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었을까?

어젯 밤. 잠이 들고 난 후. 세계는 물에 잠겨 종말을 맞이했고, 겨우 살아 남은 사람들은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를 위기 속에서 적은 식량을 놓고 정치적인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UFO가 일할 사람들을 끌어 가고, 프로이드를 닮은 정치가가 공포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꿈은 깼지만 어찌나 생생하던지. 내겐 반년 가량 꿈 속에서 실재보다 더 실재같은 삶을 살다가 (다행히)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다. 하룻 밤 동안 인류가 종말에 처했을때 보여주는 군상을 보며 정말 많은 경험을 쌓은 느낌. 깨고도 이 세상을 다시 인식하느라 시간이 필요했다.

라푼젤 이야기

“내가 올라갈 수 있게 머리카락을 늘어뜨려주렴”이란 말만 기억나는 동화는. 모두가 격찬하는 디즈니의 영상을 보기 전까지 내게 여러가지 기억으로 엉켜 있었다. 잔혹한 이야기에서 아름다운 동화까지. 어느 것이 정확한 버전일까 찾아보다가 말그대로 여러가지 버전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나 바램이 있구나 싶었다. 

디즈니가 그려 놓은 <라푼젤>은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그 순수함 때문에 건달들도 자신들의 꿈을 다시 발견하게 되고, 세상은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어떻게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평생을 함께 지내온 홀어머니가 알고 보니 유괴범이었고 자신을 속여 왔다는 사실은 라푼젤에겐 유일한 세상에 대한 경험인데. 그런 라푼젤이 마녀에게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되었고 세상은 나쁜 곳이 아니다”라고 곧바로 반응하기란 기적이나 다름 없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라면 모르지만 말이다. ( 디즈니는 그래서 라푼젤이 햇빛에서 나온 아이라고 말하는지도 )

그리고 잔혹동화인 <라푼젤>. 오랫동안 입과 입으로 거쳐온 이야기는 세상에 대한 불신을 오히려 이야기한다. 남자들은 순간의 쾌락을 위해 어리석은 행동과 거짓을 일삼는다는 설정. 그들을 응징하기 위해서 아기를 빼앗고 순수한 악인으로 키워내는 마녀의 집요함. 기만과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분노한 사람들의 모습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즐겨 왔다. 처음으로 사랑한 남자에게서 상처를 받고 마녀에게로 돌아가 그 남자를 결국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이야기. “너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 수 없어”라는 너무나도 흔한 예언과 그 예언에 얽매여 결국 스스로 실현하는 사람들.

극과 극을 달리는 이 이야기를 왜 디즈니는 50번째 작품으로 선택했을까. 그 과정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그들은 원작의 내용을 알았을테고 내부에서 치열하게 토론했을텐데.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을까. 디즈니라는 조직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 잔인한 이야기를 선택해 저렇게도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밝은 이야기로 바꿔 놓을 수 있었을까?

어쨌든 세상을 어느 쪽으로 바라보든 그건 개인의 몫일 테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 극장>의 이야기처럼. 그리고 나는 어느 쪽으로 바라 볼텐가. 하지만 또 어쩌면 그건 내 선택의 몫이 아니라, 내 유전자가 이미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날씨가 조금만 바뀌어도 주체할 수 없는 호르몬들을 뇌 근육을 훈련하는 것으로 조절하는게 가능이나 한 건지 모르겠다.

반복되는 꿈

같은 상황을 계속 반복해서 시도하는 꿈을 꿨다. 마치 최근에 나온 소스코드라는 영화처럼. 잠을 자다 급박한 상황에 몰려서 꿈을 깨고. 다시 잠들면 다시 같은 상황 처음으로 돌아가는. 하지만 기묘하게도 같은 상황으로 시작되지만 묘하게 조금씩 달랐다. 같은 상황이지만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거나, 사건이 약간 비틀어져서 흘러간다거나. 마지막엔 내가 떨어지거나 위험해지거나 하는 상황으로 치닫는데. 끊임없이 같은 상황으로 들어가서 다르게 끝나는 악몽을 반복해서 꾼 셈이다. 정말 이상한 악몽이었다. 밤새도록 계속해서 반복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