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에 일을 시작했고 복학기간을 제외하면 만 20년을 일했다. 10년은 회사에서 지냈고, 10년은 어설프게나마 내 사업을 했다. 운이 따라서 꿈꿨던 삶에 나름대로는 가깝게 지금까지는 지내왔다. 순간 순간은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깝지 않다는 느낌들이 훨씬 강했지만, 바라던 삶에서 멀어질 때마다 고민하며 지그재그로 어느 정도 맞춰온 것 같다. 그렇게 지내며 벌써 40년을 넘게 살았다. 인생의 절반 가량을 일하며 보낸 셈이다.
40대가 되고 보니 느끼는 것들이 꽤 있다. 우선 기억력이 옛날 같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공부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소용없다는 걸 느낀다. 공부하면 할수록 앞서 공부한 것들은 내 뇌 속에서 사라지니까. 모든 걸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제대로 알아야 할 것과 얄팍하게 알아야 할 것들을 더욱 구분해야 한다는 걸 느낀다. 꼭 필요한 것 위주로 공부에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도.
두번째는 내가 모르는 걸 물어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아마도 어떤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면, 전문가라는 느낌 때문에 사람들이 여러가지를 함께 물어보는데. 글쎄, 나도 모르는 일들을 질문받을 때가 점점 늘어나는게 느껴진다. 물론 일을 하면서 여러가지를 보게 되기 때문에, 내 전문분야가 아니어도 질문하는 이보다는 잘 아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정답”을 알려줄 수준은 안 될 때가 많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20년간 일하면서 지금 받은 질문을 나보다 더 잘 알 것 같은 사람이 머릿 속에 한두명 떠오르기도 한다. 즉 나는 모르지만, 알 것 같은 사람은 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세번째는 첫번째, 두번째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일을 해 오면서 내가 고민하고 내가 축적해온 전문성들이 사회의 그 누구보다도 깊이가 있음을 느낀다. 같은 일을 나만큼 오래 한 전문가가 사회에서 드물어지는 시기가 온 거다. 누군가가 내게 내가 해 온 일과 관련해서 묻는다면, 내가 최신 트렌드는 모를 수 있어도 지난 20년간 한 일에 대해서는 나만큼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겠다 싶다. 거기에 더해 내가 이 분야에서 깨달은 것들이 다른 분야에서도 세부 항목은 달라도 비슷하기도 하단 걸 느낀다. 사람 사는게, 세상이란게 비슷한게 많은 셈이다.
이 세가지를 조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오더라.
첫째, 점점 더 내가 잘 하는 일을 넘어서 여러가지 문의들이 오게 된다. 그만큼 내가 모르고 있구나 라고 깨닫는게 점점 더 늘어나고, 내가 성급하게 답변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늘어난다. 그러니 함부로 답변하지 말자. 혹은 답변하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임을 공유하고 답변하자. 모르거나 잊어버린 것 중에 반드시 지금이라도 알아야 할 것들은 더 깊게 공부하고, 몰라도 괜찮을 것들은 흘려 보내자.
둘째, 나보다 더 잘 알 것 같은 사람들, 나보다 어떤 일을 더 잘 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거나 함께 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그 분야의 일가견을 이루었거나 앞으로 이룰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사회에 그 정도로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아직 없다면 내 주변 사람들 중에 그 분야를 새롭게 파고 드는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나누고 응원하자. 정리하면 내가 아는 전문가들과 협업하거나, 그 분야를 파고들 젊은 분들과 협업하자.
셋째, 내가 지금까지 해 왔고, 내가 좋아하고,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에 더욱 더 깊게 파고들자. 누구보다도 깊은 전문성을 갖추려고 더욱 노력하고, 또 스스로도 그만큼의 전문성을 갖추었음을 믿자. 그래서 내게 맡겨진 일이나, 내게 주어지는 질문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임하도록 하자. 그리고 이 분야에서도 희미하게 보이고 어느 곳에서나 발견되는, 삶과 세상, 우주의 기본 진리에 대해서 성찰하자.
만약 이를 조심하지 않은채 중년을 살아간다면. 잘 모르면서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기회와 성과는 혼자서 독식하고, 이미 낡아버린 전문성만 갖춘 노년이 될지 모른다. 젊은이들은 그런 사람을 꼰대라고 부르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