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갈 내가 직접 시작하고 싶진 않았는데…

하나, 둘, 셋, 넷. UFOfactory를 만들기 전까지 만들었던 회사나 단체의 개수를 세어본다. 그 전에 다녔던 회사는 하나, 둘, 셋. 병역특례를 했고, SI&SM회사에 다녔고, 포털에서 일을 했다. 정당에서 짧게 반상근한건 빼더라도. UFOfactory 이후에도 법인격을 가지거나 임의단체를 만든게 3개인가 더 있다. UFOfactory는 슬로워크와 합병했고, 빠띠는 부족함이 많지만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고, 우주당은 실험 중이다. 더민플이든 피스코드든 느슨한 커뮤니티도 여러개 시작하고 운영하기도 했고.

여전히 사람을 대하는게 싫지는 않지만 어색한 내가 뭔갈 직접 시작하고 싶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하나 하나 세어보니 꽤나 많은 일들을 시작했다. 내가 바라는 목표를 가진 조직이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조직이 없으니까 시작했고, 시작하고 나니까 운영하게 되고. 그러다가 문득 “내가 뭐하는 거지?”란 깨달음이 화들짝 들고. 잘 하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고민을 하고. 이 상황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누가 등 떠밀어서 시작한 일도 없으니 내 무덤을 내가 판 셈인데.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그런 일이 없겠지? 지금 하는 일을 잘 위임하기만 하면 괜찮겠지?

2017년 10월 24일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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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쁜 일상이 시작되었다. 어쩔 수 없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나 싶다가도, 내 안의 누군가는 분명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그럼에도 내 안의 또 다른 누군가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는 분명한 자기 주장을 한다. 따뜻한 볕을 쬐며 파란 하늘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을 조만간 길게 만끽하고 싶다.

대답을 찾지 못한 모색들

<20170912 항해일지>

내일 컨퍼런스를 준비하며 모인 아침 미팅. 30분을 생각했던 모임은 두시간 가까이 걸렸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내일 세션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어떤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할까, 멀리 뉴질랜드 엔스파이럴에서 온 수잔에게 사람들은 무슨 이야길 듣고 싶을까, 자기 조직화의 경험이 부족한 우리들은 어떤 기대를 갖고 있을까 등등.

찾아오는 이들과 더 많이 이야길 나누고 싶어했던 수잔의 바램을 담아서. 40분 정도는 발표자들의 경험을 나누고, 자기 조직화와 관련된 질문을 정해서 참가자들과 함께 이야길 나눠보는 자리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복잡하기는 어려우니 예, 아니오 정도로 모두가 의견을 표현하도록 하고 함께 오거나 곁에 있는 사람들의 답을 함께 살펴보는 자리로 만들기로.

그러기로 하고 엔스파이럴의 수잔, 롤링다이스의 제현주님, 씨닷의 한선경님과 함께 뽑아본 질문들인데 하나 같이 곱씹어 볼 만한 질문들이다.

7 Questions
• Do you want to start your org?
• Have you participated in decision making for compensation policy?
• Do you think the power in your org efficiently distributed?
• Are you satisfied with transparency in your org?
• Do you feel safe with trying new ideas that may fail?
• Have you chosen people you want to work with?
• Do you feel invited to share your whole personality?

이걸 제현주님이 저녁에 페이스북에 한글로 번역해서 공유해주셨는데 다음이다.

새로운 조직을 스스로 시작하고 싶습니까?
조직 내 급여 및 보상 정책을 결정하는데 구성원으로서 참여해 본 적이 있습니까?
속한 조직 내에서 권한이 효과적으로 분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까?
속한 조직의 투명성 수준에 만족합니까?
속한 조직 내에서 실패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해 보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낍니까?
당신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직접 선택해 본 적이 있습니까?
속한 조직 내에서 당신의 인격 전체를 드러내도 환영받을 것이라고 느낍니까?

UFOfactory나 슬로워크, 빠띠를 돌아보면서 했던 고민들이고. 나름대로 각각 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던 질문들이다. 늘 정리하고픈 마음만 가득하지만, 슬로워크에 적용한 방법과 빠띠에서 적용한 방법이 다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답을 찾았다고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들을 꺼내는게 불편하다. 그럼에도 모색을 하루라도 놓은 적은 없다. 답은 못 찾았지만, 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그 누구보다도 많이 했다고 자부할 순 있다.

그래도.. 언젠간 “나만의 답”이라도 깔끔하게 정리해 보고는 싶다. 언제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정을 걷고 있는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는 날은 늘 즐거운데,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안심이 된다

요즘 들어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을 더 많이 만난다. 내가 바라는 것들을 동일하게 바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만나는 일도 더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안심이 된다.

나는 내가 세상을 바꿀 만한 의지가 강한지 모르겠고. 그만한 능력도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바라는 목표와 좋아하는 방식이 있었고, 내 주변에 그런 목표를 가진 사람과 그런 방식을 지향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비슷한 목표와 비슷한 방식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안심이 된다. 부족하다 느끼는 내가 이제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다. 내가 무리하지 않아도,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세상이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나가겠구나 싶기도 하다.

특히 청년들이 이야기하고, 연륜을 갖춘 이들이 경청하는 모임을 볼때는 더욱 더 안심이 된다. 비전과 자원이 결합이 되는 순간이 올 것 같아서. 나에게는 잘 없었던 기회이지만, 매력적인 청년들은 이뤄낼 수 있을 것 같다.

늘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었지만. 자원도 부족했고, 역량도 부족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나라도 필요했던 단계가 어서 끝나면 좋겠다.

20170829

권위주의 알레르기와 민주주의 바이러스

한국과 일본을 거의 매주 오가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인천공항에 내려서 서울로 들어오자마자 내게 비염 증상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비염은 아주 어릴 때부터 늘 나와 함께 했던 증상이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만, 한국에서 콧물을 흘리며 지내다가 일본으로 돌아오면 하루만에 그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공기가 좀 나빠서 그런가 보다, 한국에선 무리하며 일하니까 몸이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어느날 누군가가 “알레르기”일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한국에서만 지내와서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사실은 한국의 어떤 공기 성분에 대한 “알레르기”가 내게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제가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레르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을 그런 알레르기요. ( 물론 현재 서울의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서일지도 모릅니다 )

환경이 바뀌어서야 추측이라도 해 보았을 이런 “알레르기”처럼 기존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나의 또 다른 “알레르기”를 최근에 하나 더 발견한게 있습니다. 바로 “권위주의”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인데요. 그냥 ‘모두가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 팀이 중요하고 더 효율이 높다’의 원칙 정도로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 자신도 느끼기 전에 권위적인 상황을 극도로 경계하며 만약 그런 유사한 상황이란 판단이 들면 어떻게든 해결하거나 벗어나려 한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습니다.

아주 오래 전 교회를 다닐 때에도 그랬습니다. 제사는 성도들이 신에게 올리는 것이며, 메시지는 신으로부터 성도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는게 원칙인 것 같은데, 제사장을 자칭하는 목사나 전도사, 리더들이 성도들의 고통을 신에게 더 잘 전달하는 역할을 하지 않거나, 성도들에게 리더로서의 자신들의 주장과 인격을 섬기게 하려고 할 때 지켜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분들이 설명하는 예수가 희생한 까닭과 전적으로 배치되는 것 같은 상황이기도 했죠. 저로서는 그 분들의 역할이 전달자이자 매개자, 촉진자라고 생각했기에 그 상황이 불편했고, 한편으로는 지나치다시피 예민해 하는 나 자신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후 교회를 떠나 몸 담았던 조직들, 운영하는 회사에서도 비슷한 문제 상황은 반복되었습니다. 하려던 일은 “미디어, 커뮤니티, 사회 혁신” 등이었는데, 내부를 들여다 보면 권위가 한두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고 구성원들이 조직을 신뢰하며 자발적으로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는 조직을 만드는데 나는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Daum에서 기획자로 역할을 옮긴 이유는 미디어와 커뮤니티와 관련된 업무를 모두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기획자가 되지 않으면 팀 내의 기획자와 개발자, 디자이너 간의 역할 균형을 바로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는 대표에게 쏠리는 권한이나 책임을 구성원들이 버거워 하더라도 나누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았습니다. 회사가 개발자 집단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를 찾고 맺으려고 수없이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무조건 민주주의가 옳거나 늘 효과적이진 않다고 인정합니다만, 돌이켜 보면 저는 제가 처하는 환경을 민주적으로 협력이 가능한 환경으로 바꾸는 일부터 늘 해 왔습니다. 때로는 나의 과잉 반응이 좋은 리더도 나쁘게 비판하고 불편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민주적 협력을 위한 시스템과 문화”가 당연한 것이니 무의식적으로 혹은 강박적으로 내가 있는 곳 어디나 나와 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적용하고 평가하려 했을 겁니다. 마치 화성을 지구인이 살아갈 수 있도록 테라포밍 하듯이요. 일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가장 먼저 하곤 했던 작업으로 “민주적 협력 환경”을 만들려 했지만, 실제로는 이 조건이 물고기에게 물이 필요한 것처럼 저에겐 너무나도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던 겁니다.

지금 하고 있는 빠띠우주당도 그 흐름과 이어집니다. 저는 빠띠를 통해 더 많은 조직들이 민주적으로 협업하는 걸 경험하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 우주당을 통해서는 시민들과 정치인들이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려 하고, 사회 전체가 서로 협력하는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래야만 의미가 있는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나 자신도 모르게 현실 정치 이전에 민주주의 시스템과 문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었나 봅니다.

분명히 저는 어떤 일이든 함께 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 민주적으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협력 관계를 우선 만드는데 집중하거나, 그런 협력 관계가 가능한지를 먼저 살피는게 분명합니다. 사회와 개인, 조직과 개인도 그런 관계를 더 맺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옳든 그르든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일을 하게 될 겁니다.일의 성과와 상관없이 “민주주의”와 “민주적 협력 문화와 관계”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게 나의 정체성 중의 하나입니다.

왜 그런 정체성을 갖게 되었는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습니다만, 아무튼 지금은 “민주적 협력 관계에 대한 강박”이란 정체성을 인정하고 일을 해 나가려고 합니다. 이게 나 스스로의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주문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