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경제의 사회적 전환과, 사회적 경제의 디지털 전환

이 글은 사회적경제 정책포커스 2020년 12월 ‘한국판 뉴딜과 사회적 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2030년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20세기 최고 경제학자는 ‘여가’라고 답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1930년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란 강연에서, 대공황이 한창이고 파시즘도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100년 뒤의 인류가 “정치인들이 경제 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긴축 재정을 펼치는 등 파멸을 초래하는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서구의 생활수준은 4배로 높아지고, 주당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에게 뉴딜로 익숙한 케인즈의 100년 전 전망과는 달리,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경제 발전의 과실을 함께 누리며 늘어난 여가 시간을 고민하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 세대는 2050년 인공지능이 인류를 넘어서는 특이점을 거쳐 인류의 대다수가 직장을 잃으리라고 전망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기후위기가 인류의 파멸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인터넷이 발전할수록 혐오와 허위조작정보가 만연하고, 국가의 경제 발전과 무관하게 불평등과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다고 느낀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도 플랫폼 노동 혹은 불안정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5.2일, 하루 8.22시간인데 반해 월평균 소득은 152만원에 불과했다. 아마존과 같은 플랫폼 기업들의 수익과 가치, 영향력은 코로나19로 인해서 더 확장됐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에서 창고의 물품을 분류하고, 배송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감염의 위험과 무리한 노동 환경 속에서 질병에 걸리고 생명을 잃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마찬가지로 벌어지는 일이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시화 된 기후위기, 심화되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대전환을 이루고자 정부는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그리고 안전망 강화가 핵심인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 중 ‘데이터 댐’을 살펴보면 정부는 데이터를 수집, 가공, 거래,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데이터를 국가 산업의 원천 자원으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데이터 댐’ 구축과 관련해 주로 제시되는 정책은 공공 데이터 개방, 데이터 플랫폼 확대, 데이터 관련 청년 공공일자리 활용 방안이며, 민간의 데이터 활용이 용이하도록 개인정보 등의 여러 규제를 해소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을 통해 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동안 디지털 역량이 부족한 세대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와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 활용도를 높이는 내용을 포함한 직업교육과 평생교육과 같은 디지털 포용 정책도 함께 추진 중이다.

디지털 뉴딜을 포함하는 한국판 뉴딜이 2050년을 가리키는 위기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현존하는 위기를 극복하려는 거대한 전환의 전략임을 고려한다면,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전제로 하는 전략이 국민들이 느끼는 위기를 극복하는데 충분한 것인지, 국민들 개개인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데이터 댐 구축을 통해 정부가 보유한 공공데이터를 모아 공개하면 민간의 데이터 산업이 자연스럽게 활성화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차치하더라도,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D.N.A.)에 투자하고 규제를 완화해 관련 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대전환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디지털 전환을 충분히 체화하고 있지 못한 국민들에게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교육을 확대하는 것이 빈곤에 처한 노인 세대가 심화된 생존 위기를 극복하는데 충분한 전략 또한 아니다. 정부가 말하는 것과 같이 디지털 뉴딜은 공익을 강화하고 국민들이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가 더 깊고 넓게 한국판 뉴딜의 여러 분야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시민참여와 사회적경제가 빠진 인프라 중심의 디지털 뉴딜
출처: 2020.5.7.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 『한국판 뉴딜』 추진방향.

디지털경제의 사회적 전환과 사회적경제의 역할

플랫폼경제와 사회적경제

현재의 플랫폼 산업은 태생적으로 독점을 지향한다. 플랫폼 상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가치도 독점하려 하고, 경쟁 우위를 위해 데이터와 기술의 독점도 추구한다. 이런 독점적 지위와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한다. 영향력과 독점이 심화될수록 이해관계자는 급증하고, 사회 규제들과 맞닥뜨리는 경우도 늘어난다. 하지만 의사결정 구조는 대규모 투자를 가능하게 한 투자자들의 이해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효율성 증대와 투자를 통해 다수에게 편익을 제공함으로써 공익을 증진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가치와 기술의 독점, 불투명성과 폐쇄성, 투자자의 이익이 공익보다 우선시되는 의사결정 등을 목도하게 된다. 

반면 사회적경제조직들은 협동과 연대, 그리고 공공성에 기초한 사회적 가치 환원을 목표로 한다. 규모와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의미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지향한다. 또한 독점보다는 사회의 여러 이해관계자나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공유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계를 구성하는데 가치를 두며, 조직을 공동으로 소유하거나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독려하는 의사결정구조를 가진다. 사회적경제조직들의 이러한 성격과 지향점은 플랫폼산업의 독점적 성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플랫폼경제의 대안으로서든 보완재로서든 사회적경제가 가진 특징들을 플랫폼경제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플랫폼 협동조합’ 혹은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란 이름으로 전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돌봄이나 가사 노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플랫폼을 구축해서 서비스를 하거나, 프리랜서들이 일거리 플랫폼을 스스로 구축한다. 혹은 플랫폼 개발과 마케팅 전문성을 가진 프랜차이즈 기업과 지역의 드라이버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이 또 다른 연대체로서의 협동조합을 구성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주요 배달앱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과 노동조합들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협약을 맺었다. 필연적으로 다수가 참여해 성장해나가는 플랫폼경제에서 단순 이용자의 지위를 넘어 이해관계자로서 소유와 이윤 배분, 의사결정 참여는 필수적인 것이다. 플랫폼 기업이 플랫폼으로서 가진 장점을 발휘하면서 이와 연관된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기여와 공공성을 지향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경제의 기본 원칙과 경험들이 플랫폼경제에도 적용돼야 한다.

또한 독점을 지향하는 거대 기업들만 경쟁하는 플랫폼경제의 생태계가 보다 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공존하는 생태계로 변모할 수도 있다. 배달앱은 왜 1, 2위 중에서만 사용해야 할까? 내가 주문을 할 때, 배달 수수료가 적은 곳을 고를 수도 있지만, 주변의 이웃들에게 무료 급식을 하는 가게라든지, 쓰레기를 적극적으로 배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가게들만 모은 배달앱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수는 있어도, 충분히 있지 않을까?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디지털 전환의 경제 영역 곳곳에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앱을 만들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플랫폼경제 생태계가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를 위해 거대 플랫폼 기업이 독점해 생성한 데이터들을 어떤 기업이나 국민이든 사용할 수 있는 공공데이터로 제공하는 것을 국가의 역할로 고려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협동과 연대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 기업들도 디지털 서비스를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각자의 필요나 가치관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해 제공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공공앱을 직접 만들어 거대 플랫폼 기업과 경쟁하는 것보다는, 플랫폼경제가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건강한 생태계로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디딤돌을 제공하는 다른 의미의 ‘플랫폼’ 정부가 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데이터와 사회적경제

‘디지털 뉴딜이 곧 데이터 댐’이라는 데이터 정책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데이터 댐 정책은 정부가 주요 산업의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주도적으로 모아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디지털 전환을 국가의 중요 기간산업으로 설정하고, 인공지능 등 4차 산업 육성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충하겠다는 관점이 문제는 아니며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데이터가 가지는 가치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본래 공공데이터 개방은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국민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참여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는 열린정부운동으로부터 출발했다. 모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된 데이터는 정부-국민 간 신뢰의 기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신뢰를 통해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다양한 기관들과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신뢰는 혐오와 불신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 소중한 자원이다. 기후위기, 경제위기뿐 아니라 코로나19로 닥친 여러 위기를 국민 모두가 함께 해결하는 데 신뢰와 신뢰에 기반한 협력은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정부는 코로나19 초기 상황부터 개방성을 기조로 정보를 적극 공개했다. 국민들의 불안을 줄임으로써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방역에 동참하는데 기여했다. 더 나아가 마스크 품귀 현상이 발생하자 정부와 시민(시빅해커)이 협력을 통해 공적 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활용해 모든 이들이 주변의 마스크 현황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공공앱을 함께 만들었다. 데이터를 통해 국민과 정부 사이의 신뢰를 형성하고, 국민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주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광화문1번가를 통한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동대응’의 공공데이터 공개 요청 제안과 정책화 결과
출처: 광화문1번가 홈페이지

데이터 댐의 수요자를 시민 혹은 사회적경제로 확대해야 할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할 때 즈음 전국의 복지 관련 기관과 대구의 시민 사회, 혹은 사회적경제는 대구지역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긴급 지원을 진행하는 동안 중복 지원이나 필요한 물품 구입 과정 도중에 일어난 혼란 등 지원과 자원 운용상의 데이터를 미리 파악하거나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실제로 소방서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구조하는 비율보다 시민들이 서로 구조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직접 공공자원을 활용해 위기상황에서 문제를 각자의 처지에 맞게 해결하는 모델이 자리 잡아야 한다. 물론 이 말이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부정하는 말로 해석돼서는 곤란하다. 국가와 시민이 협력하는 거버넌스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대구에서 급증한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하려던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조직들의 노력들이 앞으로 이어질 위기에서 더 빛을 발하고 효과를 높이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와 플랫폼이 평소 마련돼 있어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뉴딜과 데이터 댐에서는 시민이 주도하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기반으로서 데이터의 생성과 활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데이터의 주된 수요자로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를 자산으로 볼 것인지, 노동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남아 있다. 디지털 뉴딜을 통해 모으고 축적하는 데이터의 상당 부분은 특정 개인과 연관된 행위가 일어나야만 생기는 데이터다. 의료서비스를 중심으로 디지털 뉴딜의 장점을 설명하는 정부의 설명에서 사용되는 데이터도 개인의 병력이나 의료서비스 이용내역 같은 개인과 연관된 정보다. 개인의 행위를 통해서만 발생하는 데이터는 노동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들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 활용 방식에 대한 결정권, 그리고 데이터를 통해 창출되는 가치에 대한 보상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나와 관련된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고,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내가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범위는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제공한 데이터를 통해서 발생한 가치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사회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국민들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더 나아가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 사회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디지털 디바이스 사용 교육보다는 데이터의 활용 역량과 스스로 데이터와 관련한 권한을 지켜내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디지털 뉴딜을 추진함에 있어 시민을 서비스의 수용자로 보는 관점을 넘어 자신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적경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직접 본인들의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시민들의 데이터 역량을 강화하고 데이터를 투명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역할을 맡을 필요도 있다.


시민사회와 노동자합의 디지털 뉴딜 대응 정책을 제안하는 “시민을 위한 공공데이터 정책 토론회”가 2020년 8월 21일 열렸다. 사진은 온라인 중계화면 갈무리. 
출처: 공공운수노조 유튜브 채널

알고리즘, 혹은 인공지능과 사회적경제

그리고 알고리즘이다. ‘기계의 판단은 중립적이다‘라는 일반적인 주장과 달리 알고리즘은 설계자의 관점과 가치관을 반영한다. 딥러닝으로 알려진 인공지능은 학습을 위해 마련된 데이터셋에 설계자의 관점과 가치관이 반영된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적용과 활용, 더 나아가 생성에 사회적경제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계가 사진을 읽어서 고양이인지 개인지를 판단하는 수준을 넘어서, 알고리즘은 어느 지역이 범죄에 더 취약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어떤 사람을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등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 무수히 만나게 될 인공지능의 자동화된 로직이 공공에 기여하는지, 특정한 편견이 반영되지 않았는지 반드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로직이 적용되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사회적경제조직들이 검증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적경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반영한 알고리즘이 정부와 사회에 정착하도록 알고리즘을 직접 생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야말로 앞으로는 누가 만드는 알고리즘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경쟁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무엇이 더 나은 결과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화된 알고리즘은 자연스럽게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을 대체함으로써 얻게 되는 부가가치가 해당 업종의 종사자, 혹은 사회에 환원된다면 이는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해당 업종의 종사자 혹은 대체된 노동자들이 알고리즘을 스스로 소유할 때 그 가치를 누릴 가능성이 높고, 공익과 사회적 가치를 본래 목표로 가진 사회적경제조직들이 그것을 사회에 직접 환원할 가능성이 높다.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적극 활용해 효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생성되는 가치를 구성원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사회적경제가 가진 구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과 플랫폼 등을 디지털 공공재로 만드는 것이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보장하는데 더욱 적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사회적경제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사회적 가치 실현이 중요한 분야나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의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사회적경제가 운영하도록 구성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전환: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역량 강화에 관해

플랫폼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경제 영역에서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 더 나아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적경제가 나섰을 때 기대되는 효과는 크다. 또한 디지털과 데이터는 산업 육성의 기반일 뿐만 아니라 사회혁신의 기반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연대와 협동,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설립된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디지털 뉴딜을 비롯한 한국판 뉴딜이 사회적 뉴딜이 되도록 분야별로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시민 참여를 넘어 시민 주도의 뉴딜이 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적경제의 역할이 확대된다면 기술 혁신을 통한 가치 창출이 실제로 공익을 증진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구조적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경제는 디지털 전환에 나서야 한다. 현재 개별 사회적경제조직들은 디지털 전환에 대한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으나,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사회적경제 연대체 차원에서 사회적경제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며, 정부 역시 이를 위한 기반과 지원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디지털 전환 및 플랫폼 협동조합 설립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고 지원하거나, 디지털 전환에 특화된 개발자들의 협동조합을 육성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플랫폼 협동조합의 성공 사례인 업앤고(UP&GO)는 뉴욕의 이주여성들이 만든 가사, 청소도우미 서비스로 디지털 개발 협동조합 코랩(colab.coop)의 지원으로 플랫폼을 구축했으며, 빈곤퇴치 활동을 해온 지역재단과 협동조합 설립 지원기관, 지역 은행의 사회공헌기금의 체계적인 지원을 받았다. 스타트쿱(start.coop)은 플랫폼 협동조합을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로 선발, 교육, 멘토링, 법률회계서비스 지원을 비롯해서 시드머니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도 일반 벤처투자사 위주로 이뤄지는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투자 및 엑시트 환경 일변도에서 벗어나, 디지털 분야 사회적경제조직들에 적합한 투자, 성장모델을 만들고 지금부터라도 숙성시켜야 한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들이 조직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민주적으로 건강한 거버넌스를 형성하고 운영하는 기술 또한 디지털 전환의 중요한 요소이다. 조합을 구성하는 조합원들과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사회적경제에 더 많은 시민들이 관여할 수 있게 하려면 사회적경제의 본래적 가치인 민주적 거버넌스 실현을 위해 민주주의 기술을 더 예리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사회적협동조합 빠띠는 앞으로도 이를 위한 디지털 기술을 발전시키고 필요한 플랫폼을 만드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조직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비롯해 생산자 및 소비자 조합원과의 거버넌스 운영, 그리고 서비스 이용자 또는 수혜자와의 소통에 이르기까지 사회적경제조직들의 연대와 협력에 기초한 민주적 운영을 디지털화하고, 그 장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디지털경제로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증진시키면서, 기후와 경제위기를 해결하는데 사회적경제의 장점에 주목하고 이를 디지털 뉴딜 전반에 적극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데이터를 산업 발전의 원자재로 바라보는 관점을 넘어서 신뢰와 협력의 기반, 사회혁신의 기반이자 시민들의 주도적인 참여의 기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 전환의 부작용에 대한 임시방편으로 사회안전망과 디지털포용 정책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사회안전망 강화와 디지털포용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도록 정책 설계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이 정책의 구성 과정에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사회적경제와 시민사회에 부족한 디지털 역량과 플랫폼 및 기술 자산이 확보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결론

우리는 뉴딜에 막대한 세금을 들여서 무엇을 전환하고, 어디에 도달하려는 것일까? 기후위기,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강화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 있어 디지털 혁신은 함께 집중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디지털 혁신이 사회적 가치와 공익을 중심에 두기 위해서는 ‘디지털 혁신의 사회적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디지털 혁신의 사회적 전환은 시민 주도의 민주적 전환, 사회적경제의 주요 역할 수행과 직결돼 있을 것이다. 100여년 전 케인즈가 ‘여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 예견한 2030년에 우리는 현존하는 기후위기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구현하는 새로운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까? 시민들과 사회적경제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현장에서 발 벗고 나섰듯이, 한국판 뉴딜의 현장 곳곳에서도 협동과 연대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주도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사업을 해 보세요: 최종 책임을 진다는게 무엇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가 없다’는 이유로, ‘혼자서도 쉽게 시작할 수 있고 여러가지 단순해진다’는 이유로 회사라는 형태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업을 한 후에 알게 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최종 책임을 진다는게 무엇인지”입니다.

초기 단계의 회사에는 어려운 일이 늘 생깁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한 여력이나 적임자가 준비되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경험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해결해야 합니다. 저는 다행히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동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지만, 그럼에도 최종 책임은 창업자에게 있고, 책임의 무게는 창업자가 더 크게 가질 수 밖에 없고 그래야만 합니다. 또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문제가 닥쳐올 땐 동료들과 각자 집중해야 하는 문제를 나눈 후에, 대표가 남은 문제 모두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성을 지키기 위해 남문을 지킬 사람과 동문을 지킬 사람을 지정하고, 남은 북문과 서문은 어떻게든 혼자서 막아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 수 밖에 없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결과 회사가 망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빠르게 파악하고,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거나 자신의 리더에게 넘기는 사람입니다. 좋은 회사는 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잘 구분해서 구성원이 적절한 난이도에서 성장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관리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초창기의 창업자나 대표에겐 그런 환경은 없습니다. 구성원이 할 수 없는 일을 넘기고 넘기다 보면 넘길 수 없는 곳까지 갑니다. 그건 모두 대표가 해결해야만 합니다. 또한 구성원에게 맡길 수 없는 일을 무리해서 맡기면 결국 그 일은 해결이 안 된 채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남문을 맡겨 놓은 동료가 어떤 이유로든 실패하거나 버거우면, 대표는 북문과 서문을 막다가 남문까지도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정말로 많이 일어납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막는다는게 무엇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조직이 돌아가기 위해서 구성원으로 일했을 때 보이지 않았던 역할들이 보입니다. 넘길 수 없는 일들을 손에 쥐고, 해결하지 않으면 조직이 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되든 안 되든, 할 수 있든 없든 안간힘을 써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라도 하게 됩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조직이 성장하고 안정화되어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탓해 봐야 소용없고, 오히려 탓해 보았자 더 힘들어지기만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내 손에까지 들어온 폭탄은 이 세상 어디에도 넘길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폭탄을 안고 함께 죽거나, 폭탄을 해체하거나, 폭탄이 터져도 피해가 최소화하도록 내 선에서 막아야 합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왜 나만 이래야 하지?”, “왜 몇몇만 이래야 하지?”란 생각을 가지게 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고,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져야 하는 책임은 자신이 받아들여야 함을 배웠습니다. 불평을 하고, 책임을 지기 싫다면 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책임을 받아들이면 다른 구성원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해결해 주지 않는 문제를 결국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개인들도 비슷합니다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과 책임들을 내 손에 쥐고 전전긍긍하면서 헤쳐나가는 경험은 사업을 통해서 더 크게 겪어 보게 됩니다. 삶을 더 즐기고 싶은 분들은 꼭 사업을 해 보세요. 강제로 성장하거나, 망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스릴 넘치게 만끽하게 됩니다.

슬로워크를 시작한 이유들: 왜 사회를 혁신하는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일자리 모델을 선택했을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서의 디자인, 우리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결정하고 일하는데 기술이 가지는 중요함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깊게 공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좀 더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 정부와 여러 기관들이 가진 디자인과 기술 역량은 조직 내에 충분히 내재화 되지 못했다.

사회혁신영역(소셜섹터)의 기술 역량 강화 문제는 중요한 과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기술의 전문가들이 안정된 일자리라는 터전 위에서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가 갖추어져야 한다. 슬로워크(혹은 UFOfactory)를 시작할때 내가 내렸던 주요한 결정은 바로 여기서 시작했다.

당시에는 어떤 단체가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정기 뉴스레터를 보낼때 대부분 세가지 방식 중 하나를 택했다. 젊은 상근자가 어떻게든 만든다. 주변 개발자, 디자이너 친구 또는 자원봉사자에게 부탁한다. 금전적으로 조금 여유로운 단체는 개발이나 디자인을 전담하는 인력을 한명 채용한다.

나 역시도 ‘홈페이지가 갑자기 안 되는데 도와달라’는 요청부터 시작해서 ‘프로젝트를 같이 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으로 이어지다가, ‘단체에 들어와서 일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내부의 전담인력은 고립된 섬처럼 지내다 크게 지쳐 조직을 떠난다. 가치 중심의 활동이 중심이 되는 조직에서 기술 전문성을 갖춘 인력들은 제대로 대우를 받기도 어려운데다 스스로의 전문성을 키울 기회도 갖지 못한다. 게다가 기술 전문성이 없는 활동가가 어쩔 수 없이 뉴스레터, 웹자보, 홈페이지를 다루다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일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일을 두배로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엔 컴퓨터를 고치거나 고장난 인터넷 망을 해결해야 하는 일도 했다. 요즘엔 영상까지도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는 기술(디자인,테크놀러지,글쓰기 등등) 전문가가 따로 모여서 전문성을 키우고, 이들이 활동가 조직과 만나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섹터 내에서 외롭게 지내왔던 전문가들이 활동과 기술을 엮어내는 전문성을 더 키우는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전문가로서 더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사회 문제나 아젠다에 큰 관심이 없었던 개발자와 디자이너들도 소셜 섹터를 접하면서 각자가 가진 전문성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해 가는 환경을 만들어 내길 바랬다. 그러기 위해서는 급여 수준을 적어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반 기업들의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따라왔다.

슬로워크는 지금까지 매년 1,200개 이상의 기관들과 수백개의 브랜드, 캠페인, 웹사이트(홈페이지 플랫폼 포함)을 만들어 왔다. 소셜 섹터 안에 기술과 디자인 전문성을 갖춘 조직을 만들어야 섹터의 역량도 한 뼘 더 성장하고, 결과물의 퀄리티도 올라가며, 일을 하려는 전문가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이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더 많은 전문가들이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를 혁신하는 임팩트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소셜 섹터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슬로워크 같은 조직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나.

슬로워크와 함께 일한 조직이 1100곳

2013년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UFOfactory를 창업할때는 소원풀이를 한다는 심정이 컸습니다. 안정적인 회사를 다니면서 남은 시간을 그때 막 관심을 받기 시작하던 공유기업 중 하나의 서비스를 만들어주곤 했는데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사회를 바꾸려는 곳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 기반을 제공하는 일을 제가 한번은 제대로 해 봐야 아쉬움이 남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Daum에 입사하면서 잡았던 목표이기도 했고, 2010년에 Daum을 퇴사하면서 하게 되리라 기대했던 일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때 그런 계획을 이야기했을때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고생할게 뻔하고(그건 맞았어요), 생존하기는 불가능하다(아직 살아있네요!)며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걱정어린 조언들뿐이었어요.

그렇지만 사회를 바꾸려는 이들을 회사를 다니며 남는 시간을 내어 자원봉사 형태로 돕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는 힘들다는 생각은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가 지속가능하려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고 저는 믿었어요. 저부터가 살아온 내내 월급이 필요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더불어서 어설프게 자원봉사를 하느니, 한번은 기업을 만들어 도전하고 주변 사람들의 예상대로 빨리 망하면 깔끔하게 포기하자 생각을 했습니다.

망할 가능성을 높게 두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구성원들에게 실례이기 때문에, 저는 회사를 운영하던 초기에 구성원들에게 늘 “우린 언제든지 망할 수 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기술을 익히는데 집중하시면 좋겠다고 이야길 했고, 어디보다도 힘들 수 있는 이 영역의 일을 해내는게 다른 영역에서는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힘들어서 금방이라도 그만 두고 싶다면, 회사는 내일이라도 문을 닫을 수 있도록 구성원의 퇴직금을 착실하게 적립하였으며, 회사에 빚을 만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어요. 지금 보니 무차입 경영입니다만, 비용은 매우 낮고 기술 이해도도 낮은 파트너들과 고민을 나누며 서비스까지 기획한다는 사업이 제가 봐도 망하기 좋은 아이템이었던 거죠. 한편으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란걸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았어요.

그랬던 UFOfactory가 3년을 버티고 예비사회적기업이 되었다가, 빠띠라는 ‘하면 망한다’는 이야길 들은 서비스를 만들고(그래도 빠띠는 다행히 스폰서가 있었어요!), 이후에 슬로워크와 합병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합병 후에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후에 열린 지난주 워크숍 때 확인을 해 보니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 63명이고 직간접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다 합치면 100여명 가까이가 됩니다. 사업부는 7개로 늘어났고, 각각의 사업부가 저마다 개성을 가지고 성장할 준비도 하고 있구요. 매출 역시 두 회사를 단순 합친 금액을 넘어서고 있구요.

NPO파트너페어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만났던 조직들, 우리가 만들었던 작업들, 우리가 만든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 대략 이렇게 나왔습니다.

Slowalk+UFOfactory = Slowalk.
We are Creators for Change

Since 2005,
슬로워크와 손잡고 변화를 만든 조직 1100곳
디지털 시대에 꼭 필요한 PC/모바일앱 사용자 3천만 명
조직의 가치와 철학을 반영한 브랜드 700개
스티비를 통한 더 효과적인 이메일 3억 통
빠띠와 함께 더 민주적인 세상을 만든 51만 명

대부분 비영리조직이거나 사회적기업, 혹은 기관인 우리의 파트너가 1100곳이라니 저 역시도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가 만든 서비스를 한번이라도 써 본 사람들의 수 역시도 적은 수가 아닙니다. 아마도 제가 회사를 다니며 시간을 쪼개서 사회적기업이나 공유기업을 도왔다면 결코 도달하지 못했을 수치입니다.

그리고 처음 생각과 달리 이 섹터는 이 섹터 나름의 매력과 강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도 어느 틈에 생각보다는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구요. 영리를 대상으로 하는 일과 비영리를 대상으로 하는 일의 균형이 맞아 돌아가면 운영에서도 안정감이 생기고, 무엇보다도 영리를 추구한다는 행위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시대로 바뀌면서 저희의 미션이 더 주목을 받게 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틈에 여기까지 왔나 싶습니다. 처음 시작했던 가벼운 마음은 이제 묵직한 책임감으로 변한지 꽤 되었구요. 그러나 한편으론 점점 더 제 역할이 줄고, 동료들과 동맹들이 멋지게 내는 성과들을 통해 제가 함께 살아간다는 안전감도 커져 갑니다.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와 그리고 우리와 어깨를 걸고 등을 대고 함께 사회에 도전하는 동료들과 동맹들이 앞으로 벌일 일들이 기대되고, 우리가 함께 한 일들이 자랑스럽습니다.

peace builder와 5가지 플랫폼

저는 매일 아침 컴퓨터 앞에 앉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선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1년 뿐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내가 되고 싶은 정체성을 적어 놓은 버킷리스트를 열고, 한번 더 내가 되고 싶은 정체성에 더 가까워지도록 다듬고, 내가 가진 자원과 역량, 시간의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담기도록 다듬습니다.

이 목록에는 일치되고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몸과 마음의 건강. 가족과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 알고 싶고 익히고 싶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으로 내게 삶을 준 이 세상 속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일들을 할지가 담겨 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다듬어온 이 목록에 2017년 지금 이 시점엔 peace builder란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평화빌더입니다. 스스로의 평화로부터 가까운 사람들과의 평화, 그리고 세상과의 평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리게 되길 바라고, 그럼으로써 세상이 더 평화로운 곳이 되도록 기여하는 것이 저의 욕심입니다. 그 일에 빌더라는 정체성으로 도전하려고 합니다.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조직하고 서비스와 플랫폼을 만들어내어 적절한 자리에 세우고 지속 가능하도록 붓돋는 작업. 지금은 인터넷과 IT라는 기술을 주로 활용하지만, 더 많은 것들을 배워서 세상을 더 평화롭게 만드는데 활용하고 싶어 합니다.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인 이유는 수많은 피스빌더 중의 나도 한명이란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평화가 가득하도록 제가 구체적으로 하고 싶다고 정리한 세부항목은 5가지 플랫폼입니다. 전문가들을 위한 삶의 기반, 미디어, 컬렉티브, 민주주의, 그리고 다시 삶입니다. 그리고 이 각각은 현재 제가 진행하고 있는 일들, 혹은 앞으로 하려는 일들과 연결됩니다. 슬로워크, 빠띠, 우주당, 라이프퀘스트 등입니다.

가장 첫번째가 전문가들을 위한 삶의 기반입니다. UFOfactory였고, 지금은 슬로워크입니다. 사회의 혁신이든, 소셜 임팩트든,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든, 더 재밌게 만들든 모두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 일들이 지속되려면 가장 먼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삶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금수저가 아닌 저에게도 이 기반은 필요합니다. 라이트 형제가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면서 비행기를 만들었지요. 슬로워크의 미션은 사실 이보다는 더 포괄적입니다만,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의 삶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기본 소득 논의에서 이슈가 되는 어느 정도가 삶의 기반으로 적절한가에 대해서도 각자 팀이 자율적으로 정의하면 목표가 정해지는 구조입니다. 평화의 여정에 이 자립의 과정은 가장 기본이 됩니다. ( 한가지 더 기대하는 바가 있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풀어 보겠습니다 )

두번째는 미디어입니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개인 미디어입니다. Me이면서 Media입니다. 슬로워크가 하는 일들 중 상당수가 브랜드를 만들고 홍보물과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 일이 가지는 의미를 저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수단을 갖게 하는 것으로 봅니다. 서로 존중하기 위해선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서로 이해하려면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 나에 대해 알기 위해선 나를 알릴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합니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이 수단이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힘을 모두가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게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다음 블로거뉴스와 다음뷰를 만들때에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세번째는 컬렉티브입니다. 커뮤니티라는 말이 더 익숙합니다만, 굳이 컬렉티브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까닭은 앞서 언급한 자립과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양을 설명하는데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만나서 부딪히고 새로운 답을 만들어내고, 적절한 도움을 서로 주고 받는 곳. 우리가 일하는 조직,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의 모임,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더 민주적인 관계를 맺도록 돕는 기반 플랫폼과 가이드를 빠띠를 통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정치입니다. 정치를 통해서 우리가 바꾸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규정하고 있는 여러 시스템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그 시스템은 법률이기도 하고, 행정이기도 합니다. 이 시스템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작동하도록 만들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직접 참여해서 개선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만드는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예전과 달리 지금 시대에는 인터넷의 힘을 활용해 시민들이 더 직접 더 자주 우리 사회의 시스템의 개선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주당으로 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다섯번째는 다시 삶입니다. 메이커들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수단으로써의 일뿐만 아니라, 자신다움을 표현하고 세상에 기여하는 수단으로서의 일을 하는 기회(덕업일치)를 갖는 것. 더 나아가 노동하지 않고 놀 권리를 갖게 되는 것. 이를 돕기 위해 기술을 활용해 플랫폼을 만든다면 어떤 서비스가 될까요? 롤플레잉 게임에서 캐릭터를 성장시키듯이 우리가 이 세상을 도전과 모험으로 바라보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인생 게임을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앞의 네가지를 마무리하고 어서 도전해 보고 싶은 과제입니다.

저에게는 이 다섯가지가 한 사람이 평화에 도달하는 과정이자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기반을 통해 자립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낼 수단을 갖게 되고, 서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협업하고, 세상을 이루는 시스템들을 정치 참여를 통해 변화시키고, 그 환경 속에서 다시 각자의 개성에 맞는 삶을 즐기는 것. 이런 삶이 평화로운 삶이고, 이런 세상이 저에겐 평화로운 세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요? 글쎄 그건 좀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만,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중요한 저이기에 19년째 여러 가지 일을 하며 꾸역 꾸역 도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 같아요.

밴드하듯이 새로운 일하기

맨 땅에 헤딩하거나, 장님 문고리 잡듯이라도 일을 시작하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마음껏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이 훗날에 도움이 될테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답도 찾을 수 있을 꺼란 이야기다. 그러나 보통은 그렇게까지 맨땅에 헤딩하거나, 완전히 눈을 감은채 일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는게 바람직하지도 않고.

일단 그런 방식에는 절반 이상의 실패 확률에 따르는 비용이 든다. 시간과 현금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몸과 마음에 고통도 따른다. 그리고 맨 땅에 헤딩이나 장님 문고리 잡기는 좋은 표현이지만 실제로는 동전 던지기랑 다르지 않다. 요리를 배우겠다고 냄비를 불 위에 던져서 놓으며 바람직하게 놓는 방법을 찾아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하는 일일 경우에 대체로 자신이 예전에 했던 경험 중에서 성과가 좋았던 것들을 찾아 보고 우선 적용해 본다. 나는 UFOfactory를 시작할때 “회사를 만들어 본 경험”은 없지만 웹서비스를 만들던 경험을 참고했다. 고객과 직원들의 만족도를 UX라고 생각했고, 어떤 인풋과 아웃풋이 어떤 알고리즘을 거쳐서 나오는게 맞을지 고민했으며, 실제로 회사가 돌아가는데 필요한 핵심기능이 몇 안 될 꺼라는 생각을 하며 그걸 찾아내기 위해 작은 실험들을 하며 추려내기도 했다.

중요한건 지금인데, 내년에 새로운 일을 하게 될지 말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이 새로운 일에 대해서 아는게 하나도 없는지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감도 못 잡는 상황이었다. 멤버들의 생계가 달려 있어서 고민을 미룰 수도 없었다. 그러다 어제 청년허브에서 준비한 국제컨퍼런스에 토론자로 참여하면서 하나의 힌트를 얻었는데 그것은 바로 ‘밴드’였다.

서로 다른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들이 모여서 합주를 한다. 합주 안에서 각자의 재능과 감성에 따라 변주가 일어나고, 그 음악이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5분에서 10분 정도의 곡을 연주하는 동안 동료들과 함께 각자의 악기로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꽤나 경이롭다. 누가 들어가고 누가 빠질지, 누군가의 악기가 리드하는 동안 내 악기로 어떻게 서포트할지, 치고 빠지고 함께 달리고, 순간순간 눈을 마주치며 신호를 주고 받기도 하고, 동료의 예상치 못한 애드립에 감탄하고 내가 펼친 연주에 동료들이 눈짓으로 환호하는 등. 또한 그 음악을 듣는 이들의 마음이 열리고 각양각색의 마음들이 공간 속에 뒤엉키며 함께 공유하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경험은 음악이 아니면 경험하기 힘든 순간이다.

앞으로의 조직들은 이런 밴드의 합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는 바람직한게 아닐까? 그리고 나도 새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를 일을 합주 방식으로 해 보면 되지 않을까? 전문가들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 합주하듯이 일을 이어나가는 방식. 이미 15년도 전에 한 경험임에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순간들처럼 해 보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라면 어쩌면 ‘시도는 해 볼 수 있겠다’단 생각이 들었다.

자축 겸 망상

오늘은 12월 5일. 나의 양력 생일이다. 보통은 음력 생일을 기억하는 수준에서 지나가지만, 올해는 양력 생일이 남다른 느낌이었다. 1976년 12월 5일에 태어났으니, 지금 2016년 12월 5일까지 나는 정확하게 40년하고 하루를 맞았다.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수많은 후회들이 있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잘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보통은 시도하지 않을 일들을 시도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상황에 떠밀려서 결정하고, 능력이나 여건이 받춰주지 않을 때에도 내가 좀 고생하지 뭐 라고 생각하면서 시도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사서 고생하면서도, 별로 성과없는 일들을, 눈치없이 많이 한 것 같다. 솔직히 안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싶은 마음은 크지만, 별 다른 수도 없었을게 틀림없다.

꽤나 긴 시간을 지내고 난 지금 한편으론 만족스럽기도 하다. 하고 싶었던 것들을 했고,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들을 했으니까. 내가 정리한 나의 버킷 리스트 3/5 정도가 일정 부분 마무리되었다. 커다란 성공을 거두진 못했어도, 여러 우여곡절들을 버텨내며, 지금 이렇게 살아 있구나 싶어 며칠 전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나, 그래도) 이제부터는 내 원래 생각에 가까운 일을, 직접적으로 해야겠단 다짐을 했다.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니, 지금까지처럼 “누군가를 돕고 시너지를 낸다”는 스탠스에만 머물러 있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걸 무엇으로 잡을지 원점에서부터 다시 내 안을 검색해 보고 있다. 내 상상을 뛰어 넘는 일이 잡히기를 바라며.

ps. 이런 모색의 계기가 된 “이제부터 10년 뒤에 뭘 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으냐”고 질문을 해 주신 분께 여기에 감사 인사를 남긴다.

척박함 속에서 더디게 자라는 이들

적지 않은 햇수를 살아왔지만 나는 늘 부족함을 느낀다. 어떻게 행동하는게 좋은지, 내 느낌과 생각은 내 것이 맞는지 하루에도 수십번씩 고민한다. 그런 고민을 통해 새롭게 얻은 깨달음은 눈에 잘 띄는 메모장에 적어두고 자주 들여다보려고 노력도 한다. 자신을 늘 튜닝하는 느낌, 그러나 앞으로도 부닥치게 될 일들이 무수하게 많다는 걸 알기에 막막한 느낌.

부닥쳤구나는 대개 불편함이 느껴질 때 알아차린다. 그렇다, 아직 나는 일상에서 만나는 여러가지 상황들이 불편하고 어렵다. 더 정확한 느낌은 “나라는 사람이 불편하고 어려워 한다는 걸 알겠다”이다. 다행히도 “나를 비난”하거나 “상대를 비난”하거나 “상황을 비난”하기보다는,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상황에 부닥쳤구나”라고 생각할 요령은 갖추었다. 그리고 고민을 시작하고 내 답을 찾으려 장님 문고리 잡듯이 노력한다. 그 노력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까이게 하고 다치게 하고 무언가가 망가지게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니까. 그리고 이렇게 된 데에는 두가지 이유 정도가 있는 것 같다.

첫째로 나 자신이 자라는 속도가 평균에 비해 좀 느린 편이었다. 나는 아직도 어릴 적 나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달라진게 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도 고등학교를 절반이나 다닌 이후에야 보통 이야기하는 사춘기 같은게 찾아왔던 것 같다. 기억 보정이라 정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때 즈음에야 내가 아닌 주변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적엔 늘 몸이 허약한 아이였고 그게 정말로 싫었다. 몸이 자라는 것도 정신이 자라는 것도 평균보다는 느리다는걸 아주 어릴 적부터 느낄 수 있었다.

두번째로 우리집은 넉넉하지가 않았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을 겪어 보거나, 그 상황 속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에 대한 참고할 만한 꺼리가 부족했다. 부모님들도 충분히 많이 아셨던 것 같지는 않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게 자랑스러운 환경이었고, 부산의 가까운 친척들 중에는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없었다. 꽤나 공부를 잘 했던 편이었지만, 나는 전액장학금과 기숙사로 운영되는 부산의 모 공업고등학교에 가서 빨리 독립하고 싶었고 그 선택지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대학에 가서야 과학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고, 직접 만나는 것도 처음이었다. 나나 내 주변이 아는 선택지란게 그 정도 범위였다. 외국대학에 다니는 아이들도 대학 졸업 즈음에나 실제로 본 것 같다. 서울을 가 본게 20대 중반까지 두번 정도였을 뿐이었으니까. 그것도 친구랑 함께 “한번 가보자”라고 해서 여행처럼 가보거나, “시험”을 치르러 고속버스에 실려 간 것이었다. 나는 부산의 가난한 산동네라는 척박한 환경 안에 있었던 셈이다. 친구들 중에서 그나마 잘 사는 아이들은 부모님이 작은 가게를 하는 집이었고,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서 잘 사는 동네 아이들이었던 아파트 촌에 사는 아이들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30평을 넘는 집을 본 기억이 없었지만 그 아이들은 그 아이들만의 세계가 있었다. 대학교가 가까웠던 동네였던지라 우리는 매일같이 최루탄을 마셨지만, 어릴 적 우리에게 왜 대학생들이 거리에 나와서 저러는지 설명해주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여러가지가 낯설고 어렵다. 때론 정말 쉽지 않다고 느낀다. 내가 자라온 척박한 환경이나 더딘 스스로가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도 많다. 그게 내게 주어진 조건이고 자원이겠지만, ‘누구누구를 만나봐라’라고 주선해주는 외할아버지나 친척 어르신, 친한 선배는 커녕 “이제서야 말하는데 말이지”라며 인생 상담을 해 줄 부모님도 30대가 된 이후의 내겐 없었으니까. 그러나 어디 나만 그렇겠나 정도는 아는 나이가 되어서 다행이고, 내가 예측에서 벗어난 행동을 해서 깜짝 놀랐던 이가 있었다면 이런 사정이 있었구나라며 이해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주말 보내기 – 완전한 이주 준비

숙소에 있는 짐을 하나 하나 정리했다. 사무실에 가져갈 책, 일본으로 가져갈 책, 당분간 읽을 책을 한 곳으로 모으고. 옷가지는 눈에 보이는 곳에 모은 후에 가능한 필요한 것만 남겨두려고 해 본다. 먹을꺼리들은 여간해서는 잘 안 먹으니까 사무실로 옮겨놓았고, 몇 안 되는 식기도 한 곳에 모아둔다. 눈에 보이는게 내 짐의 전부이지만 이것들 중에도 쓰이지 않는게 많다. 생활하는데 내게 필요한건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 지내는 곳의 계약이 이제 몇 달 남지 않았다. 계약이 만료되면 가급적 한국에 오는 횟수를 더 많이 줄이려 한다.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은 상황에서 삶의 기반을 이렇게 국외로 옮겨도 되는걸까 걱정이 든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하는 일이 넉넉해지려는 일과는 무관하긴 매한가지다. 애초에 넉넉함이란게 무엇인지 경험해 본 적도 없던터라, 노력도 안 하면서 혹시나 기회가 올까라는 막연한 바램이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바라는게 아니라.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신 후에 알게된 것도 두 분의 삶 어떤 순간에도 넉넉한 적이 없었다는 발견이었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에겐 받아야 할 빚들이 있었지만 갚아야 할 것들도 있었기에 우리 형제는 상속을 포기하기로 했고, 어머니는 형과 함께 사는 것과 매달 나오는 적은 보조금 외에는 저금도 벌이도 없었다. ‘매달 생활비를 어떻게 만드셨던 걸까’ 나는 두 분이 돌아가신 후에야 그런 의문이 들었고, 아무 것도 못 해드렸던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내가 첫 직장을 다니기 위해 부산을 떠날때, 부모님이 주신 500만원이란 보증금과 지인들로부터 빌리신 돈을 갚기 위해 내가 살던 곳의 보증금을 빼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첫 직장을 다니면서는 얼마 안 되는 비용이었지만, 은행으로부터 빌린 학자금을 갚고 있었고.

물론 나 역시도 넉넉하다는 느낌, 안정감을 가져본 적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없다. 그러니 20대의 내가 부모님의 사정을 더 자세히 알았다한들 무얼 할 수 있었겠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이렇듯 목만 내어놓고 먼 곳을 수영하는 느낌 아니겠나 짐작하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버텨낼 각오였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만드는 조직의 구성원들의 먹고사니즘을 가장 먼저 걱정하는 까닭도 내가 해 온 경험과 내가 처한 상황 때문일 테고. 부산의 가난한 산동네 아이였던 내가 기술 하나로 버텨온 것처럼 그들이 기술로 밥벌이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제 앞가림도 여전히 못하면서 말이다.

빠흐띠 : 세개의 플랫폼

지금 작업중인 나의 크롬 탭을 보니 빠띠, 가브크래프트, 카누 3개가 있었다. 1년간 이런저런 여러가지 실험을 하며 빠흐띠 팀이 모은 세가지 조각이다. 사람과 사람을 단순히 연결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상호 존중과 시너지를 일으키는 관계를 맺게 할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이다. 그럼으로써 내가 사는 세상에 더 나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퍼트릴지에 대한 빠흐띠 팀이 내놓는 답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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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워크, UFOfactory 합병도 어느 정도 자리 잡아가는 시점이고. 빠흐띠도 1년간의 실험을 정리하고 이제 본격적인 프로덕트 개발, 본격적인 마케팅, 본격적인 컨텐츠 및 커뮤니티 발굴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기능의 강약도 없고, 컨텐츠 발굴도 없이 빠흐띠 팀은 개발자들만 모여 실험해 보고 싶은 건 다 해 본 한 해였다. 카누는 두번 만들어봤고 (앱까지 치면 3번인가?), 빠띠는 우리가 아는 모든 서비스를 다 흉내내 보았고, 가브크래프트는 나는 알아야겠당, 국회톡톡 등으로 여러가지 접근을 실험해 보았다.

아직도 난 민주주의 플랫폼을 기획하고 개발할때 두근거린다. 이 두근거림만으론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순 없겠지만,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의 네트워크에 끼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나씩 해 나가고, 그 네트워크가 함께 세상을 바꾸면 좋겠다. 오늘도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살고 싶다. 그게 내 사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