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이제 실전이다! 민서의 첫걸음 이야기

  • 지난 2화에서는 민주주의 서울의 설계와 프로세스에 관해 고민했던 이야기와 시범사업의 경험을 나눴습니다. 3화에서는 시범사업에서 1단계로 넘어간 민주주의 서울 (이하 민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떻게 달라지고 발전했을까요? 이를 위해 빠띠는 무엇을 고민하고 노력했을까요? 본문에서 확인해보세요.

이 글은 “2화. 민주주의 플랫폼을 향한 고민과 실험”에서 이어집니다.

공무원, 민간 전문가가 함께하는 협력체계를 만들다

민주주의 서울이 자문과 시범사업을 거치는 사이 지방선거가 치러졌습니다. 2018년 5월, 민선 7기 서울시장 체계에 들어섰고 민서는 ‘서울의 공론장’이라는 컨셉을 확정짓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체계와 프로세스를 정립한 후,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1단계에 돌입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범사업 기간에는 시간과 예산 부족으로 ‘천만상상 오아시스’의 시스템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1단계를 시작하는 무렵까지도 예산이 마련되지 않았고, 전용 시스템은 2단계를 시작할 때쯤에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1단계를 수행하는 데에는 복잡한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시민의 제안을 받고 함께 토론과 투표를 하고 관련 소식을 전달하는 기본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니,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에 자원을 투입했습니다.

서울시는 운영 담당 공무원을 대폭 늘렸습니다. 시범사업 동안 1명이었던 전담 인력이 10명의 추진반으로 확대됩니다. 빠띠에서 민서를 담당하는 활동가들도 10명으로 늘어납니다. 담당공무원은 행정 처리와 내부 공무원과의 소통을, 빠띠는 플랫폼 기획운영과 대시민영역 활동을 하며 2인 3각으로 활동해보기로 했습니다. 약 20명의 담당자들은 행정과 시민 사이에 자리잡아서 양쪽이 잘 조율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영합니다. 전체를 총괄하고 기획하는 일은 제가 맡았습니다. 총괄의 역할은 전체 시스템을 운영하고, 서울시의 다양한 의사결정체계에 참여해 설명과 협조를 요청하는 일입니다. 민간의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되 관의 역할을 축소하지 않는 방식의 체계를 시도한 것은, 돌이켜보면 서울시였기에 가능했던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시범사업을 통해서는 ‘시민이 제안하면 기관이 답변하는 기존 제안 플랫폼을 넘어서서, 시민과 서울시가 제안하고 함께 숙의하여 결정에 이른다’는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이를 실행하기 위해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더 쉽고 더 다양한 제안을 위해

플랫폼은 ‘천만상상 오아시스’에 비해 간단해졌습니다. 더 쉽고 편하게 제안할 수 있도록 여러 장벽을 제거하고 입력 항목을 간소화했으며, 접근이 편리하도록 소셜로그인 기능 등을 강화했습니다. 시민제안 혹은 서울시 정책이 공론화되는 툴에는 좀 더 정교한 투표/댓글 방식을 도입하고 싶었으나 플랫폼 개편 이후로 미루고 간소화된 시스템으로 일단 출발하기로 합니다.

공론화 과정을 거친 주제에 대한 서울시의 답변과 이후의 실행 과정, 제안워크숍, 현장 제안, 정책 실험 등의 소식을 담을 수 있는 게시판도 준비했습니다. 천만상상 오아시스 시스템을 활용하여 제안, 숙의(토론과 투표), 소식이라는 틀로 플랫폼을 재정비했습니다. 시민을 직접 만나는 프로세스도 정립하였습니다. 현장에서 제안과 숙의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찾아가는 시민제안’은 물론, ‘시민제안워크숍’을 통해 중도입국 청소년, 1인 가구 등 행정력을 동원해 목소리를 확대할 가치가 있는 시민을 찾아나섰습니다.

시민제안워크숍 ‘서울제안가들 : 중도입국 청소년 편’

공론화 과정은 촘촘하고 단단하게

플랫폼 이용을 쉽고 간단하게 바꾸었다면, 뒷단의 운영은 시범사업보다 더 촘촘하게 배치했습니다. 많은 시민의 공감을 받은 제안이 완결성과 무관하게 공론화가 가능하려면 기획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정책 제안 플랫폼 전문가들로 기획단을 구성했습니다. 여기에 퇴직공무원이나 다른 기관의 플랫폼을 기획/운영하는 공무원도 참여하게 하여 시민 입장에서 놓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고려할 수 있게 했습니다. 기획단에서 발전된 제안의 공론화 방법은 서울시민 중 무작위로 추첨/구성한 정책 결정 단위에서 정하게 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어떤 제안이든 전문가의 손을 거친 의제로 발전하고, 시민들이 공론화 방식을 선택하게 구성했습니다. 특정 입장을 대변하거나 논리/사실관계의 오류와 무관하게 제안이 나오게 된 배경과 상황을 최대한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잡았습니다. 사실관계, 가능한 정책 대안 등은 행정에서 검토를 해둔 경우가 많았기에 시가 보유한 자료와 검토했던 관련 정책을 제공하여 기획단의 논의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했습니다.

주제로 선정되고 공론화 방식이 정해진 시민제안과 서울시 준비 정책은 실제 공론화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데요. 우선 제공하는 자료에 오류가 없는지 검토하고, 명확하고 쉬운 형식과 메시지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도록 관련기관이나 단체를 섭외하여 토론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많은 시민이 플랫폼에 참여하도록 기획하되, 동시에 다양한 현장과 거리에서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온라인에서 투표와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오프라인 현장에 있는 시민도 토론과 투표에 참여하게 했으며, 이렇게 모인 의견을 플랫폼에 반영하는 동시에 정책을 수행하는 담당부서에도 전달할 수 있도록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약 한 달 간의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제안은 의견에 의견이 더해져 더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합니다. 서울시는 제안자의 제안에 대한 답이 아니라 공론화된 결과에 답변하게 됩니다. 먼저, 운영팀이 담당부서에 답변을 요청하게 되는데요. 단순 찬반투표 결과보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수집된 시민 의견을 다각도로 분석한 리포트를 전달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취합한 의견도 물론 함께 전달했습니다. 이를 통해 찬성과 반대 각 입장의 이유를 충분히 고려한 정책 설계를 요청했습니다.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이 월등히 많거나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안건에 대해서는 시장이 직접 답변할 것인지, 한다면 어떤 형식으로 할지 그 방식도 함께 검토했습니다.

공론장에 참여하는 시민이 효능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실행과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답변까지 마친 제안 혹은 서울시 정책은 실행 과정으로 넘어갑니다. 이후 운영팀은 한 달에 한 번 혹은 분기에 한 번씩 실행 소식을 플랫폼에 공유했습니다. 시민제안이 실행 단계로 넘어가거나, 실행과정에서 행정과 시민이 협력/조율해야 할 경우 중간자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시민과 협력하면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여전히 많은 공무원에게 낯설고 어려운, 두렵거나 번거롭기도 한 일이었습니다. 시민 또한 행정의 판단을 100%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민서 운영팀의 역할은 실행 과정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더 많은 제안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사실 시민제안 상당수가 바로 수용되거나 공론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시민의 공감을 얻은 제안이라도 여러가지 상황으로 서울시가 수용하기 어렵거나 공론화하기에 부적합한 경우도 있습니다. ‘버스 노선 조정’, ‘쓰레기 매립장 건설’ 등의 사안은 아직 대표성과 실효성을 갖지 못한 1단계의 민주주의 서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안 → 공론화 → 답변’의 과정과 별도로 갈등 사안은 갈등 관리를 담당하는 부서가, 이미 마련된 정책을 더 알려야 하는 사안은 홍보 담당 부서가 맡게 하는 등 서울시 여러 부서와 협력 체계를 구성하여 제안이 다양한 경로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당장 실행할 수 없는 조례를 제정해야 하거나 다음 회기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제안 등은 운영팀이 맡아서 서울시 산하기관으로 연결했습니다. 예컨대 난임부부 지원에 관한 시민제안은 시가 직접 답변하고 실행을 약속했지만, 재건축지역의 길고양이 보호 제안에 관해서는 해당 정책 실행에 의지가 있는 시의원을 찾아가 조례 개정을 약속하게 하는 등 시민제안이 하나라도 더 실행되도록 다양한 협력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이 글에서 처음 공개하는 프로세스도 하나 더 있었는데요. 제안이 특정 단계에 도달하면 비서실의 정책보좌관과 함께 논의하고 검토하는 과정이 그것입니다. 주기적인 미팅으로 서울시가 이미 검토한 정책과 맥락을 파악하고, 실행 가능한 방향을 찾기 위해 여러 자원과 담당자를 어떻게 엮을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민주주의 플랫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출된 리더의 적극적인 지원입니다. 리더의 지원은 곧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리더가 프로세스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공무원의 이유 있는 저항을 관리하기 위해서도 기관장과의 핫라인과 협력체계는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재개발/재건축지구 길고양이 보호 내용을 담은 동물보호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서울시의회 자료)

민서 노하우, 데모스X에서 확인하세요!

운영팀은 지금까지 설명한 과정을 가이드로 정리하고 2단계까지 운영할 수 있는 플랫폼 소스를 만들어 ‘데모스X’라는 이름을 붙여 세상에 공개합니다. 데모스X는 ‘시민과 함께’라는 의미로, 빠띠가 경험하며 구축한 민주주의 서울의 노하우가 담겨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많은 지자체에서 ‘① 시민은 쉽게 제안하고 기관은 준비된 정책 제안을 하며 ② 시민과 전문가로 구성된 제안 검토 단계를 거쳐 ③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는 공론화로 제안을 숙성한 후 ④ 기관장이 답변하고 실행하는’ 프로세스를 도입했는데요. 여기에 민주주의 서울과 데모스X의 오픈가이드와 오픈소스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민이 제안하면 공무원이 답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은 아이디어로부터 사회적 맥락을 발견하여 다수의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마련한 모델’이 이 시대의 시민이 바라는 민주주의의 모습임이 받아들여진 것이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데모스X 운영가이드와 오픈소스는 누구나 다운받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1단계일뿐입니다. 운영팀은 1단계를 진행하는 동안 궁극적인 서울시 민주주의 플랫폼을 시민의 일상에까지 적용하는 모습을 구상하고 설계했습니다. 참여와 소통, 공론화와 숙의를 거쳐 시민이 일상에서 크고 작은 이슈와 정책에 관해 전달받고, 논의와 결정 단계에 참여하는 것이 서울시가 이뤄야 할 민주주의의 지향임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5단계까지 가려면 운영에 참여하는 기관을 깊고 넓게 확대하고, 제도적 기반을 확립하며 기술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했습니다.

4화로 이어집니다.

2화. 민주주의 플랫폼을 향한 고민과 실험

이 글은 “1화. ‘민주주의 서울’에서 싹틔운 시민협력플랫폼의 꿈”에서 이어집니다.

시민과 서울시가 제안하고, 시민이 함께 논의해 결정하면, 서울시가 실행한다

‘시민제안 → 행정 답변 → 행정 실행’이라는 기존 제안 플랫폼의 프로세스를, ‘시민과 서울시의 공동제안 → 시민숙의 → 시민결정 → 각 단위 실행’으로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보다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단계별 장벽을 낮추고, 작동 구조와 운영 체계를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플랫폼 디자인에 너무 많은 힘을 쓰지 않기로 했는데요. 외관이 아름답거나 어떤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달리, 지향하는 바를 확실히 보여주고 실제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사용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름에는 민주주의 상징성이 높은 ‘광화문’을 넣으려고 했으나 준비 도중 ‘광화문1번가’가 나오면서 2순위였던 ‘민주주의 서울’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민서’라는 애칭을 붙였습니다.

빠띠는 ‘민주주의 서울’을 ‘민서’라는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신규 개발이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천만상상 오아시스’를 수정 개발하여 민주주의 서울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기능을 붙이기 보다 덜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시민제안은 더 간단하게 입력해도 되도록 변경했습니다. 투표는 일단 찬반 기능으로 구성하고 투표에 참여하는 시민은 반드시 의견을 남기도록 해 토론에 참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외에는 실행 상황과 소식을 알려주는 게시판만 남기고 다른 기능은 모두 가리기로 했지요. 프로세스 역시 간단하게 구성했는데요. 하나의 시민제안에 50명이 공감하면 공무원이 답변을 해야하고, 500명이 공감하면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투표와 토론이 시작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5000명이 투표와 토론에 참여하면 시장이 직접 답변하도록 구성했습니다. 가능한 명확하고 쉽게 기억할 수 있는 플랫폼과 프로세스를 만들려 했습니다.

바깥은 간단하게, 내부는 촘촘하게

운영팀은 대외 고객은 시민으로, 대내 고객은 공무원으로 설정했습니다. 목표는 세 가지였습니다. 시민대상으로는 ① 쉽고 간단한 플랫폼을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게 하기 ② 발언할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직접 찾아가기로, 공무원 대상으로는 ③ ‘일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협업에 대한 긍정적 경험’을 제공하기로 잡았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 필요한 일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운영팀이 바빠졌지요. 우선, 시민제안을 일선부서에 전달하는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500명이 공감하는 시민제안을 검토하고 시의 자료로 보충한 후 공론화 하는 방식을 기획했으며, 공론화 여부를 판단하는 시민기획단도 구성했습니다. 500명이 공감하지 않은 제안이라도 반복되는 제안이거나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제안은 기획단의 여력에 따라 살필 수 있는 프로세스도 만들었습니다. 투표와 토론, 즉 숙의 단계에서는 가능한 시민이 균형잡힌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시가 가진 모든 자료를 모아서 사전 검토를 한 후 여러가지 유형을 실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질문 표현을 정하는 데에만 2주 이상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제안 → 검토 및 기획 → 숙의 → 담당 공무원과 시장 답변 준비 → 답변’ 전반에 이르는 내부 프로세스와 협력 체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플랫폼의 존재를 모르거나 플랫폼에 접근할 상황이 여의치 않은 시민을 만나 제안을 받는 ‘찾아가는 시민제안’도 만들었습니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제안과 숙의, 투표가 진행되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투표와 토론 단계에서는 해당 주제를 다루는 오프라인 시민토론회를 열고, 주제 관련 장소를 찾아가 부스를 열어 시민의 투표와 토론 참여를 독려하기로 했습니다. 시범사업 기간 동안 한강시민공원, 어린이대공원 등의 현장에서 민주주의 서울 부스를 설치, 운영했습니다.

‘찾아가는 시민제안’ 어린이대공원 편

시민의 제안을 받는 것을 넘어 ‘서울시가 묻습니다’를 통해 잘 정제되고 준비된, 그러나 시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서울시 정책을 시민과 논의하는 프로세스도 구성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설명과 홍보를 통해 이해를 도왔습니다. 일선 부처에서 민주주의 서울로 협조 요청이 올 경우를 대비하여 응대를 위한 안내 메일과 리플릿, 일정 가이드, 역할 구분과 예산에 따른 시민 참여 범위를 명시한 운영팀 업무 체크리스트 등도 제작했습니다.

사업 기간 내내 전담 인력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2017년 첫 해의 담당공무원은 1명이었지만, 2018년에는 5명으로, 2019년에는 20명에 가까운 조직으로 성장합니다. 빠띠와 서울시는 MOU를 맺고 담당공무원과 1대 1로 매칭되는 민서 운영팀을 시 외곽에 구성했습니다. 담당공무원은 예산과 시 내부 공무원 대상 업무를 진행하고, 외부 운영팀은 기획과 운영을 하면서 유기/협력적으로 사업을 진행해 나갔습니다. 물론 많은 노력과 설득이 필요했습니다. 플랫폼을 만드는 것을 넘어 ‘잘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안을 서울시가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실험을 시작해 봅시다

‘시민과 서울시가 제안하고, 시민이 함께 논의해 결정하면, 서울시가 실행한다’는 컨셉의 민주주의 서울은 2017년 10월 베타 오픈을 알리며 실험(시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 직후부터는 ‘서울의 공론장’이라는 컨셉으로 남은 시범사업을 이어나가며, 2019년 본 사업을 위한 예산과 조직을 정리했습니다.

우선 숙의와 토론 단계의 준비와 운영, 이후 정책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첫 단계로 ‘서울시가 묻습니다’를 먼저 실행했습니다. 첫 주제는 ‘비상용 생리대를 공공기관에 비치’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좀 더 거시적인 정책을 논의할 수도 있었지만, 시민 생활에 밀접한 정책에 대해 의견을 묻는 것이 지방자치단체 플랫폼에는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에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여성정책과의 제안을 받아 ‘비상용 생리대’에 관한 토론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공공기관 화장실 비상용 생리대 비치’ 투표/제안 홍보 포스터

간단해보이는 질문이지만 준비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특정 성별에 대한 특혜가 아니냐는 시비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서울 프로세스 역시 만들어가는 중이었고요. 질문의 형식과 표현, 시민 대상 제공 정보의 취합과 검증, 정보 제공 방식, 홍보 방안 등을 결정하는 데에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행정과 빠띠 운영팀은 반복적으로 콘텐츠의 방향과 질문 형식을 다듬었습니다. 이 정책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와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시민 의견을 어떻게 반영하고 보고할지 등을 논의하고 확인해나갔습니다.

이렇게 준비해서 진행한 토론은 1개월 간 별 문제 없이 많은 시민의 공감을 받으며 완료되었습니다. 이후 서울시는 비상용 생리대 정책을 시범사업으로 진행한 후 다음 해에 확대 적용했습니다. 정책이 가지는 의미와 함께 시민 숙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 등을 인정받아 UN으로부터 공공정책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시민제안을 받아 정책으로 만드는 과정이 초기 단계인 것만큼이나 정부 실행 정책에 대해 시민 의견을 받고 반영하는 과정도 여전히 초기 단계이며, 충분히 실현이 가능하다는 걸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찾아가는 시민제안’에서는 가장 먼저 한부모 가정 커뮤니티 및 단체와 함께 서울시에 바라는 정책을 함께 논의, 발전시킨 후 플랫폼에 제안으로 올리는 현장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생계까지 도맡느라 힘든 시민에게 지자체가 작지만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정말 필요하고 적합한 정책은 현장의 시민이 더 잘 알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소득이 10원 초과해서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아이를 돌보다가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연락할 곳이 없어 112에 전화할지 고민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시민 삶의 현장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데 행정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지요.

실험에 주어진 예산은 적었지만 홍보도 진행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포스터와 리플릿을 제작하고, 운영팀이 시청 곳곳을 직접 뛰어다니며 포스터를 부착했습니다. 시민과 함께 정책을 준비하거나 정책 시행 전에 시민 의견이 듣고 싶다면 언제든 연락해달라는 메시지, 시 조직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의 해법을 찾아주겠다는 메시지를 담아 행정 내부 영업에 나섰습니다. 시민이 많이 모이는 광화문광장에 나가 ‘시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반영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깜짝 시민 기자회견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민주주의 서울에 대한 고민과 준비, 실험은 2017년부터 2018년 말까지 1년 반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민주주의 플랫폼 5단계 계획 수립과 1단계의 실행

지금은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민제안플랫폼에 비슷한 모델을 사용합니다. 시민이 제안하거나 기관이 질문합니다. 정해진 인원 이상이 공감하는 제안에 대해서는 행정이 답변하고, 시민과 전문가, 공무원이 참여한 기획 과정을 거쳐 숙의로 넘어갑니다. 숙의 단계에서도 일정 인원 이상이 참여하면 단체장이 답변하며 실행 가능한 약속을 공표합니다. 이러한 전체 과정은, 빠띠가 민주주의 서울을 운영하며 고민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통해 발견한 모델입니다. 빠띠는 민주주의 서울을 발전시키며 ‘민주주의 플랫폼’의 5단계를 수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차용 중인 모델이 우리가 계획하는 5단계 중 첫 번째 단계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화. ‘민주주의 서울’에서 싹틔운 시민협력플랫폼의 꿈

2021년은 빠띠가 항해를 시작한 지 5년이 되는 해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방향키를 잡았던 2016년의 첫 마음이 떠오릅니다. 다섯해가 지나는 동안 빠띠는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기반의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고, 시민이 직접 기술과 데이터를 활용해 여러 사회를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거나 암초에 부딪혀 흔들리기도 했지만, 민주주의라는 나침반을 따라 이내 방향을 찾고 항해를 계속해왔습니다.

5년이라는 활동을 통해 빠띠는 ‘시민이 자신의 공동체나 지역의 공론장에 참여해 협력적으로 소통하고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과정이 일어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공간에 ‘시민협력플랫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실험을 통해 시민협력플랫폼의 모습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시민협력플랫폼과 관련한 그간의 활동을 모아 ‘민주주의 항해일지 1.0’를 연재합니다. 1.0이라는 버전명을 붙인 것은, 시민협력플랫폼이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빠띠가 항해를 멈추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 나은, 더 많은, 일상의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협력플랫폼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연재물을 읽으시며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시민이 제안하고 시민이 결정하는 민주주의 플랫폼’. 민주주의 서울(민서)의 캐치프레이즈입니다. 빠띠는 민서의 기획단계부터 결합하여 운영(2018~2019)까지 함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의 경험과 치열했던 고민을 통해 시민협력플랫폼의 토대를 다질 수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시민협력플랫폼에서 민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지금 시작합니다.

이 글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민주주의 플랫폼의 조건과 민주주의 서울의 시작”에서 이어집니다.

‘민주주의 서울’은 행정이 기존에 시도하지 못했던 여러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공간이자, 그 자체가 실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빠띠는 총괄 기획이라는 역할을 맡기 전, 서울시에 두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첫째, 서울시와 빠띠는 갑을 혹은 자문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다(구체적으로는 MOU).
둘째, 일정기간의 실험을 통해 플랫폼과 과정을 만든다.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 적합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애자일’이라는 개념이 보급되면서 확산됐지만, 법과 제도에 따라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정부가 성과가 불분명한 ‘실험’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빠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실험을 하며 민주주의 서울을 그야말로 찾아나섰습니다.

2017년 2월 9일 빠띠와의 첫 미팅을 마친 서울시 담당자는 내부에서 민주주의 플랫폼 구축을 추진했습니다. 빠띠는 약 6개월 동안 정식 계약이 아닌 자문으로 민주주의 서울을 만드는 데에 기여를 했는데요. 2017년 10월, 민주주의 서울이 베타 버전으로 세상에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2018년에는 앞서 말씀드린 실험의 시간을 보냈고, 2019년에 이르러서야 예산과 전담팀을 갖추고 정식 출범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서울 베타 버전

가장 서울다운 공론장 ‘민주주의 서울’

팀은 가장 먼저 ‘서울다운 민주주의 플랫폼은 무엇일까’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2017년 당시에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직접 민주주의의 요소를 정부 운영에 담아내야 한다는 사회적인 기대가 있었습니다. 간단하게는 시민이 제안하고 투표로 결정하면 행정이 실행한다는 내용이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과제를 해결하고 어떤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지 설계가 필요했습니다.

우선, 서울시민의 범위를 정해야 했습니다. 서울에서는 주민등록을 한 시민 외에도 많은 사람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사람도 일하고 생활하고 투자를 합니다. 적어도 디지털 플랫폼 안에서는 시민의 범위를 ‘주민등록’으로 한정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이렇게 확대하면, 1천만이 아닌 2천만에 가까운 사람을 대상으로 플랫폼을 구상해야 했습니다. 대상의 범위가 커질 수록 플랫폼은 더 간단해져야 하고요. 시민이 제안하면 공무원이 답변하던 시절을 넘어 시민이 직접 제안하고 동료 시민과 함께 결정하는 민주주의를 디지털 기술로 실현할 수 있을까요? 이 방향으로 가는 것은 확실했지만 밟아야 할 단계는 없는지 점검이 필요했습니다. 빠띠는 이 단계를 파악하고, 단계별로 민주주의 서울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정리했습니다.

10만 명 혹은 20만 명은 절대적으로는 결코 작지 않은 숫자지만, 플랫폼이 전체 이용자로 상정하는 2천만 명에 비하면 극히 적은 비율입니다. 0.5% 혹은 1%가 원하는대로 도시의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법으로 규정된 주민투표는 유권자의 3분의 1이상 투표가 진행되지 않으면 결과조차 공개하지 않습니다.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에서도 이에 준하는 결정 기준을 가져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표성을 확인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일한다’ 혹은 ‘산다’는 개념은 단순하지만, 플랫폼 이용자가 실제 그러한지를 사용성을 해치지 않으며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실명(​​實名)과 주민의 자격 인증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투명하게 알리면서 데이터를 검증할 경로를 확보해야 하는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들은 정당성과 대표성 확보를 위해 해결이 필요한 제도적이면서도 기술적인 과제였고, 최소 2~3년의 시간이 필요한 사안이었습니다.

디지털 플랫폼 안에서는 시민의 범위를 ‘주민등록’으로 한정할 수 없었습니다.

시민의 제안이 정책으로 연결되기 위한 조건

사실 서울에는 ‘천만상상 오아시스’라는 플랫폼이 있었습니다. 2006년 개설된 천만상상 오아시스는 UN전자정부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전 세계를 놓고 봐도 우수 사례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7년에는 작동이 멈춘 상황이었습니다. 기존의 시민 제안 플랫폼이 왜 잘 운영되지 않는지 그 이유도 파악해야 했습니다. 여러 실질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시민의 제안이 공무원 답변 이후 정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적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보였습니다. 일부라도 반대하는 시민이 있는 제안은 일선 공무원이 수용하기에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시민의 제안은 정책전문가에겐 허점이 많고 완성도가 떨어졌습니다. 시민 피부에 와닿는 쓰레기, 주차, 교육 등의 문제는 서울시청 담당이 아니거나, 조례 혹은 예산을 변경해야 하는 시의회 사안이거나, 갈등관리를 통해 다뤄야하는 사안이었습니다. 새로운 제안을 실행하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그 업무를 떠안아야 하는 공무원의 입장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기존의 업무 방식이나 시민제안에 대한 인식 변화, 인센티브 구조의 변화 없이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일선 공무원의 판단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시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 구성.
시민 개인이 쉽게 제안한 것도 정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 마련.
제안이 다양한 경로로 전달/검토되어 실행되거나 예산/조례로 이어지도록 다양한 기관과의 협력 체계 구성.

이를 위해서는 서울시장의 리더십도 필요했습니다. 변화한 시대에 시민 제안의 가치를 강조하며 시정 전반의 분위기는 물론 보상 체계와 연결해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숙의성’

숱한 고민과 분석으로 우리가 만드는 민주주의 플랫폼이 ‘숙의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플랫폼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대표성의 문제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채 자신의 제안을 관철시키기 위한 통로로 활용하는 공간이 아니어야 했습니다. 시민 한 명의 제안은 단순한 아이디어일 수 있지만, 행정이 가진 정보와 자원을 활용해 더 많은 시민이 상황을 이해하고 힘을 합쳐 제안을 발전시킬 수 있는 틀을 갖춰야 했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교육청, 산하기관 등)나 권한을 가진 공무원과 의원이 하나의 제안이 정책이 될 때까지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는 것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야만 시민이 플랫폼을 신뢰하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결정이 정당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시민과 서울시가 제안하고, 시민이 함께 논의해 결정하면, 서울시가 실행한다’는 방향성을 가지되, 그 중간 단계로 서울 시민 누구나 함께 논의하는 ‘서울의 공론장’이라는 컨셉이 드디어 완성됐습니다.

디지털 경제의 사회적 전환과, 사회적 경제의 디지털 전환

이 글은 사회적경제 정책포커스 2020년 12월 ‘한국판 뉴딜과 사회적 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2030년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20세기 최고 경제학자는 ‘여가’라고 답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1930년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란 강연에서, 대공황이 한창이고 파시즘도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100년 뒤의 인류가 “정치인들이 경제 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긴축 재정을 펼치는 등 파멸을 초래하는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서구의 생활수준은 4배로 높아지고, 주당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에게 뉴딜로 익숙한 케인즈의 100년 전 전망과는 달리,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경제 발전의 과실을 함께 누리며 늘어난 여가 시간을 고민하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 세대는 2050년 인공지능이 인류를 넘어서는 특이점을 거쳐 인류의 대다수가 직장을 잃으리라고 전망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기후위기가 인류의 파멸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인터넷이 발전할수록 혐오와 허위조작정보가 만연하고, 국가의 경제 발전과 무관하게 불평등과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다고 느낀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도 플랫폼 노동 혹은 불안정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5.2일, 하루 8.22시간인데 반해 월평균 소득은 152만원에 불과했다. 아마존과 같은 플랫폼 기업들의 수익과 가치, 영향력은 코로나19로 인해서 더 확장됐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에서 창고의 물품을 분류하고, 배송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감염의 위험과 무리한 노동 환경 속에서 질병에 걸리고 생명을 잃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마찬가지로 벌어지는 일이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시화 된 기후위기, 심화되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대전환을 이루고자 정부는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그리고 안전망 강화가 핵심인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 중 ‘데이터 댐’을 살펴보면 정부는 데이터를 수집, 가공, 거래,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데이터를 국가 산업의 원천 자원으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데이터 댐’ 구축과 관련해 주로 제시되는 정책은 공공 데이터 개방, 데이터 플랫폼 확대, 데이터 관련 청년 공공일자리 활용 방안이며, 민간의 데이터 활용이 용이하도록 개인정보 등의 여러 규제를 해소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을 통해 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동안 디지털 역량이 부족한 세대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와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 활용도를 높이는 내용을 포함한 직업교육과 평생교육과 같은 디지털 포용 정책도 함께 추진 중이다.

디지털 뉴딜을 포함하는 한국판 뉴딜이 2050년을 가리키는 위기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현존하는 위기를 극복하려는 거대한 전환의 전략임을 고려한다면,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전제로 하는 전략이 국민들이 느끼는 위기를 극복하는데 충분한 것인지, 국민들 개개인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데이터 댐 구축을 통해 정부가 보유한 공공데이터를 모아 공개하면 민간의 데이터 산업이 자연스럽게 활성화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차치하더라도,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D.N.A.)에 투자하고 규제를 완화해 관련 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대전환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디지털 전환을 충분히 체화하고 있지 못한 국민들에게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교육을 확대하는 것이 빈곤에 처한 노인 세대가 심화된 생존 위기를 극복하는데 충분한 전략 또한 아니다. 정부가 말하는 것과 같이 디지털 뉴딜은 공익을 강화하고 국민들이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가 더 깊고 넓게 한국판 뉴딜의 여러 분야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시민참여와 사회적경제가 빠진 인프라 중심의 디지털 뉴딜
출처: 2020.5.7.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 『한국판 뉴딜』 추진방향.

디지털경제의 사회적 전환과 사회적경제의 역할

플랫폼경제와 사회적경제

현재의 플랫폼 산업은 태생적으로 독점을 지향한다. 플랫폼 상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가치도 독점하려 하고, 경쟁 우위를 위해 데이터와 기술의 독점도 추구한다. 이런 독점적 지위와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한다. 영향력과 독점이 심화될수록 이해관계자는 급증하고, 사회 규제들과 맞닥뜨리는 경우도 늘어난다. 하지만 의사결정 구조는 대규모 투자를 가능하게 한 투자자들의 이해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효율성 증대와 투자를 통해 다수에게 편익을 제공함으로써 공익을 증진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가치와 기술의 독점, 불투명성과 폐쇄성, 투자자의 이익이 공익보다 우선시되는 의사결정 등을 목도하게 된다. 

반면 사회적경제조직들은 협동과 연대, 그리고 공공성에 기초한 사회적 가치 환원을 목표로 한다. 규모와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의미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지향한다. 또한 독점보다는 사회의 여러 이해관계자나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공유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계를 구성하는데 가치를 두며, 조직을 공동으로 소유하거나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독려하는 의사결정구조를 가진다. 사회적경제조직들의 이러한 성격과 지향점은 플랫폼산업의 독점적 성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플랫폼경제의 대안으로서든 보완재로서든 사회적경제가 가진 특징들을 플랫폼경제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플랫폼 협동조합’ 혹은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란 이름으로 전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돌봄이나 가사 노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플랫폼을 구축해서 서비스를 하거나, 프리랜서들이 일거리 플랫폼을 스스로 구축한다. 혹은 플랫폼 개발과 마케팅 전문성을 가진 프랜차이즈 기업과 지역의 드라이버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이 또 다른 연대체로서의 협동조합을 구성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주요 배달앱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과 노동조합들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협약을 맺었다. 필연적으로 다수가 참여해 성장해나가는 플랫폼경제에서 단순 이용자의 지위를 넘어 이해관계자로서 소유와 이윤 배분, 의사결정 참여는 필수적인 것이다. 플랫폼 기업이 플랫폼으로서 가진 장점을 발휘하면서 이와 연관된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기여와 공공성을 지향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경제의 기본 원칙과 경험들이 플랫폼경제에도 적용돼야 한다.

또한 독점을 지향하는 거대 기업들만 경쟁하는 플랫폼경제의 생태계가 보다 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공존하는 생태계로 변모할 수도 있다. 배달앱은 왜 1, 2위 중에서만 사용해야 할까? 내가 주문을 할 때, 배달 수수료가 적은 곳을 고를 수도 있지만, 주변의 이웃들에게 무료 급식을 하는 가게라든지, 쓰레기를 적극적으로 배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가게들만 모은 배달앱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수는 있어도, 충분히 있지 않을까?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디지털 전환의 경제 영역 곳곳에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앱을 만들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플랫폼경제 생태계가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를 위해 거대 플랫폼 기업이 독점해 생성한 데이터들을 어떤 기업이나 국민이든 사용할 수 있는 공공데이터로 제공하는 것을 국가의 역할로 고려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협동과 연대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 기업들도 디지털 서비스를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각자의 필요나 가치관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해 제공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공공앱을 직접 만들어 거대 플랫폼 기업과 경쟁하는 것보다는, 플랫폼경제가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건강한 생태계로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디딤돌을 제공하는 다른 의미의 ‘플랫폼’ 정부가 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데이터와 사회적경제

‘디지털 뉴딜이 곧 데이터 댐’이라는 데이터 정책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데이터 댐 정책은 정부가 주요 산업의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주도적으로 모아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디지털 전환을 국가의 중요 기간산업으로 설정하고, 인공지능 등 4차 산업 육성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충하겠다는 관점이 문제는 아니며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데이터가 가지는 가치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본래 공공데이터 개방은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국민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참여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는 열린정부운동으로부터 출발했다. 모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된 데이터는 정부-국민 간 신뢰의 기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신뢰를 통해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다양한 기관들과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신뢰는 혐오와 불신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 소중한 자원이다. 기후위기, 경제위기뿐 아니라 코로나19로 닥친 여러 위기를 국민 모두가 함께 해결하는 데 신뢰와 신뢰에 기반한 협력은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정부는 코로나19 초기 상황부터 개방성을 기조로 정보를 적극 공개했다. 국민들의 불안을 줄임으로써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방역에 동참하는데 기여했다. 더 나아가 마스크 품귀 현상이 발생하자 정부와 시민(시빅해커)이 협력을 통해 공적 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활용해 모든 이들이 주변의 마스크 현황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공공앱을 함께 만들었다. 데이터를 통해 국민과 정부 사이의 신뢰를 형성하고, 국민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주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광화문1번가를 통한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의 공공데이터 공개 요청 제안과 정책화 결과
출처: 광화문1번가 홈페이지

데이터 댐의 수요자를 시민 혹은 사회적경제로 확대해야 할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할 때 즈음 전국의 복지 관련 기관과 대구의 시민 사회, 혹은 사회적경제는 대구지역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긴급 지원을 진행하는 동안 중복 지원이나 필요한 물품 구입 과정 도중에 일어난 혼란 등 지원과 자원 운용상의 데이터를 미리 파악하거나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실제로 소방서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구조하는 비율보다 시민들이 서로 구조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직접 공공자원을 활용해 위기상황에서 문제를 각자의 처지에 맞게 해결하는 모델이 자리 잡아야 한다. 물론 이 말이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부정하는 말로 해석돼서는 곤란하다. 국가와 시민이 협력하는 거버넌스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대구에서 급증한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하려던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조직들의 노력들이 앞으로 이어질 위기에서 더 빛을 발하고 효과를 높이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와 플랫폼이 평소 마련돼 있어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뉴딜과 데이터 댐에서는 시민이 주도하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기반으로서 데이터의 생성과 활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데이터의 주된 수요자로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를 자산으로 볼 것인지, 노동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남아 있다. 디지털 뉴딜을 통해 모으고 축적하는 데이터의 상당 부분은 특정 개인과 연관된 행위가 일어나야만 생기는 데이터다. 의료서비스를 중심으로 디지털 뉴딜의 장점을 설명하는 정부의 설명에서 사용되는 데이터도 개인의 병력이나 의료서비스 이용내역 같은 개인과 연관된 정보다. 개인의 행위를 통해서만 발생하는 데이터는 노동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들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 활용 방식에 대한 결정권, 그리고 데이터를 통해 창출되는 가치에 대한 보상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나와 관련된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고,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내가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범위는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제공한 데이터를 통해서 발생한 가치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사회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국민들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더 나아가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 사회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디지털 디바이스 사용 교육보다는 데이터의 활용 역량과 스스로 데이터와 관련한 권한을 지켜내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디지털 뉴딜을 추진함에 있어 시민을 서비스의 수용자로 보는 관점을 넘어 자신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적경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직접 본인들의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시민들의 데이터 역량을 강화하고 데이터를 투명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역할을 맡을 필요도 있다.


시민사회와 노동자합의 디지털 뉴딜 대응 정책을 제안하는 “시민을 위한 공공데이터 정책 토론회”가 2020년 8월 21일 열렸다. 사진은 온라인 중계화면 갈무리. 
출처: 공공운수노조 유튜브 채널

알고리즘, 혹은 인공지능과 사회적경제

그리고 알고리즘이다. ‘기계의 판단은 중립적이다‘라는 일반적인 주장과 달리 알고리즘은 설계자의 관점과 가치관을 반영한다. 딥러닝으로 알려진 인공지능은 학습을 위해 마련된 데이터셋에 설계자의 관점과 가치관이 반영된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적용과 활용, 더 나아가 생성에 사회적경제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계가 사진을 읽어서 고양이인지 개인지를 판단하는 수준을 넘어서, 알고리즘은 어느 지역이 범죄에 더 취약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어떤 사람을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등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 무수히 만나게 될 인공지능의 자동화된 로직이 공공에 기여하는지, 특정한 편견이 반영되지 않았는지 반드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로직이 적용되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사회적경제조직들이 검증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적경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반영한 알고리즘이 정부와 사회에 정착하도록 알고리즘을 직접 생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야말로 앞으로는 누가 만드는 알고리즘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경쟁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무엇이 더 나은 결과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화된 알고리즘은 자연스럽게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을 대체함으로써 얻게 되는 부가가치가 해당 업종의 종사자, 혹은 사회에 환원된다면 이는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해당 업종의 종사자 혹은 대체된 노동자들이 알고리즘을 스스로 소유할 때 그 가치를 누릴 가능성이 높고, 공익과 사회적 가치를 본래 목표로 가진 사회적경제조직들이 그것을 사회에 직접 환원할 가능성이 높다.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적극 활용해 효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생성되는 가치를 구성원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사회적경제가 가진 구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과 플랫폼 등을 디지털 공공재로 만드는 것이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보장하는데 더욱 적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사회적경제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사회적 가치 실현이 중요한 분야나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의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사회적경제가 운영하도록 구성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전환: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역량 강화에 관해

플랫폼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경제 영역에서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 더 나아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적경제가 나섰을 때 기대되는 효과는 크다. 또한 디지털과 데이터는 산업 육성의 기반일 뿐만 아니라 사회혁신의 기반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연대와 협동,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설립된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디지털 뉴딜을 비롯한 한국판 뉴딜이 사회적 뉴딜이 되도록 분야별로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시민 참여를 넘어 시민 주도의 뉴딜이 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적경제의 역할이 확대된다면 기술 혁신을 통한 가치 창출이 실제로 공익을 증진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구조적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경제는 디지털 전환에 나서야 한다. 현재 개별 사회적경제조직들은 디지털 전환에 대한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으나,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사회적경제 연대체 차원에서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며, 정부 역시 이를 위한 기반과 지원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디지털 전환 및 플랫폼 협동조합 설립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고 지원하거나, 디지털 전환에 특화된 개발자들의 협동조합을 육성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플랫폼 협동조합의 성공 사례인 업앤고(UP&GO)는 뉴욕의 이주여성들이 만든 가사, 청소도우미 서비스로 디지털 개발 협동조합 코랩(colab.coop)의 지원으로 플랫폼을 구축했으며, 빈곤퇴치 활동을 해온 지역재단과 협동조합 설립 지원기관, 지역 은행의 사회공헌기금의 체계적인 지원을 받았다. 스타트쿱(start.coop)은 플랫폼 협동조합을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로 선발, 교육, 멘토링, 법률회계서비스 지원을 비롯해서 시드머니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도 일반 벤처투자사 위주로 이뤄지는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투자 및 엑시트 환경 일변도에서 벗어나, 디지털 분야 사회적경제조직들에 적합한 투자, 성장모델을 만들고 지금부터라도 숙성시켜야 한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들이 조직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민주적으로 건강한 거버넌스를 형성하고 운영하는 기술 또한 디지털 전환의 중요한 요소이다. 조합을 구성하는 조합원들과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사회적경제에 더 많은 시민들이 관여할 수 있게 하려면 사회적경제의 본래적 가치인 민주적 거버넌스 실현을 위해 민주주의 기술을 더 예리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사회적협동조합 빠띠는 앞으로도 이를 위한 디지털 기술을 발전시키고 필요한 플랫폼을 만드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조직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비롯해 생산자 및 소비자 조합원과의 거버넌스 운영, 그리고 서비스 이용자 또는 수혜자와의 소통에 이르기까지 사회적경제조직들의 연대와 협력에 기초한 민주적 운영을 디지털화하고, 그 장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디지털경제로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증진시키면서, 기후와 경제위기를 해결하는데 사회적경제의 장점에 주목하고 이를 디지털 뉴딜 전반에 적극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데이터를 산업 발전의 원자재로 바라보는 관점을 넘어서 신뢰와 협력의 기반, 사회혁신의 기반이자 시민들의 주도적인 참여의 기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 전환의 부작용에 대한 임시방편으로 사회안전망과 디지털포용 정책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사회안전망 강화와 디지털포용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도록 정책 설계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이 정책의 구성 과정에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사회적경제와 시민사회에 부족한 디지털 역량과 플랫폼 및 기술 자산이 확보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결론

우리는 뉴딜에 막대한 세금을 들여서 무엇을 전환하고, 어디에 도달하려는 것일까? 기후위기,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강화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 있어 디지털 혁신은 함께 집중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디지털 혁신이 사회적 가치와 공익을 중심에 두기 위해서는 ‘디지털 혁신의 사회적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디지털 혁신의 사회적 전환은 시민 주도의 민주적 전환, 사회적경제의 주요 역할 수행과 직결돼 있을 것이다. 100여년 전 케인즈가 ‘여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 예견한 2030년에 우리는 현존하는 기후위기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구현하는 새로운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까? 시민들과 사회적경제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현장에서 발 벗고 나섰듯이, 한국판 뉴딜의 현장 곳곳에서도 협동과 연대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주도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디지털 민주주의의 지평 넓히기 – 코드포코리아, 팩트체크넷, 공익데이터실험실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더 많고, 더 나으며, 일상의 민주주의를 만들겠다는 사회적 협동조합 빠띠의 2020년 한 해도 저물어 갑니다. 빠띠를 시작하던 무렵 “정치란 선출직을 뽑는 과정에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며, 일상 속에서부터 민주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영역에서 필요한 신뢰와 협력의 기반 중 하나이며, 따라서 민주주의 플랫폼에는 다양한 디테일이 필요하다”는 빠띠의 이야기에 낯설어 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2020년에 빠띠와 함께 한 파트너 분들은 OOO(공론장,커뮤니티,캠페인,데이터 등등)을 하고 싶으니 빠띠와 함께 OOO을 해 보고 싶다고 이야길 먼저 꺼내십니다. 2020년을 시작하면서 공개했던 빠띠의 항해지도에 담은데로 디테일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과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커뮤니티, 캠페인, 공론장, 타운홀, 데이터를 중심으로 빠띠는 정신없이 한해를 보냈습니다.

돌이켜보면 올해 빠띠는 서울의 작은 도서관, 사회적 경제, 서울 및 경기도 이외에도 여러 지역의 구와 시와 함께 시민이 참여, 협력, 주도하는 공론장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일을 함께 했습니다. 크고 작은 토론회를 비롯하여, 총회, 더 나가 주민자치박람회도 더 즐겁고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함께 했고, 70년이 된 휴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바꾸자는 캠페인, 청소년 기후행동 주도의 캠페인, 사회적 경제 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비롯하여 시민사회단체나 시민들의 다양한 주장을 전달하는 캠페인을 함께 하였습니다. 성평등정책을 만드는 시민들의 워킹그룹, 청년기획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워킹그룹 등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만드는 사업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이 모든 활동들이 우리 사회를 더 많이, 더 나은, 그리고 일상적으로 민주적으로 만드는 중요하고 디테일한 일들입니다.

플랫폼 또한 한 해의 내부 테스트를 거쳐서 기존의 그룹스가 아카이브, 의사결정, 워킹그룹, 거버넌스에 최적화한 카누로 탈바꿈합니다. 올해 처음 선보인 믹스도 쉽고 빠르고 필요한만큼의 공론장 솔루션으로서 파트너들에게 제공되어 왔고, 내년엔 본격적으로 서비스화 하게 됩니다. 타운홀도 완전히 다른 디자인을 입어 한국의 정서에 맞는 실시간 토론 및 모임 플랫폼으로 곧 공개되며, 누구나 쉽게 바로 온라인 캠페인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든 캠페인즈도 꾸준히 활용되고 개선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투게 시민이 주도하거나 협력하는 플랫폼의 뼈대 안에 공론장, 커뮤니티, 캠페인, 타운홀 등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상황 속에서 신뢰와 협력의 기반으로 작동하는 여러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어 왔습니다. 올해 초에 보여드렸던 항해지도를 거의 따라온 것 같습니다. 이 많은 일들을 하기 위해 그 사이에 빠띠의 크루도 20명으로 늘었습니다.

동시에 디지털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도 함께 진행을 했니다. 신뢰와 협력의 기술 기반을 만들거나, 민주적인 사회의 핵심 기반인 시민의 디지털 기술 주권과 모두에게 열린 기술이란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 빠띠가 예전부터 관심을 두어 왔던 일들이 코로나19라는 위중한 상황 속에서 급작스럽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는 공적마스크 재고 데이터 개방과 공적마스크 앱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일입니다.

공적마스크앱 개발을 주도한 코로나19공공데이터 공동대응과 코드포코리아

2월말에서 3월초 사이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던 시점에 마스크 품귀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직전에 빠띠의 데이터팀은 카드뉴스나 홈페이지에서 텍스트로 공개되던 정보를 긁어서 코로나맵 서비스를 제공하던 팀들에 연락해 정부가 직접적으로 코로나19 관련 데이터를 공공 데이터로 공개해 달라는 요청을 코로나19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을 만들어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요청 중에 마스크를 비롯한 보호구가 품귀현상이 발생시에 정부가 만약 직접 배급하게 된다면 배급처 정보와 재고 정보도 API로 제공해 줄 것을, 그렇게 제공하게 되면 여러 시민 개발자들이나 기업이 해당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형식의 앱을 만들어서, 정부가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시민들에게 정보가 전달될 것이란 점도 담아서 요청을 하였습니다. 방역 당국의 선제적인 조치들을 칭찬하고 혜택만 보는 시민이 아니라, 방역 상황을 극복하는데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를 담아서요.

그때 마침 마스크 품귀 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긴급하게 마스크 배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코로나19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이 제안한 방식으로 데이터를 개방하고 민간이 앱을 개발하는 방식이 정부에서 진지하게 검토되었고, 한국정보화진흥원과 과기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복지부 등이 공적마스크 재고데이터를 개방하는 작업에 저희가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이후 빠띠를 비롯한 코로나19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은 API의 설계와 테스트와 피드백에 참여하고, 실제로 개발을 진행할 개발자들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모으고, 바로 개발에 착수할 수 있도록 가이드와 필요한 여러 지원들을 연결하는 작업을 5일 가량에 걸쳐서 진행하였습니다. 그 후 공적 마스크 제도가 시작된지 일주일이 안되어 시중의 마스크 재고 정보를 담은 앱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 이 모든 과정은 코드포코리아 위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불과 2-3일 사이에 정부와 함께 공적 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제공하는 API를 만들고, 이를 활용하는데 필요한 가이드를 만들고, 200명이 넘는 시민 개발자(시빅해커)들이 각자의 앱을 만들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기술을 가진 시민들의 중요성, 정부는 환경과 문제, 자원을 제공하고 시민이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방식의 민관협력의 가능성, 특히 판데믹과 같은 상황에서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어떻게 정부와 시민간의 신뢰를 높이고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보았습니다. 공공 데이터와 기술이 열려 있을 때 얼마나 유용한지도 보았구요. 이는 시민의 디지털 기술 주권을 보장하고 모두가 활용 가능한 데이터를 확장하는 디지털 민주주의의 또 다른 지평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공공데이터공동대응은 이후 코드포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를 위해 기술을 활용하려는 시민 개발자(시빅해커)들의 네트워크로 발전 중이며, 또 다른 프로젝트들을 준비 중입니다.

코로나19 공공 데이터 핸드북_코드포코리아 제공
💌FtO Anywhere 2020-1 #공중보건 : 한국 🇰🇷 “전 국민이 해커톤을 하듯이 코로나19 대응하기 위해 협업하다”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허위조작정보를 검증하는 ‘팩트체크넷’ 제작

디지털 민주주의를 논의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우려사항들이 있습니다. 모욕과 욕설을 비롯한 인신공격과 신상공개, 부정확한 정보의 유통이나 나쁜 의도로 만든 조작된 정보, 단순 투표와 다수결 혹은 다수의 댓글로 결정을 내리는 형식적인 민주주의 등입니다. 디지털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 시민들의 신뢰가 필요함에도, 이러한 우려사항들은 쉽게 디지털 민주주의를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들고는 합니다. 빠띠는 민주주의에는 신뢰와 협력의 기반이 필수적이며, 신뢰와 협력의 기반을 지탱하는 기술들이 더 많이 연구되고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고, 개인이 안전하게 의견을 낼 수 있으며, 의견들은 합리적인 숙의 과정을 거쳐서 다수의 의견과 소수의 의견이 명확하게 파악될 수 있도록 돕는 기반 기술들은 앞으로도 많은 지원과 연구가 필요한 민주주의의 또다른 지평입니다.

디지털 민주주의의 또 다른 지평을 넓히기 위해 빠띠는 한국방송기자연합회, 피디협회, 기자협회와 함께 방송통신위원회의 인터넷 신뢰도 기반 형성 사업에 참여해서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허위조작정보를 검증하는 ‘팩트체크넷‘을 지난 11월에 오픈하였습니다. 저널리즘에 입각한 사실 검증에 익숙한 기자들과 팩트체킹의 중요성을 공감하는 시민들이 팀을 이루어 인터넷 상에 떠도는 루머 중 주제를 택해 사실 관계를 확인해서 판단하는 플랫폼이란게 특징입니다. 또한 사실을 검증하는 과정이 플랫폼 상에서 공개되어 팩트체커가 아닌 시민들도 댓글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습니다. 내년엔 더욱 더 많은 시민들이 전문가로서, 시민팩트체커로서, 혹은 또 다른 역할로서 함께 팩트체킹을 해 나가는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가며 크라우드소싱 방식의 팩트체킹 플랫폼으로서 한국에 자리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팩트체크 플랫폼은 신뢰와 협력의 기반으로서 더 나은 민주주의 또 다른 핵심이라고 빠띠는 여깁니다. 신뢰를 증진하고 협력의 바탕이 되는 기술들은 앞서 밝혔듯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기술 상태에서는 댓글수, 투표수로 중요한 사회적 의사결정을 하기에는 대표성을 비롯해 신뢰나 안전이 부족합니다. 또한 많은 개인들이 인터넷 상에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더욱 더 소수의 목소리가 증폭되게 만들고, 증폭된 주장은 침묵하는 다수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디지털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선 신뢰와 협력 기반을 만드는 여러 다양한 기술들이 연구되고 발전되어야만 합니다.

시민 주도로 문제를 설정하고 데이터 생성, 활용, 재생산까지 진행하는 ‘공익데이터실험실

빠띠는 올해 서울시로부터 색다른 공유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바로 데이터 공유기업인데요. 데이터를 공공재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기업으로서 빠띠는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설정하고 데이터를 생성하거나 활용 재생산하는 공익데이터 실험실을 운용하였습니다. 보통 정부가 가진 데이터를 시민들이 들여다보거나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 경우가 공공데이터입니다만, 정부의 데이터를 넘어서서 공공의 자금이 들여 만들어진 후 공개된 데이터나 민간에서 만든 데이터임에도 공공을 위해 제공되고 있는 데이터들을 묶어 공익데이터란 개념들로 확장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사회에서 누구나 접근 가능한 데이터가 늘어나는 것은, 프랜차이즈 커피숍보다는 공원이 늘어나는 것이나, 앞서 설명드린 코로나19 공공데이터처럼 사회 문제 해결에 시민들이 나설 수 있는 기반이 된다거나, 혹은 데이터가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을 누구나 시작할 수 있도록 허들을 낮춰주는 것과 같습니다. 디지털 전환에서 데이터를 비롯한 디지털 공공재가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직접 기술을 활용해 없는 데이터를 만들어 내고, 있는 데이터를 활용하고, 또 다른 데이터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가진 시민들이 늘어나는 것이 앞으로의 디지털 사회가 더 민주적으로 자리잡는데 어쩌면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판데믹과 같은 상황에서 더 많은 주체들이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을 비롯해서, 플랫폼 사업자의 독점 상황을 개선하거나 투명하지 않은 정부의 의사결정에 대응하는데 시민들이 나서기 위해선 기술과 데이터에 대한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결국 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해서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작동합니다. 이를 시민의 디지털 기술 주권 혹은 데이터 주권이라고 부르며, 해외에서는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시도들이 이어져 왔습니다. 디지털 사회의 근간인 디지털 민주주의의 근간에는 이와 같은 디지털 주권을 보장하는 근간을 제도적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수적이며, 이 또한 디지털 민주주의 또다른 지평입니다.

이에 기반해서 빠띠는 올해 시민들과 함께 문제를 설정하고, 제공되고 있는 데이터를 활용하거나, 없으면 정보 공개를 통해 요청하거나, 직접 만들어 내고. 이후 해당 데이터를 다시 공공재로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동들도 부모님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터 정보를 정리하거나,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디어디를 거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데이터로 확인하고, 코로나19 상황에서 무상급식이 필요한 이웃들이 어떻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지 확인하거나, 지난 10년간의 스토킹 범죄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다거나 하는 일들을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 전문가들을 협력가로 모셔서 교육과 컨설팅을 병행하였구요. 또한 이외에도 시민들이나 시민사회단체가 주도적으로 다뤄온 데이터 프로젝트를 정해서 모으고 공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빠띠가 만든 데이터퍼블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공익데이터실험실 데이터와 활동소식을 담은 데이터퍼블릭

정리하며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더 많이, 더 나은, 일상의 민주주의를 확대하자는 생각으로 설립하였기에, 기본적으로 시민 주도로 혹은 시민과 협력하는 플랫폼을 만드는데 기획운영컨설팅을 하거나, 다양한 영역에서 신뢰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여러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드는 일을 빠띠는 해 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올해는 인터넷 상에 신뢰와 협력을 위한 기반 기술을 만드는 일, 시민의 디지털 기술 주권을 확대하고 실제로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영역을 넓히는 일들도 함께 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로도 우리가 맞이하게 될 디지털 사회에 더 많이, 더 나은, 일상의 디지털 민주주의가 자리잡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산업을 육성하고 인공지능 산업을 확장하는데 사회적 자원과 역량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행복한 디지털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 디지털 민주주의와 디지털 공공재 그리고 그 기반에 놓일 시민의 디지털 주권을 확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여기에도 사회적 자원과 역량이 늘어날 수있을까요?

2021년에도 빠띠는 디지털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히고, 그 안의 디테일들이 살아 숨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 한해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술은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술을 활용한 사회 혁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사례가 있습니다. 공적 마스크 배포 과정에서 정부, 기업, 시민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만든 앱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부는 약사들이 입력한 마스크 판매 이력을 모아 마스크 재고 현황을 공공 데이터로 공개했습니다. 네이버, 카카오, KT 등 기업은 현황 데이터를 원활하게 공개할 수 있도록 서버를 제공했고요. 시빅해커(시민개발자)들과 관련 기업들은 마스크 재고 API를 활용해 약국의 마스크 수량을 확인하는 앱을 개발했습니다. 약사들이 손으로 입력한 데이터가 시민의 손에 닿는 과정을 정부와 기업, 시빅해커가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함께 만들어낸 것이죠. 이런 일이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이루어졌을까요?

중요한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이롭다는 정부의 방침과 재난 극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빅해커들의 열정이 상호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민주주의 혁신의 수단으로 기대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슬로건은 기술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공공재나 공유재로서 다수가 기술을 함께 소유합니다. 누구나 쉽게 사용 가능한 기술을 만듭니다. 기술에 영향을 받는 이들이 기술의 작동 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합니다. 기술을 활용해 더 안전하고 풍요로우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전망에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기술을 함께 소유하고,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며, 기술 활용으로 창출되는 부가 가치가 모두를 위해 쓰이도록 민주적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술의 민주적 구성이 중요한 이유는 기술 활용의 낙관적인 전망의 이면에 있는 부정적인 가능성 때문입니다. 로봇으로 대표되는 생산 수단을 일부가 독점하여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생기는 사회나, 과도한 환경 파괴와 자원 남획으로 인류 및 생태계가 멸종 위기에 처하고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사회도 우리는 예상합니다. 현대문명 기술로 서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지고 이 때문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세계로 퍼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전망할 때 과학 기술을 원인이자 해결책으로 지목하곤 합니다. 대전염병이 인류를 멸망시키거나, 지금보다 퇴보한 사회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은 기술 발달로 인해 초-연결된 사회 때문이라고 분석하죠. 한편 물리적 거리두기에도 사회적 연대를 유지하는 데 화상회의, 온라인 강의 등 초-연결 기술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기술이 원인이자 해결책으로 지목되고, 그 기술의 판단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다면, 우리는 다수가 기술에 접근하고 기술을 만들고 소비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술에 접근하는 순서를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최첨단 기술이 펼쳐질 미래를 상상할 때, 기술의 활용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곤 했습니다. 이제는 기술이 다수를 위해 활용되도록, 기술을 함께 소유하고 기술에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기술의 발전이 민주주의와 함께 지속해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음 원칙들에 대한 지속적인 합의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와 함께 기술이 발전하기 위한 6가지 원칙 

1.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
2. 정부 및 기업 데이터를 모두가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공유
3. 특별한 소수가 아닌 평범한 다수를 위한 플랫폼 서비스 제작
4. 플랫폼에 가치를 더하는 사람들을 플랫폼 운영 및 소유에 참여 유도
5.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술의 작동 원리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요 정책을 시민과 함께 결정
6. 코딩 등의 교육을 넘어 시민 누구나 기술을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

모두를 위한 기술을 기대한다면 이 6가지 원칙에 따른, 모두에 의한, 모두의(가 함께 소유하는) 기술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이때 가능한 선택지는 다양하게 열려있는데요. 선택지를 살펴보려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다음은 유명한 SF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솔라리아’라는 행성을 묘사한 내용입니다.

“대화할 필요가 생기면 화상으로만 이야기를 나눕니다. 고도로 발달한 로봇이 필요한 모든 물품을 생산하고, 시설을 관리하기에 더 이상 인간의 노동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집단을 이루면 갈등이 생겨 내 의지를 꺾거나 상대의 의지를 꺾어야 하는 일이 생기니, 자원과 권한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거리를 두고 행성 전체의 인구도 섬세하게 관리합니다.” 

코로나19로 물리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서로에게 혐오와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원격 근무를 실험하며 안락함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가는 지금, 우리 사회는 ‘솔라리아’를 닮아가게 될까요? 그러나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세계에서 ‘솔라리아’는 인류가 우주로 나가면서 개척한 행성 중 마지막 50번째였고, 나머지 행성들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른 삶의 방식을 만들어갔습니다. 우리의 미래에도 가능한 선택지가 다양하게 열려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잠깐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죠.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당신과 후손들이 살아가게 될 미래를 선택하는 과학과 기술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나요?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장치와 제도, 토론과 논쟁이 충분히 가능한 환경인가요?

앞서 얘기했던 시빅해커들의 모습을 떠올려봅시다.

마스크 재고 앱 개발에 참여한 시민은 중학생부터 대학생, 스타트업 개발자 등 다양했습니다. 다양한 오픈소스와 간편한 기술 인프라에 더해 공공 데이터가 적극적으로 제공되어 누구나 마스크 재고 앱 개발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빅해커들은 자신들의 기술로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 보람을 느꼈고, 정부의 적극적인 데이터 공개와 누구나 참여 가능한 기반 제공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시민의 디지털 역량이 커지고, 공공의 디지털 자원이 보편적으로 접근 가능할 때 사회가 문제를 다루는 방식도 달라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도 커진 것이죠.

<노동 없는 미래>를 쓴 팀 던럽은 기술 발전으로 노동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제시하면서도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만일 소수가 원하는 것들보다는 다수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응하는 정부를 재창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든 걸 포기한 채 새로운 로봇 지배자들을 환영하고,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의 삶을 살 기회가 싹 사라져 버린 세상, 그리고 그들과 우리로 갈라져 대립해야 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불행한 미래가 다가오기 전에 기술을 둘러싼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공공과 사회가 공유하는 기술을 늘려나가야 합니다. 다수를 위한 디지털 기술 기반의 사회 혁신이 작동하도록 다수의, 다수에 의한, 다수를 위한 기술을 만들고 그에 필요한 환경 구축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변화한 시민과 기술 혁신에 기반한 거버넌스 체계 혁신

촛불시위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열망과 함께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지점은 ‘시민들의 활동 방식’입니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과 형식으로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놀이와 활동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집회에 참여한 나’를 강조하며 자아정체성 드러내기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촛불시위에서 관찰된 시민들의 활동 방식은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과 디지털 플랫폼의 확대가 본격화되고 시대와 시민이 변화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두 한국사회가 수용해야 할 시민 참여의 다양한 모습입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시민 참여의 형식은 청와대의 국민청원으로만 수렴된 듯합니다. 다수의 국민은 미디어를 신뢰하지 않고 뉴스를 소비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기자나 전문가의 게이트 키핑이나 이슈 메이킹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이슈를 만들 수 있는 창구로 국민청원을 택합니다. 이를 통해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역대 정권에 비해 분명 소통의 질과 양이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국민들의 효능감 역시 높아졌습니다. 다만 현 정부에서의 시민 참여는 여기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소통’이라는 키워드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시민들의 열망은 더 큽니다. 10년 전의 참여 정부, 아고라와 비슷한 국민청원에서 그치지 않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에 대한 궁금증도 품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촛불시위를 통해 발현된 더 나은 민주주의 체계를 향한 열망과 기대감 덕분에 조직 내 민주주의, 젠더 갈등, 개별 사건에 대한 이슈 메이킹 활동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제들을 둘러싼 논의는 제한된 참여 형식과 경로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는 데에 그쳤습니다. 이는 조정이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정책으로 입법화하지 못해 사회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비판과 함께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의심으로까지 이어집니다. 

“‘혁신적 포용국가’는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을 추구하며, 배제와 독식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의 사회를 도모하고, 미래를 향해 혁신하는 사회이며, 강자만을 위한 대한민국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대한민국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의 비전입니다. 시민들의 높아진 열망을 뒷받침하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참여의 형식과 경로를 늘려 공존과 상생의 기반으로서의 소통과 협력의 기반을 확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시민 참여의 변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 때 고려해야 할 방향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시민 참여의 포괄적 정의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시민 혹은 시민 단체 활동가와는 다른, 사회 문제나 활동에 무관심한 시민을 의미하는 ‘일반 시민’이란 이상한 용어가 있습니다. 기획, 실행, 운동 전체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일부에만 관여하는 시민입니다. 일반 시민은 그동안 사회 변화의 주체로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여론 조사를 통해서도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아 사회 변화의 주체로 주목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민’으로 다시 불려야 합니다. 

기술을 가진 개발자나 디자이너는 시빅해커(Civic Hacker)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정부가 투명하게 공개한 데이터를 활용해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 제공합니다. 난임의 고통을 겪는 시민들은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이것이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발견하고 정부가 저출생 시대의 대책으로서 난임 당사자들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활동을 하는 이들은 환경부에 강력한 단속을 요구합니다. 또한 대형 커피숍 프랜차이즈에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것을 촉구하지요. 보편적, 실질적인 현상을 파악하려면 이들의 활동을 포괄해서 시민 참여를 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각자의 환경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활동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2. 종합적이고 협력적인 시민 참여 모델

시민 참여 혹은 시민 주도의 분권 및 자치 모델은 단일하지 않습니다. 작은 조직과 큰 조직의 소통과 협력 방식이 다르고, 조직과 조직, 개인과 조직 간의 소통 방식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법을 만드는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키는 경우와 시행 중인 정책에 대한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거나 갈등 상황에 놓인 이해당사자를 조정하는 경우도 서로 다릅니다. 적합한 구성 방식을 갖추고 나면 각 단위 간의 조정과 협력 역시 필요합니다. 다양한 민주주의 모델을 개발하고 해당 단위들 사이에도 조정과 협력이 일어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작고 유연한 커뮤니티, 효율적으로 협력하는 조직, 외부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 투명한 정보 공개와 갈등 조정 기능을 포함합니다.

다양한 단위에 적합한 소통과 협력 모델, 이들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예를 들어 서울시는 ‘민주주의 서울’을 통해 시민이 내는 제안, 서울시가 만든 정책을 공론화하는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시민 개인의 제안을 한 명의 공무원이 답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소수의 시민이 제안하고 더 많은 시민이 함께하는 공론화 단계를 거쳐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는 모델을 만들 계획입니다. 시 정부의 역할을 고려한 설계입니다.

민주주의 서울은 제안을 공론화하는 과정과 이를 운영하는 체계를 수립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3. 협력적인 소통에 필요한 기술 기반과 정책

눈부시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 속에서도 유독 제자리걸음을 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미디어와 댓글, 토론 등의 협력적인 소통에 필요한 기술 분야입니다. 투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미디어 서비스는 종이를 디지털화한 데 머물러 있습니다. 토론은 댓글을 남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제한된 도구는 제한된 소통 방식과 여러 부작용을 낳습니다. 

현재 기관들이 주도하는 다양한 시민 참여 플랫폼은 기능 및 운영 노하우 부족이라는 문제 이전에, 기술적인 인프라가 충분치 않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온라인에서 안전하게 의견을 낼 수 있나요? 온라인에 표출된 의견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신뢰는 어떤 조건을 내포할까요? 다수가 신뢰하는 데이터가 있나요? 다수가 신뢰하는 대중매체는 있을까요? 의견을 주고받고, 갈등과 조정을 거쳐 합의에 이르는 프로세스는 존재하나요? 대표성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해외 사업자가 운영하는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나 정책은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고, 지금도 충분히 준비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페이스북 상에서 불법적으로 정보를 공개한 페이지 운영자와의 대화입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정부는 부처별로 제각각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공 데이터 확대, 미디어 산업 육성 및 가짜 뉴스 대책 마련, 젠더 폭력 방지 대책, 개인정보보호 대책, 블록체인 기반 투표 시스템 개발 등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흐름이지만, 이를 넘어서 통합적인 논의의 장이 필요합니다. 공존과 상생을 달성하기 위한 포용국가의 인프라로서의 비전을 세우고 소통과 협력에 필요한 기술 개발과 정책 수립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글과 댓글, 좋아요가 시민 참여를 위해 우리가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의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4. 점진적인 진행 및 혁신적인 수단 

물론 시민 참여의 의미를 확대하고, 사회 곳곳에 필요한 소통과 협력 모델을 개발하며, 이에 필요한 기반 기술과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이 단번에 이뤄질 수는 없습니다. 시민 참여 플랫폼 개발 및 운영, 활동하는 시민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만이 과정의 전부인 것도 아닙니다. 

직접민주주의 요소와 기존 대의제 및 관료 조직과의 융합,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정의하는 사회적 합의, 대표성의 정의에 대한 정책 결정 등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권한을 확대하기 위해선 거쳐야 하는 단계가 많습니다. 이들을 실험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실험을 수행하는 동안 여러 가지 안전장치가 있어야만 합니다. 가능하면 갈등과 사회적인 임팩트가 덜한 문제부터 시작해서 심각한 갈등이 있거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와 빠띠는 ‘민주주의 서울’을 시작할 때 결정의 역할보다 시민과의 논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한편 지금은 서울 시민과 함께 중요한 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정책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민토론의제선정단과 같은 단위를 만들어서 시민들의 단순 제안이 정책화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기획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주제를 논의할 때에도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라 들이는 노력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데모스X로 플랫폼 운영 가이드와 소스를 공개해서 외부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받기도 하고 시행착오와 노하우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서울과 같은 기관 주도 공론장 외에도, 빠띠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입법 프로젝트나 공론장 운영 프로젝트, 이슈 커뮤니티 구성 등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하우를 민주주의 툴킷으로 정리해서 오픈소스로 공개했습니다. 

서울시와 빠띠가 오픈소스로 공개한 민주주의 서울 플랫폼 소스와 운영 가이드 데모스X입니다, 이미지 출처: 데모스X 캡처 화면
빠띠의 시민입법, 시민토론 등의 민주주의 툴킷입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홈페이지 캡처 화면

산업을 육성할 때 활용하는 혁신적인 수단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 캐피털인 와이콤비네이터는 2017년에 민주주의, 언론, 일자리 문제를 다루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고 공표했습니다. 유럽위원회는 2012년부터 The CAPS initiative (Collective Awareness Platforms for Sustainability and Social Innovation)를 운영하며 지속가능성과 사회혁신을 위한 달라진 시민 참여 기반의 솔루션을 만들기 위한 연구 작업, 펀딩, 플랫폼 개발을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정부의 시민 참여 플랫폼 연구를 중요한 과제로 다루어야 합니다. 시민 참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회적 기업이나 플랫폼 협동조합이 늘어나면 더더욱 바람직하겠고요. 

CAPS의 활동 영역입니다, 이미지 출처: CAPS

결론

디지털 기술이 변화하는 속도만큼, 시민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 속도가 늦춰질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뒤쫓을 게 아니라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고 그 변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어지도록 함께 기여해야겠지요.

디지털에 기반한 정보 기술은 정보를 축적 및 확산할 수 있고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를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을 수립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의 경우,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이뤄낸 성과를 돌이켜보면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거버넌스 체계 수립을 앞서 실현할 수 있는 사회 경험과 기술 기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압축 성장을 거쳐 서로 다른 경험을 한 다양한 세대가 동시대에 사는 복잡한 사회이기도 합니다. 분단국가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갈등을 조정하고 상생과 협력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혁신적인 민주주의와 거버넌스 체계 수립이 과제이면서도 기회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다음 5개의 거버넌스 체계 요소가 잘 기능하는 사회를 바라봅니다.

1) 사회가 공통으로 신뢰하는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 정보공개
2) 누구나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이슈를 가지고 각자의 여건만큼 활동하며, – 커뮤니티
3)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이슈에 모두가 함께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 캠페인
4) 참여한 시민들이 서로 신뢰하는 방식을 활용해 공론을 만들고, – 매스 미디어, 공론장, 소통과 신뢰 기술
5) 공론이 기관의 정책 수립, 법 개정, 예산 조정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 – 기관 주도 공론장

이제는 이런 사회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글 | 빠띠 설립자, 슬로워크 소셜테크랩 리더 시스
이미지 | 슬로워크 책임 디자이너 길우
편집 | 슬로워크 책임 테크니컬 라이터 메이

지자체가 운영하는 민주주의 플랫폼의 조건과 민주주의 서울의 시작

2017년 2월 9일.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서울시청 근처로 두 공무원을 찾아갔습니다. 설 직후라 조용했던 서울시청 근처, 저는 그날 처음 본 분들에게 “담당 공무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요. 여러 필수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서 무리하지 않으시면 좋겠네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올해 말까지 시범사업을 끌어온 ‘민주주의 서울’의 첫 미팅 자리였습니다.

대통령 탄핵 정국이었던 그 당시 빠띠가 해 왔던 사업이나 빠띠가 만났던 사람들은 대체로 “시민이 자발적으로 자기 조직화를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누군가 시민을 불러모아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미묘하게 나뉘어 있었습니다. 빠띠는 ‘시민의 자기 조직화’에 집중하며 우주당을 만드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빠띠가 직접 하는 사업과는 별개로 우리가 만나는 분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생각이 실현되는데 필요한 게 무언지 고민해 주고 함께 답을 찾아보는 일도 자주 하고 있었죠. 그러나 탄핵 정국에서 기관의 민주주의 플랫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문의하는 팀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전에도 몇 년간 서울시의 다른 담당자들을 서너 차례 만나긴 했었습니다. 처음엔 ‘천만상상 오아시스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였고, 이후엔 ‘디사이드 마드리드 같은 것을 서울시에 도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였어요. 아래에 나눌 이야기를 똑같이 해드렸지만, 이야기한 내용 중 부분부분만이 떠돌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운영팀을 구성하고 운영팀이 “애자일 방식이나 MVP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중 “애자일”이 한동안 서울시 내에 회자되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설 직후 미팅에서 만났던 분들은 고시를 통해 공무원이 된 분들로, 실제로 그 업무를 직접 다루고 있는 분들이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상명하달로 주어진 업무여서가 아니라 본인들이 맡게 될 업무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시로 옮겨온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아직 발령을 기다리는 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질문에 간단히 답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늘 하던 답, 지난 몇 년간 제가 서울시 다른 담당자들에게 말씀드렸던 이야기를 우선 그대로 해드렸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1. 아직 온라인상에서든 오프라인상에서든 시민들의 단순 제안이나 청원을 넘어, 참여와 토론, 권한을 어떻게 위임할지 연구가 많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그 답을 함께 찾아가는 팀을 만들고, 그 팀이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며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 팀의 구성원은 외부 전문가와 내부 공무원이 섞여 있는 게 좋고, 외부 전문가는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결과로 나오는 디지털 플랫폼은 반드시 최대한 간단해야 합니다. 고민과 노력이 깊을수록 플랫폼이 간단해지는 것이지, 간단한 걸 따라 만든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2. 민주주의 플랫폼이든 시민참여플랫폼이든 이 플랫폼을 통해서 어떤 효용이 있을지를 시민들이 믿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플랫폼의 최고 책임자가 정무적인 역량과 동시에 시 내부 체계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그 권한은 상징적이어도 괜찮지만, 필요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시장 주도로 하거나, 부시장이 주도하거나, 혹은 시장이 외부 전문가에게 1번의 조직을 만들며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3. 어떤 플랫폼이나 정책이든 초반에 열광하며 믿고 참여하는 시민이 필요합니다. 물론 새로운 일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만드는 일은 무척 어렵습니다. 큰 기업에서도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만 이 일에 애를 먹는 게 대부분입니다. 초기에 선출직 리더를 지지하는 기반이 탄탄하다면 이 기반을 활용해서 시민과의 소통, 협력을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입장이 강화되더라도 그 부작용을 관리하면서 나가는 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니 현재 시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 얼마나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필수 조건입니다.

요약하면 1) 전문성을 가지고 답을 찾아갈 권한을 위임받은 운영팀, 2) 팀을 이끌거나 혹은 단단하게 지원해 주는 권한을 가진 책임자, 그리고 3) 초기에 시정을 지지해주는 시민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서 사실 세 번째만 있어도 초기 흥행은 성공합니다만,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없으면 2년 안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며 지지자들이 실망하며 돌아섭니다. 그 틈을 타서 정치적 입장이 다른 진영에서 정책이 소용이 없다거나, 무책임하다거나, 부작용이 심하다는 공격이 들어오게 된다고도 말을 했습니다.

이 외에도 플랫폼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게 여러 가지 더 있지만, “이렇게 이렇게 하면 성공합니다”라는 정답은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는 기관이라면, 위의 세 가지가 갖추어져 있는지를 가장 먼저 생각해 보라고 권합니다. 한국에서는 공무원과 전문가를 섞은 팀을 만드는 방식도 경직되어 있어서, 지금은 1번의 운영팀을 내부의 의지를 가진 담당 공무원들과 외부의 전문가팀, 두 개로 나누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탄핵 정국, 그리고 박 시장님의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상태에서 서울시에 갓 배정받은 두 공무원, 거의 다 망가진 상태였던 천만상상 오아시스, 여기에 갑자기 높아진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기대감이 무색하게 실험도 고민도 해 본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거의 없는 상황까지.

여러 가지 넘어야 할 조건을 논의하고 난 후 “너무 고생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의 권한 밖에서 준비되어야 할 일들이 많으니까요”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끝이 났다면 지금 민주주의 서울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 후 얼마 뒤에 저는 다시 연락을 받게 되고, 그로부터 다시 반년 뒤 ‘민주주의 서울’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함께 만들게 됩니다.

인터넷, 민주주의, 공공재 그리고 빠띠

벌써 5월의 중순입니다. 한달의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동시에 1년의 절반이 다가옵니다. 올 봄에 빠띠는 앞으로 2년간의 로드맵을 그렸고, 차근차근 목표들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2017년까지의 빠띠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위한 실험과 민주주의 문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의 확산”에 집중했습니다. 2018년부터 빠띠는 플랫폼과 방법론을 정리하고, 알맞게 팀을 구성하여 목표 하나씩 집중해 성과를 만들어 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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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플랫폼 협동조합, 민주주의 활동가 협동조합의 설립

협동조합 설립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지난 블로그에서 전해드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구체적인 계획’과 ‘나도 참여할 수 있는가’를 물어주셨습니다. 여러가지로 감사합니다. 빠띠는 초창기부터 협동조합 설립 구상을 꾸준하게 이야기해왔습니다. 오늘 보내 드리는 글에는 빠띠가 협동조합을 택한 이유 하나를 정리하면서, 함께 생각할 거리를 나누려고 합니다.

인터넷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하시겠습니까?

인터넷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하시겠습니까? 저는 정보를 공유하고 집단의 지성을 모아내는 인터넷의 특징을 활용해서 “세상을 더 민주적인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저는 “세상을 더 민주적인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권한의 비대칭, 정보의 비대칭을 활용해서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고 때론 착취하는 세상이 아니라, 권한과 정보를 나눔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모두의 기여로 한두사람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 접속 장치만 있다면 시간과 장소를 넘어서 정보에 접속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으로 만들 수 있는 멋진 세상이라고 상상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미디어와 커뮤니티의 전문성을 쌓는 일을 저 개인의 중요한 과업으로 삼았고, 운이 따라서 좋은 팀에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페이스북과 네이버의 독점과 불투명성에 대한 사회의 우려가 고조되고, 트위터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하자는 운동이 진행되는 등 시대의 흐름도 긍정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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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왜 중요할까요?

저는 민주주의를 우리 선조들이 축척해온 공공재를 관리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원을 놓고 경합하는 상황을 정치라고 할때,
민주주의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들이
공공재, 자원 운영과 활용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입니다.

자신의 생은 각자가 책임지고, 경쟁에서 밀려나도 스스로가 더 노력하지 못했다는 인식은 우리 사회를 우리에게 앞선 세대들로부터 물려받은 ‘공공재’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생깁니다. 그 생각의 부재는 “공공자원의 운영에 우리가 참여해 본 경험을 통해 해소할 수 있습니다. 부의 양극화, 세대와 젠더 갈등이 심해지는 지금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혁신’이 더욱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터넷 기술이 민주주의를 혁신하는데 필요한 기반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는 공공재와 자원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활용하는데 필수적인 기술입니다. 자원을 활용하는 일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면, 사회 가 전반적으로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인터넷 기술로 민주주의 문화를 확산시키고, 궁극적으로 모두가 공공재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 제가 빠띠를 통해 민주주의를 혁신하는 기술을 만들려는 이유입니다.

민주주의를 혁신하는 기술은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합니다

몇년간의 대격변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혁신하는데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자”는 제안에 많은 분들이 동의합니다.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나가봅시다.

‘민주주의를 혁신하고 근간이 되는 인터넷 기술’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요? 지금은 누가 만들고 있을까요?

“민주주의를 혁신하고 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인터넷을 활용한 기술”은 우리 모두의 것(공공재)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기술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서 구성원 누구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감시하고 개선할 수 있어야 합니다.

https://github.com/parti-x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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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빠띠, 이를 위한 도전들

빠띠는 그래서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합니다. 더불어 우리가 만든 플랫폼의 소스를 깃허브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이 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주식회사를 만들거나, 정부에게 이 일을 그냥 맡겨 둘 수는 없었습니다. 빠띠를 사람들과 함께 소유하고, 빠띠의 작업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빠띠의 작업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며 함께 사회의 근간이 되는 기술을 만드는 조직을 만들려고 합니다. 누구보다도 빠띠에게도 더 나은 민주주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 플랫폼을 공유재로 만들기 위한 빠띠

우리의 일상을 좌지우지하는 기반 기술들을 주식회사도 아닌, 정부도 아닌 주체가 운영하는 경험은 아직 많진 않습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 워드프레스 같은 조직들이 지식을 모으고, 모두에게 필요한 오픈소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사이트를 나타내는 이름인 도메인 주소는 ICANN이란 비영리 조직이 조정합니다. WWW을 창시한 팀 버너스 리도 인터넷은 모두의 것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빠르게 독점 사업자가 되는 것이 플랫폼 사업의 핵심이기에, 많은 자금을 모은 기업들이 투자자들에게 큰 이익을 남기는 주식회사라는 구조가 플랫폼 시장의 주류입니다. 민주주의를 혁신하는 기술을 만든 조직이 우리 주변에 그토록 드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투자 이익을 남기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기술은 개발되지 않습니다. 젠더 혐오를 막는 기술, 더 나은 토론을 위한 기술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네이버는 토론을 더 개선하는 기술을 만들기보단 댓글을 닫는 편을 선택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장점을 활용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저는 민주주의를 혁신함으로써 우리의 공공재와 자원을 활용하는 일을 통해 더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가능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여전히 기술은 소수의 엘리트들과 투자자들이 더 많은 재산을 획득하는 일에 우선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다른 시대가 오리라고 믿습니다. 기술을 활용해 세상을 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곳으로 만들려는 흐름이 생기리라고 믿습니다. 부족한 자원을 바탕으로 기적적으로 생존하는 빠띠지만, 그 흐름 속에서 우리도 자리잡으려 합니다. 빠띠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새로운 흐름이 생기고 그 흐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게 되는 날을 기대합니다.

PS. 그래도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에 빠띠는 언제든 열려있습니다.
문의: contact@parti.xyz

우리가 익혀야 할 기술 리터러시는 코드 작성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페이스북이 요즘 여러가지 문제 제기로 소란스럽습니다. 친구의 소식인 줄 알았던 타임라인은 광고로 뒤덮이고, 나의 개인 정보를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페이스북이 많이 수집했다고도 합니다.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만으로 이뤄진 거품 속에 우리를 가두어서 페이스북에선 마음이 편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편견만 키우게 만들기도 합니다. 다른 사용자로부터 모욕과 혐오를 당해도 페이스북의 적극적인 조치를 기대할 수 없지만, 거꾸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의 활동은 페이스북이 설명 없이 차단했다는 상황도 보고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런 페이스북의 운영 원칙이나 작동 원리는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고, 페이스북이 이만큼 성장하는데 기여한 사용자들이 불편함을 느껴도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온라인 플랫폼 산업은 대부분의 사용자들에겐 두렵기도 하면서 부럽기도 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 산업은 인류가 만들어온 그 어떤 산업보다도 약육강식과 자본주의의 논리만이 상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독점을 점하는 사업자만이 살아남기에 플레이어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막대한 자본금이 필요합니다. 거꾸로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사업자와 경쟁해서는 이기기가 힘듭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플랫폼 사업자들이지만 생존하고 경쟁하는 방식에서 자본의 논리와 전략이 아닌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빠띠는 여전히 사회의 여러 문제를 지금 시대에 발견한 기술이 해결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선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과 기술을 사용하는 조직도 달라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본의 논리와 전략이 아닌 다른 방식을 따르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빠띠는 인터넷 시대에 걸맞는 민주주의 플랫폼과 방법론을 개발하는 플랫폼 사업자가 지금 이 시대에 절실하다고 판단하고, 스스로가 그런 사업자가 되려는 팀입니다. 기술을 활용한 민주주의 플랫폼과 방법론은 앞으로 우리 사회의 중추가 될 것입니다. 너무나도 중요한 이 기술들을 소수가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더 투명하고 공정하게 만들고 운영되어야 하며, 모두의 것이 되어야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빠띠는 첫 코드를 쓴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소스를 깃허브에 공개했습니다. 동시에 수많은 논의와 작은 실험들을 해 보며 공공재의 성격을 가진 조직 형태를 모색해 왔습니다. ( 해적단의 운영 방식도 참고하였습니다 ) 그리고 드디어 올해 “사회적 플랫폼 협동 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막바지 작업 중입니다. 함께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될 민주주의 기술을 만들어갈 사람들을 만나고 실제로 우리 모두의 소유로 만들고 싶습니다.

페이스북의 작동 원리가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다면 어땠을까요? 페이스북이 성장하는데 기여한 수많은 사용자가 페이스북의 소유주였다면 어땠을까요? 터무니 없는 상상은 아닙니다. 우리에겐 이미 수많은 소비자 협동 조합이나 생산자 협동 조합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트위터의 소액 주주들이 트위터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하자는 운동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네이버에도 얼마 전 노조가 생겼습니다.

누구나 기술을 익히고 이해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만들어진 기술이 사회에 기여하도록 감시하고 개입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필요한 기술 리터러시는 코드를 쓰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에 기반한 플랫폼과 사업자가 공공에 기여하는지 않는지를 감시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능력입니다.

빠띠 스스로는 민주주의라는 중요한 기술과 그 기술을 다루는 우리 조직이 기술에 기반한 사회의 공공재가 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자본의 논리가 아닌 다른 논리로 온라인 플랫폼 산업 안에서 생존하는 일은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함께 해 주셔서 아직까지 우리의 지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 준비하는 작업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