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하기 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는게 좋겠다

어떤 일을 하기 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는게 좋겠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무리해서 한다거나,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한다거나 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대로 자연스럽게 하는게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면 좋겠다.그렇게 마음이 가는 일들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으면 좋겠고, 그러려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게 좋겠다.예를 들어 어떤 일에도 너그러운 마음을 잃지 않고 싶다면, 노력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사람이 되는 편이, 그런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는 낫다.대부분은 아직 내가 그런 사람이지 않을텐데, 그럴 경우엔 그런 사람에 가까워지기 위해 천천히 꾸준하게 조금씩만 노력해 보는게 좋겠다.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지금의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천천히 노력하되 절대로 무리하지 않는 것. 늘 자신의 마음을 따라 행동하되, 조금씩 꾸준하게 자라기. 그러는게 좋겠다.

UFOfactory 첫 2년간의 목표

2013년 UFOfactory를 시작하고서 1년간은 분명히 웹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팀들을 돕는게 중요한 관심사였다. 지금도 그 관심이 달라진건 아니지만, 첫해는 망해도 좋으니까 한번은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하는 사업이라면 비용이 매우 낮아도 무리해서라도 했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두세번 재작업한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했다. 내가 직접 사업을 벌이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고, 하는 동안엔 즐거울 수 있으면 할만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들의 사업이 정말 성공하길 바랬으니까.

그러곤 1년이 채 안 된 시점인 2014년 초반에 사업이 아닌 팀에 문제가 발생했었다. 경험이 부족했던 나의 관리 부실로 일어난 상황이었고, 회사는 사실 거의 무너지는게 당연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1년간은 팀에 대한 고민이 컸다. 회사를 놓을까 말까 란 고민 속에서도 겨우 겨우 버텨서 2015년을 맞이한 기억이 난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과 그 도움에 걸맞는 고생이 컸다. 그러면서 사업에 대해서 조금씩 눈을 키워갔던 것 같다. 그 기간 동안의 나의 주 관심사는 “팀원들의 안정적인 일자리”였다. 고생한 팀원들은 다르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여러가지로 모순된 목표를 가지고 회사를 꾸려왔다. 사회적인 미션을 가진 팀을 기술로 돕는다라는 목표와 팀원들이 안정적이고 자율적이며 즐겁게 일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라는 목표. 수익성이 낮은 마켓에서, 교육을 병행하며 팀원을 키우되, 자율과 품질을 동시에 요구하는 상황. 욕심이 과했고, 만약 다시 회사를 만든다면 나는 하나만 목표로 삼았을 것 같다.

다행히 UFOfactory는 2015년인 지금도 살아 있고 내년 봄이 되면 3년을 채운 회사가 된다. 당분간 월급이 나갈 걱정은 좀 놓았고, 올해 초에 세운 매출 목표도 달성할 계획이며, 작은 회사의 연합으로 만들려던 설립 당시의 목표도 곧 실험적으로 진행한다. 직간접적으로 급여를 지급하는 사람이 25명 이상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 기간 동안 나 자신이 배운게 많다. 나라는 사람에게 맞을만한 사업 및 조직 운영 노하우와 비싼 수업료를 들여서 얻은 깨달음도 꽤 된다. 주로 어떻게 버텼는지와 다시 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텐데란 깨달음이다.

그럼에도 만 3년을 채우기 전에 UFOfactory는 더 큰 변화를 맞이할 것 같다. 모순된 목표를 설정하곤 어거지로 버텨낸 첫 2년과, 훌륭한 팀원들과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보낸 1년간의 숨고르기를 지나. 이제 맞이할 새로운 해부터는 나는 내게 더 맞는 일을 해 볼까 싶다. 마음가는대로 무리하지 않으며.

비엣남에 진 빚

팀원 중 한 명이 오키나와에. 팀원 중 두 명이 비엣남에 휴가를 다녀오거나 갔다. 나름 애정하는 곳들이고, 언젠가는 꼭 살아 보고 싶은 곳. 그리고 마음에 빚이 있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 쓰던 비실비실하고 누리끼리한 “나는 허약하오”라는 느낌을 풀풀 내는 내 프로필 사진은 20대 중반에 처음 나가 본 해외였던 비엣남에서 찍은 사진이다. 같이 간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하는지 모르나 나로서는 첫 해외라는 점 외에도 여러 면에서 낯설고 생각이 많았던 여행이었다.

우선 그 무렵의 나는 준비해 오던 목사의 꿈을 포기하고 “이제 뭘 하고 사나”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한 친한 형이 민주노동당이란 곳에 가서 좀 도움이나 줘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누구의 소개 없이 부산시당에 무작정 찾아가서 “뭐 할 거 있으면 해볼께요”라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때 알게 된 친구가 내게 비엣남 여행을 권했고, 나는 대학에서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비엣남에서 보내게 되었다.

비엣남에서 나는 월남전에 참전한 우리 나라의 군대가 주민을 학살한 마을에서 잠을 자고 밥을 얻어 먹으며 일주일을 보내었었다.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할머니로부터 환대를 받고, 가난한 비엣남의 농촌을 살리겠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청년들을 만나고. 멀리 찾아온 우리에게 의미를 주기 위한게 분명해 보이는 별로 쓸모 없어 보이는 허드렛일을 하고.

내가 그런 일들에 원래 관심이 있었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20대 중반에 들어서서야 한국근현대사에 일어난 사건들을 알게 되었고, 교회를 나오고 나서부터야 내 손으로 찾아 보고 있었다. 근대화니 민주화니 볼 때마다 낯설고 불편하고 여지껏 왜 몰랐나 미안한 마음이 들던 시절이었다.

갈때부터, 가서도, 올때도. 생각이 참 많았다. 막연하게 “해야 할 게 많구나”란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정작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하지는 못한 것 같다. 지금도 마음의 빚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기억. 많이 아쉽다.

도움을 주고 받는 회사

10대이던 시절, 나를 크게 변화시켰던 단어는 “평안”이었다. 그때는 왜인지 몰랐는데 마음이 크게 불안했던 시절이었다.

그 후에 나를 찾아온 단어는 “자유”였다. 내가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들 때, 왜 그런 생각과 느낌을 하게 되는지 그 기원이 무엇이고 어디에 얽매어 있는지를 깊게 때론 고통스럽게 고민하던 시절을 보내었었다.

그러기를 한참 후에 나 자신과의 “평화”, 나를 둘러싼 세상과의 “평화”의 중요성이 나에게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UFOfactory는 여러 층위의 “평화”를 만들고 싶다고 회사 소개서에 아예 써 놓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도움”이란 단어가 나를 찾아왔다. 2년 반동안 회사를 하면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갈팡질팡했던 까닭이 어쩌면 “도움”이란 단어를 발견하지 못해서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다른 조직을 돕기 위해 만든 회사, 팀원들을 돕기 위해 만든 회사. “정당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거래를 하기 이전에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걸 당연하게 여기고 그걸 목적으로 두는 회사. 그럴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넉넉함이 없이는 그럴 수 없는 것일까?

모든 거래가 완벽하게 공정할 수 없다면, 이미 모든 거래는 어느 정도는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관계가 아닐까? 그 거래를 통해 “우리가 서로 돕고 있다”는 발견을 끄집어 내어 늘 느끼게 된다면 어떨까? 어쩌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은 얇은 꺼풀일 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고 있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든 1thing.kr 이라는 서비스로 두번의 인터뷰를 했다. 사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는 인터뷰 기회가 오더라도 하지 말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찌어찌 하게 되었다.

질문을 듣고, 생각을 하고, 답변을 하다 보면 거꾸로 내 생각에 대해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험을 이번에도 했다.

그런 질문의 첫번째는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예전과 달리 하나의 힘으로 뭉쳐지지 않는게 아닌지, 온라인이 그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까?”였다. 나는 “뭉쳐지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우리가 하나로 뭉쳐져서 어딘가에 모이는 것도 좋지만…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글에서, 내가 직장에서 만나는 동료와의 대화에서, 내가 저녁에 만나는 가족과의 대화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여러 다른 방식으로 다뤄지는 걸 보고 느끼는 것. 그게 진짜 변화 그 자체가 아닐까 싶어요. 누군가가 주도하진 않지만, 모두가 조금씩 변화에 동참하고 있고. 그걸 서로가 느끼는것. 이번 4월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희망적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답했던 것 같다.

두번째는 “사람들이 잊고 지내거나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무관심한건지 아닌건지”라는 이야기였던 듯 하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고 있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던 것 같다. 다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고, 나 혼자 고민해서는 뾰족하기는 커녕 뭉툭한 아이디어조차도 나오기 어려운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 싶으다. 이런 부분을 온라인 서비스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만들었다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게 아닐까. 그리고 그 움직임은 다들 각자가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이미 만들고 있는게 아닌가 싶으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다.

코드는 쉽게 깨진다

개발자들은 “수정하기보다 새로 만들기가 더 쉽다”고 말한다.

개발 경험이 없는 이들은 개발자들이 “자기만의 코드를 짜는 걸 좋아한다”는 인상을 갖지만, 경험상 코드는 너무도 쉽게 깨진다. 그래서 잘못 설계된 코드가 추가되면 되돌리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나쁜 코드를 좋은 코드로 돌이키는 “리팩토링과 테스팅”이란 기술이 개발자들에게는 있지만, 이마저도 코드의 나쁜 수준이 특정 수준을 넘어서면 리팩토링으로 되살리기 어렵다. 그럴때 개발자들은 “개편”이란 전략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기능을 추가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고 위험한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까.

코드의 이런 특성은 마치 “엎질러진 물”과 비슷하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그릇에 담기 어렵듯이, 망가지기 시작한 코드를 되돌리는 작업은 어렵다기보다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이 특성은 여러 사람의 개발자가 손을 대면 댈수록 더욱 강화된다. 좋은 개발자 여럿이 맡다가 그렇지 않은 개발자 한 명이 손을 대는 순간 그 코드는 유지보수가 어려운 코드가 된다.

따라서 설계를 잘 하고, 코드를 소중하게 다루는 개발자를 만나 계속 그에게 유지 보수를 맡기거나. 기능이 작동하는 것만 만족하고 시간이 지나면 새로 만드는 전략을 쓰거나 둘 중의 하나만 가능하다. 물론 코드 한 줄, 한 줄에 정성을 쏟는 개발자랑 일하는게 바람직하다.

개발. 하면 할수록 예민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수익 구조 대신 비용 구조

1년 조금 넘은 UFOfactory는 근근히 풀칠만 하고 간다. 잉여 수익을 남기기 힘든 프로젝트를 하는 까닭에 무리해서 많이 하지 않는게 낫고, 당장 하는 일들도 의미있는 일들이라 만족하는 편. 더군다나 지금 하는 일들로 수익을 남기겠다는 바램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슨 일을 시작하든 수익을 남기기보단 들어가는 비용은 뽑을 수 있나를 먼저 살핀다. 비용이 맞을 것 같고 하고 싶은 일이라면 고민을 않고 하게 되는 것 같다. 좋은 의도를 가진 서비스들 하나 하나가 의미있으니까.

지금 하는 일들로 남기지 않더라도, 그걸로 풀칠하며 가다 보면. 한편으론 우리가 만들게 될 서비스들이 우리를 지금보다 넉넉한 날들로 데려 가지 않을까. 오늘부터 시작한 자체 서비스 워크숍에 그 미래를 기대해 본다.

UFOfactory에 승선한 분들이 다들 참 고생이 많다.

UFOfactory 제 3막, 생각의 수렴

여러가지 생각과 의문이 중구난방으로 떠올라 정신이 혼미하다가. 어느 순간 그 의문들이 관통하며 하나의 답으로 수렴할 때가 있다. UFOfactory 1년의 경험을 반성(?)하는 과정과, 팀을 통해 이루려는 비전에 대한 고민, 그리고 팀빌딩에 대한 고민들이. 여러 분들과의 이야기, 그리고 오늘 저녁 오랜만에 시작한 회사 내의 스터디를 마치고 나니 하나로 묶이는 답이 보이네. 개발하는게 즐겁고, 공부하는게 즐거운 사람들과 같이 공부도 하고 프로젝트도 하는 회사를 만들면 되는구나. 그럼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