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하듯이 새로운 일하기

맨 땅에 헤딩하거나, 장님 문고리 잡듯이라도 일을 시작하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마음껏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이 훗날에 도움이 될테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답도 찾을 수 있을 꺼란 이야기다. 그러나 보통은 그렇게까지 맨땅에 헤딩하거나, 완전히 눈을 감은채 일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는게 바람직하지도 않고.

일단 그런 방식에는 절반 이상의 실패 확률에 따르는 비용이 든다. 시간과 현금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몸과 마음에 고통도 따른다. 그리고 맨 땅에 헤딩이나 장님 문고리 잡기는 좋은 표현이지만 실제로는 동전 던지기랑 다르지 않다. 요리를 배우겠다고 냄비를 불 위에 던져서 놓으며 바람직하게 놓는 방법을 찾아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하는 일일 경우에 대체로 자신이 예전에 했던 경험 중에서 성과가 좋았던 것들을 찾아 보고 우선 적용해 본다. 나는 UFOfactory를 시작할때 “회사를 만들어 본 경험”은 없지만 웹서비스를 만들던 경험을 참고했다. 고객과 직원들의 만족도를 UX라고 생각했고, 어떤 인풋과 아웃풋이 어떤 알고리즘을 거쳐서 나오는게 맞을지 고민했으며, 실제로 회사가 돌아가는데 필요한 핵심기능이 몇 안 될 꺼라는 생각을 하며 그걸 찾아내기 위해 작은 실험들을 하며 추려내기도 했다.

중요한건 지금인데, 내년에 새로운 일을 하게 될지 말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이 새로운 일에 대해서 아는게 하나도 없는지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감도 못 잡는 상황이었다. 멤버들의 생계가 달려 있어서 고민을 미룰 수도 없었다. 그러다 어제 청년허브에서 준비한 국제컨퍼런스에 토론자로 참여하면서 하나의 힌트를 얻었는데 그것은 바로 ‘밴드’였다.

서로 다른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들이 모여서 합주를 한다. 합주 안에서 각자의 재능과 감성에 따라 변주가 일어나고, 그 음악이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5분에서 10분 정도의 곡을 연주하는 동안 동료들과 함께 각자의 악기로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꽤나 경이롭다. 누가 들어가고 누가 빠질지, 누군가의 악기가 리드하는 동안 내 악기로 어떻게 서포트할지, 치고 빠지고 함께 달리고, 순간순간 눈을 마주치며 신호를 주고 받기도 하고, 동료의 예상치 못한 애드립에 감탄하고 내가 펼친 연주에 동료들이 눈짓으로 환호하는 등. 또한 그 음악을 듣는 이들의 마음이 열리고 각양각색의 마음들이 공간 속에 뒤엉키며 함께 공유하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경험은 음악이 아니면 경험하기 힘든 순간이다.

앞으로의 조직들은 이런 밴드의 합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는 바람직한게 아닐까? 그리고 나도 새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를 일을 합주 방식으로 해 보면 되지 않을까? 전문가들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 합주하듯이 일을 이어나가는 방식. 이미 15년도 전에 한 경험임에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순간들처럼 해 보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라면 어쩌면 ‘시도는 해 볼 수 있겠다’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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