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누리는 불로소득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직장에 가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수도권으로 홀로 이사를 했다. 그때 나는 창문이 냉장고로 가려져 있지만 대신 세탁기가 옵션인 신축 원룸을 구했다. 경기도권이라 가격이 저렴했지만, 해당 원룸의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님은 500만원을 지인에게 빌려야 했다 (그리고 몇년 후에 부모님 두분이 돌아가신 후에 아직 그 빚이 남아 있었단 걸 뒤늦게 알고 상속 포기와 상관없이 갚았다). 학비가 저렴한 대학을 다녔기에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갚아야할 얼마간의 학자금 대출이 있었고. 매달 15만원의 적금을 들었고,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드는게 좋다는 조언을 듣고 종신보험을 매달 18만원 가량 냈다. 그리고 매달 월세는 30만원. 150여 만원을 조금 넘는 신입사원의 월급을 받으며 수도권에서 처음 생활한지 1년. 1년 적금을 깬 내 손에 쥐어지는 180여만원의 돈을 보면서 나는 평생 수도권에서는 집을 사지 않거나 사지 못하겠단 생각을 했다.

운이 좋아서 어떤 직장이든 원하는 곳을 다녔다. 내가 다녔던 직장들은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아침에 지정한 시간에 지정한 장소에 나가서 지정한 시간까지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은 이해하기가 늘 힘들었다. 내 인생의 대부분 특히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내 맘대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이, 1년에 휴일을 제외하고는 2주 언저리의 휴가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특히 두번째 직장이었던 Daum이 양재동에 있었던지라 경기도에서 매일 2시간에서 3시간씩 미어 터지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지내야 하는것은 불쾌함을 넘어 인간으로서 모독을 받는 기분이었다.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한다면 그래서 나와 일하는 사람이나 나와 계약한 회사가 내게 기대한 만큼의 수익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지내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곳을 찾는 것보단 내가 내 사업을 시작하는게 더 낫다는 것을 다른 계기로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일하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 다르긴 했다. 아무튼 기술과 역량을 제공하되 지정된 장소에서 지정된 시간동안 지정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주고, 월급이란걸 받는 방식의 삶을 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하려는 일을 독립적으로 하려면 한국에선 법인을 만드는게 가장 쉽다. 개인사업자도 좋지만, 법인을 만들어서 운영하는게 특별히 더 어렵지는 않더라. 그렇게 법인을 만들고 보니 주식이란게 내게 처음 생겼다. 그 주식으로 돈을 벌어본 적은 없지만, 사업체를 한번 만들고 보니 이후에 또 다시 만드는건 전혀 어렵지 않았고, 앞으로도 특정한 일을 특정한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하려면 기업을 만들거나 조직을 만들 것 같다. 사회적 기업이나, 사회적 협동조합을 주로 만들겠지만. 아무튼 주식이란건 아무도 안 하는 일을 주도해서 시도하니까 생기는 부산물이었지 수익을 주는 소득원이었던 적은 아직까진 없다.

무엇보다도 부동산과 주식 투자를 통해서 돈을 번다는게 내게는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지금은 마치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단기간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투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부동산이나 기업에 대한 투자는 기본적으로 10년 이상을 바라보고 해야 하는 장기 투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식이 오르고 내리고를 신경쓰고 살고 싶지도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수익과 앞으로 내가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할 때 필요한 수익을 확보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일을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부동산, 주식, 급여 소득에 대한 기대를 제외하면 (상속도 포기한 나에겐) 사업 말고는 남는게 없다.

더 나아가 사업은 어느 정도 불로소득을 지향해야 한다. 내가 직접 일하는게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이 수익을 발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만약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게 서비스나 기술이라면 부가가치가 높을 테고, 그 서비스나 기술이 기존 사업을 망가뜨리는게 아니라면 새로운 부가가치를 생성하는 혁신일수도 있다. 그리고 세상엔 여전히 일자리가 당장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사업을 통해 기존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서 누군가의 삶이 더 윤택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아무튼 나는 사업은 불로소득을 지향해야 하고, 다른 수익원보다도 바람직한 불로소득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불로소득원을 더 많이 만들고 싶고, 동료들과 더 같이 운영하고 싶고. 그 소득원이 기존의 가치를 망가뜨리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더 하는 방식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부동산, 주식은 넘사벽이고, 노동으로도 필요한 최소한의 수익을 초과하는 여유를 기대할 수 없다면 다른 대안이 없기도 하다. 물론 이 불로소득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리고 운영하고 유지하는 과정에 나는 열심히 일을 할 테고, 해보니까 직장을 다닐 때보다도 더 일을 많이 하기도 하더라. 그럼에도 이때도 나는 일을 한다는 느낌보단 하고 싶은 일을 즐긴다는 느낌 그리고 내 노동의 결과물이 축적된다는 느낌이 강해서 직장을 다닐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얼떨결에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어쩌면 한번 사업을 한 사람은 계속해서 사업을 한다는 이유가 이런데에 있는게 아닐까. 창업 이전에 다녔던 마지막 회사에서 10여년 전에 받았던 월급 수준에 얼마전에야 겨우 도달했었고, 그마저도 슬로워크의 대표를 놓으며 다시 많이 줄였지만 그래도 사업이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여러가지로 불안이 중첩되고,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각자도생에 나서는 2020년에. 개인이든 동료와 함께든 아니면 사회 전체든 우리가 함께 불로소득원을 함께 만드는데 집중해 보는건 어떨까. 기술이 만드는 가치는 결국 사람은 일하지 않고 시스템이 일하거나 더 나가 기계가 일하는 시대를 만들자는게 아닌가.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불로소득원이 필요한 시대가 올 테고, 혼자서 그 소득원을 소유할 수 없다면 함께(조합), 혹은 사회가(공공재) 소유하면 어떻겠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직을 만들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와 정부에 기대하며 때론 나서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슬로워크를 시작한 이유들: 왜 사회를 혁신하는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일자리 모델을 선택했을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서의 디자인, 우리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결정하고 일하는데 기술이 가지는 중요함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깊게 공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좀 더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 정부와 여러 기관들이 가진 디자인과 기술 역량은 조직 내에 충분히 내재화 되지 못했다.

사회혁신영역(소셜섹터)의 기술 역량 강화 문제는 중요한 과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기술의 전문가들이 안정된 일자리라는 터전 위에서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가 갖추어져야 한다. 슬로워크(혹은 UFOfactory)를 시작할때 내가 내렸던 주요한 결정은 바로 여기서 시작했다.

당시에는 어떤 단체가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정기 뉴스레터를 보낼때 대부분 세가지 방식 중 하나를 택했다. 젊은 상근자가 어떻게든 만든다. 주변 개발자, 디자이너 친구 또는 자원봉사자에게 부탁한다. 금전적으로 조금 여유로운 단체는 개발이나 디자인을 전담하는 인력을 한명 채용한다.

나 역시도 ‘홈페이지가 갑자기 안 되는데 도와달라’는 요청부터 시작해서 ‘프로젝트를 같이 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으로 이어지다가, ‘단체에 들어와서 일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내부의 전담인력은 고립된 섬처럼 지내다 크게 지쳐 조직을 떠난다. 가치 중심의 활동이 중심이 되는 조직에서 기술 전문성을 갖춘 인력들은 제대로 대우를 받기도 어려운데다 스스로의 전문성을 키울 기회도 갖지 못한다. 게다가 기술 전문성이 없는 활동가가 어쩔 수 없이 뉴스레터, 웹자보, 홈페이지를 다루다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일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일을 두배로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엔 컴퓨터를 고치거나 고장난 인터넷 망을 해결해야 하는 일도 했다. 요즘엔 영상까지도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는 기술(디자인,테크놀러지,글쓰기 등등) 전문가가 따로 모여서 전문성을 키우고, 이들이 활동가 조직과 만나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섹터 내에서 외롭게 지내왔던 전문가들이 활동과 기술을 엮어내는 전문성을 더 키우는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전문가로서 더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사회 문제나 아젠다에 큰 관심이 없었던 개발자와 디자이너들도 소셜 섹터를 접하면서 각자가 가진 전문성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해 가는 환경을 만들어 내길 바랬다. 그러기 위해서는 급여 수준을 적어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반 기업들의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따라왔다.

슬로워크는 지금까지 매년 1,200개 이상의 기관들과 수백개의 브랜드, 캠페인, 웹사이트(홈페이지 플랫폼 포함)을 만들어 왔다. 소셜 섹터 안에 기술과 디자인 전문성을 갖춘 조직을 만들어야 섹터의 역량도 한 뼘 더 성장하고, 결과물의 퀄리티도 올라가며, 일을 하려는 전문가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이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더 많은 전문가들이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를 혁신하는 임팩트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소셜 섹터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슬로워크 같은 조직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나.

슬로워크와 함께 일한 조직이 1100곳

2013년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UFOfactory를 창업할때는 소원풀이를 한다는 심정이 컸습니다. 안정적인 회사를 다니면서 남은 시간을 그때 막 관심을 받기 시작하던 공유기업 중 하나의 서비스를 만들어주곤 했는데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사회를 바꾸려는 곳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 기반을 제공하는 일을 제가 한번은 제대로 해 봐야 아쉬움이 남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Daum에 입사하면서 잡았던 목표이기도 했고, 2010년에 Daum을 퇴사하면서 하게 되리라 기대했던 일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때 그런 계획을 이야기했을때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고생할게 뻔하고(그건 맞았어요), 생존하기는 불가능하다(아직 살아있네요!)며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걱정어린 조언들뿐이었어요.

그렇지만 사회를 바꾸려는 이들을 회사를 다니며 남는 시간을 내어 자원봉사 형태로 돕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는 힘들다는 생각은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가 지속가능하려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고 저는 믿었어요. 저부터가 살아온 내내 월급이 필요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더불어서 어설프게 자원봉사를 하느니, 한번은 기업을 만들어 도전하고 주변 사람들의 예상대로 빨리 망하면 깔끔하게 포기하자 생각을 했습니다.

망할 가능성을 높게 두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구성원들에게 실례이기 때문에, 저는 회사를 운영하던 초기에 구성원들에게 늘 “우린 언제든지 망할 수 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기술을 익히는데 집중하시면 좋겠다고 이야길 했고, 어디보다도 힘들 수 있는 이 영역의 일을 해내는게 다른 영역에서는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힘들어서 금방이라도 그만 두고 싶다면, 회사는 내일이라도 문을 닫을 수 있도록 구성원의 퇴직금을 착실하게 적립하였으며, 회사에 빚을 만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어요. 지금 보니 무차입 경영입니다만, 비용은 매우 낮고 기술 이해도도 낮은 파트너들과 고민을 나누며 서비스까지 기획한다는 사업이 제가 봐도 망하기 좋은 아이템이었던 거죠. 한편으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란걸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았어요.

그랬던 UFOfactory가 3년을 버티고 예비사회적기업이 되었다가, 빠띠라는 ‘하면 망한다’는 이야길 들은 서비스를 만들고(그래도 빠띠는 다행히 스폰서가 있었어요!), 이후에 슬로워크와 합병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합병 후에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후에 열린 지난주 워크숍 때 확인을 해 보니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 63명이고 직간접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다 합치면 100여명 가까이가 됩니다. 사업부는 7개로 늘어났고, 각각의 사업부가 저마다 개성을 가지고 성장할 준비도 하고 있구요. 매출 역시 두 회사를 단순 합친 금액을 넘어서고 있구요.

NPO파트너페어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만났던 조직들, 우리가 만들었던 작업들, 우리가 만든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 대략 이렇게 나왔습니다.

Slowalk+UFOfactory = Slowalk.
We are Creators for Change

Since 2005,
슬로워크와 손잡고 변화를 만든 조직 1100곳
디지털 시대에 꼭 필요한 PC/모바일앱 사용자 3천만 명
조직의 가치와 철학을 반영한 브랜드 700개
스티비를 통한 더 효과적인 이메일 3억 통
빠띠와 함께 더 민주적인 세상을 만든 51만 명

대부분 비영리조직이거나 사회적기업, 혹은 기관인 우리의 파트너가 1100곳이라니 저 역시도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가 만든 서비스를 한번이라도 써 본 사람들의 수 역시도 적은 수가 아닙니다. 아마도 제가 회사를 다니며 시간을 쪼개서 사회적기업이나 공유기업을 도왔다면 결코 도달하지 못했을 수치입니다.

그리고 처음 생각과 달리 이 섹터는 이 섹터 나름의 매력과 강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도 어느 틈에 생각보다는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구요. 영리를 대상으로 하는 일과 비영리를 대상으로 하는 일의 균형이 맞아 돌아가면 운영에서도 안정감이 생기고, 무엇보다도 영리를 추구한다는 행위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시대로 바뀌면서 저희의 미션이 더 주목을 받게 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틈에 여기까지 왔나 싶습니다. 처음 시작했던 가벼운 마음은 이제 묵직한 책임감으로 변한지 꽤 되었구요. 그러나 한편으론 점점 더 제 역할이 줄고, 동료들과 동맹들이 멋지게 내는 성과들을 통해 제가 함께 살아간다는 안전감도 커져 갑니다.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와 그리고 우리와 어깨를 걸고 등을 대고 함께 사회에 도전하는 동료들과 동맹들이 앞으로 벌일 일들이 기대되고, 우리가 함께 한 일들이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