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역설: 우리는 왜 연결될수록 고립될까요?

기술의 배신, 그리고 ‘의도된’ 평화를 찾아서

20년 전 인터넷이 등장하던 초창기에 우리는 기술에서 희망을 보곤 했습니다. 인터넷 기술 및 스마트폰이 세상을 연결하고, 소셜 미디어가 국경 없는 우정을 가능하게 하며, 디지털 시대의 오일로 칭송받던 데이터가 우리 삶을 전례 없이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실리콘밸리의 구호들은 마치 새로운 시대의 복음처럼 들렸습니다.

“더 개방된 세상(Open), 더 연결된 세상(Connected).”

하지만 2026년 오늘, 우리 손에 들린 스마트폰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희망의 도구가 아닙니다. 때로는 불안과 분노를 실어 나르는 파이프라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불안, 혐오, 갈등을 견디며 삶은 더 위태로워졌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우리가 기술 기업들이 내걸었던 그 찬란한 가치들을 맹신하는 사이,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는 ‘거대한 배신’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믿었던 기술의 약속들은 어떻게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걸까요. 그 4가지 뼈아픈 역설을 살펴 봅시다.

1. 개방이 ‘불안’과 ‘불신’을 낳았습니다. 인터넷의 초기 정신은 ‘정보의 바다’였습니다.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면 진실이 승리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무제한의 개방’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무너뜨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바다가 아닌 ‘오염된 정보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딥페이크와 가짜 뉴스, 그리고 교묘하게 설계된 생성형 AI의 환각(Hallucination)들은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개방을 위한 개방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의 시대, 즉 총체적 불신의 늪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더 나아가 개인들의 정보가 쉽게 노출되고 유출되어 디지털 정보로 흘러다니면서 개인들은 불안을 넘어 실질적인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 연결이 ‘고립과 갈등’을 낳았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연결합니다(Connecting People).” 가장 매혹적이었던 이 슬로건은 가장 뼈아픈 현실이 되었습니다. 기술은 우리를 24시간 연결해 놓았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고립되어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소식만, 듣고 싶은 이야기만 끊임없이 배달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웃을 이해하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연결’을 돈으로 바꾸는 비즈니스 모델은 인간의 가장 취약한 감정인 ‘분노’를 자극합니다. 분노해야 클릭하고, 싸워야 체류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기술적 연결이 강해질수록, 사회적 단절과 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3. 축적이 ‘불평등’을 가중시켰습니다. 빅데이터는 ’21세기의 원유’라고 불렸습니다. 이 자원이 축적되면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의 축적은 부와 권력의 극단적 쏠림을 가져왔습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데이터가 되어 거대 기업의 서버로 빨려 들어갑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알고리즘의 지시를 받지만, 그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플랫폼 기업은 국가보다 강력해지지만, 그 데이터를 생산한 개인의 권리는 점점 더 초라해집니다. ‘공유’를 외쳤던 기술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독점’ 도구가 되었고 이제는 국가를 넘어서는 힘이 되었습니다.

4. 자동화가 ‘추방’을 낳고 있습니다. 기술은 인간을 지루한 노동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자동화는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추방’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일자리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닙니다.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매는 노인, 앱을 설치하지 못해 혜택에서 배제되는 사람들, 그리고 AI 효율성에 밀려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선고받는 노동자들. 기술적 효율성이 지상 과제가 되면서,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인간은 시스템 밖으로 밀려납니다. 한나 아렌트가 경고했던 ‘잉여 인간’의 공포가 기술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20년간 개방은 불신을, 연결은 갈등을, 축적은 불평등을, 자동화는 추방을 낳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 절망하기엔 이릅니다. 이 부작용들은 기술 그 자체의 죄라기보다, 효율성과 이윤이라는 단일한 목표만을 좇느라 기술이 사회에 미칠 파장을 깊이 고민하지 않은 ‘가치와 의도의 부재’가 낳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계적인 낙관론도, 무조건적인 비관론도 아닙니다. 기술의 방향키를 다시 잡으려는 사람들, 빗나간 가치들을 바로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역설을 넘어, 새로운 가치의 기술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무제한의 폭로가 아닌 ‘안전과 신뢰’를 담보하는 개방을 추구해야 합니다. 단순히 선만 잇는 연결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며 ‘연대’하는 연결을 만들어야 합니다. 소수의 독점을 위한 축적이 아니라, 모두의 자산으로 순환되는 ‘공유’를 위한 축적이어야 하며, 사람을 내쫓는 자동화가 아니라 진정한 삶의 자유를 되찾아주는 ‘해방’으로서의 자동화여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기술적 혁신의 끝에는 파괴가 아닌 모두가 누리는 ‘지속가능한 풍요’를 놓아야 합니다.

이 멋진 가치들은 저절로 기술에 심어지지 않습니다. 코드를 짜는 개발자의 손끝에서, 서비스를 기획하는 기획자의 노트에서, 그리고 기술을 사용하는 시민들의 요구, 사려 깊은 전문가들의 정책 속에서 치열하게 의도되고 설계될 때만 비로소 가능합니다.

저는 이 의도를 담은 기술을 ‘평화를 위한 기술(Peace Tech)’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평화는 갈등이 없는 고요한 상태가 아닙니다. 개방과 신뢰, 연결과 연대, 축적된 힘을 공유함으로써 우리 모두를 해방시키며 지속가능하면서 풍요로운 세상을 향해 가는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과연 그런 기술이 실제로 가능할까요? 어떻게 만들어야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