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2. 디지털 민주주의와 신뢰하고 협력하는 사회

  • K-민주주의를 주창하는 한국에서도 디지털 시대에 맞는 민주주의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인터넷 기술이 등장하던 초기와 달리, 개방과 연결의 기술이 민주주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인식들이 요즘은 적지 않습니다. AI의 등장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전망들도 많습니다. 이에 민주주의를 지키거나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드는 기술과 시민이 주도하는 시민 공간에 대한 중요성은 전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 내는 연 평균 최소 27억 달러(3조 5천억)에 해당하는 자선 기금이 있다고 합니다. EU는 호라이즌 프로그램 등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민주주의 활동을 위한 R&D와 지원금을 제공합니다.

    1️⃣ 미국의 <Democracy Fund>가 작년초에 내놓은 리포트에 따르면…

    + 민주주의를 위한 기관 자선 활동은 2017-2018년 38억~43억 달러 (연평균 19억~21억 달러) 에서 2021~2022년 54억~69억 달러 (연평균 27억~34억 달러)로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이러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관련 기금은 다른 사안에 비해 여전히 미미합니다. 연간 34억 달러라는 높은 추정치는 2022년 미국 “전체 자선 기금의 0.7%에 불과”할 것입니다.

    + 기금에 해당하는 분류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투표와 선거) 투표권, 유권자 교육 및 참여, 선거 행정, 선거 자금, 재구획
    • (포용, 형평성, 정의) 사회적 및 인종적 정의, 사회적 응집력과 양극화, 정치적 폭력과 증오 방지
    • (시민 교육 및 참여) 시민 교육 및 리더십, 공공 및 이슈 기반 참여, 인구 조사
    • (정부 효율성과 민주주의 보호) 시민권/자유와 법치주의, 정부 감독 및 개혁
    • (미디어 및 정보 생태계) 저널리즘, 미디어 정책 및 잘못된 정보/허위 정보

    2️⃣ 유럽의 민주주의 프로젝트들은 여러 지원을 받지만 특히 EU 차원의 지원을 활용하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세계적인 민주주의 열풍이 불던 2017년 무렵 마드리드에 가 보니 한국에 알려진 프로젝트들 상당수가 EU 호라이즌 프로그램을 통해 R&D 자금을 이미 수년간 확보하고 1차 마무리 단계에 들어 가 있었습니다.

    + 호라이즌 유럽은 EU가 운영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R&D) 지원 프로그램으로, 7년 단위로 예산이 배정됩니다. 차기(2027~2034년) 지원 예산금은 현재(2021~2027년)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1750억 유로, 약 244조 원)라고 합니다.
    + 두번째 기둥인 “글로벌 도전과 산업 경쟁력” 내의 “문화, 창의성, 포용적 사회” 클러스터의 첫번째 주제가 민주주의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분야는 다음과 같습니다.

    • (민주적 회복력 강화) 정치적 양극화, 포퓰리즘, 급진주의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을 분석하고,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정책 도구와 해결책을 모색합니다.
    • (미디어 자유 및 다원주의)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하고, 허위 정보(disinformation)와 외세의 정보 조작에 대응하는 연구를 지원합니다.
    • (시민 참여 확대) 특히 젊은 세대의 민주적 절차 참여를 독려하고, 시민 참여가 더 효과적으로 정책 결정에 반영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합니다.
    •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 디지털 기술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긍정적, 부정적)을 연구하고, 기술을 활용해 민주적 거버넌스를 개선하는 방안을 찾습니다.
    • (법치주의와 거버넌스) 법치주의에 기반한 제도와 정책의 투명성, 효율성,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3️⃣ 미국이든 EU든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됨에 따라 기존 민주주의 활동 외의 여러 활동들이 추가로 강조되고 있는게 특징이라고 합니다.
    양극화와 급진주의에 대한 대응, 미디어와 정보 생태계 보호, 혐오와 허위정보등에 대한 대응들이 주요하고 동시에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기술을 활용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확장하는데도 투자합니다. 관련 법제도 개선도 포함해서요.

    4️⃣ 민주주의 인프라는 우리가 함께 모여 사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가장 기본 조건 입니다. 식량을 공급하는 농업이나 에너지를 공급하는 발전소, 도로나 지하철 과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주 적은 관심과 투자가 일어나는 소셜 섹터입니다. 사실 EU처럼 정부 기관이, 미국처럼 민간 재단들이 투자하는 지역은 전세계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생각보다 민주주의 국가가 많지 않기도 합니다, 아시아는 더더욱이요.

    반면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에 투자 할려면 할 수 있는 자금 및 기술 여건과 함께,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과 기대는 높습니다. 지금까지는 분단과 정치 양극화라는 제약 때문에 실행하지 못했지만, 한국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민주주의 생태계를 만들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마주하고 있는 극단주의와 각자도생을 극복하고, 디지털 기술을 충분히 활용해 한국의 특징을 담은 민주주의 생태계를 만들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다른 국가의 시민들과 나눌 수 있게 될까요? 저는 충분히 가능한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필요성과 가급성에 관심을 가지고, 현재 조성 중인 국가 R&D와 민간 차원의 기금에서 재원을 마련하기 시작한다면요.

  • 멋진 시민들이 만들 일상의 민주주의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공동체가 무너지면, 개인들은 더욱 고립되고 무관심과 각자도생이라는 생존 전략에 갇히게 된다. 결국 사회는 혐오와 갈등, 불신과 분열에 물들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 희망은커녕, 당장 생존 경쟁이 모두의 일상을 위태롭게 만든다.

    이 글은 생태환경문화잡지 <작은것이아름답다> 284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해 왔는가

    응원봉을 쥔 시민들이 다시금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군사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들었던 화염봉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촛불로, 그리고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다채로운 빛의 향연을 선보이는 응원봉이 되기까지. 시민들의 손에 들린 상징물은 그 시대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이자 지향점을 보여주었다. 시민들은 세상이 빛과 어둠에서 빛의 향연으로 바뀌었음을, 모든 것을 압도할 만한 연대가 폭력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켜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40년 전에 대학을 다닌 뒤 평생을 한국 사회의 엘리트로 살아온 어떤 이들에게 법과 제도란 한낱 자신들 이익을 지켜주는 도구일 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나고 자란 시민들에게 법과 제도와 민주주의는 당연히 따르고 지켜야 할 규범이자 상식이었다. 청년들로 구성된 군대가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거나 소극 대응한 이유는 그들에겐 그게 상식이자 정의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갈라치기와 낙인찍기에 시달리면서도 탄핵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 포용과 공정을 요구해왔던 청년들은 광장의 맨 앞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자신들의 정체성과 연대 의식을 표현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치는 성소수자, 이동권을 요구하는 장애인, 노동 현장의 노동자, 농촌을 지키는 농민들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은 함께 다양한 현장을 함께 오가며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즉 다양성과 포용, 연대와 협력, 상식과 정의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민주주의는 함께 지켜야 할 우리의 정체성이자 광장에서 살아 숨 쉬며 실체로 살아났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이러한 시민들의 상식과 열망과 달리, 지난 정부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들은 출범하자마자 사회 구성원들을 ‘낙인’을 찍고 ‘갈라치기’했다. 장애인의 이동권 요구, 청년들의 성평등 실천,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활동을 ‘반사회 활동’으로 규정하고, 지원을 끊고, 감사와 고발로 압박했다. 

    대통령을 풍자한 고등학생의 그림이 수상하자 담당자는 문책을 받았고, 대통령을 비판한 기자와 언론사는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됐다. 연구개발(R&D) 예산 삭감과 의대 정원 정책에 대한 현장의 비판에는 실제로 입을 틀어막고 내쫓아버리는 ‘입틀막’으로 대응했다. 선거에서 국회 다수당 구성을 이루지 못하자, 국민이 선출한 국회마저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무시하더니 드디어 ‘처단’에 나섰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출범한 정권은 결국, 자신들과 그 지지자들의 자유와 권리만을 지키려 했다. ‘낙인찍기’는 ‘혐오’를 낳았고, ‘갈라치기’는 ‘배제’를 낳았지만 시민들의 저항은 멈추지 않았다. ‘입틀막’이라는 ‘억압’을 거쳐, 마침내 친위 쿠데타를 통한 실제 ‘처단’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에게 공권력은 그들을 지키는 방패이자 칼이었고, 법과 제도도 마음대로 비틀 수 있는 한낱 도구에 불과했다.

    매우 위태롭게도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한국 사회는 이미 복합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 기후 위기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고, 국제 정세는 불안정하며,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중소상공인의 줄도산은 코로나19 시기보다 더 심각하고, 지역 소멸은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노동과 교육, 산업에 큰 충격을 예견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사회적 준비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공동체가 무너지면, 개인들은 더욱 고립되고 무관심과 각자도생이라는 생존 전략에 갇히게 된다. 그 결과 사회는 혐오와 갈등, 불신과 분열에 물들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은커녕, 당장 생존 경쟁이 모두의 일상을 위태롭게 만든다.

    멋진 시민들의 탄생

    우리는 언제 ‘시민’이 되는가? 생존을 위한 각자도생에 몰입하는 개인이, 사회적 책임과 연대 의식 을 가진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 순간은 언제일까?

    복합 위기와 민주주의의 위협이 교차하던 시기, 군인들이 국회 앞에 등장하자 시민들은 곧바로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 저마다 자리에서, 광장에서, 그리고 온라인 공간에서 시민들은 분노와 염려를 나눴고, 시민의 힘이 모여 마침내 헌정 질서를 지키는 역사를 이뤄냈다. 그 과정을 통해 많은 시민들은 스스로 한 개인이 거대한 공동체에 기여하는 효능감을 확인했다.

    다양한 세대와 계층, 서로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시민들이 저마다 자리에서, 그리고 서로 손을 맞잡으며 만들어낸 힘은 곧 연대의 힘이다. 사회에서 모든 개개인 힘만으로 완전한 안전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나를 향한 존중과 연대를 경험하며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며, 나아가 그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주체로 거듭난다. 서로 존중하는 공간이자 연대의 공간인 광장에서 시민들은 공동체 일원으로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했다.

    100여 일에 걸친 시간 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에서 ‘멋진 시민’으로 태어났다. 시민 개인의 효능감과 서로를 잇는 효능감을 통해 공동체의 효능감을 느끼고, 신뢰를 바탕으로 책임감과 소속감을 가진 시민은 그 존재 자체가 마치 응원봉의 빛처럼 우리 사회를 희망으로 이끌 존재들이다. 이 시민들 한명 한명이 우리 사회가 문제 해결 능력을 회복하고, 모두를 위한 더 좋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더 많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꿈꾸는 법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광장에서 함께 만들어낸 변화의 열망과 성과는 이제 일상에서 실천할 과제가 됐다. 민주주의는 시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 학교, 직장, 마을을 비롯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연대하며, 상식과 정의를 실현하는 일상의 실천 속에서 구현된다. 

    광장에서 드러난 시민의 열망은 단순한 권력 구조의 개편이 아니라, 다양성과 포용, 연대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실제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였다. 이 요구를 실천하기 위해 시민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목소리를 모으고, 대화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지금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 경제 불평등, 사회적 갈등 같은 복합 위기는 모두가 저마다 삶에서 체감하고 있다. 서로 다른 배경과 조건을 가진 시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함께 그 문제들에 대한 공동체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력은 행정과 의회를 넘어 시민에게 더욱 분산돼야 한다. 2017년 촛불 뒤 잠시 열렸던 시민 참여, 협치, 자치의 공간은 다시 열리고 확장돼야 하며, 실제 정책과 사업으로 이어지는 과정도 제도화돼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시민사회가 함께 만드는 지속가능한 협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시민 주권이 선거와 시위와 같은 일회성 참여에서만 실현되지 않도록 다양한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 국민 발안제, 국민 소환제, 국민 투표제 같은 다양한 민주주의 장치는 여전히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시민의회나 디지털 시민참여 플랫폼 같은 여러 방식을 통해 시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실제로 참여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더 나아가 시민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기업과 기술에 대해서도 시민의 권리가 확보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 한 사람이자 유권자로서 권리가 확장되는 만큼, 소비자 권리, 노동자 권리, 주주의 권리, 글로벌 기술 혁신에 깊은 영향을 받는 디지털 사회의 시민 권리가 필요하다. 이는 기존에 존재하는 기업이나 기술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대안들을 지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대안이 없으면 시민의 권리는 제대로 발휘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미디어 환경은 오히려 극한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며 민주주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알고리즘에 왜곡된 여론은 혐오와 갈등을 확대하고,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시민들이 함께 모여 안전하게 이야기하고, 다름을 존중하며, 공동 해법을 찾는 디지털 시민 공간이 전무한 상황이다. 지금 우리에겐 ‘일상의 디지털 시민 광장’이 절실하다.

    혐오와 여론 조작에 취약한 플랫폼을 넘어,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 안전한 대화의 환경, 협력의 기반을 제공하는 디지털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 이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은 시민의 연결과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공공 자산이며, 기술과 제도에 대한 공공성과 책임성을 스스로 강하게 가져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 역시 비영리 기관이나 사회적 경제 주체들이 운영하는 것이 더욱 적합할 수 있다.

    일상의 민주주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기술을 활용해 우리는 광장에서 꿈꿨던 ‘더 많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일상에서 실현할 수 있다. 갈등이 혐오와 낙인,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연대하고, 상식과 정의를 지키며,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고 포용하며 협력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복합 위기를 모두를 위한 방식으로 함께 해결하며, 결국 모두가 함께 살고 싶은 공동체를 시민의 힘으로 만들 것이다.

    다시 민주주의 배우고 가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 공동체는 도전 받고 있다. 권위주의, 극단주의, 갈등과 혐오가 공동체를 흔들고 있으며,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경제 위기와 국가 간 갈등, 심지어 기술 혁신에도 위협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초고속 인터넷망을 전국에 설치하며, 이 지구에서 가장 발전한 산업, 민주주의, 문화적 풍요를 이뤄냈다. 국민들이 만들어낸 성취와 공식은 세계에서 부러움을 사며 따라야 할 모델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성공의 공식들이 지금은 우리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전체를 사막으로 만들고 있다. 사회, 경제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갈등과 혐오는 불신을 넘어 부정적 감정을 동반한 존재의 부정으로 발전했으며,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재난과 재해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출산율과 자살률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착취하는 현실을, 반복되고 악화되는 사회적인 재난과 자연재해는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생태계를 착취하는 현실을 반증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한번 더 많은 발전과 더 새로운 기술이 이 상황을 해결하리라 여기고 기존의 공식을 더 강화해 인간 스스로의 생태적 한계를 비롯해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생태계의 한계를 무시하고 있다. 더 효율성 있는 발전을 위해 더 뛰어난 소수의 무리가 기술을 활용해 사회를 이끄는 것이 상황을 해결하리라고 믿고 실행에 나서기도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국가가 경쟁으로 치달으면서 더 희귀한 자원을 추출하고, 더 많은 물과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며 현재의 문제를 악화하는 상황은 단기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관점도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만들어낸 공식으로 현재의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한계를 자각하고 존중하는 개인들이,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존재들의 가치와 상황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함께 연대하는 공동체를 함께 만들며 민주주의와 생태주의 관점에서 문제를 다뤄야 한다. 이는 위기 극복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사회를 연대와 안전, 신뢰와 협력, 풍요와 지속가능성에 기반을 둔 공동체로 확립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는 이미 여러 위기를 함께 극복해 왔다. 한국 사회는 시민의 힘으로 독재를 무너뜨렸고, 촛불로 정의를 세웠으며, 응원봉으로 미래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시민들의 힘으로 역사를 만들 수 있음을, 목소리를 모으고 서로 연대하며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음을 우리는 함께 경험했다. 

    우리는 다시 전환점에 섰다. 지금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공동체를 다시 구성해야 할 시기다. 희망은 우리가 나누는 일상의 대화 속에, 사소한 연대와 실천 속에 스며들어 있다. 멋진 민주주의는 멋진 시민들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진정으로 ‘멋진 민주주의’를 만들 멋진 순간을 잡았다.


    권오현 – 디지털 시민 광장 빠띠의 대표와 시빅해킹커뮤니티 코드포코리아의 오거나이저로 활동하고 있다. 연결하고 협력하는 디지털 기술과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 공공재, 평화에 기여하는 플랫폼과 컬렉티브를 만든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자유롭고 행복한 개인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공동체와 평화로운 삶과 세상을 꿈꾼다.

  • 낙인과 갈라치기, 입틀막과 처단으로부터 — 존중, 포용, 연대로 지켜낸 민주주의

    2024년 12월 3일, 국회 의사당을 보여주는 생중계 화면에 총칼을 든 군인의 모습이 등장했을때, 많은 시민들은 그 총이 곧 자신을 향할지도 모른다는 실질적인 공포를 느꼈다. 실제로 계엄군이 발표한 포고령에는 ‘처단’이라는 단어가 뚜렷이 박혀 있었다.

    이 정권이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여러 전조가 있었다. 40년 전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들인 것처럼, 그들은 출범하자마자 끊임없이 사회 구성원들을 낙인을 찍고 갈라치기 했다. 이동권을 요구한 장애인들, 성평등을 실행하는 청년들, 시민사회와 노동계, 사회적경제 영역을 ‘이기적인 집단’이거나 사회를 전복하려는 ‘반사회적 세력’으로 일치감치 규정했고, 지원을 끊고, 감사와 고발로 압박했다. 대통령을 풍자한 고등학생의 그림이 수상하자 담당자는 경고를 받아야 했고, 대통령을 비판한 기자와 언론사는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시켰다. R&D 예산 삭감과 의대 정원 정책에 대한 현장의 비판에는 ‘입틀막’으로 대응했다. 선거에서 국회 다수당 구성을 이루지 못하자, 국민이 선출한 국회마저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무시하더니 드디어 ‘처단’에 나섰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출범한 정권은 결국, 자신들과 그 지지자들의 자유와 권리만을 지키려 했다. 낙인찍기는 혐오를 낳았고, 갈라치기는 배제를 낳았지만 시민들의 저항은 멈추지 않았고, 입틀막이라는 억압을 거쳐, 마침내 친위 쿠데타를 통한 적극적인 ‘처단’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들에게 공권력은 그들을 지키는 방패이자 칼이었고, 법과 제도도 마음대로 비틀 수 있는 한낱 도구에 불과했다.

    그 폭력의 빌드업을 시민들이 최종적으로 막아냈다.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혐오에 맞서 연대하며, 법과 제도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존중하려는 집단적 의지로, 자유 민주주의의 본질을 지켜낸 시민들. 광장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연대가 필요한 순간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함께 하며 힘을 모아내며, 법이 정한 결정을 답답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순간들. 그 전에도 지난 3년간 소수자와 연대하고, 피해자와 연대하고, 내부고발자와 연대하던 순간들. 그 순간이야말로 존중, 포용, 연대의 가치가 낙인과 갈라치기와 폭력을 이겨냈고, 자유로운 구성원들이 공존하는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민주주의는 정해진 답을 찾아내는 효율적인 체제가 아니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구성원들이 서로 공감 가능하고 수용 가능한 합의를 찾아가며 공동의 가치와 답을 세워나가는 시스템이다. 이를 위한 공통 기반이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지하며, 폭력을 동반한 억압에 함께 맞서는 자세다. 존중과 포용과 연대가 우리가 지켜야 할 민주주의의 핵심 기반이다.

    다행히 이번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와 함께 그 반대의 행태를 실감했다. 낙인찍기, 갈라치기, 입틀막, 처단은 민주주의 사회가 용납할 수 없음을. 서로 다름을 견디고 존중하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함께 지킬 때에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음을 말이다. 무엇보다도 누군가 목소리를 내는 구성원을 사회에서 반사회세력과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고 혐오와 폭력을 가하며,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와 주장과 이익만을 옹호하려할 때,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대응하는 연대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핵심임을.

    권력 앞에 자유 민주주의는 한낱 허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존중과 포용, 그리고 연대. 이 세 가지를 믿는 시민들이 있을 때 그 민주주의는 구성원들에게 실체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저들과는 다른 민주주의 사회의 진짜 주인임을 증명하는 힘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기회가 주어진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멋진 순간을 멋지게 돌파했는지 스스로를 잊지 않고, 함께 멋진 사회를 상상하는 대화와 협력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 공감과 존중을 외면한 채, 공감과 존중을 기대하기: 지브리풍 그림 열풍의 역설

    지브리풍의 AI 그림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사람들은 각자 간직하던 소중한 사진을 멋진 지브리풍 그림으로 변환한 후 자랑스럽게 공유한다. 아름다운 화풍에 담긴 자신의 모습, 소중한 사람들의 모습, 소중한 순간들을 공유하며 타인의 공감을 기대했을 것이다. 마치 관광지에서 역사 유산이나 자연 유산을 가린채 셀카를 찍는 이들이 그 유산이 아니라 ‘그 유산 앞에 선 나’를 기념하듯이, 사람들은 세상 속의 자신을 기념하고 그 순간의 자신에게 다른 이들이 공감하길 바란다. 지브리풍 AI 그림을 공유하는 열광 속에는 자기 존중과 타인의 공감에 대한 갈망이 있을 테다. 소셜 미디어가 그렇듯이.

    이 열풍에 관해 샘 알트만도 트윗을 남겼다. 자신도 지브리풍 그림을 프로필에 올린 그는, 10년간 암 치료 등을 위해 초지능을 만들려 노력했지만 7년은 무시당하고 2.5년은 미움받았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지금 많은 사람들이 챗GPT로 지브리 스타일 그림을 만들며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낸다고 글을 남겼다. 이 짧은 글에는 창작자로서 겪은 고통과 외로움, 암 치료보다 프로필 이미지에 열광하는 현실에 대한 복잡한 감정, 그리고 이런 현상을 만들어낸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이 느껴진다. 그 역시 새로운 길을 개척할 때의 어려움을 겪었고, 존중과 공감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어 한 인간으로 느껴졌다.

    한편 지브리 화풍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2016년 NHK 다큐멘터리에서 AI가 그린 결과물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현했다. “AI가 그린 결과물은 실제 작업하는 사람의 고통을 전혀 모른다”, “역겹고 소름이 끼친다”, “삶 자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한 땀 한 땀 그림을 그리며 창작의 고통을 감내한 그의 작품은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고, 역설적으로 ‘지브리풍’ 이미지에 자신을 담아내는 데 열광하는 대중을 만들어낼 만큼 커다란 존중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지브리풍 그림에 열광하면서도 오픈AI가 미야자키나 지브리의 동의를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 그 사이 전세계에서 미야자키가 ‘역겹다’고 말한 AI 그림을 그의 화풍을 모방해 만들고, 심지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외쳤던 그의 화풍으로 이스라엘 군이 선전물을 만들기까지 했다. 열광의 근저에는 인간 누구나 가진 존중받고 공감받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그 한가운데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작품을 만들며 겪은 고통과 그 결과물에 대한 존중과 공감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공감과 존중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인간이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과 존중을 건너뛰고, 자신에 대한 공감과 존중만을 바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마음껏 하곤 하지만, 그 사이에 우리의 인간성이 망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해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던 작가들이 느낄 절망은 앞으로 인간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게 될까?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 화풍의 그림에 반대 의사를 밝힌다면, 법률 분쟁에 돌입하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의사를 존중하고 지금까지 생성한 그림을 다 내리게 될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터뷰에서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진 것 같다. 인간은 자신감을 잃었다”라고도 이야기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묻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마치 이런 시대가 올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이었을까? AI의 시대에 “인간성은 무엇인지”,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을 것들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어떻게 살지” 우리에게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 디지털 민주주의가 우리의 멋진 미래가 되려면

    창비주간논평에 게재한 글입니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스펙트럼 안에서

    오늘날 디지털 혁신은 플랫폼을 통한 연결, 광범위한 데이터의 축적, AI를 통한 자동화를 기반으로 한다. 이런 기술들이 낳은 과잉 생산과 과잉 서비스, 과잉 개인정보 수집·분석이 마냥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디지털 시대에 왜 민주주의는 그대로인가’라는 질문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답하기는 궁색해졌다.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새로운 연결과 축적을 만들어내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모든 시민이 목소리를 내고 더 깊은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직접 해결책을 찾아내고 실행하는 게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은 ‘디지털 민주주의’에 주목한다. 발안·숙의·결정 과정에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고 관련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대리자에게 맡겨놓을 수밖에 없었던 정치와 정부의 의사결정과정에 더 많은 시민들이 직접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시빅해커’(civic hacker)들은 해커들이 시스템을 해킹하듯이 공공데이터와 공공서비스를 필요에 맞게 고쳐 쓰거나 정부가 만들지 않는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스스로를 이같은 시빅해커로 부르는 시민들이 활동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시민들의 노력과 제도정치 및 정치인들의 노력이 만나 오늘날 디지털 민주주의는 다양하게 시도되고 발전하고 있다. 정책 제안과 청원, 예산 편성과정에서의 시민 참여가 생겨나고, 시민이 공론과 숙의로 정책 결정과정에 함께하는 민관협력이 늘어나며, 단순한 제안을 넘어 시민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거나 의제별·마을별로 활동을 펼치는 등 분권과 자치도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에 청원을 올려 공론장이 펼쳐지고 일정 인원 이상의 시민들이 동의하면 기관의 답변을 들을 수 있거나 의제가 채택되는 시스템은 불과 지난 10~20년 사이에 도입된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시빅해커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정부에 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이를 통해 공적 마스크 재고 확인 앱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처럼 사회문제를 민과 관이 함께 해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디지털 공론장을 시민의 디지털 공공재로

    현재 기술로도 국민의 정치적·정책적 선호도나 지지 여부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반영하는 시스템은 가능하다. 조례 및 법률, 헌법 개정안을 누구나 발의하고 공론장을 열어 충분한 동의를 얻으면 투표에 부칠 수도 있다. 나아가 환경정책은 A정당과 정치인을, 경제정책은 B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는 식으로 세분화된 지지도 가능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모든 정책 제안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이미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추첨제 시민의회도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면 더 많은 시민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논의에 참여할 수 있으며, 실시간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시민의 참여와 위임에 따른 보상체계를 설계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이런 모든 가능한 일들을 단순 도입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저절로 개선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변화는 건강한 ‘시민공간’(civic space)이 존재할 때 가능하지만, 현재 한국의 디지털 공간은 극단적인 주장만 부각되는 구조다. 미디어학자 이창현은 ‘사회대개혁 국회연속세미나’(2025.2.27)에서 이를 ‘여론의 역(逆)정규분포’로 설명하며, 극단적 의견이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인식되고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왜곡현상을 지적했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미얀마의 인종청소 선동에 기여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엑스(구 트위터)의 알고리즘을 조정해 자신의 게시물이 천배 더 노출되도록 만들었다. 한국은 대통령이 유튜브 알고리즘의 늪에 빠져 계엄을 선포하는 데 이르렀다. 더 많은 조회수를 확보해 높은 수익을 올리려는 플랫폼과 특정 개인이 사유화한 플랫폼이 우리의 사유와 공론장을 장악한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이 프로그램화된 봇(bot)에 의해 생성되는 시대가 되면서, 디지털 공간에서 접하는 콘텐츠와 참여의 상당수가 비인간이 만든 것이 되고 있다. 생성형 AI와 딥페이크 기술은 해외에서는 정치적 왜곡에, 국내에서는 성범죄에 악용되며 많은 사람이 온라인 공간에서 침묵하거나 떠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디지털 기술이 가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연결의 기술은 기존에 고립되었던 소수자들을 결집해 안전감과 힘을 부여했으며 더 다양한 주장과 근거가 서로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축적의 기술은 다양한 지식과 경험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특히 AI로 대표되는 자동화의 기술은 인류가 그 어느 시절에도 도달하지 못한 진정한 해방의 시대를 만들 가능성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을 드러내 대화의 공간을 열어야 한다. 아직 주목받지 못한 소수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고 이를 위해 행동하는 시민들에게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혐오와 차별, 허위 조작정보에 강력하게 대응하면서 서로 존중하고 포용하는 공론장을 만드는 일을 더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는 그러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제도 및 기술 개발에 나서야만 실현할 수 있는 일이다.

    필자가 일하는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에서는 시민들이 대화하고 행동하는 디지털 광장을 만들고 있다. 디지털 시민광장에서 다양한 의견을 가진 이들이 용기 내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동시에 혐오와 차별에 대해선 강력하게 대응한다. 의도적으로 공론장에 다양성·공정성·포용성(DEI,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을 더 강화하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시민들이 직접 허위정보를 판별하고 팩트체크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소와 함께 2년째 주관 중인 ‘한국의 대화’ 온·오프라인 프로그램도 공론장의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을 좌우가 아니라 다양한 축과 그룹으로 분류하고, 그 안에서도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모아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게 하여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취지에서 기획된 자리다. 시빅해킹 커뮤니티 ‘코드포코리아’(Code for Korea)의 설립으로 이어진 공적 마스크 앱 개발 사례처럼 시민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사회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도 한다. 혐오와 갈등, 무관심과 각자도생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에도 존중과 포용, 협력과 신뢰를 믿는 시민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시민들을 모으고 연결하고, 대화하고 행동하는 디지털 광장을 만드는 게 디지털 민주주의의 목표다.

    연결하고 협력하는 시민의 힘

    경제와 글로벌 위기, 기후위기와 인구감소, 무엇보다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행복하지 않은 사회.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더욱 심각해져가는데, 극단적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정치세력과 미디어 시스템이 실제 현실까지도 왜곡하며 우리 사회의 신뢰 기반과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시대를 지켜보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헌법과 법률을 지키지 않는 정부, 정당, 정치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응원봉을 들며 광장에 나가고, 법률과 헌법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린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강력하게 신뢰하기 때문일까? 아마 법률과 헌법 시스템이 우리 공동체의 최후 보루라는 절박함이 더 클 것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금붙이를 들고 나오고, 정치가 어려우면 촛불과 응원봉을 들고 나오는 ‘나라를 걱정하는 시민들’. 이런 평범한 시민들의 권한을 국가적 중대사를 비롯해 일상의 여러 사안들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썩 만족스럽진 않아도 현재 헌법이 그어놓은 테두리를 지키면서 시민들은 묻는다. 왜 당신들은 이 테두리를 지키지 않냐고, 왜 주권자인 국민에게 권한이 없냐고.

    권오현 /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이사장

    2025.3.18. ⓒ창비주간논평

  • 광장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현하자

    이 글은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마을정책이슈브리프에 게재한 글입니다.

    시위를 축제로 만들며 응원봉을 흔드는 시민들이, 군이 국회를 침탈하도록 지시하고도 이를 부정하거나 옹호하는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과 공존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독재에 맞서 들었던 화염병은 정의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촛불로, 그리고 다양성을 상징하는 응원봉으로 변화해 왔다. 권력자들은 1987년 확립된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부정하고 군사력으로 흔들려 하지만, 시민들은 정의를 넘어 포용과 다양성을 지향하는 미래의 민주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추운 겨울, 광장에서 밤을 지새운 시민들은 결국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광장에서 표출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지속되어야 하며, 더욱 중요한 과제로 자리 잡아야 한다.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권력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지역과 나누며 시민들에게 더 많은 참여와 통제의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시민들이 주기적으로 공동체가 위기에 닥쳤을때 광장에 모여 의사를 표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논의하고 실현하는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마을에서 변화의 시작을

    그 변화의 출발점은 마을이다. 마을은 시민들이 자신의 생활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대화를 나누며,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정치뿐 아니라 경제, 국제, 기후 위기가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곳이기도 하다.

    경제 위기와 함께 자연 재해가 심각해지는 요즘,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청년과 노인들이 서로 돌볼 수 있는 곳도 마을이며, 줄줄이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의 삶의 터전도 마을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경제 구조 속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고민하는 미래 세대 역시 마을에서 성장한다. 복합 위기가 일상을 압박하는 현실 속에서, 시민들은 삶과 죽음, 성장과 안전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데, 그 해결은 마을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여러 마을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성북구의 초등학생들은 스스로 우유곽을 모아 재활용하는 캠페인을 벌이며, 구의원을 대상으로 관련 조례 제정을 요구해 답변을 받아냈다. 강북구와 광진구에서는 주민들이 정기적으로 공론장을 열어 마을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외의 여러 지역에서 탄핵 이후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하는 모임도 생겨나고 있다. 관악구에서는 청년들이 한 동네의 등기부등본을 모두 모아 공개 데이터로 정리했다. 다른 마을에서도 휠체어나 유모차가 다닐 수 있는 매장을 조사해 데이터로 만들거나, 침수 예방을 위한 빗물받이 점검 활동을 시민들이 스스로 펼치고 있다.

    무작위 추첨으로 구성한 시민의회는 마을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지역 의원들과 협력해 시민들이 직접 마을의 주요 의제를 논의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미래 비전을 함께 수립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민 플랫폼을 활용하면, 바쁜 청년층도 더 쉽게 참여할 수 있다. 디지털 격차 문제를 걱정하는 시선도 있지만, 더 많은 참여를 촉진함으로써 일상의 민주주의를 확장할 수 있다.

    일상에서 다양성과 포용을 기반으로 한 실질적인 변화를

    변화는 비전과 해결책을 다수가 공유하고 실천할 때 가능하다. 2024년 광장에서 표출된 시민의 열망은 단순한 권력 구조 개편을 넘어, 다양성과 포용을 기반으로 한 실질적인 변화를 향하고 있다. 광장에서 모인 시민들은 결국 일상으로 돌아온다. 이제 우리는 그 열망을 일상에서 스스로 실천해야 한다. 마을에서 모여 목소리를 내고,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자.

    한편, 경제·사회·정치·국제·기후 위기의 최전선 또한 마을이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복합 위기가 현실이 된 지금, 해결책 역시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다양한 가족 구성원, 직업, 경제적 배경을 가진 시민들이 모인 마을에서부터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개개인의 각자도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공동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과제다. 

  •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열었다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화염병이 촛불로, 촛불이 응원봉으로 변하기까지 40년이 지났다. 격렬한 저항의 시대를 지나 평화로운 시위가 자리 잡았고, 이는 다양한 시민 참여로 발전했다. 이 모두가 시민이 만들어낸 성과이자 역사이다.

    6공화국의 과제와 한계 :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국면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시민이 광장에서 계엄군을 설득하고 탄핵을 이뤄내는 광경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시민이 서로 따뜻한 커피와 식사를 나누고, 아이들과 함께 온 이들을 위해 버스를 대절하며, K-팝 음악에 맞춰 춤추고 구호를 외치는 광경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광경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내재화한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준다. 이는 또한 권위주의 시대를 경험한 지도자들이 오랜 준비 끝에 추진한 계엄조차 실패로 돌아가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만을 경험한 젊은 세대는 계엄 자체를 이해하지도 용납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6공화국의 성적표는 실망스럽다. 6공화국의 대통령들 가운데 3명이 탄핵 소추를 당했고, 이 중 2명은 탄핵이 인용되었으며, 2명은 감옥에 갔다. 가족이 감옥에 간 사례도 2건이나 된다.

    군인, 정치인, 기업인, 변호사, 검사라는 대통령의 출신을 보면 우리 사회가 여전히 40년 전에 있었던 과거의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87년 이전을 살아온 정치, 경제, 관료 엘리트 집단 간 갈등은 진보와 보수라는 구도로 포장되어 국민을 갈라치지만, 이는 국민의 일상과는 무관하다. 게다가 제왕적 대통령의 자의적 권력 행사는 사회, 경제, 안보,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요인으로까지 증명되었다.

    시민 중심 민주주의로의 전환 : 시민의회

    민주주의의 여정에서 1987년에 독재자의 권력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게 넘어간 것은 커다란 변화이자 성취였다. 그러나 이제는 민주주의를 내재화한 국민에게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한 단계 더 발전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2016년 첫 번째 탄핵의 상징이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었다면, 2024년 두 번째 탄핵의 상징은 다채로운 응원봉이었다. 이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여러 역경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힘을 믿고 다양성을 포용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제 국민이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방향을 제도화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행정과 의회의 권력은 시민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분산되어야 한다. 8년 전 촛불 시위 이후 잠시 열렸던 시민 참여와 협력의 공간을 다시 확대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정권 교체로 중단되었던 정부, 지자체, 마을, 시민사회 등 사회 곳곳에서 시민 공론장과 공론화, 시민 참여 플랫폼과 민관 협치의 장을 다시 열고 더욱 성숙시켜야 한다.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대화하는 단계를 넘어, 이를 정책과 사업으로 연결하는 과정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론화 사업과 같은 프로그램의 높은 비용과 형식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역 및 의제별로 상시 운영되는 시민의회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구 구성을 반영해 무작위로 선정된 시민들이 주요 현안과 미래 과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숙의하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시민의회는 다양한 방식과 기간으로 운영되며, 행정과 의회를 견제하고 협력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시민의회를 통해 공개하는 정보와 숙의를 통해 발견한 다양한 관점은 우리 사회를 더욱 성숙시키는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더불어 계엄과 탄핵의 순간에 국민이 가졌던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군인들이 국회의 창을 깨고 본회의장으로 난입한 순간 어떤 국민은 “왜 국민이 스스로 계엄을 해제할 수 없는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본회의장에서 탄핵을 의결하려던 때 나타나지 않는 국민의힘 의원을 보며 “왜 국민은 저들에게만 의결을 맡겨야 하는가? 그리고 왜 국민의 뜻에 반하는 국회의원을 지켜만 봐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국회의 순간이 끝나고 헌재의 시간이 왔다고 모두가 이야기하던 순간에 “왜 헌재의 결정을 다시 기다려야 하며 국민 투표로 결정하지 않는가?”라는 의문도 생긴다. 이 의문의 답도 우리는 다시 찾아야 한다.

    다채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과제

    또한, 사회를 분열시키는 플랫폼과 알고리즘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은 시민이 계엄을 막아내고 탄핵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대한민국을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첫 국가로 만들었다. 허위 정보와 혐오 발언을 확산하는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미얀마에서 소수민족의 대학살을 초래하기도 했다.

    혐오와 여론 조작에 취약한 플랫폼이 분노를 증폭하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상황을 막으면서도, 시민이 서로 연결되어 협력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사회 현안에 대해 시민의 목소리를 모으고, 대화의 장을 여는 공간, 시민이 이슈를 모으고 팩트체크를 하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안전한 대화가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고 영향력 있는 시민 광장으로서의 플랫폼이 절실하다.

    사회 통합을 위한 노력도 필수적이다. ‘국민’과 ‘비국민’을 제멋대로 규정하고 갈라치는 세력을 단호히 처단하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대화하고 협력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어차피 우리가 직면한 사회, 경제, 국제, 기후 위기와 같은 거대한 문제는 시민의 참여와 협력 없이는 극복할 수 없다. 혐오와 갈등, 무관심과 각자도생을 극복하고, 신뢰와 협력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시민의 힘으로 우리 사회에 축적해야 한다.

    시민이 만드는 민주주의의 미래

    촛불이 흑백이라면, 응원봉은 다채롭다. 민주주의를 내재화하고 미래를 살아가는 시민의 열망 속에서, 우리는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기회를 맞이했다. 한편, 지금은 비인간과 결합한 신인류를 상상하는 기술 엘리트들의 세상을 막고, 존중과 포용, 신뢰와 협력으로 이루어진 인류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판가름하는 문명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이 역사적 순간에 우리는 응원봉을 든 시민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며, 동시에 시민 스스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이 기회는 발전한 자본주의, 제도화된 민주주의, 자의적인 법치주의의 한계를 경험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시민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다. 연결하고 협력하는 시민이 나서서 멋진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자.

  • 2024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 나타난 빠띠 타운홀을 만나보세요

    세계 영화인에게 사랑받는 영화 축제인 부산국제영화제, 2023년에 이어 ‘2024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관객프로그래머 선정 투표’도 빠띠 타운홀과 함께 했는데요. 올해에는 영화제 현장에서도 빠띠 타운홀을 활용했습니다.

    영화제는 단순한 영화 상영을 넘어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강화했는데요. 약 30여 개의 프로그램별로 빠띠 타운홀을 활용해 감독, 배우에게 질문을 남기거나, 만족도 조사등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 이후 가장 성공적인 행사로 평가받았습니다. 총 관객 수 14만 5238명, 좌석 점유율 약 84%를 기록하며 지난해보다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는데요. 특히 이는 300편 이상을 상영하던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도 역대 최고의 좌석 점유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합니다. 뜻깊은 자리에 빠띠 타운홀이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코로나19가 끝난게 이제서야 실감이 나는듯, 연말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는데요. 빠띠 타운홀과 함께 하면 더 재미있는 이벤트와 투표를 만들수 있답니다. 빠띠 타운홀 사용 뿐만 아니라, 이벤트나 투표 기획도 지원하고 있으니 언제든지 문의주셔요.

    빠띠 타운홀 문의하기

  • 디지털 시민 공간에서의 시민 권력과 민주주의

    2024년 광주에서 열린 제14회 세계인권도시포럼의 “시민사회 활성화” 세션에서 공유한 발제문입니다.

    디지털 시민 공간 속 디지털 시민

    인터넷이 사회에 등장하면서 우리의 생활 공간은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확장된 공간은 시간의 차이와 공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사람들을 연결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결은 새로운 가치를 낳았고 새로운 문제도 함께 낳았습니다만, 디지털 기술은 이제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사회의 기본 양식이 되었습니다.

    코로나19 초기, 저를 포함한 서로 일면식이 없었던 10여명의 시민 개발자(시빅 해커)들은 온라인으로만 만나 정부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의 공개를 요청했습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만큼이나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고, 시민들이 역할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가진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침 마스크 대란의 해결책이 필요했던 정부는 일면식이 없던 시민 개발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함께 약국의 마스크 재고 현황을 공개하는 데이터를 공개하기로 결정합니다. 데이터 공개를 요청했던 시민 개발자들은 정부와 함께 데이터 공개 작업에 참여하는 동시에, 여러 개발자 커뮤니티에 마스크 앱 개발에 동참할 것을 요청합니다. 하루만에 200-300명의 개발자들이 텔레그램 채널 하나에 모여서 함께 3일만에 마스크 앱을 개발합니다. 우리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었고 중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으며, 마스크 앱을 개발하기 전에는 만난 적이 없었으며, 앱을 개발하는 동안에도 메신저와 문서로만 소통하였습니다. 이렇게 사회 문제를 자신이 가진 기술로 해결하는 시민을 시빅 해커 혹은 시민 개발자라고 부릅니다.

    빠띠가 만드는 시민 활동 플랫폼인 캠페인즈에는 다양한 주제의 캠페인이 올라옵니다. 기후위기와 관련한 이슈부터 정치 개혁 이슈, 동물권 이슈 등 다양한 이슈들은 다른 시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서명, 청원, 목소리 모으기, 지도 만들기 등의 캠페인으로 모입니다. 이 캠페인들은 공개되면 몇천명부터 많게는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해 목소리를 모읍니다. 얼마 전 기후 헌법 소원을 통해 “정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판결을 끌어낸 청소년기후행동은 5,289명의 목소리를 모아 국민참여의견서를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에 따르면 1948년생부터 2016년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전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었고, 그 중에서 90%는 10-30대였다고 합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이전과는 다른 규모의 다른 구성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시민들을 우리는 디지털 캠페이너라고 부릅니다.

    디지털 캠페인은 허위정보를 검증하는데에도 활용됩니다. 시민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과 관련한 주장들과 데이터를 함께 모아 정리하기도 했고,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주장들을 함께 검증해서 팩트체크 컨텐츠를 만들기도 합니다. 인구 감소에 대한 주장,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주장, 물가 인상 폭, 디지털 성범죄, 재난안전문자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서로 협력해서 근거를 찾고 검증하는 시민을 우리는 시민 팩트체커라고 부릅니다. 시민 팩트체커를 모으고 활동을 지원하며 필요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빠띠는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으로부터 팩트체크사업 지원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작년과 올해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빠띠는 이 질문을 가지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들이 1:1로 만나 대화를 하는 한국의 대화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입니다. 2023년에는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곤 하는는 10개의 질문을 준비하고, 이에 응답한 700여명의 답변 하나 하나를 별로 만들어 서로의 답변 차이를 거리로 계산해 은하로 그려보았습니다. 이들 중 신청자 50여명을 모셔서 오프라인에서 1:1로 대화하는 시간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동성간의 혼인에 동의하는 20대 남성이 이에 의문을 가진 60대 여성과 함께 만나 2시간 가량 대화를 나눈 후에, 의견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아니 아예 가족들과도 대화를 하지 않는 시기에 이러한 시민 대화의 공간 자체가 소중하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서로 대화하는 공간을 만드는 시민들을 우리는 시민 대화 기획자 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때로는 온라인에서 때로는 오프라인에서 시민들이 이슈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거나 다양한 의견을 접하도록 돕고,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돕습니다. 더 나아가 이 의견이 제도 개선, 정책이나 사업 제안에 영향을 끼치도록 정리하기도 합니다.

    빠띠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가능해진 새로운 시민 활동을 정의하고 이에 필요한 여러 활동들을 지원하고 필요한 플랫폼을 만드는 사회적 협동조합입니다. 시민 활동 플랫폼 캠페인즈, 시민 대화 플랫폼 데모스X, 시민 데이터 플랫폼 데이터트러스트를 통해 디지털 캠페이너, 이슈 크리에이터, 뉴스 코멘터, 시민 팩트체커, 시민회의 기획자, 시민대화 기획자, 시민 패널, 공익 데이터 활동가, 시민 개발자 등등 다양한 활동을 정의하고 확장하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 활동들을 더욱 더 연결하고 협력이 일어나도록 시티즌패스 라는 멤버십을 만들었고, 여기서 멤버들은 디지털 시민으로서 다양한 교육과 모임, 협업을 나누며 역량을 키우고 활동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시민 권력과 민주주의

    연결된 시민들이 함께 협력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요? 

    우선 당면한 사회, 경제, 국제, 기후 위기는 연결된 시민의 힘, 즉 시민 권력으로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책임있게 하도록 만드는 힘도 시민에게서 나옵니다. 커다란 자본과 기술 독점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고 사회적 자본과 새로운 기술을 위기 극복에 활용하기 위해서도 시민의 권력이 필요합니다. 역량이 뛰어난 전문가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기술이 위기를 가중시키기보다 위기를 극복하는데 활용되도록 만드는 일은 자동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시민의 권한과 시민의 역량을 확대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통제 가능하도록 만들때 공공성에 기여하도록 만들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시민 권력은 시민 스스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각자의 목소리와 권리를 확장하는 것만큼, 서로 다른 주장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태도를 가진 시민들이 필요합니다. 각자도생을 넘어 서로 협력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자산을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각자가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사회와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민하는 시민으로 시민들 스스로 나아갈때에 우리 사회를 좋은 공동체로 만들수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당면한 사회, 경제, 국제,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서로 존중하고 포용하며, 신뢰하고 협력하며,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과제는 시민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더 많은 권한과 역량, 즉 시민 권/력을 확대함으로써만 이 과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민 참여, 협력, 자치를 확대하고 시민 역량, 공간, 자산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시민의 역량을 부정하고 권한을 제약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류가 공동체를 만들어온 이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누구나 발언하고 모두가 연결되는 인터넷 기술이 시민의 역할을 불신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인식은, 오히려 더욱 더 자동화 기술 즉 인공지능의 역할에 더욱  주목하도록 만드는 역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 스스로가 다른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신뢰하기보단 불신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시민 스스로의 역할을 제한하는데 동의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극성 소비자’, 정치인을 무작정 숭배하는 ‘팬’, 분노와 갈등에 쉽게 휩쓸리는 ‘팔로워’로 시민을 폄하하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부와 기업과 기술이어야 한다는 위험한 인식은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불과 20-30년이 채 안 된 디지털 기술과 시민의 결합이 사회 문제의 근본 원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짧은 기간을 넘어 앞으로도 시민들을 더욱 연결하고 협력을 증진하며 시민 권/력을 확대함으로써 보통의 시민들이 모두가 같이 협력하는 것만이 위기 극복과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길입니다. 민주주의가 일상 속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노력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고, 빠띠가 디지털 시민의 다양한 활동과 정체성을 정의하고 쉽게 쓸 수 있는 모두의 플랫폼을 만드는 이유입니다.

  • 1.5도 계산기, 곰BTI, ESG 유형 분석 테스트까지 계산기와 유형 분석 테스트는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1.5°C 라이프스타일 계산기‘를 사용해 보셨나요? 녹색전환연구소와 빠띠가 함께 만든 이 계산기는 공개 직후 많은 시민이 자신의 탄소발자국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공개 직후에 운영자들이 서버에 문제가 생겼나 의심할 정도로 많이 사용해 주셨는데요. 이 계산기는 각 문항별로 계산식을 적용하고, 더하기, 빼기, 곱하기 등의 로직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계산한 후, 탄소 다이어트 방법까지 안내해줍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믹스온은 사용자 입력폼 기능을 새롭게 개발했습니다.

    믹스온은 관리자가 구글 폼 같은 외부 솔루션을 사용하지 않고도 바로 사용자 입력 폼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단답형, 장문형, 객관식, 파일 업로드, 이메일 입력 등 다양한 유형의 문항을 사용해 협업 문의, 참가 신청, 지원서 제출 등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본 기능에 계산식과 로직, 결과 페이지를 추가하면 계산기가 됩니다. 이렇게 개발한 것이 녹색전환연구소의 ‘1.5°C 계산기’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탄소발자국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라이프스타일별 탄소 배출량을 알 수 있다면, 탄소 감축 실천이 더 구체적일 수 있습니다. 국외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있었고, 국내에서는 녹색전환연구소와 빠띠가 함께 이 계산기를 선보였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연간 탄소배출량을 알고 싶어했음을 오픈 직후 높은 트래픽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계산기, 그리고 유형 테스트

    사용자 입력 폼은 유형 테스트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유형 테스트는 질문에 답변하면 다음 질문으로 이어지며, 단계를 반복하며 최종 결과로 이어집니다. 최근 믹스온으로 이 유형 테스트를 여러 개 만들었습니다.

    청소년 고민나눔 플랫폼 힐링톡톡은 청소년들에게 고민나눔 멘토링을 제공하는 서비스인데요. 내 마음 상태를 돌아보는 마음씨앗 TEST와 자신의 성격과 닮은 최애곰을 찾아주는 곰BTI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 서비스들도 믹스온의 기본 사용자 입력폼을 업그레이드해 계산기와 유형 테스트를 개발해서 구현하였습니다.

    시민들이 자신의 관심 분야와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ESG 유형을 확인하는 테스트는 어떨까요? 아임인 부산은 부산의 지역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과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통합 플랫폼입니다. 올해 빠띠는 SK E&S,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언더독스가 주도하는 해당 사업의 플랫폼 개발과 운영을 맡았는데요. 시민들이 자신의 ESG 유형을 확인하고, 참여 기업과도 매칭하는 ESG 유형 분석 테스트를 만들어 공개하였습니다.

    누구나 쉽게 계산기와 유형 테스트를 만들고 효과적으로 관리하도록

    계산기와 유형 테스트는 시민 참여를 늘리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을 기존 사이트에 추가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거나 개발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별도의 서비스 사용도 가능하지만, 비용이 높고 사이트와 통합되지 않으며 데이터 활용이 제한적입니다. 관리도 복잡하고 비용이 증가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늘어나는 디지털 기술, 누구나 적정한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빠띠의 믹스온 사업부는 사용자 입력 폼을 기반으로 계산기, 유형 테스트 등을 한 곳에서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열심히 연구, 개발 중입니다.

    시민 참여를 높이고 활동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계산기와 유형 테스트를 고민 중이신가요? 지금 믹스온에 상담을 요청해 보세요.

    [ 믹스온으로 재미있는 사용자 입력 폼을 만들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