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고 싶은 서비스, 마지막 하나 남았다

2021년 9월 30일에 alookso 시즌 제로 오픈. 약 6개월 가량 실험실, 알파 오픈 등을 거치며 여러 정책들을 실험했지만, 오픈 직전까지도 정책은 계속 바뀌었다. 그 덕분에 시즌 제로 전에 만든 것들을 묻어두거나, 새로 만들 것들이 많아졌지만, 또한 그 덕분에 사용자들로부터 가이드를 받는 호사를 누리게 됐다. 계속 반성하며 정책을 날카롭게 다듬거나, 만들고 뒤엎고를 해내는 팀이나 모두 대단하고 감사하다. 덜 만들어진 서비스를 불평하기보단, 발전방안을 제시해주는 사용자들에게도 감사하고.

2020년을 좀 쉬면서 지내고 싶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서 코드포코리아를 시작하고 팩트체크넷을 만들었고, 2021년도 좀 쉬면서 여러가지를 모색해 보려 했는데 alookso 만들고 말았다. 그러면서 믹스 만들고 데이터퍼블릭 만들었고. 자원이 부족해서 업그레이드를 못하고 있어 아쉽지만 기존의 빠띠는 빠띠 카누로 바꾸는 중이고, 빠띠 캠페인즈는 가만히 두어도 활발히 이용해주는 분들이 늘어났다. 타운홀은 팀을 꾸려서 차근차근 업그레이드 하는 중. 팩트체크넷은 우여곡절이 가장 많은데, 작년에 거의 시범사업에 가까운 방식으로 3달간 개발하고 2달간 오픈했던것을 올해 완전히 다듬고 앱까지 개발했다. 운영 정책, 운영 위원회, 시민 교육 프로그램 등 사무국도 자리잡아가는 중.

조직이나 커뮤니티는 빠띠, 우주당, 코드포코리아, 팩트체크넷 그리고 최근의 alookso까지가 앞으로 집중할 곳들이다.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건 이번 생에선 여기까지가 끝이다. UFOfactory와 합병한 슬로워크나 스티비는 적절한 분들이 잘 만들테고. 커뮤니티인 코드포코리아와 우주당은 느슨하게 연결된 선한 시민들이 활동을 시작하고 지속하는 토대와 문화를 만드는게 목표인데 정말 가능한한 찬찬히 흘러가고 누구나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커뮤니티로 만들고 싶다. 사회적협동조합 빠띠는 민주주의를 혁신하려는 활동가들이 공동 소유하는 삶과 활동의 기반으로 자리잡게 만드는게 목표인데 시민협력플랫폼 모델을 만들고 기획운영을 함께 하는 데모스엑스 본부와, 다양한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드는 플랫폼엑스 본부가 훌륭한 구성원들 주도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27-28명 가량 되는 구성원이 50명까지 가는게 목표인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 같다. alookso는 오랜만에 경영하고 사업하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서 서비스를 잘 만드는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 감사하게 일하는 중이다. 만들고 보니 옛날에 만들던 미디어다음 같아서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리기도 한데, 아무래도 빨리 젊은 기획자에게 넘겨야 할 것 같다. 팩트체크넷은 올해 개발이 끝나면 사무국이 개발보다는 교육과 컨텐츠에 집중하게 될 것 같다.

서비스로는 안전하고 의미있고 영향력 있는 공론장과 미디어를 추구하는 alookso가 자리잡는데 기여하면서, 빠띠의 커뮤니티와 협업 플랫폼인 카누, 공론장 플랫폼인 믹스, 캠페인 플랫폼인 캠페인즈, 숙의와 의사결정 플랫폼인 타운홀, 시민이 쓸 수 있는 데이터 카탈로그를 만들고 데이터 활동 소식을 전하는 데이터퍼블릭, 그리고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의 여러 이슈를 팩트체크하는 팩트체크 오픈 플랫폼인 팩트체크넷 까지가 당분간 내가 할 일이다. 강약을 잘 조절하며 집중할 일과 천천히 키울 일들을 구분하며 작업하는 중이고, 플랫폼 초기 구상과 작업 때는 내가 집중해서 작업하고, 이후에 나보다 더 잘 하는 동료들로 팀을 만들어서 맡기고 나는 피드백하거나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 오는 중이다. 앞으로 하다 보면 포기할 것도 나오겠지만, 초기 빠띠를 만들때 구상했던 여러 유형의 민주주의 플랫폼 포트폴리오를 결국 다 만들게 되었고, 협동조합 빠띠를 찾는 분들이 이제는 각자의 상황에서 뭐가 필요한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플랫폼을 특정하고 협력을 요청해 오셔서 보람도 느낀다. 디지털 시대의 필수적인 디지털 민주주의 인프라로 자리잡게 만들려던 목표, 달성할 수 있을지도.

2020년도, 2021년도 결과적으로 휴식도 성찰도 구상도 못한채 2022년을 곧 맞이하게 될텐데 (그렇게 된데에는 쉴 겸 여러 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이유인데, 이 경험도 정리해 보자) 앞으로 3년에서 4년간은 앞서 정리한 일들을 강약 조절하며 집중하거나 찬찬히 하게 될 것 같다. 기대처럼 되진 않겠지만, 아무튼 21년간 일하면서 결국 원하는 모양에 가깝게 서비스도 팀도 사업도 구성했다. 당분간 지금까지 씨앗에서 묘목 정도로 일궈 놓은 걸 의미있게 키우는데 집중하는게 계획이다.

그러고 나면.. 이제 최후에 만들고 싶은 서비스 하나가 남는다. 이건 조직도 만들지 말고, 팀을 구성하지도 않고, 이 세상에서 쓸 수 있는 내게 남은 시간동안 혼자서 찬찬히 만들어 보려고 아껴 두었다. 여러 구상을 열어놓고 해 보는 중. 2026년이 되면 집에서 풀 뽑으면서 그 마지막 서비스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기여하기보단, 세상을 탐구하면서 말야.

시민의 기술(Civic Tech)로 만드는 디지털 세상, 코드포코리아

이 글은 사단법인 코드에 기고한 글입니다.

부모로서든 동년배로서든 혹은 시민으로서든 인간으로서든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강하게 퍼지기 시작한 시점을, TV화면을 통해 세월호가 가라 앉는 장면을 지켜 보기만 해야 했던 때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행동이 커다란 임팩트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가만히 있기에는 스스로가 부끄럽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던 한 명, 한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각자가 가진 기술로 더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오도록 이끌어 냈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사람들이 집 안에 갇혀버렸을 때, 공공의 역할과 정책적 판단 하나 하나가 중요해진 시기이기도 하지만,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시민들은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마자 확진자의 동선을 비롯한 코로나 현황 데이터를 동료 시민들이 더 쉽게 볼 수 있도록 개발한 시민 개발자들은 전세계에서 나타났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위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정확한 정보 제공을 위해 정보 공개를 서두르고 일일 브리핑을 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다면, 사회 곳곳의 시민들에게 다양한 채널과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시민 개발자들이 함께 했다.

공적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비롯한 코로나19 관련 데이터 개방을 이끌어낸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도 유사한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정부가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을 해결하는 동안 집 안에서 가만히 기다기 보다는, 판데믹을 겪는 당사자이자 동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할 일을 찾아 함께 해결하기 위해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은 출발했다. 정부는 정확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제공하고,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시민들과의 채널은 현장의 시민들이 직접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민과 관의 협업 체계에 대한 믿음 또한 바탕에 두고 있다. 주로 공적 마스크 재고 현황을 보여주는 지도 서비스가 만들어졌지만, 한 고등학생 개발자는 음성으로 내 주변의 마스크 재고 현황을 검색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공적 마스크 데이터 개방을 정부만의 프로젝트로 진행했다면 아마 우리는 음성 인식 서비스를 만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과 정부는 불과 일주일만에 공적 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공개하고 앱을 보급했다

이웃이나 자신, 더 나아가 공익을 위해서 행동에 나서는 시민의 등장과 활약은 우리 사회가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는 시점에 놓치지 않아야 할 핵심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코로나19 극복을 넘어서 사회의 디지털 전환을 이뤄내겠다는 한국판 뉴딜은 이 핵심을 놓치고 있다. 급격히 줄어드는 일자리로 인한 실업의 충격을 1차적으로 막아보려는 의도를 담은 디지털 뉴딜 정책임을 이해하지만, 정책의 바탕에 디지털 정책은 인프라 구축과 신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 활성화 정책이란 인식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데이터는 ‘원유’라는 표현과 함께 ‘산업의 주요 자원’으로서의 데이터를 정부 주도하에 일방적으로 모으고 개방하는데 집중하는 경향 역시 발견된다. 정부의 역할을 디지털 전환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디지털 전환의 방향이 산업의 육성과 인재의 양성에 두는 방식은 오랫동안 우리 정부가 익숙하게 활용해온 성공 공식이지만,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글로벌 경제가 작동하던 기존 방식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회 각계의 주장을 놓치고 있다.

한국판 디지털 뉴딜에 시민의 역할은 없다

코드포코리아를 통해 공적 마스크 데이터 개방을 제안하고 앱 개발에 참여하고, 개인 안심번호의 제안과 개발을 진행하면서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혁신이 시민에게 이미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다. “시민 참여는 중요합니다”라는 당연한 선언이 아니라, 시민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며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는 경험에서 나오는 확신이다. 정부의 지원이나 사회의 지지가 있고 없고와 무관하게 내 문제와 내 친구의 문제,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의 문제를 기술로 다뤄보려는 시민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독점 자본이 닫힌 기술로 다수의 시민 사회를 압도하는 시기, 그러나 여전히 300명 중 한두명만이 코딩을 할 줄 알기에 기술에 대한 허들이 높아지는 시기에 열린 기술로 사회의 디지털 공공재를 만들어내는 시민으로서의 개발자가 만들어내고 지켜내는 시민의 기술은 사회의 공공성을 확보하는데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고 디지털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기업이 ‘소비자를 위해’ 질 좋고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만들려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한’이란 지향을 넘어, ‘국민에 의한, 국민의’라는 지향을 향해야 한다. 국민을 민관협력의 대상이자 주요 문제 해결의 핵심 참여자로 바라볼 때에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국민을 디지털 전환의 핵심 당사자이자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주체로 바라볼때 ‘국민의’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중요한 정책에 활용하는 기술과 데이터를 개방하고, 시민들이 사회의 여러 인프라를 직접 들여다보고 개선하고 만들어낼 수 있도록 시민 기술을 발전시키는 방안을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지금 우리는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 시민과 시민의 디지털 주권의 개념을 확립하고, 공익 목적의 데이터의 공적 소유 확대와 개방형 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확대하며, 시민의 기술과 데이터 역량을 강화하고, 민관 협력 채널의 다변화 및 시민들이 제안하고 실험하는 정책 실험 공간을 확대하는 등 민주주의 원칙에 기반한 디지털 사회의 구축을 시민들이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의 디지털 주권에 기반한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은 공적 마스크 데이터 개방과 앱 개발을 마친 후에 여러 차례의 논의를 거쳐 코드포코리아로 다시 출발했다. 한국에서 기술을 가진 시민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내가 가진 기술로 함께 해결해보려는 시민들이 한데 모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학생이 청소년 정치 참여 확대 방안을 이야기하고,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모임을 주최하며, 직장인이 매일 매일 쓰레기를 줄이는 방안을 논의한다. 개발을 모르는 시민 누구나 쉽게 캠페인을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엔지니어가 고민하고, 정부가 공개한 데이터나 개발한 웹사이트의 문제점을 찾아내 공무원에게 전달한다. 산업재해가 일어나는 사업장 정보를 확인하고 PDF로 공개되는 문서를 데이터로 공개해달라고 요청하는 동시에 PDF로부터 데이터를 읽어내 깃헙에 csv 형식으로 공개한다. 그리고 수기입장시에 개인 휴대전화번호가 노출되는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함께 찾아내자는 정부 제안을 받고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개발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이제 곧 1년이 되는 코드포코리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평생 해야 할 놀이터 하나를 발견한 기분으로 즐겁게 참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민 기술의 확대가 우리가 맞이하게 될 디지털 사회가 더 민주적으로 움직이고, 보편적으로 접근 가능한 디지털 공공재를 더 확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막연하지만 엄청난 예감과 함께 하고 있다.

2020년을 코로나19의 해가 아니라, 기술 혁신을 통해 풍요롭지만 지속가능하고, 자유롭지만 협력적인 새로운 시대를 열기 시작한 한 해로 기억되게 만들 수 있을까? 그건 시민이자, 개발자이자 전문가이기도 한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시민 주도로 이뤄지는 디지털 전환의 조각 중 하나인 코드포코리아에 함께 만들어갈 시민들을 초대드리고 싶다.

디지털 경제의 사회적 전환과, 사회적 경제의 디지털 전환

이 글은 사회적경제 정책포커스 2020년 12월 ‘한국판 뉴딜과 사회적 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2030년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20세기 최고 경제학자는 ‘여가’라고 답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1930년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란 강연에서, 대공황이 한창이고 파시즘도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100년 뒤의 인류가 “정치인들이 경제 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긴축 재정을 펼치는 등 파멸을 초래하는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서구의 생활수준은 4배로 높아지고, 주당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에게 뉴딜로 익숙한 케인즈의 100년 전 전망과는 달리,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경제 발전의 과실을 함께 누리며 늘어난 여가 시간을 고민하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 세대는 2050년 인공지능이 인류를 넘어서는 특이점을 거쳐 인류의 대다수가 직장을 잃으리라고 전망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기후위기가 인류의 파멸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인터넷이 발전할수록 혐오와 허위조작정보가 만연하고, 국가의 경제 발전과 무관하게 불평등과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다고 느낀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도 플랫폼 노동 혹은 불안정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5.2일, 하루 8.22시간인데 반해 월평균 소득은 152만원에 불과했다. 아마존과 같은 플랫폼 기업들의 수익과 가치, 영향력은 코로나19로 인해서 더 확장됐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에서 창고의 물품을 분류하고, 배송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감염의 위험과 무리한 노동 환경 속에서 질병에 걸리고 생명을 잃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마찬가지로 벌어지는 일이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시화 된 기후위기, 심화되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대전환을 이루고자 정부는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그리고 안전망 강화가 핵심인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 중 ‘데이터 댐’을 살펴보면 정부는 데이터를 수집, 가공, 거래,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데이터를 국가 산업의 원천 자원으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데이터 댐’ 구축과 관련해 주로 제시되는 정책은 공공 데이터 개방, 데이터 플랫폼 확대, 데이터 관련 청년 공공일자리 활용 방안이며, 민간의 데이터 활용이 용이하도록 개인정보 등의 여러 규제를 해소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을 통해 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동안 디지털 역량이 부족한 세대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와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 활용도를 높이는 내용을 포함한 직업교육과 평생교육과 같은 디지털 포용 정책도 함께 추진 중이다.

디지털 뉴딜을 포함하는 한국판 뉴딜이 2050년을 가리키는 위기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현존하는 위기를 극복하려는 거대한 전환의 전략임을 고려한다면,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전제로 하는 전략이 국민들이 느끼는 위기를 극복하는데 충분한 것인지, 국민들 개개인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데이터 댐 구축을 통해 정부가 보유한 공공데이터를 모아 공개하면 민간의 데이터 산업이 자연스럽게 활성화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차치하더라도,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D.N.A.)에 투자하고 규제를 완화해 관련 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대전환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디지털 전환을 충분히 체화하고 있지 못한 국민들에게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교육을 확대하는 것이 빈곤에 처한 노인 세대가 심화된 생존 위기를 극복하는데 충분한 전략 또한 아니다. 정부가 말하는 것과 같이 디지털 뉴딜은 공익을 강화하고 국민들이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가 더 깊고 넓게 한국판 뉴딜의 여러 분야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시민참여와 사회적경제가 빠진 인프라 중심의 디지털 뉴딜
출처: 2020.5.7.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 『한국판 뉴딜』 추진방향.

디지털경제의 사회적 전환과 사회적경제의 역할

플랫폼경제와 사회적경제

현재의 플랫폼 산업은 태생적으로 독점을 지향한다. 플랫폼 상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가치도 독점하려 하고, 경쟁 우위를 위해 데이터와 기술의 독점도 추구한다. 이런 독점적 지위와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한다. 영향력과 독점이 심화될수록 이해관계자는 급증하고, 사회 규제들과 맞닥뜨리는 경우도 늘어난다. 하지만 의사결정 구조는 대규모 투자를 가능하게 한 투자자들의 이해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효율성 증대와 투자를 통해 다수에게 편익을 제공함으로써 공익을 증진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가치와 기술의 독점, 불투명성과 폐쇄성, 투자자의 이익이 공익보다 우선시되는 의사결정 등을 목도하게 된다. 

반면 사회적경제조직들은 협동과 연대, 그리고 공공성에 기초한 사회적 가치 환원을 목표로 한다. 규모와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의미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지향한다. 또한 독점보다는 사회의 여러 이해관계자나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공유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계를 구성하는데 가치를 두며, 조직을 공동으로 소유하거나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독려하는 의사결정구조를 가진다. 사회적경제조직들의 이러한 성격과 지향점은 플랫폼산업의 독점적 성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플랫폼경제의 대안으로서든 보완재로서든 사회적경제가 가진 특징들을 플랫폼경제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플랫폼 협동조합’ 혹은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란 이름으로 전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돌봄이나 가사 노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플랫폼을 구축해서 서비스를 하거나, 프리랜서들이 일거리 플랫폼을 스스로 구축한다. 혹은 플랫폼 개발과 마케팅 전문성을 가진 프랜차이즈 기업과 지역의 드라이버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이 또 다른 연대체로서의 협동조합을 구성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주요 배달앱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과 노동조합들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협약을 맺었다. 필연적으로 다수가 참여해 성장해나가는 플랫폼경제에서 단순 이용자의 지위를 넘어 이해관계자로서 소유와 이윤 배분, 의사결정 참여는 필수적인 것이다. 플랫폼 기업이 플랫폼으로서 가진 장점을 발휘하면서 이와 연관된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기여와 공공성을 지향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경제의 기본 원칙과 경험들이 플랫폼경제에도 적용돼야 한다.

또한 독점을 지향하는 거대 기업들만 경쟁하는 플랫폼경제의 생태계가 보다 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공존하는 생태계로 변모할 수도 있다. 배달앱은 왜 1, 2위 중에서만 사용해야 할까? 내가 주문을 할 때, 배달 수수료가 적은 곳을 고를 수도 있지만, 주변의 이웃들에게 무료 급식을 하는 가게라든지, 쓰레기를 적극적으로 배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가게들만 모은 배달앱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수는 있어도, 충분히 있지 않을까?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디지털 전환의 경제 영역 곳곳에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앱을 만들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플랫폼경제 생태계가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를 위해 거대 플랫폼 기업이 독점해 생성한 데이터들을 어떤 기업이나 국민이든 사용할 수 있는 공공데이터로 제공하는 것을 국가의 역할로 고려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협동과 연대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 기업들도 디지털 서비스를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각자의 필요나 가치관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해 제공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공공앱을 직접 만들어 거대 플랫폼 기업과 경쟁하는 것보다는, 플랫폼경제가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건강한 생태계로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디딤돌을 제공하는 다른 의미의 ‘플랫폼’ 정부가 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데이터와 사회적경제

‘디지털 뉴딜이 곧 데이터 댐’이라는 데이터 정책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데이터 댐 정책은 정부가 주요 산업의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주도적으로 모아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디지털 전환을 국가의 중요 기간산업으로 설정하고, 인공지능 등 4차 산업 육성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충하겠다는 관점이 문제는 아니며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데이터가 가지는 가치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본래 공공데이터 개방은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국민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참여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는 열린정부운동으로부터 출발했다. 모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된 데이터는 정부-국민 간 신뢰의 기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신뢰를 통해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다양한 기관들과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신뢰는 혐오와 불신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 소중한 자원이다. 기후위기, 경제위기뿐 아니라 코로나19로 닥친 여러 위기를 국민 모두가 함께 해결하는 데 신뢰와 신뢰에 기반한 협력은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정부는 코로나19 초기 상황부터 개방성을 기조로 정보를 적극 공개했다. 국민들의 불안을 줄임으로써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방역에 동참하는데 기여했다. 더 나아가 마스크 품귀 현상이 발생하자 정부와 시민(시빅해커)이 협력을 통해 공적 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활용해 모든 이들이 주변의 마스크 현황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공공앱을 함께 만들었다. 데이터를 통해 국민과 정부 사이의 신뢰를 형성하고, 국민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주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광화문1번가를 통한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의 공공데이터 공개 요청 제안과 정책화 결과
출처: 광화문1번가 홈페이지

데이터 댐의 수요자를 시민 혹은 사회적경제로 확대해야 할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할 때 즈음 전국의 복지 관련 기관과 대구의 시민 사회, 혹은 사회적경제는 대구지역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긴급 지원을 진행하는 동안 중복 지원이나 필요한 물품 구입 과정 도중에 일어난 혼란 등 지원과 자원 운용상의 데이터를 미리 파악하거나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실제로 소방서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구조하는 비율보다 시민들이 서로 구조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직접 공공자원을 활용해 위기상황에서 문제를 각자의 처지에 맞게 해결하는 모델이 자리 잡아야 한다. 물론 이 말이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부정하는 말로 해석돼서는 곤란하다. 국가와 시민이 협력하는 거버넌스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대구에서 급증한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하려던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조직들의 노력들이 앞으로 이어질 위기에서 더 빛을 발하고 효과를 높이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와 플랫폼이 평소 마련돼 있어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뉴딜과 데이터 댐에서는 시민이 주도하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기반으로서 데이터의 생성과 활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데이터의 주된 수요자로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를 자산으로 볼 것인지, 노동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남아 있다. 디지털 뉴딜을 통해 모으고 축적하는 데이터의 상당 부분은 특정 개인과 연관된 행위가 일어나야만 생기는 데이터다. 의료서비스를 중심으로 디지털 뉴딜의 장점을 설명하는 정부의 설명에서 사용되는 데이터도 개인의 병력이나 의료서비스 이용내역 같은 개인과 연관된 정보다. 개인의 행위를 통해서만 발생하는 데이터는 노동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들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 활용 방식에 대한 결정권, 그리고 데이터를 통해 창출되는 가치에 대한 보상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나와 관련된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고,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내가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범위는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제공한 데이터를 통해서 발생한 가치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사회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국민들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더 나아가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 사회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디지털 디바이스 사용 교육보다는 데이터의 활용 역량과 스스로 데이터와 관련한 권한을 지켜내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디지털 뉴딜을 추진함에 있어 시민을 서비스의 수용자로 보는 관점을 넘어 자신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적경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직접 본인들의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시민들의 데이터 역량을 강화하고 데이터를 투명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역할을 맡을 필요도 있다.


시민사회와 노동자합의 디지털 뉴딜 대응 정책을 제안하는 “시민을 위한 공공데이터 정책 토론회”가 2020년 8월 21일 열렸다. 사진은 온라인 중계화면 갈무리. 
출처: 공공운수노조 유튜브 채널

알고리즘, 혹은 인공지능과 사회적경제

그리고 알고리즘이다. ‘기계의 판단은 중립적이다‘라는 일반적인 주장과 달리 알고리즘은 설계자의 관점과 가치관을 반영한다. 딥러닝으로 알려진 인공지능은 학습을 위해 마련된 데이터셋에 설계자의 관점과 가치관이 반영된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적용과 활용, 더 나아가 생성에 사회적경제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계가 사진을 읽어서 고양이인지 개인지를 판단하는 수준을 넘어서, 알고리즘은 어느 지역이 범죄에 더 취약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어떤 사람을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등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 무수히 만나게 될 인공지능의 자동화된 로직이 공공에 기여하는지, 특정한 편견이 반영되지 않았는지 반드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로직이 적용되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사회적경제조직들이 검증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적경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반영한 알고리즘이 정부와 사회에 정착하도록 알고리즘을 직접 생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야말로 앞으로는 누가 만드는 알고리즘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경쟁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무엇이 더 나은 결과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화된 알고리즘은 자연스럽게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을 대체함으로써 얻게 되는 부가가치가 해당 업종의 종사자, 혹은 사회에 환원된다면 이는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해당 업종의 종사자 혹은 대체된 노동자들이 알고리즘을 스스로 소유할 때 그 가치를 누릴 가능성이 높고, 공익과 사회적 가치를 본래 목표로 가진 사회적경제조직들이 그것을 사회에 직접 환원할 가능성이 높다.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적극 활용해 효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생성되는 가치를 구성원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사회적경제가 가진 구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과 플랫폼 등을 디지털 공공재로 만드는 것이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보장하는데 더욱 적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사회적경제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사회적 가치 실현이 중요한 분야나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의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사회적경제가 운영하도록 구성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전환: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역량 강화에 관해

플랫폼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경제 영역에서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 더 나아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적경제가 나섰을 때 기대되는 효과는 크다. 또한 디지털과 데이터는 산업 육성의 기반일 뿐만 아니라 사회혁신의 기반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연대와 협동,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설립된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디지털 뉴딜을 비롯한 한국판 뉴딜이 사회적 뉴딜이 되도록 분야별로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시민 참여를 넘어 시민 주도의 뉴딜이 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적경제의 역할이 확대된다면 기술 혁신을 통한 가치 창출이 실제로 공익을 증진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구조적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경제는 디지털 전환에 나서야 한다. 현재 개별 사회적경제조직들은 디지털 전환에 대한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으나,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사회적경제 연대체 차원에서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며, 정부 역시 이를 위한 기반과 지원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디지털 전환 및 플랫폼 협동조합 설립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고 지원하거나, 디지털 전환에 특화된 개발자들의 협동조합을 육성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플랫폼 협동조합의 성공 사례인 업앤고(UP&GO)는 뉴욕의 이주여성들이 만든 가사, 청소도우미 서비스로 디지털 개발 협동조합 코랩(colab.coop)의 지원으로 플랫폼을 구축했으며, 빈곤퇴치 활동을 해온 지역재단과 협동조합 설립 지원기관, 지역 은행의 사회공헌기금의 체계적인 지원을 받았다. 스타트쿱(start.coop)은 플랫폼 협동조합을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로 선발, 교육, 멘토링, 법률회계서비스 지원을 비롯해서 시드머니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도 일반 벤처투자사 위주로 이뤄지는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투자 및 엑시트 환경 일변도에서 벗어나, 디지털 분야 사회적경제조직들에 적합한 투자, 성장모델을 만들고 지금부터라도 숙성시켜야 한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들이 조직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민주적으로 건강한 거버넌스를 형성하고 운영하는 기술 또한 디지털 전환의 중요한 요소이다. 조합을 구성하는 조합원들과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사회적경제에 더 많은 시민들이 관여할 수 있게 하려면 사회적경제의 본래적 가치인 민주적 거버넌스 실현을 위해 민주주의 기술을 더 예리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사회적협동조합 빠띠는 앞으로도 이를 위한 디지털 기술을 발전시키고 필요한 플랫폼을 만드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조직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비롯해 생산자 및 소비자 조합원과의 거버넌스 운영, 그리고 서비스 이용자 또는 수혜자와의 소통에 이르기까지 사회적경제조직들의 연대와 협력에 기초한 민주적 운영을 디지털화하고, 그 장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디지털경제로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증진시키면서, 기후와 경제위기를 해결하는데 사회적경제의 장점에 주목하고 이를 디지털 뉴딜 전반에 적극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데이터를 산업 발전의 원자재로 바라보는 관점을 넘어서 신뢰와 협력의 기반, 사회혁신의 기반이자 시민들의 주도적인 참여의 기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 전환의 부작용에 대한 임시방편으로 사회안전망과 디지털포용 정책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사회안전망 강화와 디지털포용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도록 정책 설계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이 정책의 구성 과정에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사회적경제와 시민사회에 부족한 디지털 역량과 플랫폼 및 기술 자산이 확보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결론

우리는 뉴딜에 막대한 세금을 들여서 무엇을 전환하고, 어디에 도달하려는 것일까? 기후위기,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강화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 있어 디지털 혁신은 함께 집중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디지털 혁신이 사회적 가치와 공익을 중심에 두기 위해서는 ‘디지털 혁신의 사회적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디지털 혁신의 사회적 전환은 시민 주도의 민주적 전환, 사회적경제의 주요 역할 수행과 직결돼 있을 것이다. 100여년 전 케인즈가 ‘여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 예견한 2030년에 우리는 현존하는 기후위기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구현하는 새로운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까? 시민들과 사회적경제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현장에서 발 벗고 나섰듯이, 한국판 뉴딜의 현장 곳곳에서도 협동과 연대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주도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디지털 민주주의의 지평 넓히기 – 코드포코리아, 팩트체크넷, 공익데이터실험실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더 많고, 더 나으며, 일상의 민주주의를 만들겠다는 사회적 협동조합 빠띠의 2020년 한 해도 저물어 갑니다. 빠띠를 시작하던 무렵 “정치란 선출직을 뽑는 과정에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며, 일상 속에서부터 민주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영역에서 필요한 신뢰와 협력의 기반 중 하나이며, 따라서 민주주의 플랫폼에는 다양한 디테일이 필요하다”는 빠띠의 이야기에 낯설어 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2020년에 빠띠와 함께 한 파트너 분들은 OOO(공론장,커뮤니티,캠페인,데이터 등등)을 하고 싶으니 빠띠와 함께 OOO을 해 보고 싶다고 이야길 먼저 꺼내십니다. 2020년을 시작하면서 공개했던 빠띠의 항해지도에 담은데로 디테일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과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커뮤니티, 캠페인, 공론장, 타운홀, 데이터를 중심으로 빠띠는 정신없이 한해를 보냈습니다.

돌이켜보면 올해 빠띠는 서울의 작은 도서관, 사회적 경제, 서울 및 경기도 이외에도 여러 지역의 구와 시와 함께 시민이 참여, 협력, 주도하는 공론장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일을 함께 했습니다. 크고 작은 토론회를 비롯하여, 총회, 더 나가 주민자치박람회도 더 즐겁고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함께 했고, 70년이 된 휴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바꾸자는 캠페인, 청소년 기후행동 주도의 캠페인, 사회적 경제 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비롯하여 시민사회단체나 시민들의 다양한 주장을 전달하는 캠페인을 함께 하였습니다. 성평등정책을 만드는 시민들의 워킹그룹, 청년기획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워킹그룹 등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만드는 사업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이 모든 활동들이 우리 사회를 더 많이, 더 나은, 그리고 일상적으로 민주적으로 만드는 중요하고 디테일한 일들입니다.

플랫폼 또한 한 해의 내부 테스트를 거쳐서 기존의 그룹스가 아카이브, 의사결정, 워킹그룹, 거버넌스에 최적화한 카누로 탈바꿈합니다. 올해 처음 선보인 믹스도 쉽고 빠르고 필요한만큼의 공론장 솔루션으로서 파트너들에게 제공되어 왔고, 내년엔 본격적으로 서비스화 하게 됩니다. 타운홀도 완전히 다른 디자인을 입어 한국의 정서에 맞는 실시간 토론 및 모임 플랫폼으로 곧 공개되며, 누구나 쉽게 바로 온라인 캠페인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든 캠페인즈도 꾸준히 활용되고 개선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투게 시민이 주도하거나 협력하는 플랫폼의 뼈대 안에 공론장, 커뮤니티, 캠페인, 타운홀 등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상황 속에서 신뢰와 협력의 기반으로 작동하는 여러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어 왔습니다. 올해 초에 보여드렸던 항해지도를 거의 따라온 것 같습니다. 이 많은 일들을 하기 위해 그 사이에 빠띠의 크루도 20명으로 늘었습니다.

동시에 디지털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도 함께 진행을 했니다. 신뢰와 협력의 기술 기반을 만들거나, 민주적인 사회의 핵심 기반인 시민의 디지털 기술 주권과 모두에게 열린 기술이란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 빠띠가 예전부터 관심을 두어 왔던 일들이 코로나19라는 위중한 상황 속에서 급작스럽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는 공적마스크 재고 데이터 개방과 공적마스크 앱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일입니다.

공적마스크앱 개발을 주도한 코로나19공공데이터 공동대응과 코드포코리아

2월말에서 3월초 사이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던 시점에 마스크 품귀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직전에 빠띠의 데이터팀은 카드뉴스나 홈페이지에서 텍스트로 공개되던 정보를 긁어서 코로나맵 서비스를 제공하던 팀들에 연락해 정부가 직접적으로 코로나19 관련 데이터를 공공 데이터로 공개해 달라는 요청을 코로나19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을 만들어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요청 중에 마스크를 비롯한 보호구가 품귀현상이 발생시에 정부가 만약 직접 배급하게 된다면 배급처 정보와 재고 정보도 API로 제공해 줄 것을, 그렇게 제공하게 되면 여러 시민 개발자들이나 기업이 해당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형식의 앱을 만들어서, 정부가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시민들에게 정보가 전달될 것이란 점도 담아서 요청을 하였습니다. 방역 당국의 선제적인 조치들을 칭찬하고 혜택만 보는 시민이 아니라, 방역 상황을 극복하는데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를 담아서요.

그때 마침 마스크 품귀 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긴급하게 마스크 배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코로나19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이 제안한 방식으로 데이터를 개방하고 민간이 앱을 개발하는 방식이 정부에서 진지하게 검토되었고, 한국정보화진흥원과 과기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복지부 등이 공적마스크 재고데이터를 개방하는 작업에 저희가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이후 빠띠를 비롯한 코로나19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은 API의 설계와 테스트와 피드백에 참여하고, 실제로 개발을 진행할 개발자들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모으고, 바로 개발에 착수할 수 있도록 가이드와 필요한 여러 지원들을 연결하는 작업을 5일 가량에 걸쳐서 진행하였습니다. 그 후 공적 마스크 제도가 시작된지 일주일이 안되어 시중의 마스크 재고 정보를 담은 앱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 이 모든 과정은 코드포코리아 위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불과 2-3일 사이에 정부와 함께 공적 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제공하는 API를 만들고, 이를 활용하는데 필요한 가이드를 만들고, 200명이 넘는 시민 개발자(시빅해커)들이 각자의 앱을 만들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기술을 가진 시민들의 중요성, 정부는 환경과 문제, 자원을 제공하고 시민이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방식의 민관협력의 가능성, 특히 판데믹과 같은 상황에서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어떻게 정부와 시민간의 신뢰를 높이고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보았습니다. 공공 데이터와 기술이 열려 있을 때 얼마나 유용한지도 보았구요. 이는 시민의 디지털 기술 주권을 보장하고 모두가 활용 가능한 데이터를 확장하는 디지털 민주주의의 또 다른 지평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공공데이터공동대응은 이후 코드포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를 위해 기술을 활용하려는 시민 개발자(시빅해커)들의 네트워크로 발전 중이며, 또 다른 프로젝트들을 준비 중입니다.

코로나19 공공 데이터 핸드북_코드포코리아 제공
💌FtO Anywhere 2020-1 #공중보건 : 한국 🇰🇷 “전 국민이 해커톤을 하듯이 코로나19 대응하기 위해 협업하다”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허위조작정보를 검증하는 ‘팩트체크넷’ 제작

디지털 민주주의를 논의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우려사항들이 있습니다. 모욕과 욕설을 비롯한 인신공격과 신상공개, 부정확한 정보의 유통이나 나쁜 의도로 만든 조작된 정보, 단순 투표와 다수결 혹은 다수의 댓글로 결정을 내리는 형식적인 민주주의 등입니다. 디지털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 시민들의 신뢰가 필요함에도, 이러한 우려사항들은 쉽게 디지털 민주주의를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들고는 합니다. 빠띠는 민주주의에는 신뢰와 협력의 기반이 필수적이며, 신뢰와 협력의 기반을 지탱하는 기술들이 더 많이 연구되고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고, 개인이 안전하게 의견을 낼 수 있으며, 의견들은 합리적인 숙의 과정을 거쳐서 다수의 의견과 소수의 의견이 명확하게 파악될 수 있도록 돕는 기반 기술들은 앞으로도 많은 지원과 연구가 필요한 민주주의의 또다른 지평입니다.

디지털 민주주의의 또 다른 지평을 넓히기 위해 빠띠는 한국방송기자연합회, 피디협회, 기자협회와 함께 방송통신위원회의 인터넷 신뢰도 기반 형성 사업에 참여해서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허위조작정보를 검증하는 ‘팩트체크넷‘을 지난 11월에 오픈하였습니다. 저널리즘에 입각한 사실 검증에 익숙한 기자들과 팩트체킹의 중요성을 공감하는 시민들이 팀을 이루어 인터넷 상에 떠도는 루머 중 주제를 택해 사실 관계를 확인해서 판단하는 플랫폼이란게 특징입니다. 또한 사실을 검증하는 과정이 플랫폼 상에서 공개되어 팩트체커가 아닌 시민들도 댓글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습니다. 내년엔 더욱 더 많은 시민들이 전문가로서, 시민팩트체커로서, 혹은 또 다른 역할로서 함께 팩트체킹을 해 나가는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가며 크라우드소싱 방식의 팩트체킹 플랫폼으로서 한국에 자리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팩트체크 플랫폼은 신뢰와 협력의 기반으로서 더 나은 민주주의 또 다른 핵심이라고 빠띠는 여깁니다. 신뢰를 증진하고 협력의 바탕이 되는 기술들은 앞서 밝혔듯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기술 상태에서는 댓글수, 투표수로 중요한 사회적 의사결정을 하기에는 대표성을 비롯해 신뢰나 안전이 부족합니다. 또한 많은 개인들이 인터넷 상에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더욱 더 소수의 목소리가 증폭되게 만들고, 증폭된 주장은 침묵하는 다수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디지털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선 신뢰와 협력 기반을 만드는 여러 다양한 기술들이 연구되고 발전되어야만 합니다.

시민 주도로 문제를 설정하고 데이터 생성, 활용, 재생산까지 진행하는 ‘공익데이터실험실

빠띠는 올해 서울시로부터 색다른 공유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바로 데이터 공유기업인데요. 데이터를 공공재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기업으로서 빠띠는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설정하고 데이터를 생성하거나 활용 재생산하는 공익데이터 실험실을 운용하였습니다. 보통 정부가 가진 데이터를 시민들이 들여다보거나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 경우가 공공데이터입니다만, 정부의 데이터를 넘어서서 공공의 자금이 들여 만들어진 후 공개된 데이터나 민간에서 만든 데이터임에도 공공을 위해 제공되고 있는 데이터들을 묶어 공익데이터란 개념들로 확장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사회에서 누구나 접근 가능한 데이터가 늘어나는 것은, 프랜차이즈 커피숍보다는 공원이 늘어나는 것이나, 앞서 설명드린 코로나19 공공데이터처럼 사회 문제 해결에 시민들이 나설 수 있는 기반이 된다거나, 혹은 데이터가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을 누구나 시작할 수 있도록 허들을 낮춰주는 것과 같습니다. 디지털 전환에서 데이터를 비롯한 디지털 공공재가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직접 기술을 활용해 없는 데이터를 만들어 내고, 있는 데이터를 활용하고, 또 다른 데이터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가진 시민들이 늘어나는 것이 앞으로의 디지털 사회가 더 민주적으로 자리잡는데 어쩌면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판데믹과 같은 상황에서 더 많은 주체들이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을 비롯해서, 플랫폼 사업자의 독점 상황을 개선하거나 투명하지 않은 정부의 의사결정에 대응하는데 시민들이 나서기 위해선 기술과 데이터에 대한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결국 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해서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작동합니다. 이를 시민의 디지털 기술 주권 혹은 데이터 주권이라고 부르며, 해외에서는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시도들이 이어져 왔습니다. 디지털 사회의 근간인 디지털 민주주의의 근간에는 이와 같은 디지털 주권을 보장하는 근간을 제도적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수적이며, 이 또한 디지털 민주주의 또다른 지평입니다.

이에 기반해서 빠띠는 올해 시민들과 함께 문제를 설정하고, 제공되고 있는 데이터를 활용하거나, 없으면 정보 공개를 통해 요청하거나, 직접 만들어 내고. 이후 해당 데이터를 다시 공공재로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동들도 부모님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터 정보를 정리하거나,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디어디를 거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데이터로 확인하고, 코로나19 상황에서 무상급식이 필요한 이웃들이 어떻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지 확인하거나, 지난 10년간의 스토킹 범죄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다거나 하는 일들을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 전문가들을 협력가로 모셔서 교육과 컨설팅을 병행하였구요. 또한 이외에도 시민들이나 시민사회단체가 주도적으로 다뤄온 데이터 프로젝트를 정해서 모으고 공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빠띠가 만든 데이터퍼블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공익데이터실험실 데이터와 활동소식을 담은 데이터퍼블릭

정리하며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더 많이, 더 나은, 일상의 민주주의를 확대하자는 생각으로 설립하였기에, 기본적으로 시민 주도로 혹은 시민과 협력하는 플랫폼을 만드는데 기획운영컨설팅을 하거나, 다양한 영역에서 신뢰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여러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드는 일을 빠띠는 해 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올해는 인터넷 상에 신뢰와 협력을 위한 기반 기술을 만드는 일, 시민의 디지털 기술 주권을 확대하고 실제로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영역을 넓히는 일들도 함께 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로도 우리가 맞이하게 될 디지털 사회에 더 많이, 더 나은, 일상의 디지털 민주주의가 자리잡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산업을 육성하고 인공지능 산업을 확장하는데 사회적 자원과 역량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행복한 디지털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 디지털 민주주의와 디지털 공공재 그리고 그 기반에 놓일 시민의 디지털 주권을 확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여기에도 사회적 자원과 역량이 늘어날 수있을까요?

2021년에도 빠띠는 디지털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히고, 그 안의 디테일들이 살아 숨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 한해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에게 불로소득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직장에 가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수도권으로 홀로 이사를 했다. 그때 나는 창문이 냉장고로 가려져 있지만 대신 세탁기가 옵션인 신축 원룸을 구했다. 경기도권이라 가격이 저렴했지만, 해당 원룸의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님은 500만원을 지인에게 빌려야 했다 (그리고 몇년 후에 부모님 두분이 돌아가신 후에 아직 그 빚이 남아 있었단 걸 뒤늦게 알고 상속 포기와 상관없이 갚았다). 학비가 저렴한 대학을 다녔기에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갚아야할 얼마간의 학자금 대출이 있었고. 매달 15만원의 적금을 들었고,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드는게 좋다는 조언을 듣고 종신보험을 매달 18만원 가량 냈다. 그리고 매달 월세는 30만원. 150여 만원을 조금 넘는 신입사원의 월급을 받으며 수도권에서 처음 생활한지 1년. 1년 적금을 깬 내 손에 쥐어지는 180여만원의 돈을 보면서 나는 평생 수도권에서는 집을 사지 않거나 사지 못하겠단 생각을 했다.

운이 좋아서 어떤 직장이든 원하는 곳을 다녔다. 내가 다녔던 직장들은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아침에 지정한 시간에 지정한 장소에 나가서 지정한 시간까지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은 이해하기가 늘 힘들었다. 내 인생의 대부분 특히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내 맘대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이, 1년에 휴일을 제외하고는 2주 언저리의 휴가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특히 두번째 직장이었던 Daum이 양재동에 있었던지라 경기도에서 매일 2시간에서 3시간씩 미어 터지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지내야 하는것은 불쾌함을 넘어 인간으로서 모독을 받는 기분이었다.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한다면 그래서 나와 일하는 사람이나 나와 계약한 회사가 내게 기대한 만큼의 수익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지내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곳을 찾는 것보단 내가 내 사업을 시작하는게 더 낫다는 것을 다른 계기로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일하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 다르긴 했다. 아무튼 기술과 역량을 제공하되 지정된 장소에서 지정된 시간동안 지정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주고, 월급이란걸 받는 방식의 삶을 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하려는 일을 독립적으로 하려면 한국에선 법인을 만드는게 가장 쉽다. 개인사업자도 좋지만, 법인을 만들어서 운영하는게 특별히 더 어렵지는 않더라. 그렇게 법인을 만들고 보니 주식이란게 내게 처음 생겼다. 그 주식으로 돈을 벌어본 적은 없지만, 사업체를 한번 만들고 보니 이후에 또 다시 만드는건 전혀 어렵지 않았고, 앞으로도 특정한 일을 특정한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하려면 기업을 만들거나 조직을 만들 것 같다. 사회적 기업이나, 사회적 협동조합을 주로 만들겠지만. 아무튼 주식이란건 아무도 안 하는 일을 주도해서 시도하니까 생기는 부산물이었지 수익을 주는 소득원이었던 적은 아직까진 없다.

무엇보다도 부동산과 주식 투자를 통해서 돈을 번다는게 내게는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지금은 마치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단기간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투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부동산이나 기업에 대한 투자는 기본적으로 10년 이상을 바라보고 해야 하는 장기 투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식이 오르고 내리고를 신경쓰고 살고 싶지도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수익과 앞으로 내가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할 때 필요한 수익을 확보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일을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부동산, 주식, 급여 소득에 대한 기대를 제외하면 (상속도 포기한 나에겐) 사업 말고는 남는게 없다.

더 나아가 사업은 어느 정도 불로소득을 지향해야 한다. 내가 직접 일하는게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이 수익을 발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만약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게 서비스나 기술이라면 부가가치가 높을 테고, 그 서비스나 기술이 기존 사업을 망가뜨리는게 아니라면 새로운 부가가치를 생성하는 혁신일수도 있다. 그리고 세상엔 여전히 일자리가 당장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사업을 통해 기존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서 누군가의 삶이 더 윤택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아무튼 나는 사업은 불로소득을 지향해야 하고, 다른 수익원보다도 바람직한 불로소득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불로소득원을 더 많이 만들고 싶고, 동료들과 더 같이 운영하고 싶고. 그 소득원이 기존의 가치를 망가뜨리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더 하는 방식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부동산, 주식은 넘사벽이고, 노동으로도 필요한 최소한의 수익을 초과하는 여유를 기대할 수 없다면 다른 대안이 없기도 하다. 물론 이 불로소득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리고 운영하고 유지하는 과정에 나는 열심히 일을 할 테고, 해보니까 직장을 다닐 때보다도 더 일을 많이 하기도 하더라. 그럼에도 이때도 나는 일을 한다는 느낌보단 하고 싶은 일을 즐긴다는 느낌 그리고 내 노동의 결과물이 축적된다는 느낌이 강해서 직장을 다닐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얼떨결에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어쩌면 한번 사업을 한 사람은 계속해서 사업을 한다는 이유가 이런데에 있는게 아닐까. 창업 이전에 다녔던 마지막 회사에서 10여년 전에 받았던 월급 수준에 얼마전에야 겨우 도달했었고, 그마저도 슬로워크의 대표를 놓으며 다시 많이 줄였지만 그래도 사업이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여러가지로 불안이 중첩되고,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각자도생에 나서는 2020년에. 개인이든 동료와 함께든 아니면 사회 전체든 우리가 함께 불로소득원을 함께 만드는데 집중해 보는건 어떨까. 기술이 만드는 가치는 결국 사람은 일하지 않고 시스템이 일하거나 더 나가 기계가 일하는 시대를 만들자는게 아닌가.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불로소득원이 필요한 시대가 올 테고, 혼자서 그 소득원을 소유할 수 없다면 함께(조합), 혹은 사회가(공공재) 소유하면 어떻겠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직을 만들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와 정부에 기대하며 때론 나서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기술은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술을 활용한 사회 혁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사례가 있습니다. 공적 마스크 배포 과정에서 정부, 기업, 시민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만든 앱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부는 약사들이 입력한 마스크 판매 이력을 모아 마스크 재고 현황을 공공 데이터로 공개했습니다. 네이버, 카카오, KT 등 기업은 현황 데이터를 원활하게 공개할 수 있도록 서버를 제공했고요. 시빅해커(시민개발자)들과 관련 기업들은 마스크 재고 API를 활용해 약국의 마스크 수량을 확인하는 앱을 개발했습니다. 약사들이 손으로 입력한 데이터가 시민의 손에 닿는 과정을 정부와 기업, 시빅해커가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함께 만들어낸 것이죠. 이런 일이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이루어졌을까요?

중요한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이롭다는 정부의 방침과 재난 극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빅해커들의 열정이 상호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민주주의 혁신의 수단으로 기대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슬로건은 기술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공공재나 공유재로서 다수가 기술을 함께 소유합니다. 누구나 쉽게 사용 가능한 기술을 만듭니다. 기술에 영향을 받는 이들이 기술의 작동 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합니다. 기술을 활용해 더 안전하고 풍요로우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전망에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기술을 함께 소유하고,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며, 기술 활용으로 창출되는 부가 가치가 모두를 위해 쓰이도록 민주적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술의 민주적 구성이 중요한 이유는 기술 활용의 낙관적인 전망의 이면에 있는 부정적인 가능성 때문입니다. 로봇으로 대표되는 생산 수단을 일부가 독점하여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생기는 사회나, 과도한 환경 파괴와 자원 남획으로 인류 및 생태계가 멸종 위기에 처하고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사회도 우리는 예상합니다. 현대문명 기술로 서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지고 이 때문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세계로 퍼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전망할 때 과학 기술을 원인이자 해결책으로 지목하곤 합니다. 대전염병이 인류를 멸망시키거나, 지금보다 퇴보한 사회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은 기술 발달로 인해 초-연결된 사회 때문이라고 분석하죠. 한편 물리적 거리두기에도 사회적 연대를 유지하는 데 화상회의, 온라인 강의 등 초-연결 기술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기술이 원인이자 해결책으로 지목되고, 그 기술의 판단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다면, 우리는 다수가 기술에 접근하고 기술을 만들고 소비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술에 접근하는 순서를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최첨단 기술이 펼쳐질 미래를 상상할 때, 기술의 활용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곤 했습니다. 이제는 기술이 다수를 위해 활용되도록, 기술을 함께 소유하고 기술에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기술의 발전이 민주주의와 함께 지속해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음 원칙들에 대한 지속적인 합의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와 함께 기술이 발전하기 위한 6가지 원칙 

1.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
2. 정부 및 기업 데이터를 모두가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공유
3. 특별한 소수가 아닌 평범한 다수를 위한 플랫폼 서비스 제작
4. 플랫폼에 가치를 더하는 사람들을 플랫폼 운영 및 소유에 참여 유도
5.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술의 작동 원리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요 정책을 시민과 함께 결정
6. 코딩 등의 교육을 넘어 시민 누구나 기술을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

모두를 위한 기술을 기대한다면 이 6가지 원칙에 따른, 모두에 의한, 모두의(가 함께 소유하는) 기술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이때 가능한 선택지는 다양하게 열려있는데요. 선택지를 살펴보려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다음은 유명한 SF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솔라리아’라는 행성을 묘사한 내용입니다.

“대화할 필요가 생기면 화상으로만 이야기를 나눕니다. 고도로 발달한 로봇이 필요한 모든 물품을 생산하고, 시설을 관리하기에 더 이상 인간의 노동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집단을 이루면 갈등이 생겨 내 의지를 꺾거나 상대의 의지를 꺾어야 하는 일이 생기니, 자원과 권한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거리를 두고 행성 전체의 인구도 섬세하게 관리합니다.” 

코로나19로 물리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서로에게 혐오와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원격 근무를 실험하며 안락함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가는 지금, 우리 사회는 ‘솔라리아’를 닮아가게 될까요? 그러나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세계에서 ‘솔라리아’는 인류가 우주로 나가면서 개척한 행성 중 마지막 50번째였고, 나머지 행성들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른 삶의 방식을 만들어갔습니다. 우리의 미래에도 가능한 선택지가 다양하게 열려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잠깐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죠.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당신과 후손들이 살아가게 될 미래를 선택하는 과학과 기술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나요?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장치와 제도, 토론과 논쟁이 충분히 가능한 환경인가요?

앞서 얘기했던 시빅해커들의 모습을 떠올려봅시다.

마스크 재고 앱 개발에 참여한 시민은 중학생부터 대학생, 스타트업 개발자 등 다양했습니다. 다양한 오픈소스와 간편한 기술 인프라에 더해 공공 데이터가 적극적으로 제공되어 누구나 마스크 재고 앱 개발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빅해커들은 자신들의 기술로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 보람을 느꼈고, 정부의 적극적인 데이터 공개와 누구나 참여 가능한 기반 제공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시민의 디지털 역량이 커지고, 공공의 디지털 자원이 보편적으로 접근 가능할 때 사회가 문제를 다루는 방식도 달라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도 커진 것이죠.

<노동 없는 미래>를 쓴 팀 던럽은 기술 발전으로 노동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제시하면서도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만일 소수가 원하는 것들보다는 다수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응하는 정부를 재창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든 걸 포기한 채 새로운 로봇 지배자들을 환영하고,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의 삶을 살 기회가 싹 사라져 버린 세상, 그리고 그들과 우리로 갈라져 대립해야 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불행한 미래가 다가오기 전에 기술을 둘러싼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공공과 사회가 공유하는 기술을 늘려나가야 합니다. 다수를 위한 디지털 기술 기반의 사회 혁신이 작동하도록 다수의, 다수에 의한, 다수를 위한 기술을 만들고 그에 필요한 환경 구축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변화한 시민과 기술 혁신에 기반한 거버넌스 체계 혁신

촛불시위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열망과 함께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지점은 ‘시민들의 활동 방식’입니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과 형식으로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놀이와 활동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집회에 참여한 나’를 강조하며 자아정체성 드러내기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촛불시위에서 관찰된 시민들의 활동 방식은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과 디지털 플랫폼의 확대가 본격화되고 시대와 시민이 변화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두 한국사회가 수용해야 할 시민 참여의 다양한 모습입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시민 참여의 형식은 청와대의 국민청원으로만 수렴된 듯합니다. 다수의 국민은 미디어를 신뢰하지 않고 뉴스를 소비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기자나 전문가의 게이트 키핑이나 이슈 메이킹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이슈를 만들 수 있는 창구로 국민청원을 택합니다. 이를 통해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역대 정권에 비해 분명 소통의 질과 양이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국민들의 효능감 역시 높아졌습니다. 다만 현 정부에서의 시민 참여는 여기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소통’이라는 키워드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시민들의 열망은 더 큽니다. 10년 전의 참여 정부, 아고라와 비슷한 국민청원에서 그치지 않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에 대한 궁금증도 품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촛불시위를 통해 발현된 더 나은 민주주의 체계를 향한 열망과 기대감 덕분에 조직 내 민주주의, 젠더 갈등, 개별 사건에 대한 이슈 메이킹 활동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제들을 둘러싼 논의는 제한된 참여 형식과 경로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는 데에 그쳤습니다. 이는 조정이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정책으로 입법화하지 못해 사회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비판과 함께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의심으로까지 이어집니다. 

“‘혁신적 포용국가’는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을 추구하며, 배제와 독식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의 사회를 도모하고, 미래를 향해 혁신하는 사회이며, 강자만을 위한 대한민국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대한민국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의 비전입니다. 시민들의 높아진 열망을 뒷받침하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참여의 형식과 경로를 늘려 공존과 상생의 기반으로서의 소통과 협력의 기반을 확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시민 참여의 변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 때 고려해야 할 방향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시민 참여의 포괄적 정의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시민 혹은 시민 단체 활동가와는 다른, 사회 문제나 활동에 무관심한 시민을 의미하는 ‘일반 시민’이란 이상한 용어가 있습니다. 기획, 실행, 운동 전체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일부에만 관여하는 시민입니다. 일반 시민은 그동안 사회 변화의 주체로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여론 조사를 통해서도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아 사회 변화의 주체로 주목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민’으로 다시 불려야 합니다. 

기술을 가진 개발자나 디자이너는 시빅해커(Civic Hacker)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정부가 투명하게 공개한 데이터를 활용해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 제공합니다. 난임의 고통을 겪는 시민들은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이것이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발견하고 정부가 저출생 시대의 대책으로서 난임 당사자들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활동을 하는 이들은 환경부에 강력한 단속을 요구합니다. 또한 대형 커피숍 프랜차이즈에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것을 촉구하지요. 보편적, 실질적인 현상을 파악하려면 이들의 활동을 포괄해서 시민 참여를 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각자의 환경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활동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2. 종합적이고 협력적인 시민 참여 모델

시민 참여 혹은 시민 주도의 분권 및 자치 모델은 단일하지 않습니다. 작은 조직과 큰 조직의 소통과 협력 방식이 다르고, 조직과 조직, 개인과 조직 간의 소통 방식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법을 만드는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키는 경우와 시행 중인 정책에 대한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거나 갈등 상황에 놓인 이해당사자를 조정하는 경우도 서로 다릅니다. 적합한 구성 방식을 갖추고 나면 각 단위 간의 조정과 협력 역시 필요합니다. 다양한 민주주의 모델을 개발하고 해당 단위들 사이에도 조정과 협력이 일어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작고 유연한 커뮤니티, 효율적으로 협력하는 조직, 외부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 투명한 정보 공개와 갈등 조정 기능을 포함합니다.

다양한 단위에 적합한 소통과 협력 모델, 이들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예를 들어 서울시는 ‘민주주의 서울’을 통해 시민이 내는 제안, 서울시가 만든 정책을 공론화하는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시민 개인의 제안을 한 명의 공무원이 답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소수의 시민이 제안하고 더 많은 시민이 함께하는 공론화 단계를 거쳐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는 모델을 만들 계획입니다. 시 정부의 역할을 고려한 설계입니다.

민주주의 서울은 제안을 공론화하는 과정과 이를 운영하는 체계를 수립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3. 협력적인 소통에 필요한 기술 기반과 정책

눈부시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 속에서도 유독 제자리걸음을 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미디어와 댓글, 토론 등의 협력적인 소통에 필요한 기술 분야입니다. 투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미디어 서비스는 종이를 디지털화한 데 머물러 있습니다. 토론은 댓글을 남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제한된 도구는 제한된 소통 방식과 여러 부작용을 낳습니다. 

현재 기관들이 주도하는 다양한 시민 참여 플랫폼은 기능 및 운영 노하우 부족이라는 문제 이전에, 기술적인 인프라가 충분치 않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온라인에서 안전하게 의견을 낼 수 있나요? 온라인에 표출된 의견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신뢰는 어떤 조건을 내포할까요? 다수가 신뢰하는 데이터가 있나요? 다수가 신뢰하는 대중매체는 있을까요? 의견을 주고받고, 갈등과 조정을 거쳐 합의에 이르는 프로세스는 존재하나요? 대표성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해외 사업자가 운영하는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나 정책은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고, 지금도 충분히 준비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페이스북 상에서 불법적으로 정보를 공개한 페이지 운영자와의 대화입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정부는 부처별로 제각각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공 데이터 확대, 미디어 산업 육성 및 가짜 뉴스 대책 마련, 젠더 폭력 방지 대책, 개인정보보호 대책, 블록체인 기반 투표 시스템 개발 등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흐름이지만, 이를 넘어서 통합적인 논의의 장이 필요합니다. 공존과 상생을 달성하기 위한 포용국가의 인프라로서의 비전을 세우고 소통과 협력에 필요한 기술 개발과 정책 수립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글과 댓글, 좋아요가 시민 참여를 위해 우리가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의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4. 점진적인 진행 및 혁신적인 수단 

물론 시민 참여의 의미를 확대하고, 사회 곳곳에 필요한 소통과 협력 모델을 개발하며, 이에 필요한 기반 기술과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이 단번에 이뤄질 수는 없습니다. 시민 참여 플랫폼 개발 및 운영, 활동하는 시민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만이 과정의 전부인 것도 아닙니다. 

직접민주주의 요소와 기존 대의제 및 관료 조직과의 융합,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정의하는 사회적 합의, 대표성의 정의에 대한 정책 결정 등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권한을 확대하기 위해선 거쳐야 하는 단계가 많습니다. 이들을 실험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실험을 수행하는 동안 여러 가지 안전장치가 있어야만 합니다. 가능하면 갈등과 사회적인 임팩트가 덜한 문제부터 시작해서 심각한 갈등이 있거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와 빠띠는 ‘민주주의 서울’을 시작할 때 결정의 역할보다 시민과의 논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한편 지금은 서울 시민과 함께 중요한 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정책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민토론의제선정단과 같은 단위를 만들어서 시민들의 단순 제안이 정책화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기획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주제를 논의할 때에도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라 들이는 노력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데모스X로 플랫폼 운영 가이드와 소스를 공개해서 외부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받기도 하고 시행착오와 노하우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서울과 같은 기관 주도 공론장 외에도, 빠띠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입법 프로젝트나 공론장 운영 프로젝트, 이슈 커뮤니티 구성 등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하우를 민주주의 툴킷으로 정리해서 오픈소스로 공개했습니다. 

서울시와 빠띠가 오픈소스로 공개한 민주주의 서울 플랫폼 소스와 운영 가이드 데모스X입니다, 이미지 출처: 데모스X 캡처 화면
빠띠의 시민입법, 시민토론 등의 민주주의 툴킷입니다, 이미지 출처: 빠띠 홈페이지 캡처 화면

산업을 육성할 때 활용하는 혁신적인 수단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 캐피털인 와이콤비네이터는 2017년에 민주주의, 언론, 일자리 문제를 다루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고 공표했습니다. 유럽위원회는 2012년부터 The CAPS initiative (Collective Awareness Platforms for Sustainability and Social Innovation)를 운영하며 지속가능성과 사회혁신을 위한 달라진 시민 참여 기반의 솔루션을 만들기 위한 연구 작업, 펀딩, 플랫폼 개발을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정부의 시민 참여 플랫폼 연구를 중요한 과제로 다루어야 합니다. 시민 참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회적 기업이나 플랫폼 협동조합이 늘어나면 더더욱 바람직하겠고요. 

CAPS의 활동 영역입니다, 이미지 출처: CAPS

결론

디지털 기술이 변화하는 속도만큼, 시민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 속도가 늦춰질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뒤쫓을 게 아니라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고 그 변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어지도록 함께 기여해야겠지요.

디지털에 기반한 정보 기술은 정보를 축적 및 확산할 수 있고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를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을 수립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의 경우,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이뤄낸 성과를 돌이켜보면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거버넌스 체계 수립을 앞서 실현할 수 있는 사회 경험과 기술 기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압축 성장을 거쳐 서로 다른 경험을 한 다양한 세대가 동시대에 사는 복잡한 사회이기도 합니다. 분단국가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갈등을 조정하고 상생과 협력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혁신적인 민주주의와 거버넌스 체계 수립이 과제이면서도 기회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다음 5개의 거버넌스 체계 요소가 잘 기능하는 사회를 바라봅니다.

1) 사회가 공통으로 신뢰하는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 정보공개
2) 누구나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이슈를 가지고 각자의 여건만큼 활동하며, – 커뮤니티
3)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이슈에 모두가 함께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 캠페인
4) 참여한 시민들이 서로 신뢰하는 방식을 활용해 공론을 만들고, – 매스 미디어, 공론장, 소통과 신뢰 기술
5) 공론이 기관의 정책 수립, 법 개정, 예산 조정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 – 기관 주도 공론장

이제는 이런 사회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글 | 빠띠 설립자, 슬로워크 소셜테크랩 리더 시스
이미지 | 슬로워크 책임 디자이너 길우
편집 | 슬로워크 책임 테크니컬 라이터 메이

슬로워크를 시작한 이유들: 왜 사회를 혁신하는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일자리 모델을 선택했을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서의 디자인, 우리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결정하고 일하는데 기술이 가지는 중요함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깊게 공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좀 더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 정부와 여러 기관들이 가진 디자인과 기술 역량은 조직 내에 충분히 내재화 되지 못했다.

사회혁신영역(소셜섹터)의 기술 역량 강화 문제는 중요한 과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기술의 전문가들이 안정된 일자리라는 터전 위에서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가 갖추어져야 한다. 슬로워크(혹은 UFOfactory)를 시작할때 내가 내렸던 주요한 결정은 바로 여기서 시작했다.

당시에는 어떤 단체가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정기 뉴스레터를 보낼때 대부분 세가지 방식 중 하나를 택했다. 젊은 상근자가 어떻게든 만든다. 주변 개발자, 디자이너 친구 또는 자원봉사자에게 부탁한다. 금전적으로 조금 여유로운 단체는 개발이나 디자인을 전담하는 인력을 한명 채용한다.

나 역시도 ‘홈페이지가 갑자기 안 되는데 도와달라’는 요청부터 시작해서 ‘프로젝트를 같이 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으로 이어지다가, ‘단체에 들어와서 일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내부의 전담인력은 고립된 섬처럼 지내다 크게 지쳐 조직을 떠난다. 가치 중심의 활동이 중심이 되는 조직에서 기술 전문성을 갖춘 인력들은 제대로 대우를 받기도 어려운데다 스스로의 전문성을 키울 기회도 갖지 못한다. 게다가 기술 전문성이 없는 활동가가 어쩔 수 없이 뉴스레터, 웹자보, 홈페이지를 다루다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일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일을 두배로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엔 컴퓨터를 고치거나 고장난 인터넷 망을 해결해야 하는 일도 했다. 요즘엔 영상까지도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는 기술(디자인,테크놀러지,글쓰기 등등) 전문가가 따로 모여서 전문성을 키우고, 이들이 활동가 조직과 만나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섹터 내에서 외롭게 지내왔던 전문가들이 활동과 기술을 엮어내는 전문성을 더 키우는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전문가로서 더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사회 문제나 아젠다에 큰 관심이 없었던 개발자와 디자이너들도 소셜 섹터를 접하면서 각자가 가진 전문성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해 가는 환경을 만들어 내길 바랬다. 그러기 위해서는 급여 수준을 적어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반 기업들의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따라왔다.

슬로워크는 지금까지 매년 1,200개 이상의 기관들과 수백개의 브랜드, 캠페인, 웹사이트(홈페이지 플랫폼 포함)을 만들어 왔다. 소셜 섹터 안에 기술과 디자인 전문성을 갖춘 조직을 만들어야 섹터의 역량도 한 뼘 더 성장하고, 결과물의 퀄리티도 올라가며, 일을 하려는 전문가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이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더 많은 전문가들이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를 혁신하는 임팩트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소셜 섹터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슬로워크 같은 조직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민주주의 플랫폼의 조건과 민주주의 서울의 시작

2017년 2월 9일.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서울시청 근처로 두 공무원을 찾아갔습니다. 설 직후라 조용했던 서울시청 근처, 저는 그날 처음 본 분들에게 “담당 공무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요. 여러 필수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서 무리하지 않으시면 좋겠네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올해 말까지 시범사업을 끌어온 ‘민주주의 서울’의 첫 미팅 자리였습니다.

대통령 탄핵 정국이었던 그 당시 빠띠가 해 왔던 사업이나 빠띠가 만났던 사람들은 대체로 “시민이 자발적으로 자기 조직화를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누군가 시민을 불러모아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미묘하게 나뉘어 있었습니다. 빠띠는 ‘시민의 자기 조직화’에 집중하며 우주당을 만드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빠띠가 직접 하는 사업과는 별개로 우리가 만나는 분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생각이 실현되는데 필요한 게 무언지 고민해 주고 함께 답을 찾아보는 일도 자주 하고 있었죠. 그러나 탄핵 정국에서 기관의 민주주의 플랫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문의하는 팀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전에도 몇 년간 서울시의 다른 담당자들을 서너 차례 만나긴 했었습니다. 처음엔 ‘천만상상 오아시스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였고, 이후엔 ‘디사이드 마드리드 같은 것을 서울시에 도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였어요. 아래에 나눌 이야기를 똑같이 해드렸지만, 이야기한 내용 중 부분부분만이 떠돌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운영팀을 구성하고 운영팀이 “애자일 방식이나 MVP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중 “애자일”이 한동안 서울시 내에 회자되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설 직후 미팅에서 만났던 분들은 고시를 통해 공무원이 된 분들로, 실제로 그 업무를 직접 다루고 있는 분들이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상명하달로 주어진 업무여서가 아니라 본인들이 맡게 될 업무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시로 옮겨온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아직 발령을 기다리는 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질문에 간단히 답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늘 하던 답, 지난 몇 년간 제가 서울시 다른 담당자들에게 말씀드렸던 이야기를 우선 그대로 해드렸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1. 아직 온라인상에서든 오프라인상에서든 시민들의 단순 제안이나 청원을 넘어, 참여와 토론, 권한을 어떻게 위임할지 연구가 많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그 답을 함께 찾아가는 팀을 만들고, 그 팀이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며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 팀의 구성원은 외부 전문가와 내부 공무원이 섞여 있는 게 좋고, 외부 전문가는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결과로 나오는 디지털 플랫폼은 반드시 최대한 간단해야 합니다. 고민과 노력이 깊을수록 플랫폼이 간단해지는 것이지, 간단한 걸 따라 만든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2. 민주주의 플랫폼이든 시민참여플랫폼이든 이 플랫폼을 통해서 어떤 효용이 있을지를 시민들이 믿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플랫폼의 최고 책임자가 정무적인 역량과 동시에 시 내부 체계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그 권한은 상징적이어도 괜찮지만, 필요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시장 주도로 하거나, 부시장이 주도하거나, 혹은 시장이 외부 전문가에게 1번의 조직을 만들며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3. 어떤 플랫폼이나 정책이든 초반에 열광하며 믿고 참여하는 시민이 필요합니다. 물론 새로운 일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만드는 일은 무척 어렵습니다. 큰 기업에서도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만 이 일에 애를 먹는 게 대부분입니다. 초기에 선출직 리더를 지지하는 기반이 탄탄하다면 이 기반을 활용해서 시민과의 소통, 협력을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입장이 강화되더라도 그 부작용을 관리하면서 나가는 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니 현재 시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 얼마나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필수 조건입니다.

요약하면 1) 전문성을 가지고 답을 찾아갈 권한을 위임받은 운영팀, 2) 팀을 이끌거나 혹은 단단하게 지원해 주는 권한을 가진 책임자, 그리고 3) 초기에 시정을 지지해주는 시민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서 사실 세 번째만 있어도 초기 흥행은 성공합니다만,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없으면 2년 안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며 지지자들이 실망하며 돌아섭니다. 그 틈을 타서 정치적 입장이 다른 진영에서 정책이 소용이 없다거나, 무책임하다거나, 부작용이 심하다는 공격이 들어오게 된다고도 말을 했습니다.

이 외에도 플랫폼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게 여러 가지 더 있지만, “이렇게 이렇게 하면 성공합니다”라는 정답은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는 기관이라면, 위의 세 가지가 갖추어져 있는지를 가장 먼저 생각해 보라고 권합니다. 한국에서는 공무원과 전문가를 섞은 팀을 만드는 방식도 경직되어 있어서, 지금은 1번의 운영팀을 내부의 의지를 가진 담당 공무원들과 외부의 전문가팀, 두 개로 나누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탄핵 정국, 그리고 박 시장님의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상태에서 서울시에 갓 배정받은 두 공무원, 거의 다 망가진 상태였던 천만상상 오아시스, 여기에 갑자기 높아진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기대감이 무색하게 실험도 고민도 해 본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거의 없는 상황까지.

여러 가지 넘어야 할 조건을 논의하고 난 후 “너무 고생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의 권한 밖에서 준비되어야 할 일들이 많으니까요”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끝이 났다면 지금 민주주의 서울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 후 얼마 뒤에 저는 다시 연락을 받게 되고, 그로부터 다시 반년 뒤 ‘민주주의 서울’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함께 만들게 됩니다.

슬로워크와 함께 일한 조직이 1100곳

2013년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UFOfactory를 창업할때는 소원풀이를 한다는 심정이 컸습니다. 안정적인 회사를 다니면서 남은 시간을 그때 막 관심을 받기 시작하던 공유기업 중 하나의 서비스를 만들어주곤 했는데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사회를 바꾸려는 곳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 기반을 제공하는 일을 제가 한번은 제대로 해 봐야 아쉬움이 남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Daum에 입사하면서 잡았던 목표이기도 했고, 2010년에 Daum을 퇴사하면서 하게 되리라 기대했던 일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때 그런 계획을 이야기했을때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고생할게 뻔하고(그건 맞았어요), 생존하기는 불가능하다(아직 살아있네요!)며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걱정어린 조언들뿐이었어요.

그렇지만 사회를 바꾸려는 이들을 회사를 다니며 남는 시간을 내어 자원봉사 형태로 돕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는 힘들다는 생각은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가 지속가능하려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고 저는 믿었어요. 저부터가 살아온 내내 월급이 필요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더불어서 어설프게 자원봉사를 하느니, 한번은 기업을 만들어 도전하고 주변 사람들의 예상대로 빨리 망하면 깔끔하게 포기하자 생각을 했습니다.

망할 가능성을 높게 두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구성원들에게 실례이기 때문에, 저는 회사를 운영하던 초기에 구성원들에게 늘 “우린 언제든지 망할 수 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기술을 익히는데 집중하시면 좋겠다고 이야길 했고, 어디보다도 힘들 수 있는 이 영역의 일을 해내는게 다른 영역에서는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힘들어서 금방이라도 그만 두고 싶다면, 회사는 내일이라도 문을 닫을 수 있도록 구성원의 퇴직금을 착실하게 적립하였으며, 회사에 빚을 만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어요. 지금 보니 무차입 경영입니다만, 비용은 매우 낮고 기술 이해도도 낮은 파트너들과 고민을 나누며 서비스까지 기획한다는 사업이 제가 봐도 망하기 좋은 아이템이었던 거죠. 한편으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란걸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았어요.

그랬던 UFOfactory가 3년을 버티고 예비사회적기업이 되었다가, 빠띠라는 ‘하면 망한다’는 이야길 들은 서비스를 만들고(그래도 빠띠는 다행히 스폰서가 있었어요!), 이후에 슬로워크와 합병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합병 후에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후에 열린 지난주 워크숍 때 확인을 해 보니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 63명이고 직간접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다 합치면 100여명 가까이가 됩니다. 사업부는 7개로 늘어났고, 각각의 사업부가 저마다 개성을 가지고 성장할 준비도 하고 있구요. 매출 역시 두 회사를 단순 합친 금액을 넘어서고 있구요.

NPO파트너페어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만났던 조직들, 우리가 만들었던 작업들, 우리가 만든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 대략 이렇게 나왔습니다.

Slowalk+UFOfactory = Slowalk.
We are Creators for Change

Since 2005,
슬로워크와 손잡고 변화를 만든 조직 1100곳
디지털 시대에 꼭 필요한 PC/모바일앱 사용자 3천만 명
조직의 가치와 철학을 반영한 브랜드 700개
스티비를 통한 더 효과적인 이메일 3억 통
빠띠와 함께 더 민주적인 세상을 만든 51만 명

대부분 비영리조직이거나 사회적기업, 혹은 기관인 우리의 파트너가 1100곳이라니 저 역시도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가 만든 서비스를 한번이라도 써 본 사람들의 수 역시도 적은 수가 아닙니다. 아마도 제가 회사를 다니며 시간을 쪼개서 사회적기업이나 공유기업을 도왔다면 결코 도달하지 못했을 수치입니다.

그리고 처음 생각과 달리 이 섹터는 이 섹터 나름의 매력과 강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도 어느 틈에 생각보다는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구요. 영리를 대상으로 하는 일과 비영리를 대상으로 하는 일의 균형이 맞아 돌아가면 운영에서도 안정감이 생기고, 무엇보다도 영리를 추구한다는 행위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시대로 바뀌면서 저희의 미션이 더 주목을 받게 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틈에 여기까지 왔나 싶습니다. 처음 시작했던 가벼운 마음은 이제 묵직한 책임감으로 변한지 꽤 되었구요. 그러나 한편으론 점점 더 제 역할이 줄고, 동료들과 동맹들이 멋지게 내는 성과들을 통해 제가 함께 살아간다는 안전감도 커져 갑니다.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와 그리고 우리와 어깨를 걸고 등을 대고 함께 사회에 도전하는 동료들과 동맹들이 앞으로 벌일 일들이 기대되고, 우리가 함께 한 일들이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