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기술(Civic Tech)로 만드는 디지털 세상, 코드포코리아

이 글은 사단법인 코드에 기고한 글입니다.

부모로서든 동년배로서든 혹은 시민으로서든 인간으로서든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강하게 퍼지기 시작한 시점을, TV화면을 통해 세월호가 가라 앉는 장면을 지켜 보기만 해야 했던 때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행동이 커다란 임팩트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가만히 있기에는 스스로가 부끄럽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던 한 명, 한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각자가 가진 기술로 더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오도록 이끌어 냈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사람들이 집 안에 갇혀버렸을 때, 공공의 역할과 정책적 판단 하나 하나가 중요해진 시기이기도 하지만,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시민들은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마자 확진자의 동선을 비롯한 코로나 현황 데이터를 동료 시민들이 더 쉽게 볼 수 있도록 개발한 시민 개발자들은 전세계에서 나타났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위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정확한 정보 제공을 위해 정보 공개를 서두르고 일일 브리핑을 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다면, 사회 곳곳의 시민들에게 다양한 채널과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시민 개발자들이 함께 했다.

공적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비롯한 코로나19 관련 데이터 개방을 이끌어낸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도 유사한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정부가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을 해결하는 동안 집 안에서 가만히 기다기 보다는, 판데믹을 겪는 당사자이자 동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할 일을 찾아 함께 해결하기 위해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은 출발했다. 정부는 정확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제공하고,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시민들과의 채널은 현장의 시민들이 직접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민과 관의 협업 체계에 대한 믿음 또한 바탕에 두고 있다. 주로 공적 마스크 재고 현황을 보여주는 지도 서비스가 만들어졌지만, 한 고등학생 개발자는 음성으로 내 주변의 마스크 재고 현황을 검색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공적 마스크 데이터 개방을 정부만의 프로젝트로 진행했다면 아마 우리는 음성 인식 서비스를 만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과 정부는 불과 일주일만에 공적 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공개하고 앱을 보급했다

이웃이나 자신, 더 나아가 공익을 위해서 행동에 나서는 시민의 등장과 활약은 우리 사회가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는 시점에 놓치지 않아야 할 핵심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코로나19 극복을 넘어서 사회의 디지털 전환을 이뤄내겠다는 한국판 뉴딜은 이 핵심을 놓치고 있다. 급격히 줄어드는 일자리로 인한 실업의 충격을 1차적으로 막아보려는 의도를 담은 디지털 뉴딜 정책임을 이해하지만, 정책의 바탕에 디지털 정책은 인프라 구축과 신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 활성화 정책이란 인식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데이터는 ‘원유’라는 표현과 함께 ‘산업의 주요 자원’으로서의 데이터를 정부 주도하에 일방적으로 모으고 개방하는데 집중하는 경향 역시 발견된다. 정부의 역할을 디지털 전환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디지털 전환의 방향이 산업의 육성과 인재의 양성에 두는 방식은 오랫동안 우리 정부가 익숙하게 활용해온 성공 공식이지만,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글로벌 경제가 작동하던 기존 방식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회 각계의 주장을 놓치고 있다.

한국판 디지털 뉴딜에 시민의 역할은 없다

코드포코리아를 통해 공적 마스크 데이터 개방을 제안하고 앱 개발에 참여하고, 개인 안심번호의 제안과 개발을 진행하면서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혁신이 시민에게 이미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다. “시민 참여는 중요합니다”라는 당연한 선언이 아니라, 시민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며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는 경험에서 나오는 확신이다. 정부의 지원이나 사회의 지지가 있고 없고와 무관하게 내 문제와 내 친구의 문제,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의 문제를 기술로 다뤄보려는 시민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독점 자본이 닫힌 기술로 다수의 시민 사회를 압도하는 시기, 그러나 여전히 300명 중 한두명만이 코딩을 할 줄 알기에 기술에 대한 허들이 높아지는 시기에 열린 기술로 사회의 디지털 공공재를 만들어내는 시민으로서의 개발자가 만들어내고 지켜내는 시민의 기술은 사회의 공공성을 확보하는데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고 디지털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기업이 ‘소비자를 위해’ 질 좋고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만들려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한’이란 지향을 넘어, ‘국민에 의한, 국민의’라는 지향을 향해야 한다. 국민을 민관협력의 대상이자 주요 문제 해결의 핵심 참여자로 바라볼 때에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국민을 디지털 전환의 핵심 당사자이자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주체로 바라볼때 ‘국민의’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중요한 정책에 활용하는 기술과 데이터를 개방하고, 시민들이 사회의 여러 인프라를 직접 들여다보고 개선하고 만들어낼 수 있도록 시민 기술을 발전시키는 방안을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지금 우리는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 시민과 시민의 디지털 주권의 개념을 확립하고, 공익 목적의 데이터의 공적 소유 확대와 개방형 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확대하며, 시민의 기술과 데이터 역량을 강화하고, 민관 협력 채널의 다변화 및 시민들이 제안하고 실험하는 정책 실험 공간을 확대하는 등 민주주의 원칙에 기반한 디지털 사회의 구축을 시민들이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의 디지털 주권에 기반한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은 공적 마스크 데이터 개방과 앱 개발을 마친 후에 여러 차례의 논의를 거쳐 코드포코리아로 다시 출발했다. 한국에서 기술을 가진 시민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내가 가진 기술로 함께 해결해보려는 시민들이 한데 모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학생이 청소년 정치 참여 확대 방안을 이야기하고,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모임을 주최하며, 직장인이 매일 매일 쓰레기를 줄이는 방안을 논의한다. 개발을 모르는 시민 누구나 쉽게 캠페인을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엔지니어가 고민하고, 정부가 공개한 데이터나 개발한 웹사이트의 문제점을 찾아내 공무원에게 전달한다. 산업재해가 일어나는 사업장 정보를 확인하고 PDF로 공개되는 문서를 데이터로 공개해달라고 요청하는 동시에 PDF로부터 데이터를 읽어내 깃헙에 csv 형식으로 공개한다. 그리고 수기입장시에 개인 휴대전화번호가 노출되는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함께 찾아내자는 정부 제안을 받고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개발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이제 곧 1년이 되는 코드포코리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평생 해야 할 놀이터 하나를 발견한 기분으로 즐겁게 참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민 기술의 확대가 우리가 맞이하게 될 디지털 사회가 더 민주적으로 움직이고, 보편적으로 접근 가능한 디지털 공공재를 더 확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막연하지만 엄청난 예감과 함께 하고 있다.

2020년을 코로나19의 해가 아니라, 기술 혁신을 통해 풍요롭지만 지속가능하고, 자유롭지만 협력적인 새로운 시대를 열기 시작한 한 해로 기억되게 만들 수 있을까? 그건 시민이자, 개발자이자 전문가이기도 한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시민 주도로 이뤄지는 디지털 전환의 조각 중 하나인 코드포코리아에 함께 만들어갈 시민들을 초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