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엣남에 진 빚

팀원 중 한 명이 오키나와에. 팀원 중 두 명이 비엣남에 휴가를 다녀오거나 갔다. 나름 애정하는 곳들이고, 언젠가는 꼭 살아 보고 싶은 곳. 그리고 마음에 빚이 있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 쓰던 비실비실하고 누리끼리한 “나는 허약하오”라는 느낌을 풀풀 내는 내 프로필 사진은 20대 중반에 처음 나가 본 해외였던 비엣남에서 찍은 사진이다. 같이 간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하는지 모르나 나로서는 첫 해외라는 점 외에도 여러 면에서 낯설고 생각이 많았던 여행이었다.

우선 그 무렵의 나는 준비해 오던 목사의 꿈을 포기하고 “이제 뭘 하고 사나”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한 친한 형이 민주노동당이란 곳에 가서 좀 도움이나 줘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누구의 소개 없이 부산시당에 무작정 찾아가서 “뭐 할 거 있으면 해볼께요”라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때 알게 된 친구가 내게 비엣남 여행을 권했고, 나는 대학에서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비엣남에서 보내게 되었다.

비엣남에서 나는 월남전에 참전한 우리 나라의 군대가 주민을 학살한 마을에서 잠을 자고 밥을 얻어 먹으며 일주일을 보내었었다.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할머니로부터 환대를 받고, 가난한 비엣남의 농촌을 살리겠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청년들을 만나고. 멀리 찾아온 우리에게 의미를 주기 위한게 분명해 보이는 별로 쓸모 없어 보이는 허드렛일을 하고.

내가 그런 일들에 원래 관심이 있었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20대 중반에 들어서서야 한국근현대사에 일어난 사건들을 알게 되었고, 교회를 나오고 나서부터야 내 손으로 찾아 보고 있었다. 근대화니 민주화니 볼 때마다 낯설고 불편하고 여지껏 왜 몰랐나 미안한 마음이 들던 시절이었다.

갈때부터, 가서도, 올때도. 생각이 참 많았다. 막연하게 “해야 할 게 많구나”란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정작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하지는 못한 것 같다. 지금도 마음의 빚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기억.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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