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민 공간에서의 시민 권력과 민주주의

2024년 광주에서 열린 제14회 세계인권도시포럼의 “시민사회 활성화” 세션에서 공유한 발제문입니다.

디지털 시민 공간 속 디지털 시민

인터넷이 사회에 등장하면서 우리의 생활 공간은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확장된 공간은 시간의 차이와 공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사람들을 연결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결은 새로운 가치를 낳았고 새로운 문제도 함께 낳았습니다만, 디지털 기술은 이제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사회의 기본 양식이 되었습니다.

코로나19 초기, 저를 포함한 서로 일면식이 없었던 10여명의 시민 개발자(시빅 해커)들은 온라인으로만 만나 정부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의 공개를 요청했습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만큼이나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고, 시민들이 역할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가진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침 마스크 대란의 해결책이 필요했던 정부는 일면식이 없던 시민 개발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함께 약국의 마스크 재고 현황을 공개하는 데이터를 공개하기로 결정합니다. 데이터 공개를 요청했던 시민 개발자들은 정부와 함께 데이터 공개 작업에 참여하는 동시에, 여러 개발자 커뮤니티에 마스크 앱 개발에 동참할 것을 요청합니다. 하루만에 200-300명의 개발자들이 텔레그램 채널 하나에 모여서 함께 3일만에 마스크 앱을 개발합니다. 우리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었고 중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으며, 마스크 앱을 개발하기 전에는 만난 적이 없었으며, 앱을 개발하는 동안에도 메신저와 문서로만 소통하였습니다. 이렇게 사회 문제를 자신이 가진 기술로 해결하는 시민을 시빅 해커 혹은 시민 개발자라고 부릅니다.

빠띠가 만드는 시민 활동 플랫폼인 캠페인즈에는 다양한 주제의 캠페인이 올라옵니다. 기후위기와 관련한 이슈부터 정치 개혁 이슈, 동물권 이슈 등 다양한 이슈들은 다른 시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서명, 청원, 목소리 모으기, 지도 만들기 등의 캠페인으로 모입니다. 이 캠페인들은 공개되면 몇천명부터 많게는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해 목소리를 모읍니다. 얼마 전 기후 헌법 소원을 통해 “정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판결을 끌어낸 청소년기후행동은 5,289명의 목소리를 모아 국민참여의견서를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에 따르면 1948년생부터 2016년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전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었고, 그 중에서 90%는 10-30대였다고 합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이전과는 다른 규모의 다른 구성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시민들을 우리는 디지털 캠페이너라고 부릅니다.

디지털 캠페인은 허위정보를 검증하는데에도 활용됩니다. 시민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과 관련한 주장들과 데이터를 함께 모아 정리하기도 했고,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주장들을 함께 검증해서 팩트체크 컨텐츠를 만들기도 합니다. 인구 감소에 대한 주장,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주장, 물가 인상 폭, 디지털 성범죄, 재난안전문자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서로 협력해서 근거를 찾고 검증하는 시민을 우리는 시민 팩트체커라고 부릅니다. 시민 팩트체커를 모으고 활동을 지원하며 필요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빠띠는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으로부터 팩트체크사업 지원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작년과 올해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빠띠는 이 질문을 가지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들이 1:1로 만나 대화를 하는 한국의 대화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입니다. 2023년에는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곤 하는는 10개의 질문을 준비하고, 이에 응답한 700여명의 답변 하나 하나를 별로 만들어 서로의 답변 차이를 거리로 계산해 은하로 그려보았습니다. 이들 중 신청자 50여명을 모셔서 오프라인에서 1:1로 대화하는 시간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동성간의 혼인에 동의하는 20대 남성이 이에 의문을 가진 60대 여성과 함께 만나 2시간 가량 대화를 나눈 후에, 의견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아니 아예 가족들과도 대화를 하지 않는 시기에 이러한 시민 대화의 공간 자체가 소중하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서로 대화하는 공간을 만드는 시민들을 우리는 시민 대화 기획자 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때로는 온라인에서 때로는 오프라인에서 시민들이 이슈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거나 다양한 의견을 접하도록 돕고,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돕습니다. 더 나아가 이 의견이 제도 개선, 정책이나 사업 제안에 영향을 끼치도록 정리하기도 합니다.

빠띠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가능해진 새로운 시민 활동을 정의하고 이에 필요한 여러 활동들을 지원하고 필요한 플랫폼을 만드는 사회적 협동조합입니다. 시민 활동 플랫폼 캠페인즈, 시민 대화 플랫폼 데모스X, 시민 데이터 플랫폼 데이터트러스트를 통해 디지털 캠페이너, 이슈 크리에이터, 뉴스 코멘터, 시민 팩트체커, 시민회의 기획자, 시민대화 기획자, 시민 패널, 공익 데이터 활동가, 시민 개발자 등등 다양한 활동을 정의하고 확장하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 활동들을 더욱 더 연결하고 협력이 일어나도록 시티즌패스 라는 멤버십을 만들었고, 여기서 멤버들은 디지털 시민으로서 다양한 교육과 모임, 협업을 나누며 역량을 키우고 활동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시민 권력과 민주주의

연결된 시민들이 함께 협력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요? 

우선 당면한 사회, 경제, 국제, 기후 위기는 연결된 시민의 힘, 즉 시민 권력으로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책임있게 하도록 만드는 힘도 시민에게서 나옵니다. 커다란 자본과 기술 독점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고 사회적 자본과 새로운 기술을 위기 극복에 활용하기 위해서도 시민의 권력이 필요합니다. 역량이 뛰어난 전문가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기술이 위기를 가중시키기보다 위기를 극복하는데 활용되도록 만드는 일은 자동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시민의 권한과 시민의 역량을 확대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통제 가능하도록 만들때 공공성에 기여하도록 만들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시민 권력은 시민 스스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각자의 목소리와 권리를 확장하는 것만큼, 서로 다른 주장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태도를 가진 시민들이 필요합니다. 각자도생을 넘어 서로 협력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자산을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각자가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사회와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민하는 시민으로 시민들 스스로 나아갈때에 우리 사회를 좋은 공동체로 만들수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당면한 사회, 경제, 국제,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서로 존중하고 포용하며, 신뢰하고 협력하며,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과제는 시민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더 많은 권한과 역량, 즉 시민 권/력을 확대함으로써만 이 과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민 참여, 협력, 자치를 확대하고 시민 역량, 공간, 자산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시민의 역량을 부정하고 권한을 제약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류가 공동체를 만들어온 이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누구나 발언하고 모두가 연결되는 인터넷 기술이 시민의 역할을 불신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인식은, 오히려 더욱 더 자동화 기술 즉 인공지능의 역할에 더욱  주목하도록 만드는 역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 스스로가 다른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신뢰하기보단 불신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시민 스스로의 역할을 제한하는데 동의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극성 소비자’, 정치인을 무작정 숭배하는 ‘팬’, 분노와 갈등에 쉽게 휩쓸리는 ‘팔로워’로 시민을 폄하하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부와 기업과 기술이어야 한다는 위험한 인식은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불과 20-30년이 채 안 된 디지털 기술과 시민의 결합이 사회 문제의 근본 원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짧은 기간을 넘어 앞으로도 시민들을 더욱 연결하고 협력을 증진하며 시민 권/력을 확대함으로써 보통의 시민들이 모두가 같이 협력하는 것만이 위기 극복과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길입니다. 민주주의가 일상 속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노력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고, 빠띠가 디지털 시민의 다양한 활동과 정체성을 정의하고 쉽게 쓸 수 있는 모두의 플랫폼을 만드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