철학적 논의는 여전히 심각한 낙후 상태를 벗 어나지 못하고 있다. — 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2020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의 ‘포스트코로나시대의 온라인정치참여 발전방안’이라는 연구에 대한 자문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1. 온라인정치참여가 숙의민주주의와 결합할 수 있는 방안
빠띠가 서울시의 민주주의 플랫폼인 민주주의 서울을 설계한 내용을 먼저 참고로 드립니다. 플랫폼 기획 운영을 담당했고, 플랫폼 운영 가이드 및 소스도 오픈소스로 데모스엑스 시민협력플랫폼 운영 가이드로 공개하였습니다. https://demosx.org
현시점에서 대규모의 시민협력플랫폼을 기획할때 ( 저희는 참여 플랫폼보다는 협력 플랫폼이란 단어를 선호합니다 ) 여러가지 현실적인 부분, 제도적인 부분, 기술적인 부분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현실적인 부분은 공무원 조직이 아직 시민 제안을 여러가지 이유로 반려하는 경향이 높고, 시민 제안을 비롯해 대규모의 토론이나 공론화 과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점이라면. 제도적인 부분은 아직 국민 제안과 토론, 그리고 이후의 투표가 어떤 과정을 거쳐야 법적으로 근거가 있는 토론이나 결정이 되는지 정의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서울을 설계할때 결정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토론에 방점을 찍고, 결정의 결과도 구속력을 갖기보단 선출된 기관장이 책임있게 대응하는 방식으로 설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현재 온라인을 통해 진행되는 투표나 토론이 양이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실질적으로 유권자나 시민을 대표하고 있는지 실제로 신뢰할만하다고 볼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주요 안건에 대해 논의하고 투표하는데 실명인증을 거칠지, 거친다고 해도 실제 그 사람이 맞는지, 또한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이 서울시민인지 아닌지 등을 아직은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대표성과 신뢰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디지털 방식의 토론과 투표에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서 “공론화 하는 공론장 운영”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동시에 주민 인증, 실명 인증, 블록체인 도입 등의 기술적인 부분을 준비하였고, 단순 토론, 단순 투표가 아니라 댓글을 통한 투표 결과를 다양한 스펙트럼과 방법으로 분석해서 시각화하거 해석해서 정책에 반영하는 방법등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현재 시점에서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발견되지 않았던 의제들이 제안되고, 정부가 정책을 수행하기 전이나 과정에 시민들의 의견이 취합되고, 또 사회적으로 중요한 쟁점들을 결정하기 이전에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토론에 참여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 즉 공론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토론과 숙의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온라인 플랫폼만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 공론장을 오가면서 토론회나 공청회, 시민 제안 워크숍 등을 동시에 함께 진행하였고 하나의 주제를 놓고 최소한 한 달 이상의 토론이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거기서 나오는 여러 주제들 또한 정부가 보유하는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진행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경험한 사례 중 하나는 재건축 지역의 길고양이를 보호해달라는 시민 제안인데요. 분명히 캣맘으로 불리는 시민들이 제안을 하고, 토론과 투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영향을 끼치긴 하였으나. 저희가 열었던 오프라인 토론회에서 해당 커뮤니티에서 오신 분들이 “길고양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주제를 더 많은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공론화해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특정 주장을 가진 이들의 주장이 사회에 공적인 정책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정보 공개, 토론을 통한 설명과 이해를 거쳐서 공감을 얻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을 시민들은 금새 이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스템적으로는 국민청원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자 민주주의 서울에서 개선하려고 했던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특정 주장을 가진 사람들의 제안이 특정 조건을 넘으면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이 답변한다는 구조에서는 특정 목소리가 높은 집단과 정부가 1:1로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제안 단계에서는 주장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되, 그 다음 단계인 공론과 숙의 과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설계하고 공론과 숙의 과정에 필요한 정부 보유 데이터와 정보, 입장이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들을 취합해서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적극적으로 사람들이 토론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서 의견을 표출하도록 제공하는 것 즉 주제를 공론화하는 공론장을 운영하는 것이 현시점의 정부가 만들어나가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공론장이 체계적으로 운영된 후에, 서두에 이야기한 제도적, 기술적 장치들이 보완된다면 공론장을 거친 주제를 놓고 함께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단계까지도 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 계획을 민주주의 서울 5단계 계획에 담았고, 숙의 공론장은 5단계의 1단계였습니다.
제도적 시스템적으로 도입이 되려면. 현재 법적으로 정의되어 있는 시민 제안과 공무원 답변 제도를 더 발전시켜서, 일상적인 공론장을 운영하는 체계로 바꾸어야 합니다. 또한 중앙 정부를 비롯한 지방 정부 모두가 시민의 제안, 정부가 시행전에 시민과 함께 검토가 필요한 정책 등을 논의하는 공론장 운영 전담 체계가 모든 정부의 핵심 요소로 정의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민주주의서울 추진반을 따로 운영하기도 했고, 이후 민주주의 위원회라는 규모로 확대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조직을 구성하는 동시에 시민 제안 규정을 더 발전시켜서 주민 투표에 준하는 결정과 토론 장치에 대한 제도 논의도 필요합니다. 시민 참여 예산, 조례 제정에도 시민이 발안하고 제정하는 조건들이 온라인으로도 가능하도록 관련 법이 점차 발전하는게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단순 댓글이나 투표가 아니라 빅데이터 분석 등을 활용한 다양한 방식의 분석 기술, 그리고 블록체인 및 주제에 맞는 투표 기술의 고도화 등에 대한 연구 작업도 필요합니다. 인터넷의 핵심 기술이자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제안, 토론, 투표 기술들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공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온라인정치참여가 시민주권자의 실질적인 권리의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시는지, 혹은 그와 같은 결과로 나아가기 위해 시민운동, 시민활동, 시민교육은 어떤 목표와 전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빠띠에서는 시민협력플랫폼이란 이름의 기관 주도의 공론장이나 제도 공론장(예를 들어 광화문1번가, 민주주의 서울 등)을 운영하는 것과 별도로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자체 공론장을 운영하고, 이슈와 관심사 기반의 커뮤니티가 늘어나도록, 또한 쉽게 캠페인을 벌일 수 있도록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관은 중립적이면서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고 시민들이 서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며 동시에 토론과 투표의 결과가 반영되도록 제도적인 기반과 기술적인 시스템을 제공한다면. 여기에 참여하기 이전에 시민들 사이에서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를 중심으로 쉽게 조직화할수 있고, 조직화된 주장이 캠페인의 형태로 사회 전반에 전달될 수 있으며, 제도적인 변화 이전의 인식 변화나 정보 전달, 설득 등을 위해 시민들 사이에서 토론이 일어나는 공론장을 운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거친 후에 만들어진 제안들이 또한 이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 공감대를 거쳐서 기관이 운영하는 제도 공론장에 합의된 프로세스에 따라 제안되고 토론되고 결정을 거쳐서 확립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시민운동, 시민활동, 시민교육이 일어날 수 있도록 커뮤니티 지원 사업, 시민들 주도의 공론장 운영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0년에 빠띠가 진저티프로젝트와 함께 한 여성가족부의 버터나이프크루가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업이었고, 서울시의 작은 도서관들과 함께 한 공론장 운영 사업은 시민이 주도하는 공론장을 열고 그 안에서 다른 시민들을 초대해서 제안과 토론, 결정이 일어나는 사업이었습니다. 커뮤니티와 공론장을 시민들이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 기관의 사업의 성격을 넘어서서 시민이 제안하고 시민의 활동이 촉진되도록 설계하는 일은 성과의 불분명성이나 부서의 성과로 남기기 어려움 등의 이유로 아직 대부분의 정부에선 낯선 일입니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기업을 지원하는 것 만큼 시민 활동을 촉진하는 사업이 확대되고 기반이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의 플랫폼이 제안-답변의 단순 구조에서 벗어나서 시민과 함께 운영되는 협력적 플랫폼으로 나아가야 하듯이, 더 나가 시민이 주도적으로 과제를 제시하고 팀을 구성하고 거기서 나온 결과물들을 정책화하든 예산에 반영하든 조례로 만들든 하는 정책 실험 공간이 마련되는 것이 실질적인 온라인 정치참여의 다음 단계로 보고 있습니다. 정책 랩, 리빙 랩을 비롯해서 앞서 말한 버터나이프크루, 작은 도서관 공론장, 그리고 서울시의 공유도시 촉직 사업으로 진행한 빠띠의 공익데이터실험실이 예시이며, 시민 개발자(시빅해커)들의 코드포코리아가 공적마스크 앱을 함께 개발한 사례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3. 빠띠가 민주주의, 정치참여를 촉진하는 활동가협동조합이라는 것이 매우 신선하고 그 자체로 참여민주주의의 중요한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시민 조직이 다양한 층위에서 확산 지속될 수 있는지도 향후 민주주의 성숙에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무엇이며, 빠띠의 비지니스 모델은 무엇인지, 그 지속성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갖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기술입니다. 기술은 IT기업이나 스타트업이 활용해서 멋진 유니콘을 만드는데 활용된다는 인식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기술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 중 민주주의를 위한 기술(제안, 토론, 투표, 데이터 공개, 개인 정보 보호, 개인 인증, 허위조작 정보 검출)은 더 나은 사회의 핵심 근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기술을 발전시키기에 필요한 지원 체계는 기업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열린 기술을 만드는 빠띠와 같은 협동조합 모델로는 정부가 주도하는 펀드로 운용되는 민간의 투자도 받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사회 전반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열린 기술을 활용해 열린 플랫폼을 제공하려는 사회적 협동조합에 대한 투자와 지원, 주식 상장이 아닌 커뮤니티로 엑시트할 수 있는 성장 경로 마련이 절실합니다. 플랫폼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정책 자금 운용 같은 것들이 연구되고 준비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앞서 이야기한 민주주의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이 더 많이 열린 기술의 형태로 공공성에 기반해서 사회에서 많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이 난관들에도 불구하고 빠띠는 영리기업이 아닌 사회적 협동조합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민주주의 활동가입니다. 민주주의란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과정이자, 숙의를 거쳐서 결론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공공의 자원을 활용할 방향에 대해 함께 결정하는 것입니다. 빠띠의 경험으로는 앞으로 더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숙의와 결론, 신뢰와 협력 과정과 기반에 대한 필요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부가 시민과 협력을 하고, 더 나가 시민이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하듯이. 민간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이와 같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나은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신뢰가 회복하려면 권한을 나누고, 협력을 하고, 숙의와 토론을 거쳐 공동의 의견을 도출하는 등의 경험들을 거쳐야만 실질적인 신뢰가 증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빠띠는 다양한 영역에서 민주주의 활동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활동하려는 사람들이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방법론과 플랫폼을 만드는 동시에, 이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재무적 기반도 제공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 활동가들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고객 혹은 파트너로서 정부를 비롯해 사회의 많은 영역의 기관이나 단위들이 민주주의 활동가들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국민참여분과는 NDC 목표를 50% 이상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총괄위원회에 제출하겠습니다.”
2021년 10월 12일, 탄소중립위원회 국민참여분과는 “NDC 50% 이상 상향 필요”로 결론을 내렸다. 몇달간에 걸친 위원회 내에서의 검토, 교육계, 종교계, 청년, 시민사회를 비롯한 다양한 단위의 의견 수렴, 그리고 탄소중립위원회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와 보다 강력한 감축 정책을 요구하고 눈물을 흘리며 사퇴한 종교분과위원들의 호소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이후 탄소중립위원회 총괄위원회는 NDC 안을 “40%”로 결정하고, 2021년 11월 2일 최종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이상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누군가는 “40% 이상 감축 목표”가 비현실적인 목표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50% 이상 감축도 부족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탄소중립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50% 이상 감축”으로 의견을 내기까지 고민이 적지 않았다. 모두의 생존을 결정지을지도 모를 NDC 감축 목표를 위원회는, 위원 개개인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면밀히 검토해서 정확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동시에 있었다. 하지만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국민참여분과의 위원인 나는 국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으로 설치한 위원회는 법률로도 청년, 여성, 노동자, 농어민, 중소상공인,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사회계층의 대표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50명 이상 100명 이내의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도 법률로 명시하고, 기후환경위원회를 통폐합한 까닭도 사회 각계각층의 대표성을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민간위원 70여명을 구성한 후에도 특별히 국민참여분과를 만든 까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에 다양한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와 아직 집단으로 형성되지 않은 국민의 목소리까지도 더욱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함이었다(고 나는 기대했다).
하지만 시민사회협의체를 구성하려 했던 노력은 대다수의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거절당했다. 협의체 구성에 참여하는게 아님을 확인받은 후에야 몇몇 시민사회단체들과 겨우 간담회를 열수 있었다. 위원회 바깥에서 위원회 해체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토론회에 참석해서 귀동냥을 했고, 보다 절박하고 과감한 정책을 호소하는 종교 지도자 분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해서 함께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위원회에 함께 했던 목사님, 신부님, 스님은 강력한 감축 목표안을 촉구하며 사퇴하셨지만, 사퇴하신 분들이든 짧은 기간동안 만나는 것조차 거부했던 분들이든 모두 “보다 획기적인 감축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하고 있었다. 국민참여분과는 우리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은 목소리들도 전체 의사 결정에 반영하거나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
NDC 40% 목표가 비과학적이라거나 산업계의 주장에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주장들이 있는데, 거꾸로 반문하고 싶다. 과학자가 아닌 시민들이 적절하고 가능한 목표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거나, 데이터를 제공했냐고. 또한 산업계를 비롯한 정부 거버넌스에 익숙한 단위들은 충분하진 않을수 있어도 함께 대화하고 의견서를 제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여전히 보통의 국민들이 참여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도. 정책 결정은 과학적이기 이전에 민주적이어야 하고, 민주적이기 위해서도 과학적이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계층의 주장과 이해관계를 조율하려는 전제가 우리 모두의 공동의 이익을 향해 있어야 한다. 참여분과 위원으로서 나는 내가 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NDC와 탄소중립시나리오안 확정은 끝이 아니라, 좋은 대화와 논의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탄소중립정책 논의에 국민의 공간을 어떻게 만들까?
수많은 숫자와 난해한 기술들, 여러 이해관계가 갈리는 입장 차이까지 탄소중립 논의는 무척 어렵다. 그렇기에 과학과 기술, 산업의 전문가들이 모여 옳고 그른 것을 엄밀하게 찾아내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모두의 미래에 영향을 끼칠 기후위기와 이에 대응하는 정책은 당연하게도 국민들이 이해관계자로서도 참여해야 하고, 실질적으로도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이해와 공감에 기반한 공동 실천이 필수적이다.
위원회는 중요한 권한을 위임받은 위원회의 책무성과 함께 국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위해서도 회의록을 모두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모든 이들의 실명을 명시하는 수준까지는 못 갔지만, 대부분의 위원들은 회의록 결정을 당연하게 공감했고, 지금도 탄소중립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회의록을 볼 수 있다. 대통령직속위원회로서는 흔치 않은 공개 결정이었지만, 한편으론 강력한 권한을 가진 위원회일수록 회의록을 더욱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든 누구나 그들의 미래를 결정지은 중요한 논의와 결정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위원회가 소중하게 모으고 공개하려고 했던 또 다른 자료는 위원회에 취합된 다양한 입장과 주장, 제안을 담은 의견서들이었다. 위원회는 협의체를 구성하거나 간담회를 통해서 탄소중립시나리오와 NDC 초안을 전달하고 의견을 나누었는데, 그 과정에 94개 단체가 의견서를 만들어 전달했다. 이 의견서를 위원들이 꼼꼼히 읽고 최종안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위원회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 게시함으로써 다양한 입장을 드러내고 더 나은 논의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했다.
NDC 상향안 초안을 공개하며,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온라인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위원들과 단체들 뿐만 아니라, 가능한한 국민들이 협의와 논의 과정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추진하였던 토론회였다. 아쉽게도 2차례밖에 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는 정책 논의 과정이 더 많이 기록되고 더 많이 국민들에게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들을 대표하는 국민들, 탄소중립시민회의
국민들을 대표하는 국민들인 ‘탄소중립시민회의’도 국민참여의 일환으로 진행하였다. 인구 비율을 고려해 구성한 533명은, 특히 2030년과 2050년을 정면으로 살아갈 10대들을 23명 포함함으로써 미래세대의 대표성을 강화하였고, 100세 시대를 감안하여 보통 60대 이상으로 모집하는 고령층 그룹도 60대와 70대 이상으로 세분화하였다는 특징을 가진다. 10년, 30년 후의 세대 구성을 고려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미래세대와 청년세대에 가중치를 높이는 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의 논의를 통해 시민들은 탄소중립정책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다양한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각자의 판단을 숙성시켜 나갔다. 시민들의 판단은 4차례에 걸친 설문조사로 반복해서 확인하였는데, “탄소중립은 2050년보다는 빨라야 한다”는 의견을 55.2%가 내었고, “노후 석탄발전소의 폐쇄 시기”는 1차 설문조사에서는 2030년이 바람직하다고 35.2%가 의견을 내었으나 4차 설문조사에서는 2050년이 바람직하다고 30.8%가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는 탄소중립 추진 과정에서 기대/우려하는 점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꼽았던 시민이 2차에 1.9%였던데 비해 4차에는 14.3%로 증가한 것과 함께 관찰되는 지점으로 일자리 문제와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가 높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탄소중립시민회의는 위상과 권한 등 여러 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앞으로 맞닥뜨릴 다양한 쟁점을 대표성을 가진 시민들이 숙의를 통해 때론 당사자로서, 때론 중재자로서 역할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국민들에게 충분한 자료와 설명이 제공된다면, 탄소중립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민참여, 제대로 더 잘 이어나가야
돌이켜보면 이 과정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시민회의는 기본적으로 2년은 운영해야 하고, NDC안과 탄소중립시나리오는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듣는 것을 넘어, 다양한 입장들이 서로 부딪히는 토론회와 공론장을 충분히 열면서 천천히 만들어야 했다. 더 나아가 탄소중립시나리오라는 말처럼 다양한 상상을 담은 시나리오를 사회 각계각층이 만드는 장을 위원회가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2년을 약속했던 위원회조차 정권이 바뀌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했고, NDC와 탄소중립시나리오를 확정한 후에 더 충실하게 국민과 함께 논의하며 내용을 채우겠다던 약속은 지킬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국제사회와 지켜야 할 시점을 맞추기 위해서도, 여러 의미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도 위원회에 참여한 민간위원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노력했다. 국민 참여도 짧은 시간 동안 여러가지 형식을 갖추며 할 수 있는 시도를 하려고 노력했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크지만, 국민참여를 확대하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연속적으로 이어나가야 한다. 그럴때 다음 사안들을 꼭 고려하길 바란다.
우선 거버넌스다. 많은 비판에 직면했지만 위원회는 여러 노력의 결과다. 기존의 기후환경 관련 위원회를 통폐합해서 대표성과 실효성을 부여했고, 각계각층에서 위원을 선정하도록 법률로도 명시하였다. 협의체와 시민회의 등 국민과의 협력 및 참여 모델도 실행했다. 하지만 커진 규모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구체적인 거버넌스 운영 체계는 미흡했다. 책무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의록을 공개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고, 실제로 의결과 심의를 담당하는 법률로 규정한 위원회였지만, 위원회 내에서도 논의와 의사 결정 체계, 권한의 범위, 추진 체계를 아쉬워하는 위원들이 적지 않았다. 이는 곧바로 협의체 구성에서도 문제로 이어졌고, 시민회의로까지도 이어진다. 권한과 책임의 범위, 기대하는 역할, 논의와 의사 결정 체계, 추진 체계는 참여하려는 단위가 어디든 누구나 먼저 확인하게 되는 내용들임에도 이를 준비할 충분한 시간이 위원회에 없었다. 시민의회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마찬가지로 본인들의 역할과 권한의 범위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민간위원, 협의체, 시민회의, 공론장 등 다양한 층위로 국민으로 초대해 거버넌스를 구성하려는 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커다란 바구니 하나에 좋은 것들을 일단 담아둔 셈이었기에 아쉽다. 다양한 국민 참여의 체계들의 역할을 어떻게 나누고 실행할지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두번째는 공론장의 확대다. 시민회의에서 많은 시민들이 석탄발전소의 문제를 깊게 생각한 까닭은 정의로운 전환, 즉 일자리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올해 초부터 시민들이 피부로 실감하는 전기세와 난방비 문제 역시 탄소중립 정책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슈다. 정책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이해와 공감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만큼, 국민들이 직접 겪게 될 여러 어려움들이나 이웃들이 겪게 될 어려움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함께 해결에 나서야만 탄소중립은 실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보다 긴 시간을 들여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국민들이 이야기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이야기하고, 미래세대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나누는 공론장을 지역별로, 주제별로 다양하게 진행해 나가야 한다.
탄소중립은 무겁고 어려운 주제이지만, 국민 참여를 축제로 만들어야 한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탄소 배출을 줄이고 배출한 탄소를 흡수하는 일련의 계획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함께 다양한 시각으로 상상하는 계획으로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는 과학 기술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모색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일자리 소멸의 충격을 혁신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가능성을 제시할 수도 있다. 기후 약자를 돌보는 것을 넘어 생태 전반을 함께 되살리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도 있다. 여기에 산업과 경제의 역할을 재구성하고 더욱 더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가는 방향을 누군가가 제시할수도 있다. 다양한 상상과 각자의 전문성이, 집단의 지성과 협력으로 발휘되도록 장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을 위원회가 가지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데이터’ 를 충분히 만들고 공개해야 한다. 누군가가 면밀하게 검토해서 최적의 감축안을 만들어내기에도 현재의 데이터는 충분하지도 파악하기 쉽지 않다. 탄소중립정책은 다른 정책에 비해 데이터로 모니터링이 가능하고 데이터로 달성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정책이기에, 데이터 기반 행정을 도입하기에 적합하다. 더 나아가 국민들이 다양한 기후위기 극복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제시하기 위해서 국가는 국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기후 관련 공공 데이터를 민간과 함께 더 적극적으로 더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데이터가 충분히 존재해야 NDC가 35%냐, 40%냐, 50% 이상이어야 하냐의 논쟁이 과학적이면서도 민주적인 대화와 설득, 경쟁과 합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국민참여 없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탄소중립 정책 수립 과정에 각계각층의 다양한 국민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던 국민참여분과는 그러나 지금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3월에 나올 기본계획은 국민들이 논의에 참여하기커녕 내용조차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국민참여는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어서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러면 1기의 위원회가 국민참여를 충분히 잘해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서일까? 그 역시 아닐테다.
복합적이고 절박한 위기의 시대는 우리 모두가 함께 대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보다 더 민주적인 탄소중립 정책 추진 체계를 마련할 의무가 있고, 국민들 역시 정부가 국민의 참여, 국민과의 협력, 즉 민주성을 확대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위기인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열린정부파트너십 의장국이어서 한국에서 열린 OGP 글로벌 서밋에 시민사회대표로 테이블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대부분의 나라에서 온 패널들이 포퓰리즘이든, 권위주의 때문이든 한 목소리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불과 2년 전의 나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입장이었기에 코드포코리아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상황을 시민과 정부가 협력해서 해결한 경험을 해 왔다”고, “중학생들부터 갓 개발을 배운 대학생들, 지방정부나 기업이 정부가 공개한 데이터를 활용해 각자의 마스크앱을 만든 사례”를 예로 들며 “정말 짧은 3일 동안 몇백명의 사람들이 신이 나서 함께 작업했던 기억”을 이야기했다. 그 경험을 통해 위기의 시대에 정부와 사회, 공동체에 대한 신뢰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정체성과 효능감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축적할 수 있는지를 맛본 것 같다고, 어린 학생들부터 전문가들까지 마음껏 활동할 공간을 사회(특히 정부)가 성심껏 펼쳐놓는게 중요한 열린정부의 방향인 것 같단 취지의 이야길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나는 우리 “민주주의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사회 시스템(특히 정부)에 대한 불신의 증가, 일반 시민과 비 시민(혹은 불량한 시민)의 갈라치기, 사회적 약자 혹은 이웃에 대한 공감의 부재와 공감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미디어 환경까지. 개인적으로는 버터나이프크루, 탄소중립위원회, 팩트체크넷 등에서 직접 겪기도 하고, 이태원참사, 장애인이동권,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등을 바라보는 시선 등에서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다.
여러 정치 세력이 들고 나는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이지만,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모두가 시민이고, 가능한 모든 시민들이 함께 하며, 모든 시민들을 위해야 한다란 기본 가치와 약속과 책임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시민과 비시민을 가르고, 선택적으로 시민을 호명하며,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구성원들을 포용하기는 커녕 혐오하고 조롱하는 지금 우리 사회가 그동안 자랑스럽게 여겨왔던 우리의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우리 스스로 침식시키는 것으로 보여 안타깝고 씁쓸하다.
아니, 어쩌면 우리 스스로 지금이라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고민하고 토론해야 하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바깥에서 주어진 민주주의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누가, 어떻게,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를 만들지 이야기하면 좋겠다. 그 생각의 차이가 드러날때 모든 공동체를 위한 정치인지, 좁은 범위의 자칭 시민을 위한 정치인지 구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에 대해 형식을 넘어 더 깊게 본질을 고민하고 내재화해야 할 때가 온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래야 우리도 다른 나라들이 하듯이, 해외에서 온 이주자들에게 시민권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 제대로 논의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그래야 이웃을 비국민으로 낙인찍고 학살한 아직 100년도 안 된 우리의 슬픈 과거사를 극복하고 진정한 동포가 될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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