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3. 디지털 공공재와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경제

  • 디지털 기술과 시간을 통해 만드는 미래복지.

    각자도생 시대, 서로 돌보는 사회를 위해.

    [프레시안]과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 2025년 8월 26일에 기고한 글입니다.

    한국 사회는 눈부신 산업화와 정보화를 이룩했지만, 그 이면을 살아가는 개인들은 무한경쟁 속에서 각자도생하고 있다. 이러한 각자도생의 분위기는 개인의 고립을 심화시키며, 경쟁과 고립의 압박은 때로 자신보다 약한 타인을 향한 혐오나 사회 전체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성장하는 극단주의와 각자도생은 우리 사회에 불신과 갈등을 키우고, 수많은 이를 소외시키며,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있다.

    한편 2024년 겨울, 광장을 가득 채웠던 목소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인 동시에 서로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공동체를 향한 갈망이기도 했다. 동시에 진정한 존중과 포용이 서로에 대한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현장이었다. 지금 우리에겐 이 갈망과 증거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연대와 존중을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천 중 하나로 사람과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타임뱅크(Time Bank)’가 있다.

    디지털 기술과 타임뱅크 플랫폼

    타임뱅크는 ‘모든 사람의 시간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한 개인이 타인을 위해 1시간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미래에 자신이 필요할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1시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이는 일방적 자선이 아닌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이러한 경험이 축적될수록 개인 간의 신뢰가 쌓이고 사회적 연대는 자연스럽게 강화된다. 결국 타임뱅크는 단순한 서비스 교환을 넘어 서로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타임뱅크 개념은 1980년대에 처음 등장했으나,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과 함께 그 잠재력이 본격화되었다. 과거의 수기 장부나 전화 연락 방식은 정교한 디지털 기술로 전환되어 서비스의 연결 과정과 관리 과정이 훨씬 편리해졌다.

    대표적인 글로벌 소프트웨어인 ‘아워월드(hOurworld)’는 전 세계 지역 공동체들이 자체 타임뱅크를 쉽게 구축하고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이자 협동조합이다. 이 웹 기반 플랫폼은 회원 관리, 서비스 목록 관리, 시간 기록 및 정산, 회원 간 소통 등 타임뱅크 운영에 필요한 핵심 기능을 제공한다.

    또 다른 플랫폼 ‘타임리퍼블릭(TimeRepublik)’은 소셜 미디어 요소를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페이스북과 유사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용자들이 자신의 재능과 활동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자연스럽게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도록 유도한다.

    국내 타임뱅크 플랫폼의 시도와 발전

    국내에서도 주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국의 특성에 맞는 타임뱅크가 시도되었다. ‘서울시간은행’은 서울시가 주도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시간 나눔을 목표로 했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활동을 관리하고 정기적인 오프라인 모임으로 유대감 강화를 도모했다. 현재 공식 운영은 중단되었지만, 그 취지는 각 자치구의 자원봉사 연계 사업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타임뱅크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타임뱅크코리아는 ‘타임클라우드’라는 앱을 만들었다. ‘타임클라우드’는 위치 기반 서비스(LBS)를 활용해 주변 이웃과 실시간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기능을 제공했으며, 상호 평점 및 후기, 본인인증 등 서비스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장치를 도입하기도 했다.

    국민대학교는 지역 커뮤니티와 협력하여 ‘타임페이(Timepey)’ 앱을 개발했다. 이는 대학생의 기술 재능과 지역사회의 필요를 결합한 상생 모델로, 학생들이 직접 앱 개발과 운영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타임뱅크에 접목하려는 논의도 활발하다. 블록체인의 분산 원장 기술은 모든 시간 거래 기록을 위·변조가 불가능하도록 투명하게 관리하여 시스템의 신뢰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또한 중앙 관리자 없이 개인 간(P2P)에 시간을 교환하는 탈중앙화 모델 구현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타임뱅크는 현대 기술과 결합하며 끊임없이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타임뱅크

    타임뱅크 모델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된다면, 모든 개인이 금융 계좌처럼 타임뱅크 계좌를 보유하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의 시간과 재능 그리고 서로가 주고 받은 도움은 화폐 자본만큼 중요한 사회적 자산으로 인정받는다. 서로를 대등하게 존중하는 관계 속에서 도움을 주고 받은 경험이 개인의 사회적 자산으로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회로 우리는 향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한 개인이 이룬 삶의 성취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대와 도움, 그리고 선조들이 일궈낸 다양한 사회 인프라 위에서 가능하다. 이런 사실을 직접 경험한 개인들이 이웃과 사회에 책임감을 가지고 손을 내밀 때 우리는 그들을 시민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시민을 길러내고, 존중과 연대의 공동체를 향한 다양한 경제사회적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순간이다. 극단주의와 각자도생을 넘어,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다양한 사회적 실천에 나서자. 그리고 타임뱅크가 중요한 실천이 될 수 있다.

  • 멋진 시민들이 만들 일상의 민주주의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공동체가 무너지면, 개인들은 더욱 고립되고 무관심과 각자도생이라는 생존 전략에 갇히게 된다. 결국 사회는 혐오와 갈등, 불신과 분열에 물들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 희망은커녕, 당장 생존 경쟁이 모두의 일상을 위태롭게 만든다.

    이 글은 생태환경문화잡지 <작은것이아름답다> 284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해 왔는가

    응원봉을 쥔 시민들이 다시금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군사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들었던 화염봉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촛불로, 그리고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다채로운 빛의 향연을 선보이는 응원봉이 되기까지. 시민들의 손에 들린 상징물은 그 시대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이자 지향점을 보여주었다. 시민들은 세상이 빛과 어둠에서 빛의 향연으로 바뀌었음을, 모든 것을 압도할 만한 연대가 폭력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켜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40년 전에 대학을 다닌 뒤 평생을 한국 사회의 엘리트로 살아온 어떤 이들에게 법과 제도란 한낱 자신들 이익을 지켜주는 도구일 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나고 자란 시민들에게 법과 제도와 민주주의는 당연히 따르고 지켜야 할 규범이자 상식이었다. 청년들로 구성된 군대가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거나 소극 대응한 이유는 그들에겐 그게 상식이자 정의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갈라치기와 낙인찍기에 시달리면서도 탄핵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 포용과 공정을 요구해왔던 청년들은 광장의 맨 앞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자신들의 정체성과 연대 의식을 표현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치는 성소수자, 이동권을 요구하는 장애인, 노동 현장의 노동자, 농촌을 지키는 농민들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은 함께 다양한 현장을 함께 오가며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즉 다양성과 포용, 연대와 협력, 상식과 정의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민주주의는 함께 지켜야 할 우리의 정체성이자 광장에서 살아 숨 쉬며 실체로 살아났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이러한 시민들의 상식과 열망과 달리, 지난 정부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들은 출범하자마자 사회 구성원들을 ‘낙인’을 찍고 ‘갈라치기’했다. 장애인의 이동권 요구, 청년들의 성평등 실천,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활동을 ‘반사회 활동’으로 규정하고, 지원을 끊고, 감사와 고발로 압박했다. 

    대통령을 풍자한 고등학생의 그림이 수상하자 담당자는 문책을 받았고, 대통령을 비판한 기자와 언론사는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됐다. 연구개발(R&D) 예산 삭감과 의대 정원 정책에 대한 현장의 비판에는 실제로 입을 틀어막고 내쫓아버리는 ‘입틀막’으로 대응했다. 선거에서 국회 다수당 구성을 이루지 못하자, 국민이 선출한 국회마저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무시하더니 드디어 ‘처단’에 나섰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출범한 정권은 결국, 자신들과 그 지지자들의 자유와 권리만을 지키려 했다. ‘낙인찍기’는 ‘혐오’를 낳았고, ‘갈라치기’는 ‘배제’를 낳았지만 시민들의 저항은 멈추지 않았다. ‘입틀막’이라는 ‘억압’을 거쳐, 마침내 친위 쿠데타를 통한 실제 ‘처단’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에게 공권력은 그들을 지키는 방패이자 칼이었고, 법과 제도도 마음대로 비틀 수 있는 한낱 도구에 불과했다.

    매우 위태롭게도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한국 사회는 이미 복합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 기후 위기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고, 국제 정세는 불안정하며,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중소상공인의 줄도산은 코로나19 시기보다 더 심각하고, 지역 소멸은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노동과 교육, 산업에 큰 충격을 예견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사회적 준비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공동체가 무너지면, 개인들은 더욱 고립되고 무관심과 각자도생이라는 생존 전략에 갇히게 된다. 그 결과 사회는 혐오와 갈등, 불신과 분열에 물들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은커녕, 당장 생존 경쟁이 모두의 일상을 위태롭게 만든다.

    멋진 시민들의 탄생

    우리는 언제 ‘시민’이 되는가? 생존을 위한 각자도생에 몰입하는 개인이, 사회적 책임과 연대 의식 을 가진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 순간은 언제일까?

    복합 위기와 민주주의의 위협이 교차하던 시기, 군인들이 국회 앞에 등장하자 시민들은 곧바로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 저마다 자리에서, 광장에서, 그리고 온라인 공간에서 시민들은 분노와 염려를 나눴고, 시민의 힘이 모여 마침내 헌정 질서를 지키는 역사를 이뤄냈다. 그 과정을 통해 많은 시민들은 스스로 한 개인이 거대한 공동체에 기여하는 효능감을 확인했다.

    다양한 세대와 계층, 서로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시민들이 저마다 자리에서, 그리고 서로 손을 맞잡으며 만들어낸 힘은 곧 연대의 힘이다. 사회에서 모든 개개인 힘만으로 완전한 안전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나를 향한 존중과 연대를 경험하며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며, 나아가 그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주체로 거듭난다. 서로 존중하는 공간이자 연대의 공간인 광장에서 시민들은 공동체 일원으로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했다.

    100여 일에 걸친 시간 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에서 ‘멋진 시민’으로 태어났다. 시민 개인의 효능감과 서로를 잇는 효능감을 통해 공동체의 효능감을 느끼고, 신뢰를 바탕으로 책임감과 소속감을 가진 시민은 그 존재 자체가 마치 응원봉의 빛처럼 우리 사회를 희망으로 이끌 존재들이다. 이 시민들 한명 한명이 우리 사회가 문제 해결 능력을 회복하고, 모두를 위한 더 좋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더 많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꿈꾸는 법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광장에서 함께 만들어낸 변화의 열망과 성과는 이제 일상에서 실천할 과제가 됐다. 민주주의는 시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 학교, 직장, 마을을 비롯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연대하며, 상식과 정의를 실현하는 일상의 실천 속에서 구현된다. 

    광장에서 드러난 시민의 열망은 단순한 권력 구조의 개편이 아니라, 다양성과 포용, 연대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실제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였다. 이 요구를 실천하기 위해 시민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목소리를 모으고, 대화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지금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 경제 불평등, 사회적 갈등 같은 복합 위기는 모두가 저마다 삶에서 체감하고 있다. 서로 다른 배경과 조건을 가진 시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함께 그 문제들에 대한 공동체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력은 행정과 의회를 넘어 시민에게 더욱 분산돼야 한다. 2017년 촛불 뒤 잠시 열렸던 시민 참여, 협치, 자치의 공간은 다시 열리고 확장돼야 하며, 실제 정책과 사업으로 이어지는 과정도 제도화돼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시민사회가 함께 만드는 지속가능한 협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시민 주권이 선거와 시위와 같은 일회성 참여에서만 실현되지 않도록 다양한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 국민 발안제, 국민 소환제, 국민 투표제 같은 다양한 민주주의 장치는 여전히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시민의회나 디지털 시민참여 플랫폼 같은 여러 방식을 통해 시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실제로 참여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더 나아가 시민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기업과 기술에 대해서도 시민의 권리가 확보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 한 사람이자 유권자로서 권리가 확장되는 만큼, 소비자 권리, 노동자 권리, 주주의 권리, 글로벌 기술 혁신에 깊은 영향을 받는 디지털 사회의 시민 권리가 필요하다. 이는 기존에 존재하는 기업이나 기술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대안들을 지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대안이 없으면 시민의 권리는 제대로 발휘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미디어 환경은 오히려 극한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며 민주주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알고리즘에 왜곡된 여론은 혐오와 갈등을 확대하고,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시민들이 함께 모여 안전하게 이야기하고, 다름을 존중하며, 공동 해법을 찾는 디지털 시민 공간이 전무한 상황이다. 지금 우리에겐 ‘일상의 디지털 시민 광장’이 절실하다.

    혐오와 여론 조작에 취약한 플랫폼을 넘어,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 안전한 대화의 환경, 협력의 기반을 제공하는 디지털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 이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은 시민의 연결과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공공 자산이며, 기술과 제도에 대한 공공성과 책임성을 스스로 강하게 가져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 역시 비영리 기관이나 사회적 경제 주체들이 운영하는 것이 더욱 적합할 수 있다.

    일상의 민주주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기술을 활용해 우리는 광장에서 꿈꿨던 ‘더 많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일상에서 실현할 수 있다. 갈등이 혐오와 낙인,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연대하고, 상식과 정의를 지키며,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고 포용하며 협력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복합 위기를 모두를 위한 방식으로 함께 해결하며, 결국 모두가 함께 살고 싶은 공동체를 시민의 힘으로 만들 것이다.

    다시 민주주의 배우고 가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 공동체는 도전 받고 있다. 권위주의, 극단주의, 갈등과 혐오가 공동체를 흔들고 있으며,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경제 위기와 국가 간 갈등, 심지어 기술 혁신에도 위협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초고속 인터넷망을 전국에 설치하며, 이 지구에서 가장 발전한 산업, 민주주의, 문화적 풍요를 이뤄냈다. 국민들이 만들어낸 성취와 공식은 세계에서 부러움을 사며 따라야 할 모델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성공의 공식들이 지금은 우리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전체를 사막으로 만들고 있다. 사회, 경제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갈등과 혐오는 불신을 넘어 부정적 감정을 동반한 존재의 부정으로 발전했으며,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재난과 재해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출산율과 자살률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착취하는 현실을, 반복되고 악화되는 사회적인 재난과 자연재해는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생태계를 착취하는 현실을 반증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한번 더 많은 발전과 더 새로운 기술이 이 상황을 해결하리라 여기고 기존의 공식을 더 강화해 인간 스스로의 생태적 한계를 비롯해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생태계의 한계를 무시하고 있다. 더 효율성 있는 발전을 위해 더 뛰어난 소수의 무리가 기술을 활용해 사회를 이끄는 것이 상황을 해결하리라고 믿고 실행에 나서기도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국가가 경쟁으로 치달으면서 더 희귀한 자원을 추출하고, 더 많은 물과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며 현재의 문제를 악화하는 상황은 단기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관점도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만들어낸 공식으로 현재의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한계를 자각하고 존중하는 개인들이,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존재들의 가치와 상황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함께 연대하는 공동체를 함께 만들며 민주주의와 생태주의 관점에서 문제를 다뤄야 한다. 이는 위기 극복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사회를 연대와 안전, 신뢰와 협력, 풍요와 지속가능성에 기반을 둔 공동체로 확립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는 이미 여러 위기를 함께 극복해 왔다. 한국 사회는 시민의 힘으로 독재를 무너뜨렸고, 촛불로 정의를 세웠으며, 응원봉으로 미래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시민들의 힘으로 역사를 만들 수 있음을, 목소리를 모으고 서로 연대하며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음을 우리는 함께 경험했다. 

    우리는 다시 전환점에 섰다. 지금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공동체를 다시 구성해야 할 시기다. 희망은 우리가 나누는 일상의 대화 속에, 사소한 연대와 실천 속에 스며들어 있다. 멋진 민주주의는 멋진 시민들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진정으로 ‘멋진 민주주의’를 만들 멋진 순간을 잡았다.


    권오현 – 디지털 시민 광장 빠띠의 대표와 시빅해킹커뮤니티 코드포코리아의 오거나이저로 활동하고 있다. 연결하고 협력하는 디지털 기술과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 공공재, 평화에 기여하는 플랫폼과 컬렉티브를 만든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자유롭고 행복한 개인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공동체와 평화로운 삶과 세상을 꿈꾼다.

  • 공감과 존중을 외면한 채, 공감과 존중을 기대하기: 지브리풍 그림 열풍의 역설

    지브리풍의 AI 그림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사람들은 각자 간직하던 소중한 사진을 멋진 지브리풍 그림으로 변환한 후 자랑스럽게 공유한다. 아름다운 화풍에 담긴 자신의 모습, 소중한 사람들의 모습, 소중한 순간들을 공유하며 타인의 공감을 기대했을 것이다. 마치 관광지에서 역사 유산이나 자연 유산을 가린채 셀카를 찍는 이들이 그 유산이 아니라 ‘그 유산 앞에 선 나’를 기념하듯이, 사람들은 세상 속의 자신을 기념하고 그 순간의 자신에게 다른 이들이 공감하길 바란다. 지브리풍 AI 그림을 공유하는 열광 속에는 자기 존중과 타인의 공감에 대한 갈망이 있을 테다. 소셜 미디어가 그렇듯이.

    이 열풍에 관해 샘 알트만도 트윗을 남겼다. 자신도 지브리풍 그림을 프로필에 올린 그는, 10년간 암 치료 등을 위해 초지능을 만들려 노력했지만 7년은 무시당하고 2.5년은 미움받았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지금 많은 사람들이 챗GPT로 지브리 스타일 그림을 만들며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낸다고 글을 남겼다. 이 짧은 글에는 창작자로서 겪은 고통과 외로움, 암 치료보다 프로필 이미지에 열광하는 현실에 대한 복잡한 감정, 그리고 이런 현상을 만들어낸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이 느껴진다. 그 역시 새로운 길을 개척할 때의 어려움을 겪었고, 존중과 공감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어 한 인간으로 느껴졌다.

    한편 지브리 화풍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2016년 NHK 다큐멘터리에서 AI가 그린 결과물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현했다. “AI가 그린 결과물은 실제 작업하는 사람의 고통을 전혀 모른다”, “역겹고 소름이 끼친다”, “삶 자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한 땀 한 땀 그림을 그리며 창작의 고통을 감내한 그의 작품은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고, 역설적으로 ‘지브리풍’ 이미지에 자신을 담아내는 데 열광하는 대중을 만들어낼 만큼 커다란 존중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지브리풍 그림에 열광하면서도 오픈AI가 미야자키나 지브리의 동의를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 그 사이 전세계에서 미야자키가 ‘역겹다’고 말한 AI 그림을 그의 화풍을 모방해 만들고, 심지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외쳤던 그의 화풍으로 이스라엘 군이 선전물을 만들기까지 했다. 열광의 근저에는 인간 누구나 가진 존중받고 공감받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그 한가운데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작품을 만들며 겪은 고통과 그 결과물에 대한 존중과 공감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공감과 존중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인간이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과 존중을 건너뛰고, 자신에 대한 공감과 존중만을 바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마음껏 하곤 하지만, 그 사이에 우리의 인간성이 망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해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던 작가들이 느낄 절망은 앞으로 인간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게 될까?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 화풍의 그림에 반대 의사를 밝힌다면, 법률 분쟁에 돌입하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의사를 존중하고 지금까지 생성한 그림을 다 내리게 될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터뷰에서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진 것 같다. 인간은 자신감을 잃었다”라고도 이야기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묻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마치 이런 시대가 올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이었을까? AI의 시대에 “인간성은 무엇인지”,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을 것들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어떻게 살지” 우리에게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 디지털 공론장을 만드는 집단지성과 인공지능

    초거대인공지능 시대의 초입, ‘인공지능은 앞으로 무엇을 대체할까?’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쏟아낸다. 기회로 여기든, 위기로 여기든 변화가 일어난다는 전망에 누구나 동의한다. 당장은 인간의 노동 중 대체되거나 사라질 것들을 각자 예측하지만, 한켠에선 기존에 사회를 운영하면서 사용한 여러 과정을 인공지능으로 대입해 보기도 한다.

    정치권에서 챗GPT에 정책에 대한 평가나, 상대 진영의 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는 일화가 들린다. 해외에서는 의회의 연설문을 챗GPT로부터 생성해서 발표하기도 했단다. 챗GPT를 이용해 신과 대화해 보라는 서비스가 주는 인상은 흥미롭지만, 어떤 정책이 나은지 평가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초거대인공지능이 내어놓는 답을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활용해도 되는지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다는 점은 흥미보다는 염려가 앞선다. 집단적 의사 결정에서 인공지능은 공론장의 대안일 수 있을까?

    특히나 지난 몇년간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벌어진 결과를 부정적으로 경험했다. 상대 진영에 대한 악마화, 서로에게 귀기울이기는 커녕 스스로의 생각을 더욱 강화시키는 필터 버블, 출처를 알 수 없는 허위조작정보와 국가 기관마저도 나선 영향 공작(influence operations), 집단 괴롭힘에 시달리는 이들의 자살 등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경험한 혐오와 차별, 갈등은 사회가 맞닥뜨리는 여러 복합 위기와 맞물리며, 각자도생의 전략이 더욱 타당하게 느껴지게 만들었고, 우린 집단지성의 실현이라는 인터넷 초창기의 희망 섞인 기대는 어느 순간 잃어버린채 집단이나 공동체에 대한 믿음까지도 잃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황에서 인공지능이 내어놓는 답은 다양한 의견이 경쟁하고 협력하고, 조정과 합의를 거쳐야 하는 (그 과정에서 결코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서로 혐오하고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우리는 많이 보았기에) 인간들의 의사결정보다는 누군가에게는 나아 보이기도 한다. 인공지능은 편파적이지도 않고 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인간이 만든 문서를 인공지능이 모두(?) 이해(?)해서 요약했다는 답변은 루소가 상상했던 사회의 일반의지처럼도 보이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바꿀 공론장의 미래

    하지만 우리가 인간과 인간으로서 구성된 사회를 부정하지 않는 이상, 집단 지성의 발전과 인공 지능의 도입을 결코 앞선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긍정하는 발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선 초거대인공지능이 인간이 집단적으로 축적한 데이터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클라우드, 소셜 플랫폼과 빅데이터는 집단지성과 인공지능이 서로 의존하며 상호 발전해 온 기술임을 보여 주는 용어들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시공간을 가로질러 수많은 연결을 창출해냈고, 이 연결을 통해 생산되는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축적했다. 소셜 플랫폼에 모인 수많은 컨텐츠와 사용자 행위 데이터를 빅데이터로 모아, 네트워크로 연결한 거대한 서버 자원을 통한 후 지금의 초거대인공지능이 답변을 구성하도록 만들어내는데 활용했다. 이렇게 따라가다 보면 인공지능은 오히려 인간 집단지성의 한 유형이자 결과인 것 같고, 블록체인 기술보다 웹3.0이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린다.

    또한 인공지능이 기본적으로나 제대로든 작동하기 위해서 (결정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을 논의에서 빼 두더라도) 사람이 할 일은 앞으로도 많다. 지금의 챗GPT로서는 피할 수 없는 환각(Hallucination)을 완화하기 위해 인간의 피드백(RLHF, Reinforcement Learning from Human Feedback)을 거친다. 더 정확한 답변을 위해서는 빅데이터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스몰데이터도 필요하다. 아마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공개된 빅데이터 외에 스몰데이터를 독점 확보함으로써 품질을 높이는 위한 경쟁이 초거대인공지능 기업들간에 치열하게 벌어질지도 모른다. 위키 방식의 집단 편집의 결과물이나 키워드에 기반한 검색 서비스나 커뮤니티 서비스의 활용은 이미 줄어들고 있지만, 거꾸로 초거대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답변에 들어가기 위한 노하우를 활용하는 컨텐츠 생태계는 활성화될 것이다. 시민사회를 비롯해 스스로의 독창적인 이야기와 경험, 서비스를 발신할 미디어(owned media)는 앞으로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된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측면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본래 민주적인 공론장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되 소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가치를 바탕으로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더 많은 참여와 더 나은 숙의는 비록 충분히 실현되기는 어렵지만 사회가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인정하는 가치다. 인공지능이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문서로부터 사회 다수의 입장을 요약해낼때 우리는 앞서 언급한 가치가 얼마나 지켜졌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광범위하게 제시된 의견을 효과적으로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는 소셜 플랫폼이 활성화될때 시민들의 단순 직접 투표로 의견을 효과적이고 빠르게 결정하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주장했던 블록체인 기반의 자동화된 분산 조직이 간과하는 바와 같다. 공론장은 참여와 함께 숙의를 통해 경쟁과 갈등, 이해와 조정의 과정을 거치는 사회적인 과정이다. 이 과정을 생략해서는 이해는커녕 동의를 구하기란 어렵고, 소수의견은 묵살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시민들의 투표, 의견을 데이터로 분석해내는 과정은 중요하지만, 공론장은 최종 결론만을 목표로 하는 공간이 아니다.

    이미 활용되고 있는 기술인 혐오 표현 필터링도 마찬가지다. 어떤 표현을 기술적으로 감지할 것인가 혹은 근본적으로 방지할 것인가는 기술 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보다 적극적인 혐오 표현 방지를 옹호하지만, 사실 혐오 표현에 대한 논쟁은 헌법에도 명시한 인간의 기본 권리인 표현의 자유의 보장과 함께 맞물리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다. 더 발전한 기술을 만들기 위해서도 우리 사회가 혐오 표현, 혹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느 정도 허용하는지 추측할 수 있는 사회적 경험(혹은 논쟁)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으로 가짜뉴스를 잡겠다는 도전 역시 그러하다.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가짜뉴스보다는 허위조작정보(dis/mis/mal-information)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는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거나, 실수이거나 조작이거나 등등 정보가 다양한 이유와 의도, 취약한 상태로 전달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는 허위조작정보의 의도와 상태에 따라 여러가지 사람의 해석이 경쟁하고 의도가 맞물려 돌아감을, 따라서 단순히 더하기 빼기가 틀린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기도 한다. 허위조작정보의 검증은 사회적인 과정으로 만들어내야 하고, 이 과정에 다양한 검증 도구를 활용하는 식이어야 한다. 조작된 영상 정보, 조작된 데이터의 검출 등 인간의 역량을 벗어난 검증 과정에 기술은 충분히 도구로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공지능이란 최신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의 의도를 은폐한채 또 다른 조작정보를 인공지능을 통해 발신하는 상황을 목도하게 될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여전히 사람과 사람이 협력하는 공론장이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우리는 기술 개발, 사용자 협력, 리터러시와 투명성의 확보 등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과정을 밟아나갈 필요가 있다.

    1) 이해와 합의가 일어나는 다양성을 갖춘 공론장의 운영
    2) 다양한 자동화 기술의 개발과 활용
    3) 사용자 참여에 기반한 적응을 통한 기술 발전
    4) 적용한 기술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조치들

    사회와 기술의 발전을 위한 시민과 공동체의 성장

    아직까지는 무엇이 바람직한지, 우리가 합의한대로 작동하는지를 평가하거나 의사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자, 공동체의 몫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거나 결정이어도 사회의 운영에 활용하려면, 그 과정과 결과를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동의하지 않는 기술이나 체계는 유지되지 못한다. 거꾸로 이해와 판단의 책임을 진 인간에게는 무엇이 윤리적인지, 무엇이 공동체의 가치에 맞는지를 판단하는 시민성의 문제와 시민 역량을 갖추어야 할 책임이 부여된다.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를 앞으로도 유지하겠다면 말이다.

    우리는 같은 단어임에도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은 지성으로,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지능으로 번역했다. 부지불식간에 인공 지능은 지식에 관한 도구로, 집단 지성은 인간만이 가지는 통찰과 지혜를 기대했던 것일까? 무엇이 가치있는지, 정의로운지, 서로 다른 처지를 이해하고 포용해야 하는지를 집단으로서의 인간은 아직까지는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 같다.

    다만 한국 사회가 사회의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긴 시간 동안 경쟁하고 조율하고 논쟁하며 만들어오지 못했다는 점이 염려스럽다. 정치인들이 쉽게 국민들을 갈라칠 수 있는 까닭 역시 누구의,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인지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경험이 아직은 충분하지 않아서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술을 활용한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사회적 배제라는 역효과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환경에 놓여 있다. 이 환경 속에서 우리는 사회와 기술을 동시에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까? 쉽지 않은 도전임이 분명하지만, 시민과 공동체를 위해서 사회의 필수 인프라로서 좋은 공론장을 더욱 발전시키고, 우리의 집단적 의사 결정을 돕는 인공 지능 역시 함께 발전시켜 나가는 사회를 만들 기회도 역시 우리의 손에 놓여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삶에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을 둘러싼 논쟁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식의 발전 과정을 되돌아볼 때, 이 것만큼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 또 있을까? 인간의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 한 주제임에도, 이 문제에 관한 철학적 논의는 여전히 심각한 낙후 상태를 벗 어나지 못하고 있다. — 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AICE포럼 후, 랩2050에 기고한 글입니다.

  •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 왜 시민이 만들어야 할까요?

    외출 시 약속과 약속 사이에 빈 시간이 생기면 커피숍을 찾습니다. 오전 일찍부터 저녁까지 회의 혹은 약속이 있는 날에는, 더는 커피를 마시기 힘들 정도로 계속해서 커피숍을 들락날락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럴 때면 공원 나무 그늘 의자에 앉아 바람을 쐬고 싶습니다. 쾌적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즐겁지만, 우리에겐 공원과 같은 공공 공간도 필요합니다.

    공간에 대한 단상을 인터넷으로 옮겨볼까요? 대부분의 인터넷 서비스는, 사용자를 ‘데이터를 제공’하거나, ‘구독료를 지불’하거나, ‘물건을 구매’하는 고객으로 바라봅니다. 집에서 일터로 이동할 때 우리는 골목과 도로라는 공공 인프라와 버스, 지하철이라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인터넷 공간에 접속할 때는 어떤 형태로든 비용을 지불합니다. 서비스의 질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디지털 사회는 디지털 경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소비자이기 이전에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시민의 정체성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과 기술은 더 나은 디지털 사회를 만드는 기반이 됩니다. 물건을 사고팔거나 재미있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만큼, 다양성과 포용, 신뢰와 협력, 분권과 자율을 위한 디지털 기술은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에 꼭 필요합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좋은 대화를 이어가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거나 의사결정을 내리는 등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인터넷에서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면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어 다양하고 효과적인 집단 협업이 가능한데도, 우리는 이를 사회적 대화나 사회 문제 해결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터넷 상에서는 혐오와 불신, 허위조작정보와 악의적인 글로 피해를 보는 이들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술과 기능의 제약은 곧 시민성의 제약으로, 더 나아가 공공성의 제약으로 이어집니다. 공공성에 기초한 디지털 사회를 만들려면 디지털 시민의 정체성을 확대해야 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과 기술이 시민들에게 제공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공성을 목표로 하는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고 운영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디지털 민주주의를 목표로 하는 플랫폼은 누가 만들 수 있을까요? 정부가 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한국은 양극화된 정치 상황으로, 정부가 이런 플랫폼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에는 부담이 따릅니다. 정권이 바뀌면 시민 참여와 협력 사업은 중단되기도 합니다. 양극화된 정치 상황에서는 기업 역시 투자에 나서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재무적 투자는 투자금 회수를 위해 투명하기보다는 단순하고 효과적인, 공유보다는 독점 구조를 지향합니다. 이는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독점보다는 공공성을 우선하려는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의 목적과 안타깝지만 배치됩니다.

    결국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이들은 ‘시민’이 아닐까요?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지키며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과 기술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빠띠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라는 구조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시민과 공적 가치를 지닌 조직이 플랫폼을 만드는 조직의 재무 기반 형성과 개발과 운영 과정에서 생기는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플랫폼을 만드는 협동조합도 낯선데, 플랫폼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시민이라니… 낯설고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기업을 넘어 시민의 힘으로 디지털 사회의 필수 인프라를 만들고 유지해 보면 어떨까 라는 상상은 매우 즐겁습니다. 한국 사회에는 낯설지만, 오히려 사회적협동조합의 역사와 경험은 깊고, 사회의 공공성을 유지하려는 시민의 역사와 경험도 아주 깊고 넓습니다. 인터넷 기술의 근간도 오픈소스 커뮤니티로부터 나왔고요. 빠띠는 그 역사와 경험을 디지털 사회에서도 이어가려고 합니다.

    더 많고, 더 나은 디지털 민주주의 기술은, 다양한 처지와 입장의 사람이 목소리를 내고 좋은 대화를 나누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합니다. 공공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 기술은 서로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국민/비국민이라고 낙인찍거나, 특정 진영이 배척하는 상황을 넘어설 것입니다. 오랫동안 갈등과 혐오를 조장해온 우리네 정치를 넘어 다양성과 포용, 신뢰와 협력에 기반한 진짜 민주주의를 오롯이 시민의 힘으로 이룰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짜 민주주의는, 여러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당한 이들을 진정한 일원으로 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과정이나 현재의 상황으로나 진정한 민주주의가 지금 우리에겐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민주주의 기반을 만들고 이 기반이 공공성을 유지하도록, 한국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기반을 다지고 다양한 시민을 포용하는 사회가 되도록, 빠띠와 함께 하는 시민, ‘빠띠즌’이 되어 주세요. (빠띠즌 되어 빠띠 후원하기)

  • 나는 왜 민주주의 혁신에 집중하는가?

    빠띠의 후원회원 제도인 빠띠즌을 알리고 후원을 요청하는 글입니다. 빠띠를 통해 하려는 민주주의 혁신의 내용을 설명하며, 이 일을 하게 된 개인적인 이유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그렇기에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부담스럽습니다만 앞으로 여러 시행착오를 인내하며 노력하겠단 약속이기도 합니다.

    안녕하세요. 빠띠 이사장 권오현입니다.
    오늘은 오랫동안 드리고 싶었던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직접 글을 씁니다.
    다소 긴 이야기지만, 끝까지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왜 ‘빠띠’라는 조직을 시작하셨나요?”

    강의를 하거나 미팅을 할 때 종종 받는 질문입니다. ‘민주주의를 혁신’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하는 건지, 어떻게 이리 오랫동안 해 올 수 있었는지 많이들 궁금해하시죠. 디지털 미디어와 커뮤니티 플랫폼 기술을 활용해 개인에게는 권한과 정체성을 부여하고, 집단 내에 의사소통/결정 체계를 구축하는 일을 약 20년간 한결같이 해 온 저를 신기하게 여기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처음 다짐했을 때 떠올린 소명은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자’였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이었던 저는, 스스로는 힘든 삶을 살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함께하려는 선한 보통 사람들이 교회라는 공동체에 모여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가난과 기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회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부족함으로 그 꿈을 내려놓아야 했고, 새로운 목표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때 어린 시절부터 해오던 프로그래밍 기술을 바탕으로 웹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난제를 해결합니다
    민주주의는 나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새 소명을 찾던 저는, 어렵게 사는 이웃들을 돕고 미비한 제도를 개선하려 노력하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 분들이 조직 내에서는 더 잘 협력하고, 밖으로는 더 널리 알려져서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내는데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덕분에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 일, 다양한 사람이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일, 인터넷을 통해 조직과 커뮤니티 체계를 만드는 일, 사회 제도를 하나씩 바꿔나가는 일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자원이 아무리 많아도, 시스템이 건강하지 않으면 필요한 이들에게 그 자원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소외 당하고, 정의롭지 않은 상황 속에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우리가 겪는 많은 문제는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고 함께 협력하지 못하는 환경과 문화에서 생겨납니다. 제가 처음 소명으로 추구했던 ‘가난’과 ‘기아’ 역시, 국민에게 권력이 주어지지 않고 정부를 감시하거나 정부를 운영하는 제도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흔히 ‘인터넷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소통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제게 인터넷 기술(디지털 기술)은 연결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소통을 통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누구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정보를 습득하며, 논의에 기여하고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대의 가능성이 드디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지요.

    인터넷 기술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처지와 의견이 전체 시스템에 반영될 수 있게 만들 수 있고(더 많은), 소수와 전문가의 의견이 존중받으면서도 다수를 중심으로 한 절차를 통해 내려지는 집단 결정을 신뢰하게 만들 수 있고(더 나은), 개인과 집단이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고 공동 소유하는 시스템(일상의)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빠띠의 슬로건인 ‘더 많고, 더 나은, 일상의 민주주의’에 이 가능성을 담았죠.

    이렇게 민주주의는 사회의 여러 과제를 해결하는 핵심 전략이지만, 또한 우리 각자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함이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물려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저는, 사회 속에서 제 생각과 의견이 존중 받기를 바랍니다. 제가 거두는 성공과 실패에 무관하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 받고 싶습니다. 제 목소리가 존중받는 것만큼 다른 이의 목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사회가 풍요로움과 지속가능함을 추구하면서, 공정하고 따뜻하게 운영되도록 저 역시 기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혐오와 차별, 불안과 각자도생이 늘어나는 사회 속에서 자원과 권한이 부족한 개인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선 우리 모두는 스스로 권한을 쟁취해야 합니다. 동시에 협력하여 사회 구성원 누구나 이용 가능한 사회 기반을 늘리고, 이를 투명하고 공정하고 따뜻하게 운영해야 합니다. 물질의 풍요뿐만 아니라 바로 이런 민주주의를 통해 다양한 구성원들이 기여하고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 수 있고 저는 공정하고 따뜻한 사회 속에서 나와 우리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디지털 민주주의 기반과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려 합니다

    빠띠를 통해 행복한 개인, 협력하는 사회, 신뢰하고 지지받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의 오랜 과제와 당면한 문제를 더 많은 사람의 참여와 이해, 공감과 지지로 해결할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디지털 민주주의 기술이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빠띠는 공론장, 커뮤니티, 캠페인, 데이터,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운영해 왔습니다. 모두 앞서 말씀드린 목표를 향해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해 서로 협력하고, 이를 제도나 문화/시스템으로 안착시키도록 플랫폼을 만들고 방법론을 퍼트려 왔습니다. 진영과 지역, 주제를 넘나들며 다양한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기획과 운영으로 빠띠 방법론의 내재화를 돕기도 했습니다.

    빠띠가 기획/운영한 ‘민주주의 서울’과 여기서 만든 시민협력플랫폼 모델은 널리 퍼져 많은 지자체의 기본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시민과 기관이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공론장과 워킹그룹 모델은 요즘 시대의 당연한 상식이 되었습니다.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거버넌스와 공론장을 손쉽게 만드는 빠띠 믹스, 공통 관심사로 모인 그룹과 조직이 활용하는 빠띠 카누, 국회와 지자체뿐만 아니라 기업을 대상으로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 전달하는 빠띠 캠페인즈, 구성원의 의견을 재밌게 모으고 함께 결정하는 빠띠 타운홀 등 빠띠의 민주주의 플랫폼도 늘어났습니다. 시민 주도로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생태계를 만들려던 빠띠의 노력은 ‘코로나19 공적 마스크 데이터 개방 및 앱 개발’과 시빅해커의 커뮤니티인 ‘코드포코리아’의 발족으로 이어졌습니다. 허위 조작 정보에 함께 대응하는 시민을 양성하는‘팩트체크넷’도 빠띠와 언론인 현업 단체의 협업으로 탄생했습니다. 매년 빠띠의 경험과 방법론을 퍼트리고 현장을 지키는 파트너들의 경험을 나누는 ‘민주주의 캠프’도 시작했습니다.

    플랫폼을 만들고 현장 곳곳을 다니면서 민주주의가 가진 가능성을 더 실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술 발달로 인해 가속화되는 혐오와 갈등, 기술과 자본의 쏠림 등을 보며 절박해지기도 합니다. 빠띠의 민주주의 플랫폼을 개선하고, 민주주의 방법론 교육과 홍보도 확대하며 사회 곳곳에 혁신적인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싶지만, 투자나 후원 없이 운영되는 조직의 한계를 느낍니다.

    빠띠 후원으로 디지털 민주주의 공공재를 함께 만들어주세요

    빠띠는 앞으로 민주주의를 혁신하고 보급하는 일에 더 많은 동료 시민의 참여를 요청하고자 합니다. 우선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께 빠띠의 후원회원인 ‘빠띠즌’으로 함께 해주시길 요청드립니다. 빠띠즌은 ‘Parti(빠띠)’와 ‘Citizen(시민)’의 합성어로, 시민과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은 빠띠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빠띠가 민주주의 방법론과 플랫폼을 더 잘 만들고, 더 많은 시민의 역량 강화에 기여하고, ‘당사자와 시민의 참여로 이해와 공감, 지지와 신뢰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장’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십시오.

    빠띠는 민주주의 플랫폼과 방법론을 더 널리 퍼트려 우리 사회의 공공재로 만들고 싶습니다. 공공재이니 만큼, 이 디지털 민주주의 자산을 만들고 운영/소유하는 과정에도 시민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믿고, 그렇게 실현시키려 합니다. 다른 어떤 기술보다도, 사회 구성원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소통하고 협력하는데 필요한 기술은 그 자체로도 공적 자산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후원은 ‘빠띠’뿐만 아니라 이 공공재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자’는 어린 시절의 제 바람은, ‘개인의 권리를 확대하고, 자유로운 개인이 협력하고 신뢰하는 시스템으로 건강한 공공재를 만들고 운영되는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일로 수렴되었습니다. 좋은 민주주의가 만들어낼 더 좋은 사회에 대한 믿음이 변치 않았기에 오랫동안 이 일에 매진할 수 있었고, 지금도 이 기대를 공유하는 동료/파트너들과 즐겁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로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열정을 가진 선한 사람들이, 그들의 기술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디지털 기술이 독점과 혐오의 늪에 빠지지 않고, 공유와 공감의 시대를 여는데 기여하도록 빠띠를 후원해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빠띠는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기술의 공적 가능성을 우리 사회의 공공재로 구현하는 데에 기여하겠습니다.

    ​[ 빠띠즌 되어 빠띠 후원하기 ]

  • 디지털 경제의 사회적 전환과, 사회적 경제의 디지털 전환

    이 글은 사회적경제 정책포커스 2020년 12월 ‘한국판 뉴딜과 사회적 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2030년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20세기 최고 경제학자는 ‘여가’라고 답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1930년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란 강연에서, 대공황이 한창이고 파시즘도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100년 뒤의 인류가 “정치인들이 경제 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긴축 재정을 펼치는 등 파멸을 초래하는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서구의 생활수준은 4배로 높아지고, 주당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에게 뉴딜로 익숙한 케인즈의 100년 전 전망과는 달리,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경제 발전의 과실을 함께 누리며 늘어난 여가 시간을 고민하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 세대는 2050년 인공지능이 인류를 넘어서는 특이점을 거쳐 인류의 대다수가 직장을 잃으리라고 전망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기후위기가 인류의 파멸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인터넷이 발전할수록 혐오와 허위조작정보가 만연하고, 국가의 경제 발전과 무관하게 불평등과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다고 느낀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도 플랫폼 노동 혹은 불안정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5.2일, 하루 8.22시간인데 반해 월평균 소득은 152만원에 불과했다. 아마존과 같은 플랫폼 기업들의 수익과 가치, 영향력은 코로나19로 인해서 더 확장됐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에서 창고의 물품을 분류하고, 배송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감염의 위험과 무리한 노동 환경 속에서 질병에 걸리고 생명을 잃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마찬가지로 벌어지는 일이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시화 된 기후위기, 심화되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대전환을 이루고자 정부는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그리고 안전망 강화가 핵심인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 중 ‘데이터 댐’을 살펴보면 정부는 데이터를 수집, 가공, 거래,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데이터를 국가 산업의 원천 자원으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데이터 댐’ 구축과 관련해 주로 제시되는 정책은 공공 데이터 개방, 데이터 플랫폼 확대, 데이터 관련 청년 공공일자리 활용 방안이며, 민간의 데이터 활용이 용이하도록 개인정보 등의 여러 규제를 해소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을 통해 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동안 디지털 역량이 부족한 세대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와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 활용도를 높이는 내용을 포함한 직업교육과 평생교육과 같은 디지털 포용 정책도 함께 추진 중이다.

    디지털 뉴딜을 포함하는 한국판 뉴딜이 2050년을 가리키는 위기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현존하는 위기를 극복하려는 거대한 전환의 전략임을 고려한다면,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전제로 하는 전략이 국민들이 느끼는 위기를 극복하는데 충분한 것인지, 국민들 개개인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데이터 댐 구축을 통해 정부가 보유한 공공데이터를 모아 공개하면 민간의 데이터 산업이 자연스럽게 활성화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차치하더라도,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D.N.A.)에 투자하고 규제를 완화해 관련 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대전환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디지털 전환을 충분히 체화하고 있지 못한 국민들에게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교육을 확대하는 것이 빈곤에 처한 노인 세대가 심화된 생존 위기를 극복하는데 충분한 전략 또한 아니다. 정부가 말하는 것과 같이 디지털 뉴딜은 공익을 강화하고 국민들이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가 더 깊고 넓게 한국판 뉴딜의 여러 분야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시민참여와 사회적경제가 빠진 인프라 중심의 디지털 뉴딜
    출처: 2020.5.7.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 『한국판 뉴딜』 추진방향.

    디지털경제의 사회적 전환과 사회적경제의 역할

    플랫폼경제와 사회적경제

    현재의 플랫폼 산업은 태생적으로 독점을 지향한다. 플랫폼 상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가치도 독점하려 하고, 경쟁 우위를 위해 데이터와 기술의 독점도 추구한다. 이런 독점적 지위와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한다. 영향력과 독점이 심화될수록 이해관계자는 급증하고, 사회 규제들과 맞닥뜨리는 경우도 늘어난다. 하지만 의사결정 구조는 대규모 투자를 가능하게 한 투자자들의 이해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효율성 증대와 투자를 통해 다수에게 편익을 제공함으로써 공익을 증진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가치와 기술의 독점, 불투명성과 폐쇄성, 투자자의 이익이 공익보다 우선시되는 의사결정 등을 목도하게 된다. 

    반면 사회적경제조직들은 협동과 연대, 그리고 공공성에 기초한 사회적 가치 환원을 목표로 한다. 규모와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의미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지향한다. 또한 독점보다는 사회의 여러 이해관계자나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공유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계를 구성하는데 가치를 두며, 조직을 공동으로 소유하거나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독려하는 의사결정구조를 가진다. 사회적경제조직들의 이러한 성격과 지향점은 플랫폼산업의 독점적 성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플랫폼경제의 대안으로서든 보완재로서든 사회적경제가 가진 특징들을 플랫폼경제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플랫폼 협동조합’ 혹은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란 이름으로 전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돌봄이나 가사 노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플랫폼을 구축해서 서비스를 하거나, 프리랜서들이 일거리 플랫폼을 스스로 구축한다. 혹은 플랫폼 개발과 마케팅 전문성을 가진 프랜차이즈 기업과 지역의 드라이버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이 또 다른 연대체로서의 협동조합을 구성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주요 배달앱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과 노동조합들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협약을 맺었다. 필연적으로 다수가 참여해 성장해나가는 플랫폼경제에서 단순 이용자의 지위를 넘어 이해관계자로서 소유와 이윤 배분, 의사결정 참여는 필수적인 것이다. 플랫폼 기업이 플랫폼으로서 가진 장점을 발휘하면서 이와 연관된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기여와 공공성을 지향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경제의 기본 원칙과 경험들이 플랫폼경제에도 적용돼야 한다.

    또한 독점을 지향하는 거대 기업들만 경쟁하는 플랫폼경제의 생태계가 보다 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공존하는 생태계로 변모할 수도 있다. 배달앱은 왜 1, 2위 중에서만 사용해야 할까? 내가 주문을 할 때, 배달 수수료가 적은 곳을 고를 수도 있지만, 주변의 이웃들에게 무료 급식을 하는 가게라든지, 쓰레기를 적극적으로 배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가게들만 모은 배달앱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수는 있어도, 충분히 있지 않을까?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디지털 전환의 경제 영역 곳곳에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앱을 만들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플랫폼경제 생태계가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를 위해 거대 플랫폼 기업이 독점해 생성한 데이터들을 어떤 기업이나 국민이든 사용할 수 있는 공공데이터로 제공하는 것을 국가의 역할로 고려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협동과 연대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 기업들도 디지털 서비스를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각자의 필요나 가치관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해 제공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공공앱을 직접 만들어 거대 플랫폼 기업과 경쟁하는 것보다는, 플랫폼경제가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건강한 생태계로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디딤돌을 제공하는 다른 의미의 ‘플랫폼’ 정부가 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데이터와 사회적경제

    ‘디지털 뉴딜이 곧 데이터 댐’이라는 데이터 정책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데이터 댐 정책은 정부가 주요 산업의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주도적으로 모아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디지털 전환을 국가의 중요 기간산업으로 설정하고, 인공지능 등 4차 산업 육성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충하겠다는 관점이 문제는 아니며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데이터가 가지는 가치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본래 공공데이터 개방은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국민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참여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는 열린정부운동으로부터 출발했다. 모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된 데이터는 정부-국민 간 신뢰의 기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신뢰를 통해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다양한 기관들과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신뢰는 혐오와 불신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 소중한 자원이다. 기후위기, 경제위기뿐 아니라 코로나19로 닥친 여러 위기를 국민 모두가 함께 해결하는 데 신뢰와 신뢰에 기반한 협력은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정부는 코로나19 초기 상황부터 개방성을 기조로 정보를 적극 공개했다. 국민들의 불안을 줄임으로써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방역에 동참하는데 기여했다. 더 나아가 마스크 품귀 현상이 발생하자 정부와 시민(시빅해커)이 협력을 통해 공적 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활용해 모든 이들이 주변의 마스크 현황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공공앱을 함께 만들었다. 데이터를 통해 국민과 정부 사이의 신뢰를 형성하고, 국민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주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광화문1번가를 통한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의 공공데이터 공개 요청 제안과 정책화 결과
    출처: 광화문1번가 홈페이지

    데이터 댐의 수요자를 시민 혹은 사회적경제로 확대해야 할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할 때 즈음 전국의 복지 관련 기관과 대구의 시민 사회, 혹은 사회적경제는 대구지역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긴급 지원을 진행하는 동안 중복 지원이나 필요한 물품 구입 과정 도중에 일어난 혼란 등 지원과 자원 운용상의 데이터를 미리 파악하거나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실제로 소방서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구조하는 비율보다 시민들이 서로 구조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직접 공공자원을 활용해 위기상황에서 문제를 각자의 처지에 맞게 해결하는 모델이 자리 잡아야 한다. 물론 이 말이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부정하는 말로 해석돼서는 곤란하다. 국가와 시민이 협력하는 거버넌스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대구에서 급증한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하려던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조직들의 노력들이 앞으로 이어질 위기에서 더 빛을 발하고 효과를 높이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와 플랫폼이 평소 마련돼 있어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뉴딜과 데이터 댐에서는 시민이 주도하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기반으로서 데이터의 생성과 활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데이터의 주된 수요자로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를 자산으로 볼 것인지, 노동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남아 있다. 디지털 뉴딜을 통해 모으고 축적하는 데이터의 상당 부분은 특정 개인과 연관된 행위가 일어나야만 생기는 데이터다. 의료서비스를 중심으로 디지털 뉴딜의 장점을 설명하는 정부의 설명에서 사용되는 데이터도 개인의 병력이나 의료서비스 이용내역 같은 개인과 연관된 정보다. 개인의 행위를 통해서만 발생하는 데이터는 노동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들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 활용 방식에 대한 결정권, 그리고 데이터를 통해 창출되는 가치에 대한 보상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나와 관련된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고,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내가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범위는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제공한 데이터를 통해서 발생한 가치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사회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국민들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더 나아가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 사회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디지털 디바이스 사용 교육보다는 데이터의 활용 역량과 스스로 데이터와 관련한 권한을 지켜내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디지털 뉴딜을 추진함에 있어 시민을 서비스의 수용자로 보는 관점을 넘어 자신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적경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직접 본인들의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시민들의 데이터 역량을 강화하고 데이터를 투명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역할을 맡을 필요도 있다.


    시민사회와 노동자합의 디지털 뉴딜 대응 정책을 제안하는 “시민을 위한 공공데이터 정책 토론회”가 2020년 8월 21일 열렸다. 사진은 온라인 중계화면 갈무리. 
    출처: 공공운수노조 유튜브 채널

    알고리즘, 혹은 인공지능과 사회적경제

    그리고 알고리즘이다. ‘기계의 판단은 중립적이다‘라는 일반적인 주장과 달리 알고리즘은 설계자의 관점과 가치관을 반영한다. 딥러닝으로 알려진 인공지능은 학습을 위해 마련된 데이터셋에 설계자의 관점과 가치관이 반영된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적용과 활용, 더 나아가 생성에 사회적경제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계가 사진을 읽어서 고양이인지 개인지를 판단하는 수준을 넘어서, 알고리즘은 어느 지역이 범죄에 더 취약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어떤 사람을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등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 무수히 만나게 될 인공지능의 자동화된 로직이 공공에 기여하는지, 특정한 편견이 반영되지 않았는지 반드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로직이 적용되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사회적경제조직들이 검증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적경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반영한 알고리즘이 정부와 사회에 정착하도록 알고리즘을 직접 생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야말로 앞으로는 누가 만드는 알고리즘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경쟁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무엇이 더 나은 결과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화된 알고리즘은 자연스럽게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을 대체함으로써 얻게 되는 부가가치가 해당 업종의 종사자, 혹은 사회에 환원된다면 이는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해당 업종의 종사자 혹은 대체된 노동자들이 알고리즘을 스스로 소유할 때 그 가치를 누릴 가능성이 높고, 공익과 사회적 가치를 본래 목표로 가진 사회적경제조직들이 그것을 사회에 직접 환원할 가능성이 높다.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적극 활용해 효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생성되는 가치를 구성원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사회적경제가 가진 구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과 플랫폼 등을 디지털 공공재로 만드는 것이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보장하는데 더욱 적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사회적경제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사회적 가치 실현이 중요한 분야나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의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사회적경제가 운영하도록 구성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전환: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역량 강화에 관해

    플랫폼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경제 영역에서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 더 나아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적경제가 나섰을 때 기대되는 효과는 크다. 또한 디지털과 데이터는 산업 육성의 기반일 뿐만 아니라 사회혁신의 기반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연대와 협동,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설립된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디지털 뉴딜을 비롯한 한국판 뉴딜이 사회적 뉴딜이 되도록 분야별로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시민 참여를 넘어 시민 주도의 뉴딜이 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적경제의 역할이 확대된다면 기술 혁신을 통한 가치 창출이 실제로 공익을 증진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구조적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경제는 디지털 전환에 나서야 한다. 현재 개별 사회적경제조직들은 디지털 전환에 대한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으나,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사회적경제 연대체 차원에서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며, 정부 역시 이를 위한 기반과 지원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디지털 전환 및 플랫폼 협동조합 설립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고 지원하거나, 디지털 전환에 특화된 개발자들의 협동조합을 육성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플랫폼 협동조합의 성공 사례인 업앤고(UP&GO)는 뉴욕의 이주여성들이 만든 가사, 청소도우미 서비스로 디지털 개발 협동조합 코랩(colab.coop)의 지원으로 플랫폼을 구축했으며, 빈곤퇴치 활동을 해온 지역재단과 협동조합 설립 지원기관, 지역 은행의 사회공헌기금의 체계적인 지원을 받았다. 스타트쿱(start.coop)은 플랫폼 협동조합을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로 선발, 교육, 멘토링, 법률회계서비스 지원을 비롯해서 시드머니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도 일반 벤처투자사 위주로 이뤄지는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투자 및 엑시트 환경 일변도에서 벗어나, 디지털 분야 사회적경제조직들에 적합한 투자, 성장모델을 만들고 지금부터라도 숙성시켜야 한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들이 조직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민주적으로 건강한 거버넌스를 형성하고 운영하는 기술 또한 디지털 전환의 중요한 요소이다. 조합을 구성하는 조합원들과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사회적경제에 더 많은 시민들이 관여할 수 있게 하려면 사회적경제의 본래적 가치인 민주적 거버넌스 실현을 위해 민주주의 기술을 더 예리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사회적협동조합 빠띠는 앞으로도 이를 위한 디지털 기술을 발전시키고 필요한 플랫폼을 만드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조직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비롯해 생산자 및 소비자 조합원과의 거버넌스 운영, 그리고 서비스 이용자 또는 수혜자와의 소통에 이르기까지 사회적경제조직들의 연대와 협력에 기초한 민주적 운영을 디지털화하고, 그 장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디지털경제로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증진시키면서, 기후와 경제위기를 해결하는데 사회적경제의 장점에 주목하고 이를 디지털 뉴딜 전반에 적극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데이터를 산업 발전의 원자재로 바라보는 관점을 넘어서 신뢰와 협력의 기반, 사회혁신의 기반이자 시민들의 주도적인 참여의 기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 전환의 부작용에 대한 임시방편으로 사회안전망과 디지털포용 정책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사회안전망 강화와 디지털포용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도록 정책 설계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이 정책의 구성 과정에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사회적경제와 시민사회에 부족한 디지털 역량과 플랫폼 및 기술 자산이 확보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결론

    우리는 뉴딜에 막대한 세금을 들여서 무엇을 전환하고, 어디에 도달하려는 것일까? 기후위기,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강화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 있어 디지털 혁신은 함께 집중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디지털 혁신이 사회적 가치와 공익을 중심에 두기 위해서는 ‘디지털 혁신의 사회적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디지털 혁신의 사회적 전환은 시민 주도의 민주적 전환, 사회적경제의 주요 역할 수행과 직결돼 있을 것이다. 100여년 전 케인즈가 ‘여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 예견한 2030년에 우리는 현존하는 기후위기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구현하는 새로운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까? 시민들과 사회적경제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현장에서 발 벗고 나섰듯이, 한국판 뉴딜의 현장 곳곳에서도 협동과 연대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주도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 모두에게 불로소득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직장에 가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수도권으로 홀로 이사를 했다. 그때 나는 창문이 냉장고로 가려져 있지만 대신 세탁기가 옵션인 신축 원룸을 구했다. 경기도권이라 가격이 저렴했지만, 해당 원룸의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님은 500만원을 지인에게 빌려야 했다 (그리고 몇년 후에 부모님 두분이 돌아가신 후에 아직 그 빚이 남아 있었단 걸 뒤늦게 알고 상속 포기와 상관없이 갚았다). 학비가 저렴한 대학을 다녔기에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갚아야할 얼마간의 학자금 대출이 있었고. 매달 15만원의 적금을 들었고,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드는게 좋다는 조언을 듣고 종신보험을 매달 18만원 가량 냈다. 그리고 매달 월세는 30만원. 150여 만원을 조금 넘는 신입사원의 월급을 받으며 수도권에서 처음 생활한지 1년. 1년 적금을 깬 내 손에 쥐어지는 180여만원의 돈을 보면서 나는 평생 수도권에서는 집을 사지 않거나 사지 못하겠단 생각을 했다.

    운이 좋아서 어떤 직장이든 원하는 곳을 다녔다. 내가 다녔던 직장들은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아침에 지정한 시간에 지정한 장소에 나가서 지정한 시간까지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은 이해하기가 늘 힘들었다. 내 인생의 대부분 특히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내 맘대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이, 1년에 휴일을 제외하고는 2주 언저리의 휴가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특히 두번째 직장이었던 Daum이 양재동에 있었던지라 경기도에서 매일 2시간에서 3시간씩 미어 터지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지내야 하는것은 불쾌함을 넘어 인간으로서 모독을 받는 기분이었다.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한다면 그래서 나와 일하는 사람이나 나와 계약한 회사가 내게 기대한 만큼의 수익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지내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곳을 찾는 것보단 내가 내 사업을 시작하는게 더 낫다는 것을 다른 계기로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일하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 다르긴 했다. 아무튼 기술과 역량을 제공하되 지정된 장소에서 지정된 시간동안 지정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주고, 월급이란걸 받는 방식의 삶을 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하려는 일을 독립적으로 하려면 한국에선 법인을 만드는게 가장 쉽다. 개인사업자도 좋지만, 법인을 만들어서 운영하는게 특별히 더 어렵지는 않더라. 그렇게 법인을 만들고 보니 주식이란게 내게 처음 생겼다. 그 주식으로 돈을 벌어본 적은 없지만, 사업체를 한번 만들고 보니 이후에 또 다시 만드는건 전혀 어렵지 않았고, 앞으로도 특정한 일을 특정한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하려면 기업을 만들거나 조직을 만들 것 같다. 사회적 기업이나, 사회적 협동조합을 주로 만들겠지만. 아무튼 주식이란건 아무도 안 하는 일을 주도해서 시도하니까 생기는 부산물이었지 수익을 주는 소득원이었던 적은 아직까진 없다.

    무엇보다도 부동산과 주식 투자를 통해서 돈을 번다는게 내게는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지금은 마치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단기간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투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부동산이나 기업에 대한 투자는 기본적으로 10년 이상을 바라보고 해야 하는 장기 투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식이 오르고 내리고를 신경쓰고 살고 싶지도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수익과 앞으로 내가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할 때 필요한 수익을 확보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일을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부동산, 주식, 급여 소득에 대한 기대를 제외하면 (상속도 포기한 나에겐) 사업 말고는 남는게 없다.

    더 나아가 사업은 어느 정도 불로소득을 지향해야 한다. 내가 직접 일하는게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이 수익을 발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만약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게 서비스나 기술이라면 부가가치가 높을 테고, 그 서비스나 기술이 기존 사업을 망가뜨리는게 아니라면 새로운 부가가치를 생성하는 혁신일수도 있다. 그리고 세상엔 여전히 일자리가 당장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사업을 통해 기존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서 누군가의 삶이 더 윤택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아무튼 나는 사업은 불로소득을 지향해야 하고, 다른 수익원보다도 바람직한 불로소득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불로소득원을 더 많이 만들고 싶고, 동료들과 더 같이 운영하고 싶고. 그 소득원이 기존의 가치를 망가뜨리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더 하는 방식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부동산, 주식은 넘사벽이고, 노동으로도 필요한 최소한의 수익을 초과하는 여유를 기대할 수 없다면 다른 대안이 없기도 하다. 물론 이 불로소득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리고 운영하고 유지하는 과정에 나는 열심히 일을 할 테고, 해보니까 직장을 다닐 때보다도 더 일을 많이 하기도 하더라. 그럼에도 이때도 나는 일을 한다는 느낌보단 하고 싶은 일을 즐긴다는 느낌 그리고 내 노동의 결과물이 축적된다는 느낌이 강해서 직장을 다닐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얼떨결에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어쩌면 한번 사업을 한 사람은 계속해서 사업을 한다는 이유가 이런데에 있는게 아닐까. 창업 이전에 다녔던 마지막 회사에서 10여년 전에 받았던 월급 수준에 얼마전에야 겨우 도달했었고, 그마저도 슬로워크의 대표를 놓으며 다시 많이 줄였지만 그래도 사업이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여러가지로 불안이 중첩되고,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각자도생에 나서는 2020년에. 개인이든 동료와 함께든 아니면 사회 전체든 우리가 함께 불로소득원을 함께 만드는데 집중해 보는건 어떨까. 기술이 만드는 가치는 결국 사람은 일하지 않고 시스템이 일하거나 더 나가 기계가 일하는 시대를 만들자는게 아닌가.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불로소득원이 필요한 시대가 올 테고, 혼자서 그 소득원을 소유할 수 없다면 함께(조합), 혹은 사회가(공공재) 소유하면 어떻겠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직을 만들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와 정부에 기대하며 때론 나서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 슬로워크를 시작한 이유들: 왜 사회를 혁신하는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일자리 모델을 선택했을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서의 디자인, 우리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결정하고 일하는데 기술이 가지는 중요함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깊게 공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좀 더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 정부와 여러 기관들이 가진 디자인과 기술 역량은 조직 내에 충분히 내재화 되지 못했다.

    사회혁신영역(소셜섹터)의 기술 역량 강화 문제는 중요한 과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기술의 전문가들이 안정된 일자리라는 터전 위에서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가 갖추어져야 한다. 슬로워크(혹은 UFOfactory)를 시작할때 내가 내렸던 주요한 결정은 바로 여기서 시작했다.

    당시에는 어떤 단체가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정기 뉴스레터를 보낼때 대부분 세가지 방식 중 하나를 택했다. 젊은 상근자가 어떻게든 만든다. 주변 개발자, 디자이너 친구 또는 자원봉사자에게 부탁한다. 금전적으로 조금 여유로운 단체는 개발이나 디자인을 전담하는 인력을 한명 채용한다.

    나 역시도 ‘홈페이지가 갑자기 안 되는데 도와달라’는 요청부터 시작해서 ‘프로젝트를 같이 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으로 이어지다가, ‘단체에 들어와서 일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내부의 전담인력은 고립된 섬처럼 지내다 크게 지쳐 조직을 떠난다. 가치 중심의 활동이 중심이 되는 조직에서 기술 전문성을 갖춘 인력들은 제대로 대우를 받기도 어려운데다 스스로의 전문성을 키울 기회도 갖지 못한다. 게다가 기술 전문성이 없는 활동가가 어쩔 수 없이 뉴스레터, 웹자보, 홈페이지를 다루다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일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일을 두배로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엔 컴퓨터를 고치거나 고장난 인터넷 망을 해결해야 하는 일도 했다. 요즘엔 영상까지도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는 기술(디자인,테크놀러지,글쓰기 등등) 전문가가 따로 모여서 전문성을 키우고, 이들이 활동가 조직과 만나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섹터 내에서 외롭게 지내왔던 전문가들이 활동과 기술을 엮어내는 전문성을 더 키우는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전문가로서 더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사회 문제나 아젠다에 큰 관심이 없었던 개발자와 디자이너들도 소셜 섹터를 접하면서 각자가 가진 전문성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해 가는 환경을 만들어 내길 바랬다. 그러기 위해서는 급여 수준을 적어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반 기업들의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따라왔다.

    슬로워크는 지금까지 매년 1,200개 이상의 기관들과 수백개의 브랜드, 캠페인, 웹사이트(홈페이지 플랫폼 포함)을 만들어 왔다. 소셜 섹터 안에 기술과 디자인 전문성을 갖춘 조직을 만들어야 섹터의 역량도 한 뼘 더 성장하고, 결과물의 퀄리티도 올라가며, 일을 하려는 전문가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이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더 많은 전문가들이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를 혁신하는 임팩트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소셜 섹터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슬로워크 같은 조직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나.

  • 슬로워크와 함께 일한 조직이 1100곳

    2013년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UFOfactory를 창업할때는 소원풀이를 한다는 심정이 컸습니다. 안정적인 회사를 다니면서 남은 시간을 그때 막 관심을 받기 시작하던 공유기업 중 하나의 서비스를 만들어주곤 했는데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사회를 바꾸려는 곳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 기반을 제공하는 일을 제가 한번은 제대로 해 봐야 아쉬움이 남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Daum에 입사하면서 잡았던 목표이기도 했고, 2010년에 Daum을 퇴사하면서 하게 되리라 기대했던 일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때 그런 계획을 이야기했을때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고생할게 뻔하고(그건 맞았어요), 생존하기는 불가능하다(아직 살아있네요!)며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걱정어린 조언들뿐이었어요.

    그렇지만 사회를 바꾸려는 이들을 회사를 다니며 남는 시간을 내어 자원봉사 형태로 돕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는 힘들다는 생각은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가 지속가능하려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고 저는 믿었어요. 저부터가 살아온 내내 월급이 필요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더불어서 어설프게 자원봉사를 하느니, 한번은 기업을 만들어 도전하고 주변 사람들의 예상대로 빨리 망하면 깔끔하게 포기하자 생각을 했습니다.

    망할 가능성을 높게 두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구성원들에게 실례이기 때문에, 저는 회사를 운영하던 초기에 구성원들에게 늘 “우린 언제든지 망할 수 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기술을 익히는데 집중하시면 좋겠다고 이야길 했고, 어디보다도 힘들 수 있는 이 영역의 일을 해내는게 다른 영역에서는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힘들어서 금방이라도 그만 두고 싶다면, 회사는 내일이라도 문을 닫을 수 있도록 구성원의 퇴직금을 착실하게 적립하였으며, 회사에 빚을 만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어요. 지금 보니 무차입 경영입니다만, 비용은 매우 낮고 기술 이해도도 낮은 파트너들과 고민을 나누며 서비스까지 기획한다는 사업이 제가 봐도 망하기 좋은 아이템이었던 거죠. 한편으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란걸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았어요.

    그랬던 UFOfactory가 3년을 버티고 예비사회적기업이 되었다가, 빠띠라는 ‘하면 망한다’는 이야길 들은 서비스를 만들고(그래도 빠띠는 다행히 스폰서가 있었어요!), 이후에 슬로워크와 합병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합병 후에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후에 열린 지난주 워크숍 때 확인을 해 보니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 63명이고 직간접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다 합치면 100여명 가까이가 됩니다. 사업부는 7개로 늘어났고, 각각의 사업부가 저마다 개성을 가지고 성장할 준비도 하고 있구요. 매출 역시 두 회사를 단순 합친 금액을 넘어서고 있구요.

    NPO파트너페어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만났던 조직들, 우리가 만들었던 작업들, 우리가 만든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 대략 이렇게 나왔습니다.

    Slowalk+UFOfactory = Slowalk.
    We are Creators for Change

    Since 2005,
    슬로워크와 손잡고 변화를 만든 조직 1100곳
    디지털 시대에 꼭 필요한 PC/모바일앱 사용자 3천만 명
    조직의 가치와 철학을 반영한 브랜드 700개
    스티비를 통한 더 효과적인 이메일 3억 통
    빠띠와 함께 더 민주적인 세상을 만든 51만 명

    대부분 비영리조직이거나 사회적기업, 혹은 기관인 우리의 파트너가 1100곳이라니 저 역시도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가 만든 서비스를 한번이라도 써 본 사람들의 수 역시도 적은 수가 아닙니다. 아마도 제가 회사를 다니며 시간을 쪼개서 사회적기업이나 공유기업을 도왔다면 결코 도달하지 못했을 수치입니다.

    그리고 처음 생각과 달리 이 섹터는 이 섹터 나름의 매력과 강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도 어느 틈에 생각보다는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구요. 영리를 대상으로 하는 일과 비영리를 대상으로 하는 일의 균형이 맞아 돌아가면 운영에서도 안정감이 생기고, 무엇보다도 영리를 추구한다는 행위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시대로 바뀌면서 저희의 미션이 더 주목을 받게 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틈에 여기까지 왔나 싶습니다. 처음 시작했던 가벼운 마음은 이제 묵직한 책임감으로 변한지 꽤 되었구요. 그러나 한편으론 점점 더 제 역할이 줄고, 동료들과 동맹들이 멋지게 내는 성과들을 통해 제가 함께 살아간다는 안전감도 커져 갑니다.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와 그리고 우리와 어깨를 걸고 등을 대고 함께 사회에 도전하는 동료들과 동맹들이 앞으로 벌일 일들이 기대되고, 우리가 함께 한 일들이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