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1. 디지털 기술과 공공성

  • 적정 디지털 전환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공동선언문

    :  사회연대경제의 작고 유연하며 적정한 디지털 전환을 위하여

    우리는 디지털 기술이 효율과 성장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연대경제 조직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이자, 시민의 권한을 확장하는 공공의 자산으로 바라봅니다. 또한 우리는 디지털 기술을 공동체가 가진 가치와 원칙, 생태적 한계 속에서 활용해야 함을 믿습니다. 이에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시민사회와 사회연대경제조직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며, 보다 적정하고, 지속가능하며, 사람을 중심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가치와 목표를 공유하며 상호협력할 것을 선언합니다.

    1️⃣ 하나 : 적정 디지털 기술의 지향

    우리는 시민사회와 사회연대경제 주체들이 기술의 객체가 아니라, 기술을 스스로 선택하고 활용하는 주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를 위해 디지털 기술은 크고 복잡하기보다는. <작고 유연하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공동체의 가치와 원칙, 생태적 한계 속에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둘 : 창조적 소통과 함께 성장

    적정 디지털 기술은 이용자와 개발자 간 창조적인 소통 속에서 완성됩니다. 적정 디지털 기술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현장과 삶의 질문들 속에서 자랍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용 주체와 소통>하기를 노력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적정 디지털 기술을 함께 탐색하고, 연구하며 실험하고자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더 나은 기술을 축적하고, 우리 자신 또한 <함께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3️⃣ 셋 : 기술과 사람, 공동체의 조화

    기술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활용할 수 있지만, 그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거나, 유지되도록 하는 것은 그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협력, 해석과 실행의 역량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적정 디지털 기술을 통해 파괴적 혁신이 아닌, <정의로운 전환>, <조화로운 전환>이 되도록, 기술을 만들고 활용하는 이들의 인문사회적 성찰, 사유체계를 함께 고민하고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4️⃣ 넷 : 함께 만드는 민주적이고 지속가능한 미래 사회

    적정 디지털 기술은 정치적 억압, 사회문화적 배제, 그리고 기술을 독점하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포용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들과 더 많이 연결되고, 더 깊이 연대하며, 더 민주적이고 회복력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상상과 사유가 멈추지 않도록,적정 디지털 기술의 철학과 실천에 공감하는 주체들과 만남과 <협력의 장>을 계속 확장하고, 더 나은 사회와 기술을 새롭게 감각하고 사유할 수 있는 <미래세대>를 발굴해 나갈 것입니다.

    오늘의 이 공동선언은 우리가 지향하는 디지털 시민사회와 사회연대경제의 미래상에 대한 약속입니다. 우리는 이 여정을 함께 걸으며, 적정 디지털 기술과 따뜻한 관계로 이어진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함께 상상하고 실현하겠습니다.

    📌이러한 전환의 흐름이 더욱 힘을 얻기 위해서는 당신의 지지와 응원이 필요합니다.

    🙌 이 캠페인에 참여해
    “적정한 디지털 전환 생태계를 만드는 생태계를 지지하고, 선언에 동참합니다”
    라는 뜻을 함께 모아주세요.

    https://campaigns.do/campaigns/1636


    최신 기술을 모두가 꼭 도입해야 할까요? 기술 혁신은 언제나 사회의 규제와 부딪히기만 할까요? 세상이 가진 생태적 한계를 이후에 이룰꺼라 믿는 기술 혁신의 과제로 넘겨야 할까요?

    지난주 금요일에 사회연대경제에서 웹에이전시 작업 및 협동조합 지원 역할을 하는 기관 9군데와 빠띠 UFOfactory가 업무협약을 1차로 맺었습니다. MOU를 신청해주신 여러 기관들과도 추가로 맺을 예정인데요.

    함께 사회연대경제의 적정 디지털 전환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기로 약속했습니다. AI 전환이 중요한 시대라곤 하지만 사회 대부분의 조직들은 기본적인 디지털 전환조차 못 이룬 곳이 많은 상황입니다. 아마도 디지털 전환이 너무 크고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곤 하는데요.

    홈페이지를 만들고, 공동으로 작업할 온라인 공간을 만들고, 이메일과 SNS를 관리하고, 이해관계자의 정보를 관리하고, 우리만의 데이터도 구축하는 등. 기본적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많은 작은 조직들에겐 이는 여전히 커다란 장벽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장벽을 넘어야 AI도 적용할 수 있음에도 말이죠.

    누구나 할 수 있는 디지털 전환이면서, 조직과 사회와 생태에 적정한 수준의 디지털 전환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게 <사회연대경제다움>이란 생각으로 함께 공동선언문도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기술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이면서, 시민 권리를 확장하는 공동 자산으로 기능하도록 사회연대경제의 디지털 플레이어들이 역할하도록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 멋진 시민들이 만들 일상의 민주주의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공동체가 무너지면, 개인들은 더욱 고립되고 무관심과 각자도생이라는 생존 전략에 갇히게 된다. 결국 사회는 혐오와 갈등, 불신과 분열에 물들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 희망은커녕, 당장 생존 경쟁이 모두의 일상을 위태롭게 만든다.

    이 글은 생태환경문화잡지 <작은것이아름답다> 284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해 왔는가

    응원봉을 쥔 시민들이 다시금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군사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들었던 화염봉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촛불로, 그리고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다채로운 빛의 향연을 선보이는 응원봉이 되기까지. 시민들의 손에 들린 상징물은 그 시대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이자 지향점을 보여주었다. 시민들은 세상이 빛과 어둠에서 빛의 향연으로 바뀌었음을, 모든 것을 압도할 만한 연대가 폭력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켜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40년 전에 대학을 다닌 뒤 평생을 한국 사회의 엘리트로 살아온 어떤 이들에게 법과 제도란 한낱 자신들 이익을 지켜주는 도구일 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나고 자란 시민들에게 법과 제도와 민주주의는 당연히 따르고 지켜야 할 규범이자 상식이었다. 청년들로 구성된 군대가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거나 소극 대응한 이유는 그들에겐 그게 상식이자 정의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갈라치기와 낙인찍기에 시달리면서도 탄핵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 포용과 공정을 요구해왔던 청년들은 광장의 맨 앞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자신들의 정체성과 연대 의식을 표현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치는 성소수자, 이동권을 요구하는 장애인, 노동 현장의 노동자, 농촌을 지키는 농민들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은 함께 다양한 현장을 함께 오가며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즉 다양성과 포용, 연대와 협력, 상식과 정의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민주주의는 함께 지켜야 할 우리의 정체성이자 광장에서 살아 숨 쉬며 실체로 살아났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이러한 시민들의 상식과 열망과 달리, 지난 정부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들은 출범하자마자 사회 구성원들을 ‘낙인’을 찍고 ‘갈라치기’했다. 장애인의 이동권 요구, 청년들의 성평등 실천,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활동을 ‘반사회 활동’으로 규정하고, 지원을 끊고, 감사와 고발로 압박했다. 

    대통령을 풍자한 고등학생의 그림이 수상하자 담당자는 문책을 받았고, 대통령을 비판한 기자와 언론사는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됐다. 연구개발(R&D) 예산 삭감과 의대 정원 정책에 대한 현장의 비판에는 실제로 입을 틀어막고 내쫓아버리는 ‘입틀막’으로 대응했다. 선거에서 국회 다수당 구성을 이루지 못하자, 국민이 선출한 국회마저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무시하더니 드디어 ‘처단’에 나섰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출범한 정권은 결국, 자신들과 그 지지자들의 자유와 권리만을 지키려 했다. ‘낙인찍기’는 ‘혐오’를 낳았고, ‘갈라치기’는 ‘배제’를 낳았지만 시민들의 저항은 멈추지 않았다. ‘입틀막’이라는 ‘억압’을 거쳐, 마침내 친위 쿠데타를 통한 실제 ‘처단’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에게 공권력은 그들을 지키는 방패이자 칼이었고, 법과 제도도 마음대로 비틀 수 있는 한낱 도구에 불과했다.

    매우 위태롭게도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한국 사회는 이미 복합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 기후 위기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고, 국제 정세는 불안정하며,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중소상공인의 줄도산은 코로나19 시기보다 더 심각하고, 지역 소멸은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노동과 교육, 산업에 큰 충격을 예견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사회적 준비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공동체가 무너지면, 개인들은 더욱 고립되고 무관심과 각자도생이라는 생존 전략에 갇히게 된다. 그 결과 사회는 혐오와 갈등, 불신과 분열에 물들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은커녕, 당장 생존 경쟁이 모두의 일상을 위태롭게 만든다.

    멋진 시민들의 탄생

    우리는 언제 ‘시민’이 되는가? 생존을 위한 각자도생에 몰입하는 개인이, 사회적 책임과 연대 의식 을 가진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 순간은 언제일까?

    복합 위기와 민주주의의 위협이 교차하던 시기, 군인들이 국회 앞에 등장하자 시민들은 곧바로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 저마다 자리에서, 광장에서, 그리고 온라인 공간에서 시민들은 분노와 염려를 나눴고, 시민의 힘이 모여 마침내 헌정 질서를 지키는 역사를 이뤄냈다. 그 과정을 통해 많은 시민들은 스스로 한 개인이 거대한 공동체에 기여하는 효능감을 확인했다.

    다양한 세대와 계층, 서로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시민들이 저마다 자리에서, 그리고 서로 손을 맞잡으며 만들어낸 힘은 곧 연대의 힘이다. 사회에서 모든 개개인 힘만으로 완전한 안전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나를 향한 존중과 연대를 경험하며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며, 나아가 그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주체로 거듭난다. 서로 존중하는 공간이자 연대의 공간인 광장에서 시민들은 공동체 일원으로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했다.

    100여 일에 걸친 시간 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에서 ‘멋진 시민’으로 태어났다. 시민 개인의 효능감과 서로를 잇는 효능감을 통해 공동체의 효능감을 느끼고, 신뢰를 바탕으로 책임감과 소속감을 가진 시민은 그 존재 자체가 마치 응원봉의 빛처럼 우리 사회를 희망으로 이끌 존재들이다. 이 시민들 한명 한명이 우리 사회가 문제 해결 능력을 회복하고, 모두를 위한 더 좋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더 많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꿈꾸는 법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광장에서 함께 만들어낸 변화의 열망과 성과는 이제 일상에서 실천할 과제가 됐다. 민주주의는 시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 학교, 직장, 마을을 비롯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연대하며, 상식과 정의를 실현하는 일상의 실천 속에서 구현된다. 

    광장에서 드러난 시민의 열망은 단순한 권력 구조의 개편이 아니라, 다양성과 포용, 연대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실제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였다. 이 요구를 실천하기 위해 시민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목소리를 모으고, 대화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지금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 경제 불평등, 사회적 갈등 같은 복합 위기는 모두가 저마다 삶에서 체감하고 있다. 서로 다른 배경과 조건을 가진 시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함께 그 문제들에 대한 공동체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력은 행정과 의회를 넘어 시민에게 더욱 분산돼야 한다. 2017년 촛불 뒤 잠시 열렸던 시민 참여, 협치, 자치의 공간은 다시 열리고 확장돼야 하며, 실제 정책과 사업으로 이어지는 과정도 제도화돼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시민사회가 함께 만드는 지속가능한 협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시민 주권이 선거와 시위와 같은 일회성 참여에서만 실현되지 않도록 다양한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 국민 발안제, 국민 소환제, 국민 투표제 같은 다양한 민주주의 장치는 여전히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시민의회나 디지털 시민참여 플랫폼 같은 여러 방식을 통해 시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실제로 참여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더 나아가 시민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기업과 기술에 대해서도 시민의 권리가 확보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 한 사람이자 유권자로서 권리가 확장되는 만큼, 소비자 권리, 노동자 권리, 주주의 권리, 글로벌 기술 혁신에 깊은 영향을 받는 디지털 사회의 시민 권리가 필요하다. 이는 기존에 존재하는 기업이나 기술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대안들을 지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대안이 없으면 시민의 권리는 제대로 발휘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미디어 환경은 오히려 극한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며 민주주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알고리즘에 왜곡된 여론은 혐오와 갈등을 확대하고,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시민들이 함께 모여 안전하게 이야기하고, 다름을 존중하며, 공동 해법을 찾는 디지털 시민 공간이 전무한 상황이다. 지금 우리에겐 ‘일상의 디지털 시민 광장’이 절실하다.

    혐오와 여론 조작에 취약한 플랫폼을 넘어,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 안전한 대화의 환경, 협력의 기반을 제공하는 디지털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 이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은 시민의 연결과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공공 자산이며, 기술과 제도에 대한 공공성과 책임성을 스스로 강하게 가져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 역시 비영리 기관이나 사회적 경제 주체들이 운영하는 것이 더욱 적합할 수 있다.

    일상의 민주주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기술을 활용해 우리는 광장에서 꿈꿨던 ‘더 많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일상에서 실현할 수 있다. 갈등이 혐오와 낙인,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연대하고, 상식과 정의를 지키며,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고 포용하며 협력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복합 위기를 모두를 위한 방식으로 함께 해결하며, 결국 모두가 함께 살고 싶은 공동체를 시민의 힘으로 만들 것이다.

    다시 민주주의 배우고 가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 공동체는 도전 받고 있다. 권위주의, 극단주의, 갈등과 혐오가 공동체를 흔들고 있으며,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경제 위기와 국가 간 갈등, 심지어 기술 혁신에도 위협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초고속 인터넷망을 전국에 설치하며, 이 지구에서 가장 발전한 산업, 민주주의, 문화적 풍요를 이뤄냈다. 국민들이 만들어낸 성취와 공식은 세계에서 부러움을 사며 따라야 할 모델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성공의 공식들이 지금은 우리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전체를 사막으로 만들고 있다. 사회, 경제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갈등과 혐오는 불신을 넘어 부정적 감정을 동반한 존재의 부정으로 발전했으며,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재난과 재해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출산율과 자살률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착취하는 현실을, 반복되고 악화되는 사회적인 재난과 자연재해는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생태계를 착취하는 현실을 반증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한번 더 많은 발전과 더 새로운 기술이 이 상황을 해결하리라 여기고 기존의 공식을 더 강화해 인간 스스로의 생태적 한계를 비롯해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생태계의 한계를 무시하고 있다. 더 효율성 있는 발전을 위해 더 뛰어난 소수의 무리가 기술을 활용해 사회를 이끄는 것이 상황을 해결하리라고 믿고 실행에 나서기도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국가가 경쟁으로 치달으면서 더 희귀한 자원을 추출하고, 더 많은 물과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며 현재의 문제를 악화하는 상황은 단기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관점도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만들어낸 공식으로 현재의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한계를 자각하고 존중하는 개인들이,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존재들의 가치와 상황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함께 연대하는 공동체를 함께 만들며 민주주의와 생태주의 관점에서 문제를 다뤄야 한다. 이는 위기 극복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사회를 연대와 안전, 신뢰와 협력, 풍요와 지속가능성에 기반을 둔 공동체로 확립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는 이미 여러 위기를 함께 극복해 왔다. 한국 사회는 시민의 힘으로 독재를 무너뜨렸고, 촛불로 정의를 세웠으며, 응원봉으로 미래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시민들의 힘으로 역사를 만들 수 있음을, 목소리를 모으고 서로 연대하며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음을 우리는 함께 경험했다. 

    우리는 다시 전환점에 섰다. 지금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공동체를 다시 구성해야 할 시기다. 희망은 우리가 나누는 일상의 대화 속에, 사소한 연대와 실천 속에 스며들어 있다. 멋진 민주주의는 멋진 시민들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진정으로 ‘멋진 민주주의’를 만들 멋진 순간을 잡았다.


    권오현 – 디지털 시민 광장 빠띠의 대표와 시빅해킹커뮤니티 코드포코리아의 오거나이저로 활동하고 있다. 연결하고 협력하는 디지털 기술과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 공공재, 평화에 기여하는 플랫폼과 컬렉티브를 만든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자유롭고 행복한 개인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공동체와 평화로운 삶과 세상을 꿈꾼다.

  • 캠페인즈 그랜드오픈 참가자 분들께 보내는 메일

    안녕하세요

    소중한 시간을 내어 캠페인즈 그랜드오픈을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캠페인즈를 아끼고 지지하는 분들을 모시는 자리이면서, 서로서로 알아가시는 자리를 꼭 만들고 싶었는데 님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다양한 분들이 다양한 역할로 함께 캠페인즈를 만들어 나가는 중임을 발견하셨을런지요.

    사실 캠페인즈는 제가 다음커뮤니케이션즈에서 동료들과 함께 만들었던 아고라와 블로거뉴스를 다시 살리고 싶어서 시작한 서비스입니다. 인터넷 서비스가 한참 성장하던 초기 시절,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 기술이 우리 사회가 이야기하고 협력하는 방식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던 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이고 또 함께 토론하며 답을 찾아나가는 미디어와 커뮤니티 플랫폼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에겐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었던 청원 플랫폼이자 토론 플랫폼이던 아고라가 그러했고, 미디어의 민주화를 내세우며 모든 시민들이 기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블로거뉴스(이후 다음뷰)가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이 서비스들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디지털 사회라고 하기엔 저에게 우리 사회의 디지털 미디어 현실은 초창기보다 못한 상태로 보입니다.

    플랫폼 서비스는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라 차일피일 기회만 엿보던 차에, 2016년 탄핵 국면이 벌어졌습니다. 시민들이 무엇이라도 할 수 있고, 가능하다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며 빠띠에서는 급히 디지털 캠페인 위주의 서비스를 내어놓았습니다. 그때부터 한동안 캠페인즈는 시민사회단체의 캠페인 솔루션으로 역할했습니다. 그리고 올 해 투자금을 모아 반년 가량 준비를 통해 캠페인즈 플랫폼을 그랜드 오픈 했습니다. 개발과 운영을 담당하는 팀원도 10명으로 과감하게 늘렸습니다. 분열과 갈등이 만연하는 시대에 포용과 존중을 바탕으로 시민들이 목소리를 모으고 함께 대화하는, 시민들의 공익 활동 플랫폼이자 토론 플랫폼을 지향하며 만들었습니다. 시민의 집단 활동과 집단 지성이 모이는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고 싶고, 서로 존중하고 포용하고 협력하는 디지털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하나의 청원에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실명인증을 하며 참여했던 아고라란 서비스는 한국에서 사라지고 없습니다. 인터넷 곳곳에 설치한 추천 버튼에서 하루 1300만 뷰 이상을 일으키며 시민 누구나 이슈를 다루는 기자가 되는 플랫폼을 지향하던 블로거뉴스(다음뷰)란 서비스도 없어졌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빠띠는 시민 활동의 증진을 목표로 하는 디지털 플랫폼은 시민으로부터 운영 기반이 형성되어야 지속가능하겠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는 기업이나 정부가 시민활동플랫폼과 시민토론플랫폼을 운영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빠띠가 비영리+플랫폼+협동조합을 정체성으로 삼은 까닭입니다.

    시민들이 플랫폼 서비스의 이용자이거나, 플랫폼을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너머에 사회적 가치 구현을 목표로 하는 플랫폼들이 균형 있게 존재해야 합니다. 특히 사회 변화를 위한 시민들의 힘을 확대하는 서비스들이 필요합니다. 실제로도 세계 최대의 인터넷 청원⬝캠페인 플랫폼인 change.org는 초기 빌게이츠를 비롯한 다양한 재단으로부터 투자와 지원을 받아 성장하였고, 현재는 전세계에서 10만명이 넘는 후원회원이 이 활동을 지지하며 시민의 힘을 모아가고 있습니다. 빠띠는 한국 사회에서 캠페인즈를 시민들의 힘으로 키우고 운영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캠페인즈의 후원회원 모집을 준비하면 자주 듣는 조언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나 시민이란 말을 없애는게 어떨까요”란 말입니다. 저는 거꾸로 생각이 듭니다. 비록 현실의 벽이 높을지라도 ‘민주주의’가 금기어처럼 되는 시기이기에 더 열심히 만들어야겠다고요.

    그렇기에 가까운 분들에게 먼저,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대화를 나누는 멋진 시민 활동 플랫폼을 만드는 주역으로 참여해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정기 후원회원 3천 명이 모이면 캠페인즈는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시민의 공간이 지켜질 수 있도록 캠페인즈의 후원회원이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3년 9월 18일 

    권오현 드림

    캠페인즈 후원회원 가입하기

  • 챗GPT는 우리의 노동을 줄여줄까요? 줄인다면 얼마나 줄여줄까요?

    챗GPT 광풍이 부네요. 저는 가입만 하고 아직 써 보진 않았습니다. 쓰지 않은 까닭은 아직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광범위한 정보를 압축해서 잘 정리한다는데, 지금 저는 요약된 정보보다는. 다양한 이슈별로 어떤 주장이나 대안들이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직접 자신의 이야길 하는 사람들이 알고 싶거든요. 찾아보는 맛이랄까, 또 내가 원전을 찾아 내 식으로 이해하면서 느끼는 맛이랄까가 지금은 중요하다 보니 아직 챗GPT를 쓸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챗GPT는 사람이 던진 질문과 가까운 패턴의 문장들을 다시 생성해서 그럴싸하게 배열하는 기술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어로 된 문장들을 어디서 가져왔을까를 생각했을때 내 질문에 매칭해서 돌려주는 값이 어떤 선입견과 잘못된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지도 불분명하기에 아직 사용을 꺼리게 됩니다.

    무튼 그럼에도 극찬의 메시지들이 끊임없이 들립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단연 “생산성의 눈부신 향상”입니다. 몇일이 걸렸던 일을 몇분만에 해 냈다는 식인데요. 확실히 보조하는 인공지능(assistive ai)로 중요한 역할을 하겠단 기대감이 저도 듭니다. 하지만 몇가지 질문이 따라 생깁니다.

    챗GPT를 통해 정말로 우리의 노동시간이 줄어들까요? 벌써부터 어떻게 써야 잘 쓸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글과 강의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돌이켜봐도 생산성을 높여준다는 기술들은 대체로 내가 모르던 기술을 하나 더 배우기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고, 결국 그 기술이 현장에서 쓰이는 경우는 대체로 드문데다가, 전반적으로 노동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 요건이 늘어나게 만드는 후에, 더욱 더 최신기술을 능숙하게 다루는 노동자가 되어야만 전반적으론 줄어들지 않은 노동시간에 종사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SNS, 뉴스레터, 톡방, 디지털 마케팅, 디자인, 영상 등등. 챗GPT는 기존에 쏟아져나왔던 기술과 달리 정말로 우리 노동시간을 줄여줄까요?

    더 무서운 것은, 지금 내가 요구받던 일, 즉 내 업무 범위에 속하는 일의 본질이 지금 내가 챗GPT를 통해 간단히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면. 나에게 이 일을 준 사람이나 조직이 앞으로도 나에게 이 일을 요구하게 될까요? 나같은 사람 10명이 하던 일을 한 사람의 일꺼리조차 되지 않게 되는 것이 지금 이 일을 하는 나에게 좋은 일인가 싶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는 생산성이 올라가겠지만요.

    결국 생산성이 높아졌을때 그 이익을 누리기 위해선 그 생산성이 높아지는 수단을 스스로 보유해야 합니다. “내 일을 이만큼이나 단축시켜줬어”라고 열광하는 분들 중에 앞으로 일자리 걱정을 해야 할 분들이 많아질 것 같은데요. 챗GPT를 비롯한 신기술은 우리의 노동을 정말 줄여줄까요? 아니, 결국 아예 없애버리지는 않을까요? 우리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기술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려면 잘 쓰는 것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시민의 기술(Civic Tech)로 만드는 디지털 세상, 코드포코리아

    이 글은 사단법인 코드에 기고한 글입니다.

    부모로서든 동년배로서든 혹은 시민으로서든 인간으로서든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강하게 퍼지기 시작한 시점을, TV화면을 통해 세월호가 가라 앉는 장면을 지켜 보기만 해야 했던 때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행동이 커다란 임팩트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가만히 있기에는 스스로가 부끄럽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던 한 명, 한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각자가 가진 기술로 더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오도록 이끌어 냈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사람들이 집 안에 갇혀버렸을 때, 공공의 역할과 정책적 판단 하나 하나가 중요해진 시기이기도 하지만,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시민들은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마자 확진자의 동선을 비롯한 코로나 현황 데이터를 동료 시민들이 더 쉽게 볼 수 있도록 개발한 시민 개발자들은 전세계에서 나타났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위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정확한 정보 제공을 위해 정보 공개를 서두르고 일일 브리핑을 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다면, 사회 곳곳의 시민들에게 다양한 채널과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시민 개발자들이 함께 했다.

    공적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비롯한 코로나19 관련 데이터 개방을 이끌어낸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도 유사한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정부가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을 해결하는 동안 집 안에서 가만히 기다기 보다는, 판데믹을 겪는 당사자이자 동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할 일을 찾아 함께 해결하기 위해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은 출발했다. 정부는 정확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제공하고,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시민들과의 채널은 현장의 시민들이 직접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민과 관의 협업 체계에 대한 믿음 또한 바탕에 두고 있다. 주로 공적 마스크 재고 현황을 보여주는 지도 서비스가 만들어졌지만, 한 고등학생 개발자는 음성으로 내 주변의 마스크 재고 현황을 검색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공적 마스크 데이터 개방을 정부만의 프로젝트로 진행했다면 아마 우리는 음성 인식 서비스를 만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과 정부는 불과 일주일만에 공적 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공개하고 앱을 보급했다

    이웃이나 자신, 더 나아가 공익을 위해서 행동에 나서는 시민의 등장과 활약은 우리 사회가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는 시점에 놓치지 않아야 할 핵심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코로나19 극복을 넘어서 사회의 디지털 전환을 이뤄내겠다는 한국판 뉴딜은 이 핵심을 놓치고 있다. 급격히 줄어드는 일자리로 인한 실업의 충격을 1차적으로 막아보려는 의도를 담은 디지털 뉴딜 정책임을 이해하지만, 정책의 바탕에 디지털 정책은 인프라 구축과 신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 활성화 정책이란 인식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데이터는 ‘원유’라는 표현과 함께 ‘산업의 주요 자원’으로서의 데이터를 정부 주도하에 일방적으로 모으고 개방하는데 집중하는 경향 역시 발견된다. 정부의 역할을 디지털 전환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디지털 전환의 방향이 산업의 육성과 인재의 양성에 두는 방식은 오랫동안 우리 정부가 익숙하게 활용해온 성공 공식이지만,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글로벌 경제가 작동하던 기존 방식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회 각계의 주장을 놓치고 있다.

    한국판 디지털 뉴딜에 시민의 역할은 없다

    코드포코리아를 통해 공적 마스크 데이터 개방을 제안하고 앱 개발에 참여하고, 개인 안심번호의 제안과 개발을 진행하면서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혁신이 시민에게 이미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다. “시민 참여는 중요합니다”라는 당연한 선언이 아니라, 시민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며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는 경험에서 나오는 확신이다. 정부의 지원이나 사회의 지지가 있고 없고와 무관하게 내 문제와 내 친구의 문제,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의 문제를 기술로 다뤄보려는 시민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독점 자본이 닫힌 기술로 다수의 시민 사회를 압도하는 시기, 그러나 여전히 300명 중 한두명만이 코딩을 할 줄 알기에 기술에 대한 허들이 높아지는 시기에 열린 기술로 사회의 디지털 공공재를 만들어내는 시민으로서의 개발자가 만들어내고 지켜내는 시민의 기술은 사회의 공공성을 확보하는데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고 디지털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기업이 ‘소비자를 위해’ 질 좋고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만들려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한’이란 지향을 넘어, ‘국민에 의한, 국민의’라는 지향을 향해야 한다. 국민을 민관협력의 대상이자 주요 문제 해결의 핵심 참여자로 바라볼 때에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국민을 디지털 전환의 핵심 당사자이자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주체로 바라볼때 ‘국민의’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중요한 정책에 활용하는 기술과 데이터를 개방하고, 시민들이 사회의 여러 인프라를 직접 들여다보고 개선하고 만들어낼 수 있도록 시민 기술을 발전시키는 방안을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지금 우리는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 시민과 시민의 디지털 주권의 개념을 확립하고, 공익 목적의 데이터의 공적 소유 확대와 개방형 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확대하며, 시민의 기술과 데이터 역량을 강화하고, 민관 협력 채널의 다변화 및 시민들이 제안하고 실험하는 정책 실험 공간을 확대하는 등 민주주의 원칙에 기반한 디지털 사회의 구축을 시민들이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의 디지털 주권에 기반한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은 공적 마스크 데이터 개방과 앱 개발을 마친 후에 여러 차례의 논의를 거쳐 코드포코리아로 다시 출발했다. 한국에서 기술을 가진 시민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내가 가진 기술로 함께 해결해보려는 시민들이 한데 모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학생이 청소년 정치 참여 확대 방안을 이야기하고,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모임을 주최하며, 직장인이 매일 매일 쓰레기를 줄이는 방안을 논의한다. 개발을 모르는 시민 누구나 쉽게 캠페인을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엔지니어가 고민하고, 정부가 공개한 데이터나 개발한 웹사이트의 문제점을 찾아내 공무원에게 전달한다. 산업재해가 일어나는 사업장 정보를 확인하고 PDF로 공개되는 문서를 데이터로 공개해달라고 요청하는 동시에 PDF로부터 데이터를 읽어내 깃헙에 csv 형식으로 공개한다. 그리고 수기입장시에 개인 휴대전화번호가 노출되는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함께 찾아내자는 정부 제안을 받고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개발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이제 곧 1년이 되는 코드포코리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평생 해야 할 놀이터 하나를 발견한 기분으로 즐겁게 참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민 기술의 확대가 우리가 맞이하게 될 디지털 사회가 더 민주적으로 움직이고, 보편적으로 접근 가능한 디지털 공공재를 더 확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막연하지만 엄청난 예감과 함께 하고 있다.

    2020년을 코로나19의 해가 아니라, 기술 혁신을 통해 풍요롭지만 지속가능하고, 자유롭지만 협력적인 새로운 시대를 열기 시작한 한 해로 기억되게 만들 수 있을까? 그건 시민이자, 개발자이자 전문가이기도 한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시민 주도로 이뤄지는 디지털 전환의 조각 중 하나인 코드포코리아에 함께 만들어갈 시민들을 초대드리고 싶다.

  • 디지털 경제의 사회적 전환과, 사회적 경제의 디지털 전환

    이 글은 사회적경제 정책포커스 2020년 12월 ‘한국판 뉴딜과 사회적 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2030년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20세기 최고 경제학자는 ‘여가’라고 답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1930년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란 강연에서, 대공황이 한창이고 파시즘도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100년 뒤의 인류가 “정치인들이 경제 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긴축 재정을 펼치는 등 파멸을 초래하는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서구의 생활수준은 4배로 높아지고, 주당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에게 뉴딜로 익숙한 케인즈의 100년 전 전망과는 달리,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경제 발전의 과실을 함께 누리며 늘어난 여가 시간을 고민하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 세대는 2050년 인공지능이 인류를 넘어서는 특이점을 거쳐 인류의 대다수가 직장을 잃으리라고 전망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기후위기가 인류의 파멸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인터넷이 발전할수록 혐오와 허위조작정보가 만연하고, 국가의 경제 발전과 무관하게 불평등과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다고 느낀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도 플랫폼 노동 혹은 불안정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5.2일, 하루 8.22시간인데 반해 월평균 소득은 152만원에 불과했다. 아마존과 같은 플랫폼 기업들의 수익과 가치, 영향력은 코로나19로 인해서 더 확장됐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에서 창고의 물품을 분류하고, 배송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감염의 위험과 무리한 노동 환경 속에서 질병에 걸리고 생명을 잃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마찬가지로 벌어지는 일이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시화 된 기후위기, 심화되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대전환을 이루고자 정부는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그리고 안전망 강화가 핵심인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 중 ‘데이터 댐’을 살펴보면 정부는 데이터를 수집, 가공, 거래,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데이터를 국가 산업의 원천 자원으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데이터 댐’ 구축과 관련해 주로 제시되는 정책은 공공 데이터 개방, 데이터 플랫폼 확대, 데이터 관련 청년 공공일자리 활용 방안이며, 민간의 데이터 활용이 용이하도록 개인정보 등의 여러 규제를 해소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을 통해 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동안 디지털 역량이 부족한 세대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와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 활용도를 높이는 내용을 포함한 직업교육과 평생교육과 같은 디지털 포용 정책도 함께 추진 중이다.

    디지털 뉴딜을 포함하는 한국판 뉴딜이 2050년을 가리키는 위기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현존하는 위기를 극복하려는 거대한 전환의 전략임을 고려한다면,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전제로 하는 전략이 국민들이 느끼는 위기를 극복하는데 충분한 것인지, 국민들 개개인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데이터 댐 구축을 통해 정부가 보유한 공공데이터를 모아 공개하면 민간의 데이터 산업이 자연스럽게 활성화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차치하더라도,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D.N.A.)에 투자하고 규제를 완화해 관련 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대전환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디지털 전환을 충분히 체화하고 있지 못한 국민들에게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교육을 확대하는 것이 빈곤에 처한 노인 세대가 심화된 생존 위기를 극복하는데 충분한 전략 또한 아니다. 정부가 말하는 것과 같이 디지털 뉴딜은 공익을 강화하고 국민들이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가 더 깊고 넓게 한국판 뉴딜의 여러 분야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시민참여와 사회적경제가 빠진 인프라 중심의 디지털 뉴딜
    출처: 2020.5.7.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 『한국판 뉴딜』 추진방향.

    디지털경제의 사회적 전환과 사회적경제의 역할

    플랫폼경제와 사회적경제

    현재의 플랫폼 산업은 태생적으로 독점을 지향한다. 플랫폼 상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가치도 독점하려 하고, 경쟁 우위를 위해 데이터와 기술의 독점도 추구한다. 이런 독점적 지위와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한다. 영향력과 독점이 심화될수록 이해관계자는 급증하고, 사회 규제들과 맞닥뜨리는 경우도 늘어난다. 하지만 의사결정 구조는 대규모 투자를 가능하게 한 투자자들의 이해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효율성 증대와 투자를 통해 다수에게 편익을 제공함으로써 공익을 증진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가치와 기술의 독점, 불투명성과 폐쇄성, 투자자의 이익이 공익보다 우선시되는 의사결정 등을 목도하게 된다. 

    반면 사회적경제조직들은 협동과 연대, 그리고 공공성에 기초한 사회적 가치 환원을 목표로 한다. 규모와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의미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지향한다. 또한 독점보다는 사회의 여러 이해관계자나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공유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계를 구성하는데 가치를 두며, 조직을 공동으로 소유하거나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독려하는 의사결정구조를 가진다. 사회적경제조직들의 이러한 성격과 지향점은 플랫폼산업의 독점적 성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플랫폼경제의 대안으로서든 보완재로서든 사회적경제가 가진 특징들을 플랫폼경제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플랫폼 협동조합’ 혹은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란 이름으로 전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돌봄이나 가사 노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플랫폼을 구축해서 서비스를 하거나, 프리랜서들이 일거리 플랫폼을 스스로 구축한다. 혹은 플랫폼 개발과 마케팅 전문성을 가진 프랜차이즈 기업과 지역의 드라이버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이 또 다른 연대체로서의 협동조합을 구성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주요 배달앱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과 노동조합들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협약을 맺었다. 필연적으로 다수가 참여해 성장해나가는 플랫폼경제에서 단순 이용자의 지위를 넘어 이해관계자로서 소유와 이윤 배분, 의사결정 참여는 필수적인 것이다. 플랫폼 기업이 플랫폼으로서 가진 장점을 발휘하면서 이와 연관된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기여와 공공성을 지향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경제의 기본 원칙과 경험들이 플랫폼경제에도 적용돼야 한다.

    또한 독점을 지향하는 거대 기업들만 경쟁하는 플랫폼경제의 생태계가 보다 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공존하는 생태계로 변모할 수도 있다. 배달앱은 왜 1, 2위 중에서만 사용해야 할까? 내가 주문을 할 때, 배달 수수료가 적은 곳을 고를 수도 있지만, 주변의 이웃들에게 무료 급식을 하는 가게라든지, 쓰레기를 적극적으로 배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가게들만 모은 배달앱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수는 있어도, 충분히 있지 않을까?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디지털 전환의 경제 영역 곳곳에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앱을 만들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플랫폼경제 생태계가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를 위해 거대 플랫폼 기업이 독점해 생성한 데이터들을 어떤 기업이나 국민이든 사용할 수 있는 공공데이터로 제공하는 것을 국가의 역할로 고려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협동과 연대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 기업들도 디지털 서비스를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각자의 필요나 가치관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해 제공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공공앱을 직접 만들어 거대 플랫폼 기업과 경쟁하는 것보다는, 플랫폼경제가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건강한 생태계로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디딤돌을 제공하는 다른 의미의 ‘플랫폼’ 정부가 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데이터와 사회적경제

    ‘디지털 뉴딜이 곧 데이터 댐’이라는 데이터 정책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데이터 댐 정책은 정부가 주요 산업의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주도적으로 모아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디지털 전환을 국가의 중요 기간산업으로 설정하고, 인공지능 등 4차 산업 육성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충하겠다는 관점이 문제는 아니며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데이터가 가지는 가치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본래 공공데이터 개방은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국민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참여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는 열린정부운동으로부터 출발했다. 모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된 데이터는 정부-국민 간 신뢰의 기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신뢰를 통해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다양한 기관들과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신뢰는 혐오와 불신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 소중한 자원이다. 기후위기, 경제위기뿐 아니라 코로나19로 닥친 여러 위기를 국민 모두가 함께 해결하는 데 신뢰와 신뢰에 기반한 협력은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정부는 코로나19 초기 상황부터 개방성을 기조로 정보를 적극 공개했다. 국민들의 불안을 줄임으로써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방역에 동참하는데 기여했다. 더 나아가 마스크 품귀 현상이 발생하자 정부와 시민(시빅해커)이 협력을 통해 공적 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활용해 모든 이들이 주변의 마스크 현황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공공앱을 함께 만들었다. 데이터를 통해 국민과 정부 사이의 신뢰를 형성하고, 국민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주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광화문1번가를 통한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의 공공데이터 공개 요청 제안과 정책화 결과
    출처: 광화문1번가 홈페이지

    데이터 댐의 수요자를 시민 혹은 사회적경제로 확대해야 할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할 때 즈음 전국의 복지 관련 기관과 대구의 시민 사회, 혹은 사회적경제는 대구지역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긴급 지원을 진행하는 동안 중복 지원이나 필요한 물품 구입 과정 도중에 일어난 혼란 등 지원과 자원 운용상의 데이터를 미리 파악하거나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실제로 소방서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구조하는 비율보다 시민들이 서로 구조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직접 공공자원을 활용해 위기상황에서 문제를 각자의 처지에 맞게 해결하는 모델이 자리 잡아야 한다. 물론 이 말이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부정하는 말로 해석돼서는 곤란하다. 국가와 시민이 협력하는 거버넌스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대구에서 급증한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하려던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조직들의 노력들이 앞으로 이어질 위기에서 더 빛을 발하고 효과를 높이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와 플랫폼이 평소 마련돼 있어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뉴딜과 데이터 댐에서는 시민이 주도하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기반으로서 데이터의 생성과 활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데이터의 주된 수요자로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를 자산으로 볼 것인지, 노동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남아 있다. 디지털 뉴딜을 통해 모으고 축적하는 데이터의 상당 부분은 특정 개인과 연관된 행위가 일어나야만 생기는 데이터다. 의료서비스를 중심으로 디지털 뉴딜의 장점을 설명하는 정부의 설명에서 사용되는 데이터도 개인의 병력이나 의료서비스 이용내역 같은 개인과 연관된 정보다. 개인의 행위를 통해서만 발생하는 데이터는 노동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들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 활용 방식에 대한 결정권, 그리고 데이터를 통해 창출되는 가치에 대한 보상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나와 관련된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고,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내가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범위는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제공한 데이터를 통해서 발생한 가치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사회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국민들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더 나아가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 사회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디지털 디바이스 사용 교육보다는 데이터의 활용 역량과 스스로 데이터와 관련한 권한을 지켜내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디지털 뉴딜을 추진함에 있어 시민을 서비스의 수용자로 보는 관점을 넘어 자신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적경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직접 본인들의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시민들의 데이터 역량을 강화하고 데이터를 투명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역할을 맡을 필요도 있다.


    시민사회와 노동자합의 디지털 뉴딜 대응 정책을 제안하는 “시민을 위한 공공데이터 정책 토론회”가 2020년 8월 21일 열렸다. 사진은 온라인 중계화면 갈무리. 
    출처: 공공운수노조 유튜브 채널

    알고리즘, 혹은 인공지능과 사회적경제

    그리고 알고리즘이다. ‘기계의 판단은 중립적이다‘라는 일반적인 주장과 달리 알고리즘은 설계자의 관점과 가치관을 반영한다. 딥러닝으로 알려진 인공지능은 학습을 위해 마련된 데이터셋에 설계자의 관점과 가치관이 반영된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적용과 활용, 더 나아가 생성에 사회적경제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계가 사진을 읽어서 고양이인지 개인지를 판단하는 수준을 넘어서, 알고리즘은 어느 지역이 범죄에 더 취약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어떤 사람을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등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 무수히 만나게 될 인공지능의 자동화된 로직이 공공에 기여하는지, 특정한 편견이 반영되지 않았는지 반드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로직이 적용되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사회적경제조직들이 검증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적경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반영한 알고리즘이 정부와 사회에 정착하도록 알고리즘을 직접 생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야말로 앞으로는 누가 만드는 알고리즘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경쟁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무엇이 더 나은 결과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화된 알고리즘은 자연스럽게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을 대체함으로써 얻게 되는 부가가치가 해당 업종의 종사자, 혹은 사회에 환원된다면 이는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해당 업종의 종사자 혹은 대체된 노동자들이 알고리즘을 스스로 소유할 때 그 가치를 누릴 가능성이 높고, 공익과 사회적 가치를 본래 목표로 가진 사회적경제조직들이 그것을 사회에 직접 환원할 가능성이 높다.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적극 활용해 효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생성되는 가치를 구성원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사회적경제가 가진 구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과 플랫폼 등을 디지털 공공재로 만드는 것이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보장하는데 더욱 적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사회적경제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사회적 가치 실현이 중요한 분야나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의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사회적경제가 운영하도록 구성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전환: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역량 강화에 관해

    플랫폼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경제 영역에서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 더 나아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적경제가 나섰을 때 기대되는 효과는 크다. 또한 디지털과 데이터는 산업 육성의 기반일 뿐만 아니라 사회혁신의 기반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연대와 협동,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설립된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디지털 뉴딜을 비롯한 한국판 뉴딜이 사회적 뉴딜이 되도록 분야별로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시민 참여를 넘어 시민 주도의 뉴딜이 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적경제의 역할이 확대된다면 기술 혁신을 통한 가치 창출이 실제로 공익을 증진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구조적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경제는 디지털 전환에 나서야 한다. 현재 개별 사회적경제조직들은 디지털 전환에 대한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으나,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사회적경제 연대체 차원에서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며, 정부 역시 이를 위한 기반과 지원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디지털 전환 및 플랫폼 협동조합 설립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고 지원하거나, 디지털 전환에 특화된 개발자들의 협동조합을 육성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플랫폼 협동조합의 성공 사례인 업앤고(UP&GO)는 뉴욕의 이주여성들이 만든 가사, 청소도우미 서비스로 디지털 개발 협동조합 코랩(colab.coop)의 지원으로 플랫폼을 구축했으며, 빈곤퇴치 활동을 해온 지역재단과 협동조합 설립 지원기관, 지역 은행의 사회공헌기금의 체계적인 지원을 받았다. 스타트쿱(start.coop)은 플랫폼 협동조합을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로 선발, 교육, 멘토링, 법률회계서비스 지원을 비롯해서 시드머니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도 일반 벤처투자사 위주로 이뤄지는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투자 및 엑시트 환경 일변도에서 벗어나, 디지털 분야 사회적경제조직들에 적합한 투자, 성장모델을 만들고 지금부터라도 숙성시켜야 한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들이 조직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민주적으로 건강한 거버넌스를 형성하고 운영하는 기술 또한 디지털 전환의 중요한 요소이다. 조합을 구성하는 조합원들과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사회적경제에 더 많은 시민들이 관여할 수 있게 하려면 사회적경제의 본래적 가치인 민주적 거버넌스 실현을 위해 민주주의 기술을 더 예리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사회적협동조합 빠띠는 앞으로도 이를 위한 디지털 기술을 발전시키고 필요한 플랫폼을 만드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조직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비롯해 생산자 및 소비자 조합원과의 거버넌스 운영, 그리고 서비스 이용자 또는 수혜자와의 소통에 이르기까지 사회적경제조직들의 연대와 협력에 기초한 민주적 운영을 디지털화하고, 그 장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디지털경제로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증진시키면서, 기후와 경제위기를 해결하는데 사회적경제의 장점에 주목하고 이를 디지털 뉴딜 전반에 적극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데이터를 산업 발전의 원자재로 바라보는 관점을 넘어서 신뢰와 협력의 기반, 사회혁신의 기반이자 시민들의 주도적인 참여의 기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 전환의 부작용에 대한 임시방편으로 사회안전망과 디지털포용 정책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사회안전망 강화와 디지털포용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도록 정책 설계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이 정책의 구성 과정에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사회적경제와 시민사회에 부족한 디지털 역량과 플랫폼 및 기술 자산이 확보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결론

    우리는 뉴딜에 막대한 세금을 들여서 무엇을 전환하고, 어디에 도달하려는 것일까? 기후위기,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강화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 있어 디지털 혁신은 함께 집중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디지털 혁신이 사회적 가치와 공익을 중심에 두기 위해서는 ‘디지털 혁신의 사회적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디지털 혁신의 사회적 전환은 시민 주도의 민주적 전환, 사회적경제의 주요 역할 수행과 직결돼 있을 것이다. 100여년 전 케인즈가 ‘여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 예견한 2030년에 우리는 현존하는 기후위기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구현하는 새로운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까? 시민들과 사회적경제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현장에서 발 벗고 나섰듯이, 한국판 뉴딜의 현장 곳곳에서도 협동과 연대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주도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 모두에게 불로소득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직장에 가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수도권으로 홀로 이사를 했다. 그때 나는 창문이 냉장고로 가려져 있지만 대신 세탁기가 옵션인 신축 원룸을 구했다. 경기도권이라 가격이 저렴했지만, 해당 원룸의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님은 500만원을 지인에게 빌려야 했다 (그리고 몇년 후에 부모님 두분이 돌아가신 후에 아직 그 빚이 남아 있었단 걸 뒤늦게 알고 상속 포기와 상관없이 갚았다). 학비가 저렴한 대학을 다녔기에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갚아야할 얼마간의 학자금 대출이 있었고. 매달 15만원의 적금을 들었고,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드는게 좋다는 조언을 듣고 종신보험을 매달 18만원 가량 냈다. 그리고 매달 월세는 30만원. 150여 만원을 조금 넘는 신입사원의 월급을 받으며 수도권에서 처음 생활한지 1년. 1년 적금을 깬 내 손에 쥐어지는 180여만원의 돈을 보면서 나는 평생 수도권에서는 집을 사지 않거나 사지 못하겠단 생각을 했다.

    운이 좋아서 어떤 직장이든 원하는 곳을 다녔다. 내가 다녔던 직장들은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아침에 지정한 시간에 지정한 장소에 나가서 지정한 시간까지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은 이해하기가 늘 힘들었다. 내 인생의 대부분 특히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내 맘대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이, 1년에 휴일을 제외하고는 2주 언저리의 휴가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특히 두번째 직장이었던 Daum이 양재동에 있었던지라 경기도에서 매일 2시간에서 3시간씩 미어 터지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지내야 하는것은 불쾌함을 넘어 인간으로서 모독을 받는 기분이었다.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한다면 그래서 나와 일하는 사람이나 나와 계약한 회사가 내게 기대한 만큼의 수익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지내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곳을 찾는 것보단 내가 내 사업을 시작하는게 더 낫다는 것을 다른 계기로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일하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 다르긴 했다. 아무튼 기술과 역량을 제공하되 지정된 장소에서 지정된 시간동안 지정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주고, 월급이란걸 받는 방식의 삶을 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하려는 일을 독립적으로 하려면 한국에선 법인을 만드는게 가장 쉽다. 개인사업자도 좋지만, 법인을 만들어서 운영하는게 특별히 더 어렵지는 않더라. 그렇게 법인을 만들고 보니 주식이란게 내게 처음 생겼다. 그 주식으로 돈을 벌어본 적은 없지만, 사업체를 한번 만들고 보니 이후에 또 다시 만드는건 전혀 어렵지 않았고, 앞으로도 특정한 일을 특정한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하려면 기업을 만들거나 조직을 만들 것 같다. 사회적 기업이나, 사회적 협동조합을 주로 만들겠지만. 아무튼 주식이란건 아무도 안 하는 일을 주도해서 시도하니까 생기는 부산물이었지 수익을 주는 소득원이었던 적은 아직까진 없다.

    무엇보다도 부동산과 주식 투자를 통해서 돈을 번다는게 내게는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지금은 마치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단기간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투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부동산이나 기업에 대한 투자는 기본적으로 10년 이상을 바라보고 해야 하는 장기 투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식이 오르고 내리고를 신경쓰고 살고 싶지도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수익과 앞으로 내가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할 때 필요한 수익을 확보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일을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부동산, 주식, 급여 소득에 대한 기대를 제외하면 (상속도 포기한 나에겐) 사업 말고는 남는게 없다.

    더 나아가 사업은 어느 정도 불로소득을 지향해야 한다. 내가 직접 일하는게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이 수익을 발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만약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게 서비스나 기술이라면 부가가치가 높을 테고, 그 서비스나 기술이 기존 사업을 망가뜨리는게 아니라면 새로운 부가가치를 생성하는 혁신일수도 있다. 그리고 세상엔 여전히 일자리가 당장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사업을 통해 기존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서 누군가의 삶이 더 윤택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아무튼 나는 사업은 불로소득을 지향해야 하고, 다른 수익원보다도 바람직한 불로소득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불로소득원을 더 많이 만들고 싶고, 동료들과 더 같이 운영하고 싶고. 그 소득원이 기존의 가치를 망가뜨리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더 하는 방식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부동산, 주식은 넘사벽이고, 노동으로도 필요한 최소한의 수익을 초과하는 여유를 기대할 수 없다면 다른 대안이 없기도 하다. 물론 이 불로소득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리고 운영하고 유지하는 과정에 나는 열심히 일을 할 테고, 해보니까 직장을 다닐 때보다도 더 일을 많이 하기도 하더라. 그럼에도 이때도 나는 일을 한다는 느낌보단 하고 싶은 일을 즐긴다는 느낌 그리고 내 노동의 결과물이 축적된다는 느낌이 강해서 직장을 다닐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얼떨결에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어쩌면 한번 사업을 한 사람은 계속해서 사업을 한다는 이유가 이런데에 있는게 아닐까. 창업 이전에 다녔던 마지막 회사에서 10여년 전에 받았던 월급 수준에 얼마전에야 겨우 도달했었고, 그마저도 슬로워크의 대표를 놓으며 다시 많이 줄였지만 그래도 사업이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여러가지로 불안이 중첩되고,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각자도생에 나서는 2020년에. 개인이든 동료와 함께든 아니면 사회 전체든 우리가 함께 불로소득원을 함께 만드는데 집중해 보는건 어떨까. 기술이 만드는 가치는 결국 사람은 일하지 않고 시스템이 일하거나 더 나가 기계가 일하는 시대를 만들자는게 아닌가.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불로소득원이 필요한 시대가 올 테고, 혼자서 그 소득원을 소유할 수 없다면 함께(조합), 혹은 사회가(공공재) 소유하면 어떻겠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직을 만들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와 정부에 기대하며 때론 나서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 기술은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술을 활용한 사회 혁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사례가 있습니다. 공적 마스크 배포 과정에서 정부, 기업, 시민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만든 앱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부는 약사들이 입력한 마스크 판매 이력을 모아 마스크 재고 현황을 공공 데이터로 공개했습니다. 네이버, 카카오, KT 등 기업은 현황 데이터를 원활하게 공개할 수 있도록 서버를 제공했고요. 시빅해커(시민개발자)들과 관련 기업들은 마스크 재고 API를 활용해 약국의 마스크 수량을 확인하는 앱을 개발했습니다. 약사들이 손으로 입력한 데이터가 시민의 손에 닿는 과정을 정부와 기업, 시빅해커가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함께 만들어낸 것이죠. 이런 일이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이루어졌을까요?

    중요한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이롭다는 정부의 방침과 재난 극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빅해커들의 열정이 상호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민주주의 혁신의 수단으로 기대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슬로건은 기술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공공재나 공유재로서 다수가 기술을 함께 소유합니다. 누구나 쉽게 사용 가능한 기술을 만듭니다. 기술에 영향을 받는 이들이 기술의 작동 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합니다. 기술을 활용해 더 안전하고 풍요로우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전망에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기술을 함께 소유하고,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며, 기술 활용으로 창출되는 부가 가치가 모두를 위해 쓰이도록 민주적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술의 민주적 구성이 중요한 이유는 기술 활용의 낙관적인 전망의 이면에 있는 부정적인 가능성 때문입니다. 로봇으로 대표되는 생산 수단을 일부가 독점하여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생기는 사회나, 과도한 환경 파괴와 자원 남획으로 인류 및 생태계가 멸종 위기에 처하고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사회도 우리는 예상합니다. 현대문명 기술로 서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지고 이 때문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세계로 퍼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전망할 때 과학 기술을 원인이자 해결책으로 지목하곤 합니다. 대전염병이 인류를 멸망시키거나, 지금보다 퇴보한 사회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은 기술 발달로 인해 초-연결된 사회 때문이라고 분석하죠. 한편 물리적 거리두기에도 사회적 연대를 유지하는 데 화상회의, 온라인 강의 등 초-연결 기술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기술이 원인이자 해결책으로 지목되고, 그 기술의 판단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다면, 우리는 다수가 기술에 접근하고 기술을 만들고 소비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술에 접근하는 순서를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최첨단 기술이 펼쳐질 미래를 상상할 때, 기술의 활용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곤 했습니다. 이제는 기술이 다수를 위해 활용되도록, 기술을 함께 소유하고 기술에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기술의 발전이 민주주의와 함께 지속해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음 원칙들에 대한 지속적인 합의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와 함께 기술이 발전하기 위한 6가지 원칙 

    1.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
    2. 정부 및 기업 데이터를 모두가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공유
    3. 특별한 소수가 아닌 평범한 다수를 위한 플랫폼 서비스 제작
    4. 플랫폼에 가치를 더하는 사람들을 플랫폼 운영 및 소유에 참여 유도
    5.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술의 작동 원리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요 정책을 시민과 함께 결정
    6. 코딩 등의 교육을 넘어 시민 누구나 기술을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

    모두를 위한 기술을 기대한다면 이 6가지 원칙에 따른, 모두에 의한, 모두의(가 함께 소유하는) 기술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이때 가능한 선택지는 다양하게 열려있는데요. 선택지를 살펴보려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다음은 유명한 SF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솔라리아’라는 행성을 묘사한 내용입니다.

    “대화할 필요가 생기면 화상으로만 이야기를 나눕니다. 고도로 발달한 로봇이 필요한 모든 물품을 생산하고, 시설을 관리하기에 더 이상 인간의 노동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집단을 이루면 갈등이 생겨 내 의지를 꺾거나 상대의 의지를 꺾어야 하는 일이 생기니, 자원과 권한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거리를 두고 행성 전체의 인구도 섬세하게 관리합니다.” 

    코로나19로 물리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서로에게 혐오와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원격 근무를 실험하며 안락함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가는 지금, 우리 사회는 ‘솔라리아’를 닮아가게 될까요? 그러나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세계에서 ‘솔라리아’는 인류가 우주로 나가면서 개척한 행성 중 마지막 50번째였고, 나머지 행성들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른 삶의 방식을 만들어갔습니다. 우리의 미래에도 가능한 선택지가 다양하게 열려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잠깐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죠.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당신과 후손들이 살아가게 될 미래를 선택하는 과학과 기술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나요?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장치와 제도, 토론과 논쟁이 충분히 가능한 환경인가요?

    앞서 얘기했던 시빅해커들의 모습을 떠올려봅시다.

    마스크 재고 앱 개발에 참여한 시민은 중학생부터 대학생, 스타트업 개발자 등 다양했습니다. 다양한 오픈소스와 간편한 기술 인프라에 더해 공공 데이터가 적극적으로 제공되어 누구나 마스크 재고 앱 개발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빅해커들은 자신들의 기술로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 보람을 느꼈고, 정부의 적극적인 데이터 공개와 누구나 참여 가능한 기반 제공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시민의 디지털 역량이 커지고, 공공의 디지털 자원이 보편적으로 접근 가능할 때 사회가 문제를 다루는 방식도 달라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도 커진 것이죠.

    <노동 없는 미래>를 쓴 팀 던럽은 기술 발전으로 노동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제시하면서도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만일 소수가 원하는 것들보다는 다수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응하는 정부를 재창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든 걸 포기한 채 새로운 로봇 지배자들을 환영하고,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의 삶을 살 기회가 싹 사라져 버린 세상, 그리고 그들과 우리로 갈라져 대립해야 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불행한 미래가 다가오기 전에 기술을 둘러싼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공공과 사회가 공유하는 기술을 늘려나가야 합니다. 다수를 위한 디지털 기술 기반의 사회 혁신이 작동하도록 다수의, 다수에 의한, 다수를 위한 기술을 만들고 그에 필요한 환경 구축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 시민의 변화와 기술 혁신을 활용한 거버넌스 체계 혁신

    촛불시위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열망과 함께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지점은 ‘시민들의 활동 방식’입니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과 형식으로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놀이와 활동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집회에 참여한 나’를 강조하며 자아정체성 드러내기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촛불시위에서 관찰된 시민들의 활동 방식은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과 디지털 플랫폼의 확대가 본격화되고 시대와 시민이 변화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두 한국사회가 수용해야 할 시민 참여의 다양한 모습입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시민 참여의 형식은 청와대의 국민청원으로만 수렴된 듯합니다. 다수의 국민은 미디어를 신뢰하지 않고 뉴스를 소비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기자나 전문가의 게이트 키핑이나 이슈 메이킹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이슈를 만들 수 있는 창구로 국민청원을 택합니다. 이를 통해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역대 정권에 비해 분명 소통의 질과 양이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국민들의 효능감 역시 높아졌습니다. 다만 현 정부에서의 시민 참여는 여기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소통’이라는 키워드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시민들의 열망은 더 큽니다. 10년 전의 참여 정부, 아고라와 비슷한 국민청원에서 그치지 않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에 대한 궁금증도 품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촛불시위를 통해 발현된 더 나은 민주주의 체계를 향한 열망과 기대감 덕분에 조직 내 민주주의, 젠더 갈등, 개별 사건에 대한 이슈 메이킹 활동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제들을 둘러싼 논의는 제한된 참여 형식과 경로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는 데에 그쳤습니다. 이는 조정이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정책으로 입법화하지 못해 사회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비판과 함께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의심으로까지 이어집니다. 

    “‘혁신적 포용국가’는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을 추구하며, 배제와 독식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의 사회를 도모하고, 미래를 향해 혁신하는 사회이며, 강자만을 위한 대한민국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대한민국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의 비전입니다. 시민들의 높아진 열망을 뒷받침하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참여의 형식과 경로를 늘려 공존과 상생의 기반으로서의 소통과 협력의 기반을 확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시민 참여의 변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 때 고려해야 할 방향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시민 참여의 포괄적 정의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시민 혹은 시민 단체 활동가와는 다른, 사회 문제나 활동에 무관심한 시민을 의미하는 ‘일반 시민’이란 이상한 용어가 있습니다. 기획, 실행, 운동 전체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일부에만 관여하는 시민입니다. 일반 시민은 그동안 사회 변화의 주체로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여론 조사를 통해서도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아 사회 변화의 주체로 주목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민’으로 다시 불려야 합니다. 

    기술을 가진 개발자나 디자이너는 시빅해커(Civic Hacker)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정부가 투명하게 공개한 데이터를 활용해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 제공합니다. 난임의 고통을 겪는 시민들은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이것이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발견하고 정부가 저출생 시대의 대책으로서 난임 당사자들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활동을 하는 이들은 환경부에 강력한 단속을 요구합니다. 또한 대형 커피숍 프랜차이즈에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것을 촉구하지요. 보편적, 실질적인 현상을 파악하려면 이들의 활동을 포괄해서 시민 참여를 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각자의 환경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활동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2. 종합적이고 협력적인 시민 참여 모델

    시민 참여 혹은 시민 주도의 분권 및 자치 모델은 단일하지 않습니다. 작은 조직과 큰 조직의 소통과 협력 방식이 다르고, 조직과 조직, 개인과 조직 간의 소통 방식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법을 만드는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키는 경우와 시행 중인 정책에 대한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거나 갈등 상황에 놓인 이해당사자를 조정하는 경우도 서로 다릅니다. 적합한 구성 방식을 갖추고 나면 각 단위 간의 조정과 협력 역시 필요합니다. 다양한 민주주의 모델을 개발하고 해당 단위들 사이에도 조정과 협력이 일어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작고 유연한 커뮤니티, 효율적으로 협력하는 조직, 외부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 투명한 정보 공개와 갈등 조정 기능을 포함합니다.

    다양한 단위에 적합한 소통과 협력 모델, 이들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예를 들어 서울시는 ‘민주주의 서울’을 통해 시민이 내는 제안, 서울시가 만든 정책을 공론화하는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시민 개인의 제안을 한 명의 공무원이 답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소수의 시민이 제안하고 더 많은 시민이 함께하는 공론화 단계를 거쳐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는 모델을 만들 계획입니다. 시 정부의 역할을 고려한 설계입니다.

    민주주의 서울은 제안을 공론화하는 과정과 이를 운영하는 체계를 수립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3. 협력적인 소통에 필요한 기술 기반과 정책

    눈부시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 속에서도 유독 제자리걸음을 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미디어와 댓글, 토론 등의 협력적인 소통에 필요한 기술 분야입니다. 투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미디어 서비스는 종이를 디지털화한 데 머물러 있습니다. 토론은 댓글을 남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제한된 도구는 제한된 소통 방식과 여러 부작용을 낳습니다. 

    현재 기관들이 주도하는 다양한 시민 참여 플랫폼은 기능 및 운영 노하우 부족이라는 문제 이전에, 기술적인 인프라가 충분치 않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온라인에서 안전하게 의견을 낼 수 있나요? 온라인에 표출된 의견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신뢰는 어떤 조건을 내포할까요? 다수가 신뢰하는 데이터가 있나요? 다수가 신뢰하는 대중매체는 있을까요? 의견을 주고받고, 갈등과 조정을 거쳐 합의에 이르는 프로세스는 존재하나요? 대표성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해외 사업자가 운영하는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나 정책은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고, 지금도 충분히 준비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페이스북 상에서 불법적으로 정보를 공개한 페이지 운영자와의 대화입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정부는 부처별로 제각각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공 데이터 확대, 미디어 산업 육성 및 가짜 뉴스 대책 마련, 젠더 폭력 방지 대책, 개인정보보호 대책, 블록체인 기반 투표 시스템 개발 등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흐름이지만, 이를 넘어서 통합적인 논의의 장이 필요합니다. 공존과 상생을 달성하기 위한 포용국가의 인프라로서의 비전을 세우고 소통과 협력에 필요한 기술 개발과 정책 수립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글과 댓글, 좋아요가 시민 참여를 위해 우리가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의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4. 점진적인 진행 및 혁신적인 수단 

    물론 시민 참여의 의미를 확대하고, 사회 곳곳에 필요한 소통과 협력 모델을 개발하며, 이에 필요한 기반 기술과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이 단번에 이뤄질 수는 없습니다. 시민 참여 플랫폼 개발 및 운영, 활동하는 시민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만이 과정의 전부인 것도 아닙니다. 

    직접민주주의 요소와 기존 대의제 및 관료 조직과의 융합,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정의하는 사회적 합의, 대표성의 정의에 대한 정책 결정 등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권한을 확대하기 위해선 거쳐야 하는 단계가 많습니다. 이들을 실험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실험을 수행하는 동안 여러 가지 안전장치가 있어야만 합니다. 가능하면 갈등과 사회적인 임팩트가 덜한 문제부터 시작해서 심각한 갈등이 있거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와 빠띠는 ‘민주주의 서울’을 시작할 때 결정의 역할보다 시민과의 논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한편 지금은 서울 시민과 함께 중요한 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정책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민토론의제선정단과 같은 단위를 만들어서 시민들의 단순 제안이 정책화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기획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주제를 논의할 때에도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라 들이는 노력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데모스X로 플랫폼 운영 가이드와 소스를 공개해서 외부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받기도 하고 시행착오와 노하우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서울과 같은 기관 주도 공론장 외에도, 빠띠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입법 프로젝트나 공론장 운영 프로젝트, 이슈 커뮤니티 구성 등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하우를 민주주의 툴킷으로 정리해서 오픈소스로 공개했습니다. 

    서울시와 빠띠가 오픈소스로 공개한 민주주의 서울 플랫폼 소스와 운영 가이드 데모스X입니다, 이미지 출처: 데모스X 캡처 화면
    빠띠의 시민입법, 시민토론 등의 민주주의 툴킷입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홈페이지 캡처 화면

    산업을 육성할 때 활용하는 혁신적인 수단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 캐피털인 와이콤비네이터는 2017년에 민주주의, 언론, 일자리 문제를 다루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고 공표했습니다. 유럽위원회는 2012년부터 The CAPS initiative (Collective Awareness Platforms for Sustainability and Social Innovation)를 운영하며 지속가능성과 사회혁신을 위한 달라진 시민 참여 기반의 솔루션을 만들기 위한 연구 작업, 펀딩, 플랫폼 개발을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정부의 시민 참여 플랫폼 연구를 중요한 과제로 다루어야 합니다. 시민 참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회적 기업이나 플랫폼 협동조합이 늘어나면 더더욱 바람직하겠고요. 

    CAPS의 활동 영역입니다, 이미지 출처: CAPS

    결론

    디지털 기술이 변화하는 속도만큼, 시민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 속도가 늦춰질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뒤쫓을 게 아니라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고 그 변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어지도록 함께 기여해야겠지요.

    디지털에 기반한 정보 기술은 정보를 축적 및 확산할 수 있고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를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을 수립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의 경우,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이뤄낸 성과를 돌이켜보면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거버넌스 체계 수립을 앞서 실현할 수 있는 사회 경험과 기술 기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압축 성장을 거쳐 서로 다른 경험을 한 다양한 세대가 동시대에 사는 복잡한 사회이기도 합니다. 분단국가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갈등을 조정하고 상생과 협력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혁신적인 민주주의와 거버넌스 체계 수립이 과제이면서도 기회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다음 5개의 거버넌스 체계 요소가 잘 기능하는 사회를 바라봅니다.

    1) 사회가 공통으로 신뢰하는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 정보공개와 공익데이터
    2) 누구나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이슈를 가지고 각자의 여건만큼 활동하며, – 이슈 커뮤니티와 시민 실험실
    3)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이슈에 모두가 함께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 디지털 캠페인과 액티비즘
    4) 참여한 시민들이 서로 신뢰하는 방식을 활용해 공론을 만들고, – 매스 미디어, 공론장, 소통과 신뢰의 기술과 데이터, 혐오와 차별을 방지하는 사회적 약속과 기술
    5) 공론이 기관의 정책 수립, 법 개정, 예산 조정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 – 기관 주도 공론장

    이제는 이런 사회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 슬로워크를 시작한 이유들: 왜 사회를 혁신하는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일자리 모델을 선택했을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서의 디자인, 우리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결정하고 일하는데 기술이 가지는 중요함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깊게 공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좀 더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 정부와 여러 기관들이 가진 디자인과 기술 역량은 조직 내에 충분히 내재화 되지 못했다.

    사회혁신영역(소셜섹터)의 기술 역량 강화 문제는 중요한 과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기술의 전문가들이 안정된 일자리라는 터전 위에서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가 갖추어져야 한다. 슬로워크(혹은 UFOfactory)를 시작할때 내가 내렸던 주요한 결정은 바로 여기서 시작했다.

    당시에는 어떤 단체가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정기 뉴스레터를 보낼때 대부분 세가지 방식 중 하나를 택했다. 젊은 상근자가 어떻게든 만든다. 주변 개발자, 디자이너 친구 또는 자원봉사자에게 부탁한다. 금전적으로 조금 여유로운 단체는 개발이나 디자인을 전담하는 인력을 한명 채용한다.

    나 역시도 ‘홈페이지가 갑자기 안 되는데 도와달라’는 요청부터 시작해서 ‘프로젝트를 같이 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으로 이어지다가, ‘단체에 들어와서 일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내부의 전담인력은 고립된 섬처럼 지내다 크게 지쳐 조직을 떠난다. 가치 중심의 활동이 중심이 되는 조직에서 기술 전문성을 갖춘 인력들은 제대로 대우를 받기도 어려운데다 스스로의 전문성을 키울 기회도 갖지 못한다. 게다가 기술 전문성이 없는 활동가가 어쩔 수 없이 뉴스레터, 웹자보, 홈페이지를 다루다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일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일을 두배로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엔 컴퓨터를 고치거나 고장난 인터넷 망을 해결해야 하는 일도 했다. 요즘엔 영상까지도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는 기술(디자인,테크놀러지,글쓰기 등등) 전문가가 따로 모여서 전문성을 키우고, 이들이 활동가 조직과 만나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섹터 내에서 외롭게 지내왔던 전문가들이 활동과 기술을 엮어내는 전문성을 더 키우는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전문가로서 더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사회 문제나 아젠다에 큰 관심이 없었던 개발자와 디자이너들도 소셜 섹터를 접하면서 각자가 가진 전문성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해 가는 환경을 만들어 내길 바랬다. 그러기 위해서는 급여 수준을 적어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반 기업들의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따라왔다.

    슬로워크는 지금까지 매년 1,200개 이상의 기관들과 수백개의 브랜드, 캠페인, 웹사이트(홈페이지 플랫폼 포함)을 만들어 왔다. 소셜 섹터 안에 기술과 디자인 전문성을 갖춘 조직을 만들어야 섹터의 역량도 한 뼘 더 성장하고, 결과물의 퀄리티도 올라가며, 일을 하려는 전문가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이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더 많은 전문가들이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를 혁신하는 임팩트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소셜 섹터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슬로워크 같은 조직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