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3. 평화

  • 포스트코로나시대의 온라인 정치참여 발전 방안 자문

    2020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의 ‘포스트코로나시대의 온라인정치참여 발전방안’이라는 연구에 대한 자문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1. 온라인정치참여가 숙의민주주의와 결합할 수 있는 방안

    빠띠가 서울시의 민주주의 플랫폼인 민주주의 서울을 설계한 내용을 먼저 참고로 드립니다. 플랫폼 기획 운영을 담당했고, 플랫폼 운영 가이드 및 소스도 오픈소스로 데모스엑스 시민협력플랫폼 운영 가이드로 공개하였습니다. https://demosx.org

    현시점에서 대규모의 시민협력플랫폼을 기획할때 ( 저희는 참여 플랫폼보다는 협력 플랫폼이란 단어를 선호합니다 ) 여러가지 현실적인 부분, 제도적인 부분, 기술적인 부분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현실적인 부분은 공무원 조직이 아직 시민 제안을 여러가지 이유로 반려하는 경향이 높고, 시민 제안을 비롯해 대규모의 토론이나 공론화 과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점이라면. 제도적인 부분은 아직 국민 제안과 토론, 그리고 이후의 투표가 어떤 과정을 거쳐야 법적으로 근거가 있는 토론이나 결정이 되는지 정의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서울을 설계할때 결정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토론에 방점을 찍고, 결정의 결과도 구속력을 갖기보단 선출된 기관장이 책임있게 대응하는 방식으로 설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현재 온라인을 통해 진행되는 투표나 토론이 양이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실질적으로 유권자나 시민을 대표하고 있는지 실제로 신뢰할만하다고 볼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주요 안건에 대해 논의하고 투표하는데 실명인증을 거칠지, 거친다고 해도 실제 그 사람이 맞는지, 또한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이 서울시민인지 아닌지 등을 아직은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대표성과 신뢰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디지털 방식의 토론과 투표에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서 “공론화 하는 공론장 운영”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동시에 주민 인증, 실명 인증, 블록체인 도입 등의 기술적인 부분을 준비하였고, 단순 토론, 단순 투표가 아니라 댓글을 통한 투표 결과를 다양한 스펙트럼과 방법으로 분석해서 시각화하거 해석해서 정책에 반영하는 방법등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현재 시점에서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발견되지 않았던 의제들이 제안되고, 정부가 정책을 수행하기 전이나 과정에 시민들의 의견이 취합되고, 또 사회적으로 중요한 쟁점들을 결정하기 이전에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토론에 참여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 즉 공론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토론과 숙의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온라인 플랫폼만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 공론장을 오가면서 토론회나 공청회, 시민 제안 워크숍 등을 동시에 함께 진행하였고 하나의 주제를 놓고 최소한 한 달 이상의 토론이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거기서 나오는 여러 주제들 또한 정부가 보유하는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진행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경험한 사례 중 하나는 재건축 지역의 길고양이를 보호해달라는 시민 제안인데요. 분명히 캣맘으로 불리는 시민들이 제안을 하고, 토론과 투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영향을 끼치긴 하였으나. 저희가 열었던 오프라인 토론회에서 해당 커뮤니티에서 오신 분들이 “길고양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주제를 더 많은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공론화해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특정 주장을 가진 이들의 주장이 사회에 공적인 정책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정보 공개, 토론을 통한 설명과 이해를 거쳐서 공감을 얻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을 시민들은 금새 이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스템적으로는 국민청원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자 민주주의 서울에서 개선하려고 했던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특정 주장을 가진 사람들의 제안이 특정 조건을 넘으면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이 답변한다는 구조에서는 특정 목소리가 높은 집단과 정부가 1:1로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제안 단계에서는 주장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되, 그 다음 단계인 공론과 숙의 과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설계하고 공론과 숙의 과정에 필요한 정부 보유 데이터와 정보, 입장이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들을 취합해서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적극적으로 사람들이 토론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서 의견을 표출하도록 제공하는 것 즉 주제를 공론화하는 공론장을 운영하는 것이 현시점의 정부가 만들어나가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공론장이 체계적으로 운영된 후에, 서두에 이야기한 제도적, 기술적 장치들이 보완된다면 공론장을 거친 주제를 놓고 함께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단계까지도 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 계획을 민주주의 서울 5단계 계획에 담았고, 숙의 공론장은 5단계의 1단계였습니다.

    제도적 시스템적으로 도입이 되려면. 현재 법적으로 정의되어 있는 시민 제안과 공무원 답변 제도를 더 발전시켜서, 일상적인 공론장을 운영하는 체계로 바꾸어야 합니다. 또한 중앙 정부를 비롯한 지방 정부 모두가 시민의 제안, 정부가 시행전에 시민과 함께 검토가 필요한 정책 등을 논의하는 공론장 운영 전담 체계가 모든 정부의 핵심 요소로 정의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민주주의서울 추진반을 따로 운영하기도 했고, 이후 민주주의 위원회라는 규모로 확대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조직을 구성하는 동시에 시민 제안 규정을 더 발전시켜서 주민 투표에 준하는 결정과 토론 장치에 대한 제도 논의도 필요합니다. 시민 참여 예산, 조례 제정에도 시민이 발안하고 제정하는 조건들이 온라인으로도 가능하도록 관련 법이 점차 발전하는게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단순 댓글이나 투표가 아니라 빅데이터 분석 등을 활용한 다양한 방식의 분석 기술, 그리고 블록체인 및 주제에 맞는 투표 기술의 고도화 등에 대한 연구 작업도 필요합니다. 인터넷의 핵심 기술이자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제안, 토론, 투표 기술들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공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온라인정치참여가 시민주권자의 실질적인 권리의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시는지, 혹은 그와 같은 결과로 나아가기 위해 시민운동, 시민활동, 시민교육은 어떤 목표와 전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빠띠에서는 시민협력플랫폼이란 이름의 기관 주도의 공론장이나 제도 공론장(예를 들어 광화문1번가, 민주주의 서울 등)을 운영하는 것과 별도로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자체 공론장을 운영하고, 이슈와 관심사 기반의 커뮤니티가 늘어나도록, 또한 쉽게 캠페인을 벌일 수 있도록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관은 중립적이면서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고 시민들이 서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며 동시에 토론과 투표의 결과가 반영되도록 제도적인 기반과 기술적인 시스템을 제공한다면. 여기에 참여하기 이전에 시민들 사이에서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를 중심으로 쉽게 조직화할수 있고, 조직화된 주장이 캠페인의 형태로 사회 전반에 전달될 수 있으며, 제도적인 변화 이전의 인식 변화나 정보 전달, 설득 등을 위해 시민들 사이에서 토론이 일어나는 공론장을 운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거친 후에 만들어진 제안들이 또한 이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 공감대를 거쳐서 기관이 운영하는 제도 공론장에 합의된 프로세스에 따라 제안되고 토론되고 결정을 거쳐서 확립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시민운동, 시민활동, 시민교육이 일어날 수 있도록 커뮤니티 지원 사업, 시민들 주도의 공론장 운영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0년에 빠띠가 진저티프로젝트와 함께 한 여성가족부의 버터나이프크루가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업이었고, 서울시의 작은 도서관들과 함께 한 공론장 운영 사업은 시민이 주도하는 공론장을 열고 그 안에서 다른 시민들을 초대해서 제안과 토론, 결정이 일어나는 사업이었습니다. 커뮤니티와 공론장을 시민들이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 기관의 사업의 성격을 넘어서서 시민이 제안하고 시민의 활동이 촉진되도록 설계하는 일은 성과의 불분명성이나 부서의 성과로 남기기 어려움 등의 이유로 아직 대부분의 정부에선 낯선 일입니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기업을 지원하는 것 만큼 시민 활동을 촉진하는 사업이 확대되고 기반이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의 플랫폼이 제안-답변의 단순 구조에서 벗어나서 시민과 함께 운영되는 협력적 플랫폼으로 나아가야 하듯이, 더 나가 시민이 주도적으로 과제를 제시하고 팀을 구성하고 거기서 나온 결과물들을 정책화하든 예산에 반영하든 조례로 만들든 하는 정책 실험 공간이 마련되는 것이 실질적인 온라인 정치참여의 다음 단계로 보고 있습니다. 정책 랩, 리빙 랩을 비롯해서 앞서 말한 버터나이프크루, 작은 도서관 공론장, 그리고 서울시의 공유도시 촉직 사업으로 진행한 빠띠의 공익데이터실험실이 예시이며, 시민 개발자(시빅해커)들의 코드포코리아가 공적마스크 앱을 함께 개발한 사례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3. 빠띠가 민주주의, 정치참여를 촉진하는 활동가협동조합이라는 것이 매우 신선하고 그 자체로 참여민주주의의 중요한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시민 조직이 다양한 층위에서 확산 지속될 수 있는지도 향후 민주주의 성숙에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무엇이며, 빠띠의 비지니스 모델은 무엇인지, 그 지속성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갖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기술입니다. 기술은 IT기업이나 스타트업이 활용해서 멋진 유니콘을 만드는데 활용된다는 인식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기술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 중 민주주의를 위한 기술(제안, 토론, 투표, 데이터 공개, 개인 정보 보호, 개인 인증, 허위조작 정보 검출)은 더 나은 사회의 핵심 근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기술을 발전시키기에 필요한 지원 체계는 기업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열린 기술을 만드는 빠띠와 같은 협동조합 모델로는 정부가 주도하는 펀드로 운용되는 민간의 투자도 받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사회 전반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열린 기술을 활용해 열린 플랫폼을 제공하려는 사회적 협동조합에 대한 투자와 지원, 주식 상장이 아닌 커뮤니티로 엑시트할 수 있는 성장 경로 마련이 절실합니다. 플랫폼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정책 자금 운용 같은 것들이 연구되고 준비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앞서 이야기한 민주주의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이 더 많이 열린 기술의 형태로 공공성에 기반해서 사회에서 많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이 난관들에도 불구하고 빠띠는 영리기업이 아닌 사회적 협동조합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민주주의 활동가입니다. 민주주의란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과정이자, 숙의를 거쳐서 결론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공공의 자원을 활용할 방향에 대해 함께 결정하는 것입니다. 빠띠의 경험으로는 앞으로 더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숙의와 결론, 신뢰와 협력 과정과 기반에 대한 필요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부가 시민과 협력을 하고, 더 나가 시민이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하듯이. 민간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이와 같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나은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신뢰가 회복하려면 권한을 나누고, 협력을 하고, 숙의와 토론을 거쳐 공동의 의견을 도출하는 등의 경험들을 거쳐야만 실질적인 신뢰가 증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빠띠는 다양한 영역에서 민주주의 활동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활동하려는 사람들이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방법론과 플랫폼을 만드는 동시에, 이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재무적 기반도 제공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 활동가들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고객 혹은 파트너로서 정부를 비롯해 사회의 많은 영역의 기관이나 단위들이 민주주의 활동가들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 챗GPT는 우리의 노동을 줄여줄까요? 줄인다면 얼마나 줄여줄까요?

    챗GPT 광풍이 부네요. 저는 가입만 하고 아직 써 보진 않았습니다. 쓰지 않은 까닭은 아직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광범위한 정보를 압축해서 잘 정리한다는데, 지금 저는 요약된 정보보다는. 다양한 이슈별로 어떤 주장이나 대안들이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직접 자신의 이야길 하는 사람들이 알고 싶거든요. 찾아보는 맛이랄까, 또 내가 원전을 찾아 내 식으로 이해하면서 느끼는 맛이랄까가 지금은 중요하다 보니 아직 챗GPT를 쓸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챗GPT는 사람이 던진 질문과 가까운 패턴의 문장들을 다시 생성해서 그럴싸하게 배열하는 기술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어로 된 문장들을 어디서 가져왔을까를 생각했을때 내 질문에 매칭해서 돌려주는 값이 어떤 선입견과 잘못된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지도 불분명하기에 아직 사용을 꺼리게 됩니다.

    무튼 그럼에도 극찬의 메시지들이 끊임없이 들립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단연 “생산성의 눈부신 향상”입니다. 몇일이 걸렸던 일을 몇분만에 해 냈다는 식인데요. 확실히 보조하는 인공지능(assistive ai)로 중요한 역할을 하겠단 기대감이 저도 듭니다. 하지만 몇가지 질문이 따라 생깁니다.

    챗GPT를 통해 정말로 우리의 노동시간이 줄어들까요? 벌써부터 어떻게 써야 잘 쓸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글과 강의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돌이켜봐도 생산성을 높여준다는 기술들은 대체로 내가 모르던 기술을 하나 더 배우기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고, 결국 그 기술이 현장에서 쓰이는 경우는 대체로 드문데다가, 전반적으로 노동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 요건이 늘어나게 만드는 후에, 더욱 더 최신기술을 능숙하게 다루는 노동자가 되어야만 전반적으론 줄어들지 않은 노동시간에 종사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SNS, 뉴스레터, 톡방, 디지털 마케팅, 디자인, 영상 등등. 챗GPT는 기존에 쏟아져나왔던 기술과 달리 정말로 우리 노동시간을 줄여줄까요?

    더 무서운 것은, 지금 내가 요구받던 일, 즉 내 업무 범위에 속하는 일의 본질이 지금 내가 챗GPT를 통해 간단히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면. 나에게 이 일을 준 사람이나 조직이 앞으로도 나에게 이 일을 요구하게 될까요? 나같은 사람 10명이 하던 일을 한 사람의 일꺼리조차 되지 않게 되는 것이 지금 이 일을 하는 나에게 좋은 일인가 싶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는 생산성이 올라가겠지만요.

    결국 생산성이 높아졌을때 그 이익을 누리기 위해선 그 생산성이 높아지는 수단을 스스로 보유해야 합니다. “내 일을 이만큼이나 단축시켜줬어”라고 열광하는 분들 중에 앞으로 일자리 걱정을 해야 할 분들이 많아질 것 같은데요. 챗GPT를 비롯한 신기술은 우리의 노동을 정말 줄여줄까요? 아니, 결국 아예 없애버리지는 않을까요? 우리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기술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려면 잘 쓰는 것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탄소중립, 국민참여를 확대하라 : 1기 탄소중립위원회 국민참여분과 활동 회고

    2030년까지 우리는 탄소배출을 얼마나 줄여야 할까?

    “국민참여분과는 NDC 목표를 50% 이상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총괄위원회에 제출하겠습니다.”

    2021년 10월 12일, 탄소중립위원회 국민참여분과는 “NDC 50% 이상 상향 필요”로 결론을 내렸다. 몇달간에 걸친 위원회 내에서의 검토, 교육계, 종교계, 청년, 시민사회를 비롯한 다양한 단위의 의견 수렴, 그리고 탄소중립위원회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와 보다 강력한 감축 정책을 요구하고 눈물을 흘리며 사퇴한 종교분과위원들의 호소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이후 탄소중립위원회 총괄위원회는 NDC 안을 “40%”로 결정하고, 2021년 11월 2일 최종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이상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누군가는 “40% 이상 감축 목표”가 비현실적인 목표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50% 이상 감축도 부족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탄소중립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50% 이상 감축”으로 의견을 내기까지 고민이 적지 않았다. 모두의 생존을 결정지을지도 모를 NDC 감축 목표를 위원회는, 위원 개개인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면밀히 검토해서 정확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동시에 있었다. 하지만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국민참여분과의 위원인 나는 국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으로 설치한 위원회는 법률로도 청년, 여성, 노동자, 농어민, 중소상공인,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사회계층의 대표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50명 이상 100명 이내의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도 법률로 명시하고, 기후환경위원회를 통폐합한 까닭도 사회 각계각층의 대표성을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민간위원 70여명을 구성한 후에도 특별히 국민참여분과를 만든 까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에 다양한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와 아직 집단으로 형성되지 않은 국민의 목소리까지도 더욱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함이었다(고 나는 기대했다).

    하지만 시민사회협의체를 구성하려 했던 노력은 대다수의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거절당했다. 협의체 구성에 참여하는게 아님을 확인받은 후에야 몇몇 시민사회단체들과 겨우 간담회를 열수 있었다. 위원회 바깥에서 위원회 해체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토론회에 참석해서 귀동냥을 했고, 보다 절박하고 과감한 정책을 호소하는 종교 지도자 분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해서 함께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위원회에 함께 했던 목사님, 신부님, 스님은 강력한 감축 목표안을 촉구하며 사퇴하셨지만, 사퇴하신 분들이든 짧은 기간동안 만나는 것조차 거부했던 분들이든 모두 “보다 획기적인 감축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하고 있었다. 국민참여분과는 우리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은 목소리들도 전체 의사 결정에 반영하거나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

    NDC 40% 목표가 비과학적이라거나 산업계의 주장에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주장들이 있는데, 거꾸로 반문하고 싶다. 과학자가 아닌 시민들이 적절하고 가능한 목표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거나, 데이터를 제공했냐고. 또한 산업계를 비롯한 정부 거버넌스에 익숙한 단위들은 충분하진 않을수 있어도 함께 대화하고 의견서를 제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여전히 보통의 국민들이 참여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도. 정책 결정은 과학적이기 이전에 민주적이어야 하고, 민주적이기 위해서도 과학적이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계층의 주장과 이해관계를 조율하려는 전제가 우리 모두의 공동의 이익을 향해 있어야 한다. 참여분과 위원으로서 나는 내가 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NDC와 탄소중립시나리오안 확정은 끝이 아니라, 좋은 대화와 논의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탄소중립정책 논의에 국민의 공간을 어떻게 만들까?

    수많은 숫자와 난해한 기술들, 여러 이해관계가 갈리는 입장 차이까지 탄소중립 논의는 무척 어렵다. 그렇기에 과학과 기술, 산업의 전문가들이 모여 옳고 그른 것을 엄밀하게 찾아내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모두의 미래에 영향을 끼칠 기후위기와 이에 대응하는 정책은 당연하게도 국민들이 이해관계자로서도 참여해야 하고, 실질적으로도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이해와 공감에 기반한 공동 실천이 필수적이다. 

    위원회는 중요한 권한을 위임받은 위원회의 책무성과 함께 국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위해서도 회의록을 모두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모든 이들의 실명을 명시하는 수준까지는 못 갔지만, 대부분의 위원들은 회의록 결정을 당연하게 공감했고, 지금도 탄소중립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회의록을 볼 수 있다. 대통령직속위원회로서는 흔치 않은 공개 결정이었지만, 한편으론 강력한 권한을 가진 위원회일수록 회의록을 더욱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든 누구나 그들의 미래를 결정지은 중요한 논의와 결정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위원회가 소중하게 모으고 공개하려고 했던 또 다른 자료는 위원회에 취합된 다양한 입장과 주장, 제안을 담은 의견서들이었다. 위원회는 협의체를 구성하거나 간담회를 통해서 탄소중립시나리오와 NDC 초안을 전달하고 의견을 나누었는데, 그 과정에 94개 단체가 의견서를 만들어 전달했다. 이 의견서를 위원들이 꼼꼼히 읽고 최종안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위원회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 게시함으로써 다양한 입장을 드러내고 더 나은 논의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했다.

    NDC 상향안 초안을 공개하며,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온라인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위원들과 단체들 뿐만 아니라, 가능한한 국민들이 협의와 논의 과정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추진하였던 토론회였다. 아쉽게도 2차례밖에 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는 정책 논의 과정이 더 많이 기록되고 더 많이 국민들에게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들을 대표하는 국민들, 탄소중립시민회의

    국민들을 대표하는 국민들인 ‘탄소중립시민회의’도 국민참여의 일환으로 진행하였다. 인구 비율을 고려해 구성한 533명은, 특히 2030년과 2050년을 정면으로 살아갈 10대들을 23명 포함함으로써 미래세대의 대표성을 강화하였고, 100세 시대를 감안하여 보통 60대 이상으로 모집하는 고령층 그룹도 60대와 70대 이상으로 세분화하였다는 특징을 가진다. 10년, 30년 후의 세대 구성을 고려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미래세대와 청년세대에 가중치를 높이는 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의 논의를 통해 시민들은 탄소중립정책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다양한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각자의 판단을 숙성시켜 나갔다. 시민들의 판단은 4차례에 걸친 설문조사로 반복해서 확인하였는데, “탄소중립은 2050년보다는 빨라야 한다”는 의견을 55.2%가 내었고, “노후 석탄발전소의 폐쇄 시기”는 1차 설문조사에서는 2030년이 바람직하다고 35.2%가 의견을 내었으나 4차 설문조사에서는 2050년이 바람직하다고 30.8%가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는 탄소중립 추진 과정에서 기대/우려하는 점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꼽았던 시민이 2차에 1.9%였던데 비해 4차에는 14.3%로 증가한 것과 함께 관찰되는 지점으로 일자리 문제와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가 높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탄소중립시민회의는 위상과 권한 등 여러 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앞으로 맞닥뜨릴 다양한 쟁점을 대표성을 가진 시민들이 숙의를 통해 때론 당사자로서, 때론 중재자로서 역할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국민들에게 충분한 자료와 설명이 제공된다면, 탄소중립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민참여, 제대로 더 잘 이어나가야

    돌이켜보면 이 과정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시민회의는 기본적으로 2년은 운영해야 하고, NDC안과 탄소중립시나리오는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듣는 것을 넘어, 다양한 입장들이 서로 부딪히는 토론회와 공론장을 충분히 열면서 천천히 만들어야 했다. 더 나아가 탄소중립시나리오라는 말처럼 다양한 상상을 담은 시나리오를 사회 각계각층이 만드는 장을 위원회가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2년을 약속했던 위원회조차 정권이 바뀌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했고, NDC와 탄소중립시나리오를 확정한 후에 더 충실하게 국민과 함께 논의하며 내용을 채우겠다던 약속은 지킬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국제사회와 지켜야 할 시점을 맞추기 위해서도, 여러 의미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도 위원회에 참여한 민간위원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노력했다. 국민 참여도 짧은 시간 동안 여러가지 형식을 갖추며 할 수 있는 시도를 하려고 노력했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크지만, 국민참여를 확대하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연속적으로 이어나가야 한다. 그럴때 다음 사안들을 꼭 고려하길 바란다.

    우선 거버넌스다. 많은 비판에 직면했지만 위원회는 여러 노력의 결과다. 기존의 기후환경 관련 위원회를 통폐합해서 대표성과 실효성을 부여했고, 각계각층에서 위원을 선정하도록 법률로도 명시하였다. 협의체와 시민회의 등 국민과의 협력 및 참여 모델도 실행했다. 하지만 커진 규모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구체적인 거버넌스 운영 체계는 미흡했다. 책무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의록을 공개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고, 실제로 의결과 심의를 담당하는 법률로 규정한 위원회였지만, 위원회 내에서도 논의와 의사 결정 체계, 권한의 범위, 추진 체계를 아쉬워하는 위원들이 적지 않았다. 이는 곧바로 협의체 구성에서도 문제로 이어졌고, 시민회의로까지도 이어진다. 권한과 책임의 범위, 기대하는 역할, 논의와 의사 결정 체계, 추진 체계는 참여하려는 단위가 어디든 누구나 먼저 확인하게 되는 내용들임에도 이를 준비할 충분한 시간이 위원회에 없었다. 시민의회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마찬가지로 본인들의 역할과 권한의 범위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민간위원, 협의체, 시민회의, 공론장 등 다양한 층위로 국민으로 초대해 거버넌스를 구성하려는 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커다란 바구니 하나에 좋은 것들을 일단 담아둔 셈이었기에 아쉽다. 다양한 국민 참여의 체계들의 역할을 어떻게 나누고 실행할지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두번째는 공론장의 확대다. 시민회의에서 많은 시민들이 석탄발전소의 문제를 깊게 생각한 까닭은 정의로운 전환, 즉 일자리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올해 초부터 시민들이 피부로 실감하는 전기세와 난방비 문제 역시 탄소중립 정책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슈다. 정책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이해와 공감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만큼, 국민들이 직접 겪게 될 여러 어려움들이나 이웃들이 겪게 될 어려움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함께 해결에 나서야만 탄소중립은 실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보다 긴 시간을 들여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국민들이 이야기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이야기하고, 미래세대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나누는 공론장을 지역별로, 주제별로 다양하게 진행해 나가야 한다. 

    탄소중립은 무겁고 어려운 주제이지만, 국민 참여를 축제로 만들어야 한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탄소 배출을 줄이고 배출한 탄소를 흡수하는 일련의 계획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함께 다양한 시각으로 상상하는 계획으로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는 과학 기술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모색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일자리 소멸의 충격을 혁신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가능성을 제시할 수도 있다. 기후 약자를 돌보는 것을 넘어 생태 전반을 함께 되살리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도 있다. 여기에 산업과 경제의 역할을 재구성하고 더욱 더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가는 방향을 누군가가 제시할수도 있다. 다양한 상상과 각자의 전문성이, 집단의 지성과 협력으로 발휘되도록 장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을 위원회가 가지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데이터’ 를 충분히 만들고 공개해야 한다. 누군가가 면밀하게 검토해서 최적의 감축안을 만들어내기에도 현재의 데이터는 충분하지도 파악하기 쉽지 않다. 탄소중립정책은 다른 정책에 비해 데이터로 모니터링이 가능하고 데이터로 달성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정책이기에, 데이터 기반 행정을 도입하기에 적합하다. 더 나아가 국민들이 다양한 기후위기 극복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제시하기 위해서 국가는 국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기후 관련 공공 데이터를 민간과 함께 더 적극적으로 더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데이터가 충분히 존재해야 NDC가 35%냐, 40%냐, 50% 이상이어야 하냐의 논쟁이 과학적이면서도 민주적인 대화와 설득, 경쟁과 합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국민참여 없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탄소중립 정책 수립 과정에 각계각층의 다양한 국민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던 국민참여분과는 그러나 지금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3월에 나올 기본계획은 국민들이 논의에 참여하기커녕 내용조차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국민참여는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어서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러면 1기의 위원회가 국민참여를 충분히 잘해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서일까? 그 역시 아닐테다.

    복합적이고 절박한 위기의 시대는 우리 모두가 함께 대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보다 더 민주적인 탄소중립 정책 추진 체계를 마련할 의무가 있고, 국민들 역시 정부가 국민의 참여, 국민과의 협력, 즉 민주성을 확대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위기인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

    대한민국이 열린정부파트너십 의장국이어서 한국에서 열린 OGP 글로벌 서밋에 시민사회대표로 테이블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대부분의 나라에서 온 패널들이 포퓰리즘이든, 권위주의 때문이든 한 목소리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불과 2년 전의 나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입장이었기에 코드포코리아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상황을 시민과 정부가 협력해서 해결한 경험을 해 왔다”고, “중학생들부터 갓 개발을 배운 대학생들, 지방정부나 기업이 정부가 공개한 데이터를 활용해 각자의 마스크앱을 만든 사례”를 예로 들며 “정말 짧은 3일 동안 몇백명의 사람들이 신이 나서 함께 작업했던 기억”을 이야기했다. 그 경험을 통해 위기의 시대에 정부와 사회, 공동체에 대한 신뢰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정체성과 효능감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축적할 수 있는지를 맛본 것 같다고, 어린 학생들부터 전문가들까지 마음껏 활동할 공간을 사회(특히 정부)가 성심껏 펼쳐놓는게 중요한 열린정부의 방향인 것 같단 취지의 이야길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나는 우리 “민주주의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사회 시스템(특히 정부)에 대한 불신의 증가, 일반 시민과 비 시민(혹은 불량한 시민)의 갈라치기, 사회적 약자 혹은 이웃에 대한 공감의 부재와 공감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미디어 환경까지. 개인적으로는 버터나이프크루, 탄소중립위원회, 팩트체크넷 등에서 직접 겪기도 하고, 이태원참사, 장애인이동권,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등을 바라보는 시선 등에서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다.

    여러 정치 세력이 들고 나는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이지만,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모두가 시민이고, 가능한 모든 시민들이 함께 하며, 모든 시민들을 위해야 한다란 기본 가치와 약속과 책임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시민과 비시민을 가르고, 선택적으로 시민을 호명하며,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구성원들을 포용하기는 커녕 혐오하고 조롱하는 지금 우리 사회가 그동안 자랑스럽게 여겨왔던 우리의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우리 스스로 침식시키는 것으로 보여 안타깝고 씁쓸하다.

    아니, 어쩌면 우리 스스로 지금이라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고민하고 토론해야 하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바깥에서 주어진 민주주의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누가, 어떻게,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를 만들지 이야기하면 좋겠다. 그 생각의 차이가 드러날때 모든 공동체를 위한 정치인지, 좁은 범위의 자칭 시민을 위한 정치인지 구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에 대해 형식을 넘어 더 깊게 본질을 고민하고 내재화해야 할 때가 온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래야 우리도 다른 나라들이 하듯이, 해외에서 온 이주자들에게 시민권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 제대로 논의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그래야 이웃을 비국민으로 낙인찍고 학살한 아직 100년도 안 된 우리의 슬픈 과거사를 극복하고 진정한 동포가 될 수 있지 않겠나.

  •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 왜 시민이 만들어야 할까요?

    외출 시 약속과 약속 사이에 빈 시간이 생기면 커피숍을 찾습니다. 오전 일찍부터 저녁까지 회의 혹은 약속이 있는 날에는, 더는 커피를 마시기 힘들 정도로 계속해서 커피숍을 들락날락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럴 때면 공원 나무 그늘 의자에 앉아 바람을 쐬고 싶습니다. 쾌적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즐겁지만, 우리에겐 공원과 같은 공공 공간도 필요합니다.

    공간에 대한 단상을 인터넷으로 옮겨볼까요? 대부분의 인터넷 서비스는, 사용자를 ‘데이터를 제공’하거나, ‘구독료를 지불’하거나, ‘물건을 구매’하는 고객으로 바라봅니다. 집에서 일터로 이동할 때 우리는 골목과 도로라는 공공 인프라와 버스, 지하철이라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인터넷 공간에 접속할 때는 어떤 형태로든 비용을 지불합니다. 서비스의 질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디지털 사회는 디지털 경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소비자이기 이전에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시민의 정체성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과 기술은 더 나은 디지털 사회를 만드는 기반이 됩니다. 물건을 사고팔거나 재미있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만큼, 다양성과 포용, 신뢰와 협력, 분권과 자율을 위한 디지털 기술은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에 꼭 필요합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좋은 대화를 이어가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거나 의사결정을 내리는 등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인터넷에서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면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어 다양하고 효과적인 집단 협업이 가능한데도, 우리는 이를 사회적 대화나 사회 문제 해결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터넷 상에서는 혐오와 불신, 허위조작정보와 악의적인 글로 피해를 보는 이들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술과 기능의 제약은 곧 시민성의 제약으로, 더 나아가 공공성의 제약으로 이어집니다. 공공성에 기초한 디지털 사회를 만들려면 디지털 시민의 정체성을 확대해야 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과 기술이 시민들에게 제공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공성을 목표로 하는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고 운영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디지털 민주주의를 목표로 하는 플랫폼은 누가 만들 수 있을까요? 정부가 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한국은 양극화된 정치 상황으로, 정부가 이런 플랫폼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에는 부담이 따릅니다. 정권이 바뀌면 시민 참여와 협력 사업은 중단되기도 합니다. 양극화된 정치 상황에서는 기업 역시 투자에 나서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재무적 투자는 투자금 회수를 위해 투명하기보다는 단순하고 효과적인, 공유보다는 독점 구조를 지향합니다. 이는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독점보다는 공공성을 우선하려는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의 목적과 안타깝지만 배치됩니다.

    결국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이들은 ‘시민’이 아닐까요?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지키며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과 기술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빠띠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라는 구조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시민과 공적 가치를 지닌 조직이 플랫폼을 만드는 조직의 재무 기반 형성과 개발과 운영 과정에서 생기는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플랫폼을 만드는 협동조합도 낯선데, 플랫폼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시민이라니… 낯설고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기업을 넘어 시민의 힘으로 디지털 사회의 필수 인프라를 만들고 유지해 보면 어떨까 라는 상상은 매우 즐겁습니다. 한국 사회에는 낯설지만, 오히려 사회적협동조합의 역사와 경험은 깊고, 사회의 공공성을 유지하려는 시민의 역사와 경험도 아주 깊고 넓습니다. 인터넷 기술의 근간도 오픈소스 커뮤니티로부터 나왔고요. 빠띠는 그 역사와 경험을 디지털 사회에서도 이어가려고 합니다.

    더 많고, 더 나은 디지털 민주주의 기술은, 다양한 처지와 입장의 사람이 목소리를 내고 좋은 대화를 나누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합니다. 공공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 기술은 서로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국민/비국민이라고 낙인찍거나, 특정 진영이 배척하는 상황을 넘어설 것입니다. 오랫동안 갈등과 혐오를 조장해온 우리네 정치를 넘어 다양성과 포용, 신뢰와 협력에 기반한 진짜 민주주의를 오롯이 시민의 힘으로 이룰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짜 민주주의는, 여러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당한 이들을 진정한 일원으로 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과정이나 현재의 상황으로나 진정한 민주주의가 지금 우리에겐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민주주의 기반을 만들고 이 기반이 공공성을 유지하도록, 한국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기반을 다지고 다양한 시민을 포용하는 사회가 되도록, 빠띠와 함께 하는 시민, ‘빠띠즌’이 되어 주세요. (빠띠즌 되어 빠띠 후원하기)

  • 나는 왜 민주주의 혁신에 집중하는가?

    빠띠의 후원회원 제도인 빠띠즌을 알리고 후원을 요청하는 글입니다. 빠띠를 통해 하려는 민주주의 혁신의 내용을 설명하며, 이 일을 하게 된 개인적인 이유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그렇기에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부담스럽습니다만 앞으로 여러 시행착오를 인내하며 노력하겠단 약속이기도 합니다.

    안녕하세요. 빠띠 이사장 권오현입니다.
    오늘은 오랫동안 드리고 싶었던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직접 글을 씁니다.
    다소 긴 이야기지만, 끝까지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왜 ‘빠띠’라는 조직을 시작하셨나요?”

    강의를 하거나 미팅을 할 때 종종 받는 질문입니다. ‘민주주의를 혁신’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하는 건지, 어떻게 이리 오랫동안 해 올 수 있었는지 많이들 궁금해하시죠. 디지털 미디어와 커뮤니티 플랫폼 기술을 활용해 개인에게는 권한과 정체성을 부여하고, 집단 내에 의사소통/결정 체계를 구축하는 일을 약 20년간 한결같이 해 온 저를 신기하게 여기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처음 다짐했을 때 떠올린 소명은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자’였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이었던 저는, 스스로는 힘든 삶을 살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함께하려는 선한 보통 사람들이 교회라는 공동체에 모여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가난과 기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회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부족함으로 그 꿈을 내려놓아야 했고, 새로운 목표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때 어린 시절부터 해오던 프로그래밍 기술을 바탕으로 웹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난제를 해결합니다
    민주주의는 나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새 소명을 찾던 저는, 어렵게 사는 이웃들을 돕고 미비한 제도를 개선하려 노력하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 분들이 조직 내에서는 더 잘 협력하고, 밖으로는 더 널리 알려져서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내는데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덕분에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 일, 다양한 사람이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일, 인터넷을 통해 조직과 커뮤니티 체계를 만드는 일, 사회 제도를 하나씩 바꿔나가는 일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자원이 아무리 많아도, 시스템이 건강하지 않으면 필요한 이들에게 그 자원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소외 당하고, 정의롭지 않은 상황 속에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우리가 겪는 많은 문제는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고 함께 협력하지 못하는 환경과 문화에서 생겨납니다. 제가 처음 소명으로 추구했던 ‘가난’과 ‘기아’ 역시, 국민에게 권력이 주어지지 않고 정부를 감시하거나 정부를 운영하는 제도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흔히 ‘인터넷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소통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제게 인터넷 기술(디지털 기술)은 연결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소통을 통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누구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정보를 습득하며, 논의에 기여하고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대의 가능성이 드디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지요.

    인터넷 기술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처지와 의견이 전체 시스템에 반영될 수 있게 만들 수 있고(더 많은), 소수와 전문가의 의견이 존중받으면서도 다수를 중심으로 한 절차를 통해 내려지는 집단 결정을 신뢰하게 만들 수 있고(더 나은), 개인과 집단이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고 공동 소유하는 시스템(일상의)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빠띠의 슬로건인 ‘더 많고, 더 나은, 일상의 민주주의’에 이 가능성을 담았죠.

    이렇게 민주주의는 사회의 여러 과제를 해결하는 핵심 전략이지만, 또한 우리 각자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함이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물려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저는, 사회 속에서 제 생각과 의견이 존중 받기를 바랍니다. 제가 거두는 성공과 실패에 무관하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 받고 싶습니다. 제 목소리가 존중받는 것만큼 다른 이의 목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사회가 풍요로움과 지속가능함을 추구하면서, 공정하고 따뜻하게 운영되도록 저 역시 기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혐오와 차별, 불안과 각자도생이 늘어나는 사회 속에서 자원과 권한이 부족한 개인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선 우리 모두는 스스로 권한을 쟁취해야 합니다. 동시에 협력하여 사회 구성원 누구나 이용 가능한 사회 기반을 늘리고, 이를 투명하고 공정하고 따뜻하게 운영해야 합니다. 물질의 풍요뿐만 아니라 바로 이런 민주주의를 통해 다양한 구성원들이 기여하고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 수 있고 저는 공정하고 따뜻한 사회 속에서 나와 우리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디지털 민주주의 기반과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려 합니다

    빠띠를 통해 행복한 개인, 협력하는 사회, 신뢰하고 지지받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의 오랜 과제와 당면한 문제를 더 많은 사람의 참여와 이해, 공감과 지지로 해결할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디지털 민주주의 기술이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빠띠는 공론장, 커뮤니티, 캠페인, 데이터,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운영해 왔습니다. 모두 앞서 말씀드린 목표를 향해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해 서로 협력하고, 이를 제도나 문화/시스템으로 안착시키도록 플랫폼을 만들고 방법론을 퍼트려 왔습니다. 진영과 지역, 주제를 넘나들며 다양한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기획과 운영으로 빠띠 방법론의 내재화를 돕기도 했습니다.

    빠띠가 기획/운영한 ‘민주주의 서울’과 여기서 만든 시민협력플랫폼 모델은 널리 퍼져 많은 지자체의 기본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시민과 기관이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공론장과 워킹그룹 모델은 요즘 시대의 당연한 상식이 되었습니다.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거버넌스와 공론장을 손쉽게 만드는 빠띠 믹스, 공통 관심사로 모인 그룹과 조직이 활용하는 빠띠 카누, 국회와 지자체뿐만 아니라 기업을 대상으로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 전달하는 빠띠 캠페인즈, 구성원의 의견을 재밌게 모으고 함께 결정하는 빠띠 타운홀 등 빠띠의 민주주의 플랫폼도 늘어났습니다. 시민 주도로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생태계를 만들려던 빠띠의 노력은 ‘코로나19 공적 마스크 데이터 개방 및 앱 개발’과 시빅해커의 커뮤니티인 ‘코드포코리아’의 발족으로 이어졌습니다. 허위 조작 정보에 함께 대응하는 시민을 양성하는‘팩트체크넷’도 빠띠와 언론인 현업 단체의 협업으로 탄생했습니다. 매년 빠띠의 경험과 방법론을 퍼트리고 현장을 지키는 파트너들의 경험을 나누는 ‘민주주의 캠프’도 시작했습니다.

    플랫폼을 만들고 현장 곳곳을 다니면서 민주주의가 가진 가능성을 더 실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술 발달로 인해 가속화되는 혐오와 갈등, 기술과 자본의 쏠림 등을 보며 절박해지기도 합니다. 빠띠의 민주주의 플랫폼을 개선하고, 민주주의 방법론 교육과 홍보도 확대하며 사회 곳곳에 혁신적인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싶지만, 투자나 후원 없이 운영되는 조직의 한계를 느낍니다.

    빠띠 후원으로 디지털 민주주의 공공재를 함께 만들어주세요

    빠띠는 앞으로 민주주의를 혁신하고 보급하는 일에 더 많은 동료 시민의 참여를 요청하고자 합니다. 우선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께 빠띠의 후원회원인 ‘빠띠즌’으로 함께 해주시길 요청드립니다. 빠띠즌은 ‘Parti(빠띠)’와 ‘Citizen(시민)’의 합성어로, 시민과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은 빠띠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빠띠가 민주주의 방법론과 플랫폼을 더 잘 만들고, 더 많은 시민의 역량 강화에 기여하고, ‘당사자와 시민의 참여로 이해와 공감, 지지와 신뢰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장’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십시오.

    빠띠는 민주주의 플랫폼과 방법론을 더 널리 퍼트려 우리 사회의 공공재로 만들고 싶습니다. 공공재이니 만큼, 이 디지털 민주주의 자산을 만들고 운영/소유하는 과정에도 시민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믿고, 그렇게 실현시키려 합니다. 다른 어떤 기술보다도, 사회 구성원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소통하고 협력하는데 필요한 기술은 그 자체로도 공적 자산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후원은 ‘빠띠’뿐만 아니라 이 공공재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자’는 어린 시절의 제 바람은, ‘개인의 권리를 확대하고, 자유로운 개인이 협력하고 신뢰하는 시스템으로 건강한 공공재를 만들고 운영되는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일로 수렴되었습니다. 좋은 민주주의가 만들어낼 더 좋은 사회에 대한 믿음이 변치 않았기에 오랫동안 이 일에 매진할 수 있었고, 지금도 이 기대를 공유하는 동료/파트너들과 즐겁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로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열정을 가진 선한 사람들이, 그들의 기술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디지털 기술이 독점과 혐오의 늪에 빠지지 않고, 공유와 공감의 시대를 여는데 기여하도록 빠띠를 후원해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빠띠는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기술의 공적 가능성을 우리 사회의 공공재로 구현하는 데에 기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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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화. 이제 실전이다! 민서의 첫걸음 이야기

    • 지난 2화에서는 민주주의 서울의 설계와 프로세스에 관해 고민했던 이야기와 시범사업의 경험을 나눴습니다. 3화에서는 시범사업에서 1단계로 넘어간 민주주의 서울 (이하 민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떻게 달라지고 발전했을까요? 이를 위해 빠띠는 무엇을 고민하고 노력했을까요? 본문에서 확인해보세요.

    이 글은 “2화. 민주주의 플랫폼을 향한 고민과 실험”에서 이어집니다.

    공무원, 민간 전문가가 함께하는 협력체계를 만들다

    민주주의 서울이 자문과 시범사업을 거치는 사이 지방선거가 치러졌습니다. 2018년 5월, 민선 7기 서울시장 체계에 들어섰고 민서는 ‘서울의 공론장’이라는 컨셉을 확정짓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체계와 프로세스를 정립한 후,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1단계에 돌입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범사업 기간에는 시간과 예산 부족으로 ‘천만상상 오아시스’의 시스템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1단계를 시작하는 무렵까지도 예산이 마련되지 않았고, 전용 시스템은 2단계를 시작할 때쯤에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1단계를 수행하는 데에는 복잡한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시민의 제안을 받고 함께 토론과 투표를 하고 관련 소식을 전달하는 기본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니,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에 자원을 투입했습니다.

    서울시는 운영 담당 공무원을 대폭 늘렸습니다. 시범사업 동안 1명이었던 전담 인력이 10명의 추진반으로 확대됩니다. 빠띠에서 민서를 담당하는 활동가들도 10명으로 늘어납니다. 담당공무원은 행정 처리와 내부 공무원과의 소통을, 빠띠는 플랫폼 기획운영과 대시민영역 활동을 하며 2인 3각으로 활동해보기로 했습니다. 약 20명의 담당자들은 행정과 시민 사이에 자리잡아서 양쪽이 잘 조율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영합니다. 전체를 총괄하고 기획하는 일은 제가 맡았습니다. 총괄의 역할은 전체 시스템을 운영하고, 서울시의 다양한 의사결정체계에 참여해 설명과 협조를 요청하는 일입니다. 민간의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되 관의 역할을 축소하지 않는 방식의 체계를 시도한 것은, 돌이켜보면 서울시였기에 가능했던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시범사업을 통해서는 ‘시민이 제안하면 기관이 답변하는 기존 제안 플랫폼을 넘어서서, 시민과 서울시가 제안하고 함께 숙의하여 결정에 이른다’는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이를 실행하기 위해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더 쉽고 더 다양한 제안을 위해

    플랫폼은 ‘천만상상 오아시스’에 비해 간단해졌습니다. 더 쉽고 편하게 제안할 수 있도록 여러 장벽을 제거하고 입력 항목을 간소화했으며, 접근이 편리하도록 소셜로그인 기능 등을 강화했습니다. 시민제안 혹은 서울시 정책이 공론화되는 툴에는 좀 더 정교한 투표/댓글 방식을 도입하고 싶었으나 플랫폼 개편 이후로 미루고 간소화된 시스템으로 일단 출발하기로 합니다.

    공론화 과정을 거친 주제에 대한 서울시의 답변과 이후의 실행 과정, 제안워크숍, 현장 제안, 정책 실험 등의 소식을 담을 수 있는 게시판도 준비했습니다. 천만상상 오아시스 시스템을 활용하여 제안, 숙의(토론과 투표), 소식이라는 틀로 플랫폼을 재정비했습니다. 시민을 직접 만나는 프로세스도 정립하였습니다. 현장에서 제안과 숙의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찾아가는 시민제안’은 물론, ‘시민제안워크숍’을 통해 중도입국 청소년, 1인 가구 등 행정력을 동원해 목소리를 확대할 가치가 있는 시민을 찾아나섰습니다.

    시민제안워크숍 ‘서울제안가들 : 중도입국 청소년 편’

    공론화 과정은 촘촘하고 단단하게

    플랫폼 이용을 쉽고 간단하게 바꾸었다면, 뒷단의 운영은 시범사업보다 더 촘촘하게 배치했습니다. 많은 시민의 공감을 받은 제안이 완결성과 무관하게 공론화가 가능하려면 기획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정책 제안 플랫폼 전문가들로 기획단을 구성했습니다. 여기에 퇴직공무원이나 다른 기관의 플랫폼을 기획/운영하는 공무원도 참여하게 하여 시민 입장에서 놓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고려할 수 있게 했습니다. 기획단에서 발전된 제안의 공론화 방법은 서울시민 중 무작위로 추첨/구성한 정책 결정 단위에서 정하게 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어떤 제안이든 전문가의 손을 거친 의제로 발전하고, 시민들이 공론화 방식을 선택하게 구성했습니다. 특정 입장을 대변하거나 논리/사실관계의 오류와 무관하게 제안이 나오게 된 배경과 상황을 최대한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잡았습니다. 사실관계, 가능한 정책 대안 등은 행정에서 검토를 해둔 경우가 많았기에 시가 보유한 자료와 검토했던 관련 정책을 제공하여 기획단의 논의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했습니다.

    주제로 선정되고 공론화 방식이 정해진 시민제안과 서울시 준비 정책은 실제 공론화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데요. 우선 제공하는 자료에 오류가 없는지 검토하고, 명확하고 쉬운 형식과 메시지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도록 관련기관이나 단체를 섭외하여 토론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많은 시민이 플랫폼에 참여하도록 기획하되, 동시에 다양한 현장과 거리에서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온라인에서 투표와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오프라인 현장에 있는 시민도 토론과 투표에 참여하게 했으며, 이렇게 모인 의견을 플랫폼에 반영하는 동시에 정책을 수행하는 담당부서에도 전달할 수 있도록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약 한 달 간의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제안은 의견에 의견이 더해져 더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합니다. 서울시는 제안자의 제안에 대한 답이 아니라 공론화된 결과에 답변하게 됩니다. 먼저, 운영팀이 담당부서에 답변을 요청하게 되는데요. 단순 찬반투표 결과보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수집된 시민 의견을 다각도로 분석한 리포트를 전달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취합한 의견도 물론 함께 전달했습니다. 이를 통해 찬성과 반대 각 입장의 이유를 충분히 고려한 정책 설계를 요청했습니다.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이 월등히 많거나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안건에 대해서는 시장이 직접 답변할 것인지, 한다면 어떤 형식으로 할지 그 방식도 함께 검토했습니다.

    공론장에 참여하는 시민이 효능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실행과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답변까지 마친 제안 혹은 서울시 정책은 실행 과정으로 넘어갑니다. 이후 운영팀은 한 달에 한 번 혹은 분기에 한 번씩 실행 소식을 플랫폼에 공유했습니다. 시민제안이 실행 단계로 넘어가거나, 실행과정에서 행정과 시민이 협력/조율해야 할 경우 중간자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시민과 협력하면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여전히 많은 공무원에게 낯설고 어려운, 두렵거나 번거롭기도 한 일이었습니다. 시민 또한 행정의 판단을 100%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민서 운영팀의 역할은 실행 과정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더 많은 제안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사실 시민제안 상당수가 바로 수용되거나 공론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시민의 공감을 얻은 제안이라도 여러가지 상황으로 서울시가 수용하기 어렵거나 공론화하기에 부적합한 경우도 있습니다. ‘버스 노선 조정’, ‘쓰레기 매립장 건설’ 등의 사안은 아직 대표성과 실효성을 갖지 못한 1단계의 민주주의 서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안 → 공론화 → 답변’의 과정과 별도로 갈등 사안은 갈등 관리를 담당하는 부서가, 이미 마련된 정책을 더 알려야 하는 사안은 홍보 담당 부서가 맡게 하는 등 서울시 여러 부서와 협력 체계를 구성하여 제안이 다양한 경로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당장 실행할 수 없는 조례를 제정해야 하거나 다음 회기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제안 등은 운영팀이 맡아서 서울시 산하기관으로 연결했습니다. 예컨대 난임부부 지원에 관한 시민제안은 시가 직접 답변하고 실행을 약속했지만, 재건축지역의 길고양이 보호 제안에 관해서는 해당 정책 실행에 의지가 있는 시의원을 찾아가 조례 개정을 약속하게 하는 등 시민제안이 하나라도 더 실행되도록 다양한 협력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이 글에서 처음 공개하는 프로세스도 하나 더 있었는데요. 제안이 특정 단계에 도달하면 비서실의 정책보좌관과 함께 논의하고 검토하는 과정이 그것입니다. 주기적인 미팅으로 서울시가 이미 검토한 정책과 맥락을 파악하고, 실행 가능한 방향을 찾기 위해 여러 자원과 담당자를 어떻게 엮을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민주주의 플랫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출된 리더의 적극적인 지원입니다. 리더의 지원은 곧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리더가 프로세스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공무원의 이유 있는 저항을 관리하기 위해서도 기관장과의 핫라인과 협력체계는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재개발/재건축지구 길고양이 보호 내용을 담은 동물보호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서울시의회 자료)

    민서 노하우, 데모스X에서 확인하세요!

    운영팀은 지금까지 설명한 과정을 가이드로 정리하고 2단계까지 운영할 수 있는 플랫폼 소스를 만들어 ‘데모스X’라는 이름을 붙여 세상에 공개합니다. 데모스X는 ‘시민과 함께’라는 의미로, 빠띠가 경험하며 구축한 민주주의 서울의 노하우가 담겨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많은 지자체에서 ‘① 시민은 쉽게 제안하고 기관은 준비된 정책 제안을 하며 ② 시민과 전문가로 구성된 제안 검토 단계를 거쳐 ③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는 공론화로 제안을 숙성한 후 ④ 기관장이 답변하고 실행하는’ 프로세스를 도입했는데요. 여기에 민주주의 서울과 데모스X의 오픈가이드와 오픈소스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민이 제안하면 공무원이 답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은 아이디어로부터 사회적 맥락을 발견하여 다수의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마련한 모델’이 이 시대의 시민이 바라는 민주주의의 모습임이 받아들여진 것이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데모스X 운영가이드와 오픈소스는 누구나 다운받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1단계일뿐입니다. 운영팀은 1단계를 진행하는 동안 궁극적인 서울시 민주주의 플랫폼을 시민의 일상에까지 적용하는 모습을 구상하고 설계했습니다. 참여와 소통, 공론화와 숙의를 거쳐 시민이 일상에서 크고 작은 이슈와 정책에 관해 전달받고, 논의와 결정 단계에 참여하는 것이 서울시가 이뤄야 할 민주주의의 지향임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5단계까지 가려면 운영에 참여하는 기관을 깊고 넓게 확대하고, 제도적 기반을 확립하며 기술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했습니다.

    4화로 이어집니다.

  • 2화. 민주주의 플랫폼을 향한 고민과 실험

    이 글은 “1화. ‘민주주의 서울’에서 싹틔운 시민협력플랫폼의 꿈”에서 이어집니다.

    시민과 서울시가 제안하고, 시민이 함께 논의해 결정하면, 서울시가 실행한다

    ‘시민제안 → 행정 답변 → 행정 실행’이라는 기존 제안 플랫폼의 프로세스를, ‘시민과 서울시의 공동제안 → 시민숙의 → 시민결정 → 각 단위 실행’으로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보다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단계별 장벽을 낮추고, 작동 구조와 운영 체계를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플랫폼 디자인에 너무 많은 힘을 쓰지 않기로 했는데요. 외관이 아름답거나 어떤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달리, 지향하는 바를 확실히 보여주고 실제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사용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름에는 민주주의 상징성이 높은 ‘광화문’을 넣으려고 했으나 준비 도중 ‘광화문1번가’가 나오면서 2순위였던 ‘민주주의 서울’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민서’라는 애칭을 붙였습니다.

    빠띠는 ‘민주주의 서울’을 ‘민서’라는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신규 개발이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천만상상 오아시스’를 수정 개발하여 민주주의 서울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기능을 붙이기 보다 덜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시민제안은 더 간단하게 입력해도 되도록 변경했습니다. 투표는 일단 찬반 기능으로 구성하고 투표에 참여하는 시민은 반드시 의견을 남기도록 해 토론에 참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외에는 실행 상황과 소식을 알려주는 게시판만 남기고 다른 기능은 모두 가리기로 했지요. 프로세스 역시 간단하게 구성했는데요. 하나의 시민제안에 50명이 공감하면 공무원이 답변을 해야하고, 500명이 공감하면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투표와 토론이 시작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5000명이 투표와 토론에 참여하면 시장이 직접 답변하도록 구성했습니다. 가능한 명확하고 쉽게 기억할 수 있는 플랫폼과 프로세스를 만들려 했습니다.

    바깥은 간단하게, 내부는 촘촘하게

    운영팀은 대외 고객은 시민으로, 대내 고객은 공무원으로 설정했습니다. 목표는 세 가지였습니다. 시민대상으로는 ① 쉽고 간단한 플랫폼을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게 하기 ② 발언할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직접 찾아가기로, 공무원 대상으로는 ③ ‘일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협업에 대한 긍정적 경험’을 제공하기로 잡았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 필요한 일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운영팀이 바빠졌지요. 우선, 시민제안을 일선부서에 전달하는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500명이 공감하는 시민제안을 검토하고 시의 자료로 보충한 후 공론화 하는 방식을 기획했으며, 공론화 여부를 판단하는 시민기획단도 구성했습니다. 500명이 공감하지 않은 제안이라도 반복되는 제안이거나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제안은 기획단의 여력에 따라 살필 수 있는 프로세스도 만들었습니다. 투표와 토론, 즉 숙의 단계에서는 가능한 시민이 균형잡힌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시가 가진 모든 자료를 모아서 사전 검토를 한 후 여러가지 유형을 실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질문 표현을 정하는 데에만 2주 이상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제안 → 검토 및 기획 → 숙의 → 담당 공무원과 시장 답변 준비 → 답변’ 전반에 이르는 내부 프로세스와 협력 체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플랫폼의 존재를 모르거나 플랫폼에 접근할 상황이 여의치 않은 시민을 만나 제안을 받는 ‘찾아가는 시민제안’도 만들었습니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제안과 숙의, 투표가 진행되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투표와 토론 단계에서는 해당 주제를 다루는 오프라인 시민토론회를 열고, 주제 관련 장소를 찾아가 부스를 열어 시민의 투표와 토론 참여를 독려하기로 했습니다. 시범사업 기간 동안 한강시민공원, 어린이대공원 등의 현장에서 민주주의 서울 부스를 설치, 운영했습니다.

    ‘찾아가는 시민제안’ 어린이대공원 편

    시민의 제안을 받는 것을 넘어 ‘서울시가 묻습니다’를 통해 잘 정제되고 준비된, 그러나 시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서울시 정책을 시민과 논의하는 프로세스도 구성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설명과 홍보를 통해 이해를 도왔습니다. 일선 부처에서 민주주의 서울로 협조 요청이 올 경우를 대비하여 응대를 위한 안내 메일과 리플릿, 일정 가이드, 역할 구분과 예산에 따른 시민 참여 범위를 명시한 운영팀 업무 체크리스트 등도 제작했습니다.

    사업 기간 내내 전담 인력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2017년 첫 해의 담당공무원은 1명이었지만, 2018년에는 5명으로, 2019년에는 20명에 가까운 조직으로 성장합니다. 빠띠와 서울시는 MOU를 맺고 담당공무원과 1대 1로 매칭되는 민서 운영팀을 시 외곽에 구성했습니다. 담당공무원은 예산과 시 내부 공무원 대상 업무를 진행하고, 외부 운영팀은 기획과 운영을 하면서 유기/협력적으로 사업을 진행해 나갔습니다. 물론 많은 노력과 설득이 필요했습니다. 플랫폼을 만드는 것을 넘어 ‘잘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안을 서울시가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실험을 시작해 봅시다

    ‘시민과 서울시가 제안하고, 시민이 함께 논의해 결정하면, 서울시가 실행한다’는 컨셉의 민주주의 서울은 2017년 10월 베타 오픈을 알리며 실험(시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 직후부터는 ‘서울의 공론장’이라는 컨셉으로 남은 시범사업을 이어나가며, 2019년 본 사업을 위한 예산과 조직을 정리했습니다.

    우선 숙의와 토론 단계의 준비와 운영, 이후 정책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첫 단계로 ‘서울시가 묻습니다’를 먼저 실행했습니다. 첫 주제는 ‘비상용 생리대를 공공기관에 비치’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좀 더 거시적인 정책을 논의할 수도 있었지만, 시민 생활에 밀접한 정책에 대해 의견을 묻는 것이 지방자치단체 플랫폼에는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에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여성정책과의 제안을 받아 ‘비상용 생리대’에 관한 토론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공공기관 화장실 비상용 생리대 비치’ 투표/제안 홍보 포스터

    간단해보이는 질문이지만 준비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특정 성별에 대한 특혜가 아니냐는 시비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서울 프로세스 역시 만들어가는 중이었고요. 질문의 형식과 표현, 시민 대상 제공 정보의 취합과 검증, 정보 제공 방식, 홍보 방안 등을 결정하는 데에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행정과 빠띠 운영팀은 반복적으로 콘텐츠의 방향과 질문 형식을 다듬었습니다. 이 정책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와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시민 의견을 어떻게 반영하고 보고할지 등을 논의하고 확인해나갔습니다.

    이렇게 준비해서 진행한 토론은 1개월 간 별 문제 없이 많은 시민의 공감을 받으며 완료되었습니다. 이후 서울시는 비상용 생리대 정책을 시범사업으로 진행한 후 다음 해에 확대 적용했습니다. 정책이 가지는 의미와 함께 시민 숙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 등을 인정받아 UN으로부터 공공정책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시민제안을 받아 정책으로 만드는 과정이 초기 단계인 것만큼이나 정부 실행 정책에 대해 시민 의견을 받고 반영하는 과정도 여전히 초기 단계이며, 충분히 실현이 가능하다는 걸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찾아가는 시민제안’에서는 가장 먼저 한부모 가정 커뮤니티 및 단체와 함께 서울시에 바라는 정책을 함께 논의, 발전시킨 후 플랫폼에 제안으로 올리는 현장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생계까지 도맡느라 힘든 시민에게 지자체가 작지만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정말 필요하고 적합한 정책은 현장의 시민이 더 잘 알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소득이 10원 초과해서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아이를 돌보다가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연락할 곳이 없어 112에 전화할지 고민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시민 삶의 현장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데 행정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지요.

    실험에 주어진 예산은 적었지만 홍보도 진행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포스터와 리플릿을 제작하고, 운영팀이 시청 곳곳을 직접 뛰어다니며 포스터를 부착했습니다. 시민과 함께 정책을 준비하거나 정책 시행 전에 시민 의견이 듣고 싶다면 언제든 연락해달라는 메시지, 시 조직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의 해법을 찾아주겠다는 메시지를 담아 행정 내부 영업에 나섰습니다. 시민이 많이 모이는 광화문광장에 나가 ‘시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반영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깜짝 시민 기자회견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민주주의 서울에 대한 고민과 준비, 실험은 2017년부터 2018년 말까지 1년 반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민주주의 플랫폼 5단계 계획 수립과 1단계의 실행

    지금은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민제안플랫폼에 비슷한 모델을 사용합니다. 시민이 제안하거나 기관이 질문합니다. 정해진 인원 이상이 공감하는 제안에 대해서는 행정이 답변하고, 시민과 전문가, 공무원이 참여한 기획 과정을 거쳐 숙의로 넘어갑니다. 숙의 단계에서도 일정 인원 이상이 참여하면 단체장이 답변하며 실행 가능한 약속을 공표합니다. 이러한 전체 과정은, 빠띠가 민주주의 서울을 운영하며 고민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통해 발견한 모델입니다. 빠띠는 민주주의 서울을 발전시키며 ‘민주주의 플랫폼’의 5단계를 수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차용 중인 모델이 우리가 계획하는 5단계 중 첫 번째 단계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1화. ‘민주주의 서울’에서 싹틔운 시민협력플랫폼의 꿈

    2021년은 빠띠가 항해를 시작한 지 5년이 되는 해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방향키를 잡았던 2016년의 첫 마음이 떠오릅니다. 다섯해가 지나는 동안 빠띠는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기반의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고, 시민이 직접 기술과 데이터를 활용해 여러 사회를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거나 암초에 부딪혀 흔들리기도 했지만, 민주주의라는 나침반을 따라 이내 방향을 찾고 항해를 계속해왔습니다.

    5년이라는 활동을 통해 빠띠는 ‘시민이 자신의 공동체나 지역의 공론장에 참여해 협력적으로 소통하고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과정이 일어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공간에 ‘시민협력플랫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실험을 통해 시민협력플랫폼의 모습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시민협력플랫폼과 관련한 그간의 활동을 모아 ‘민주주의 항해일지 1.0’를 연재합니다. 1.0이라는 버전명을 붙인 것은, 시민협력플랫폼이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빠띠가 항해를 멈추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 나은, 더 많은, 일상의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협력플랫폼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연재물을 읽으시며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시민이 제안하고 시민이 결정하는 민주주의 플랫폼’. 민주주의 서울(민서)의 캐치프레이즈입니다. 빠띠는 민서의 기획단계부터 결합하여 운영(2018~2019)까지 함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의 경험과 치열했던 고민을 통해 시민협력플랫폼의 토대를 다질 수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시민협력플랫폼에서 민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지금 시작합니다.

    이 글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민주주의 플랫폼의 조건과 민주주의 서울의 시작”에서 이어집니다.

    ‘민주주의 서울’은 행정이 기존에 시도하지 못했던 여러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공간이자, 그 자체가 실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빠띠는 총괄 기획이라는 역할을 맡기 전, 서울시에 두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첫째, 서울시와 빠띠는 갑을 혹은 자문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다(구체적으로는 MOU).
    둘째, 일정기간의 실험을 통해 플랫폼과 과정을 만든다.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 적합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애자일’이라는 개념이 보급되면서 확산됐지만, 법과 제도에 따라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정부가 성과가 불분명한 ‘실험’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빠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실험을 하며 민주주의 서울을 그야말로 찾아나섰습니다.

    2017년 2월 9일 빠띠와의 첫 미팅을 마친 서울시 담당자는 내부에서 민주주의 플랫폼 구축을 추진했습니다. 빠띠는 약 6개월 동안 정식 계약이 아닌 자문으로 민주주의 서울을 만드는 데에 기여를 했는데요. 2017년 10월, 민주주의 서울이 베타 버전으로 세상에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2018년에는 앞서 말씀드린 실험의 시간을 보냈고, 2019년에 이르러서야 예산과 전담팀을 갖추고 정식 출범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서울 베타 버전

    가장 서울다운 공론장 ‘민주주의 서울’

    팀은 가장 먼저 ‘서울다운 민주주의 플랫폼은 무엇일까’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2017년 당시에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직접 민주주의의 요소를 정부 운영에 담아내야 한다는 사회적인 기대가 있었습니다. 간단하게는 시민이 제안하고 투표로 결정하면 행정이 실행한다는 내용이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과제를 해결하고 어떤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지 설계가 필요했습니다.

    우선, 서울시민의 범위를 정해야 했습니다. 서울에서는 주민등록을 한 시민 외에도 많은 사람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사람도 일하고 생활하고 투자를 합니다. 적어도 디지털 플랫폼 안에서는 시민의 범위를 ‘주민등록’으로 한정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이렇게 확대하면, 1천만이 아닌 2천만에 가까운 사람을 대상으로 플랫폼을 구상해야 했습니다. 대상의 범위가 커질 수록 플랫폼은 더 간단해져야 하고요. 시민이 제안하면 공무원이 답변하던 시절을 넘어 시민이 직접 제안하고 동료 시민과 함께 결정하는 민주주의를 디지털 기술로 실현할 수 있을까요? 이 방향으로 가는 것은 확실했지만 밟아야 할 단계는 없는지 점검이 필요했습니다. 빠띠는 이 단계를 파악하고, 단계별로 민주주의 서울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정리했습니다.

    10만 명 혹은 20만 명은 절대적으로는 결코 작지 않은 숫자지만, 플랫폼이 전체 이용자로 상정하는 2천만 명에 비하면 극히 적은 비율입니다. 0.5% 혹은 1%가 원하는대로 도시의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법으로 규정된 주민투표는 유권자의 3분의 1이상 투표가 진행되지 않으면 결과조차 공개하지 않습니다.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에서도 이에 준하는 결정 기준을 가져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표성을 확인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일한다’ 혹은 ‘산다’는 개념은 단순하지만, 플랫폼 이용자가 실제 그러한지를 사용성을 해치지 않으며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실명(​​實名)과 주민의 자격 인증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투명하게 알리면서 데이터를 검증할 경로를 확보해야 하는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들은 정당성과 대표성 확보를 위해 해결이 필요한 제도적이면서도 기술적인 과제였고, 최소 2~3년의 시간이 필요한 사안이었습니다.

    디지털 플랫폼 안에서는 시민의 범위를 ‘주민등록’으로 한정할 수 없었습니다.

    시민의 제안이 정책으로 연결되기 위한 조건

    사실 서울에는 ‘천만상상 오아시스’라는 플랫폼이 있었습니다. 2006년 개설된 천만상상 오아시스는 UN전자정부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전 세계를 놓고 봐도 우수 사례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7년에는 작동이 멈춘 상황이었습니다. 기존의 시민 제안 플랫폼이 왜 잘 운영되지 않는지 그 이유도 파악해야 했습니다. 여러 실질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시민의 제안이 공무원 답변 이후 정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적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보였습니다. 일부라도 반대하는 시민이 있는 제안은 일선 공무원이 수용하기에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시민의 제안은 정책전문가에겐 허점이 많고 완성도가 떨어졌습니다. 시민 피부에 와닿는 쓰레기, 주차, 교육 등의 문제는 서울시청 담당이 아니거나, 조례 혹은 예산을 변경해야 하는 시의회 사안이거나, 갈등관리를 통해 다뤄야하는 사안이었습니다. 새로운 제안을 실행하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그 업무를 떠안아야 하는 공무원의 입장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기존의 업무 방식이나 시민제안에 대한 인식 변화, 인센티브 구조의 변화 없이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일선 공무원의 판단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시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 구성.
    시민 개인이 쉽게 제안한 것도 정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 마련.
    제안이 다양한 경로로 전달/검토되어 실행되거나 예산/조례로 이어지도록 다양한 기관과의 협력 체계 구성.

    이를 위해서는 서울시장의 리더십도 필요했습니다. 변화한 시대에 시민 제안의 가치를 강조하며 시정 전반의 분위기는 물론 보상 체계와 연결해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숙의성’

    숱한 고민과 분석으로 우리가 만드는 민주주의 플랫폼이 ‘숙의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플랫폼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대표성의 문제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채 자신의 제안을 관철시키기 위한 통로로 활용하는 공간이 아니어야 했습니다. 시민 한 명의 제안은 단순한 아이디어일 수 있지만, 행정이 가진 정보와 자원을 활용해 더 많은 시민이 상황을 이해하고 힘을 합쳐 제안을 발전시킬 수 있는 틀을 갖춰야 했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교육청, 산하기관 등)나 권한을 가진 공무원과 의원이 하나의 제안이 정책이 될 때까지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는 것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야만 시민이 플랫폼을 신뢰하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결정이 정당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시민과 서울시가 제안하고, 시민이 함께 논의해 결정하면, 서울시가 실행한다’는 방향성을 가지되, 그 중간 단계로 서울 시민 누구나 함께 논의하는 ‘서울의 공론장’이라는 컨셉이 드디어 완성됐습니다.

  • 만들고 싶은 서비스, 마지막 하나 남았다

    2021년 9월 30일에 alookso 시즌 제로 오픈. 약 6개월 가량 실험실, 알파 오픈 등을 거치며 여러 정책들을 실험했지만, 오픈 직전까지도 정책은 계속 바뀌었다. 그 덕분에 시즌 제로 전에 만든 것들을 묻어두거나, 새로 만들 것들이 많아졌지만, 또한 그 덕분에 사용자들로부터 가이드를 받는 호사를 누리게 됐다. 계속 반성하며 정책을 날카롭게 다듬거나, 만들고 뒤엎고를 해내는 팀이나 모두 대단하고 감사하다. 덜 만들어진 서비스를 불평하기보단, 발전방안을 제시해주는 사용자들에게도 감사하고.

    2020년을 좀 쉬면서 지내고 싶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서 코드포코리아를 시작하고 팩트체크넷을 만들었고, 2021년도 좀 쉬면서 여러가지를 모색해 보려 했는데 alookso 만들고 말았다. 그러면서 믹스 만들고 데이터퍼블릭 만들었고. 자원이 부족해서 업그레이드를 못하고 있어 아쉽지만 기존의 빠띠는 빠띠 카누로 바꾸는 중이고, 빠띠 캠페인즈는 가만히 두어도 활발히 이용해주는 분들이 늘어났다. 타운홀은 팀을 꾸려서 차근차근 업그레이드 하는 중. 팩트체크넷은 우여곡절이 가장 많은데, 작년에 거의 시범사업에 가까운 방식으로 3달간 개발하고 2달간 오픈했던것을 올해 완전히 다듬고 앱까지 개발했다. 운영 정책, 운영 위원회, 시민 교육 프로그램 등 사무국도 자리잡아가는 중.

    조직이나 커뮤니티는 빠띠, 우주당, 코드포코리아, 팩트체크넷 그리고 최근의 alookso까지가 앞으로 집중할 곳들이다.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건 이번 생에선 여기까지가 끝이다. UFOfactory와 합병한 슬로워크나 스티비는 적절한 분들이 잘 만들테고. 커뮤니티인 코드포코리아와 우주당은 느슨하게 연결된 선한 시민들이 활동을 시작하고 지속하는 토대와 문화를 만드는게 목표인데 정말 가능한한 찬찬히 흘러가고 누구나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커뮤니티로 만들고 싶다. 사회적협동조합 빠띠는 민주주의를 혁신하려는 활동가들이 공동 소유하는 삶과 활동의 기반으로 자리잡게 만드는게 목표인데 시민협력플랫폼 모델을 만들고 기획운영을 함께 하는 데모스엑스 본부와, 다양한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드는 플랫폼엑스 본부가 훌륭한 구성원들 주도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27-28명 가량 되는 구성원이 50명까지 가는게 목표인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 같다. alookso는 오랜만에 경영하고 사업하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서 서비스를 잘 만드는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 감사하게 일하는 중이다. 만들고 보니 옛날에 만들던 미디어다음 같아서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리기도 한데, 아무래도 빨리 젊은 기획자에게 넘겨야 할 것 같다. 팩트체크넷은 올해 개발이 끝나면 사무국이 개발보다는 교육과 컨텐츠에 집중하게 될 것 같다.

    서비스로는 안전하고 의미있고 영향력 있는 공론장과 미디어를 추구하는 alookso가 자리잡는데 기여하면서, 빠띠의 커뮤니티와 협업 플랫폼인 카누, 공론장 플랫폼인 믹스, 캠페인 플랫폼인 캠페인즈, 숙의와 의사결정 플랫폼인 타운홀, 시민이 쓸 수 있는 데이터 카탈로그를 만들고 데이터 활동 소식을 전하는 데이터퍼블릭, 그리고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의 여러 이슈를 팩트체크하는 팩트체크 오픈 플랫폼인 팩트체크넷 까지가 당분간 내가 할 일이다. 강약을 잘 조절하며 집중할 일과 천천히 키울 일들을 구분하며 작업하는 중이고, 플랫폼 초기 구상과 작업 때는 내가 집중해서 작업하고, 이후에 나보다 더 잘 하는 동료들로 팀을 만들어서 맡기고 나는 피드백하거나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 오는 중이다. 앞으로 하다 보면 포기할 것도 나오겠지만, 초기 빠띠를 만들때 구상했던 여러 유형의 민주주의 플랫폼 포트폴리오를 결국 다 만들게 되었고, 협동조합 빠띠를 찾는 분들이 이제는 각자의 상황에서 뭐가 필요한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플랫폼을 특정하고 협력을 요청해 오셔서 보람도 느낀다. 디지털 시대의 필수적인 디지털 민주주의 인프라로 자리잡게 만들려던 목표, 달성할 수 있을지도.

    2020년도, 2021년도 결과적으로 휴식도 성찰도 구상도 못한채 2022년을 곧 맞이하게 될텐데 (그렇게 된데에는 쉴 겸 여러 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이유인데, 이 경험도 정리해 보자) 앞으로 3년에서 4년간은 앞서 정리한 일들을 강약 조절하며 집중하거나 찬찬히 하게 될 것 같다. 기대처럼 되진 않겠지만, 아무튼 21년간 일하면서 결국 원하는 모양에 가깝게 서비스도 팀도 사업도 구성했다. 당분간 지금까지 씨앗에서 묘목 정도로 일궈 놓은 걸 의미있게 키우는데 집중하는게 계획이다.

    그러고 나면.. 이제 최후에 만들고 싶은 서비스 하나가 남는다. 이건 조직도 만들지 말고, 팀을 구성하지도 않고, 이 세상에서 쓸 수 있는 내게 남은 시간동안 혼자서 찬찬히 만들어 보려고 아껴 두었다. 여러 구상을 열어놓고 해 보는 중. 2026년이 되면 집에서 풀 뽑으면서 그 마지막 서비스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기여하기보단, 세상을 탐구하면서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